제 63 장 함 정
“구면이군.”
진월이 대장으로 보이는 자에게 말한다. 과거 민서가 납치될 때 용자룡의 곁에 있던 자다.
“우리가 온 것을 어떻게 알았지?”
“내 귀가 밝다.”
“쳐라!”
지원팀을 요청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들은 진월을 향해 쇄도한다. 강화복을 걸친 그들의 움직임은 빠르다.
훙! 침투한 대원 중 하나의 권이 대기를 가르며 진월에게 날아든다.
진월의 손에서 검은 영사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다. 침투한 대원의 권이 진월의 양 손 사이를 빠져나간다.
콱! 대원의 팔이 빠져나가다가 멈춘다. 진월의 검은 영사가 단단한 줄이 되어 대원의 팔을 구속했다.
“윽!”
팔이 잡혀 꼼짝도 못한다. 그저 팔이 잡혔을 뿐인데 마치 급살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이다. 서늘한 한기가 온몸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바로 검은 빛의 영력이 지닌 기운 때문이다. 영력을 성질에 따라 분리해서 쓸 수 있는 능력이 강화된 덕분이다.
진월의 손날이 세워진 채 마치 단검을 찌르듯 침투한 대원의 복부를 찌른다. 손에는 검은 영사가 단검의 형상으로 맺혀있다.
푸욱! 강화복을 간단히 뚫는다. 침투한 대원은 작살에 꽂힌 연어처럼 푸들거린다.
진월이 바로 몸을 돌린다. 다른 공격이 그가 있던 자리에 바로 박힌다.
지직~
전기봉이다. 시커먼 봉이 진월을 향해 다시 내리 꽂힌다.
진월의 주변에 형성된 검은 영사가 마치 하늘거리는 천처럼 흩날린다. 마치 간을 보듯 영사의 끝자락이 전기봉의 끝을 건드린다.
지직! 지직!
쾅! 옆으로 피하던 진월의 오른발이 지면에 박힌다.
살짝 굽혀졌던 진월의 무릎이 팍 펴진다. 침투한 대원 둘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갑자기 엄청난 속도로 대시한다.
쩡! 몸 주변에서 하늘거리던 검은 영사가 금속처럼 강해진다. 둥근 막과 같은 방패가 된다.
퍼퍽!
“큭!”
“억!”
침입한 대원 둘이 방패에 부딪치며 동시에 뒤로 튕겨나간다.
IUC측 대장이 날려가는 대원의 뒤를 받친다.
“피해라.”
“…….”
대원은 두 말하지 않고 몸을 피한다. 그럴만한 상황이기에 내린 명령일 것이다. 바로 곁에서 같이 튕겨지던 대원의 앞에는 이미 진월이 위치를 점하고 있다. 엄청난 빠르기다. 진월의 손날이 다시 앞에 있는 대원의 복부로 날아든다.
푹! 다시 한 번 진월의 흑빛 영사 단검이 대원의 복부에 박힌다.
“헉!”
단장(斷腸)의 고통을 내뱉는다.
후웅! 진월의 측방에서 갑자기 거친 바람이 일어난다.
대장이 전력을 다해 진월에게 권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앙! 진월의 왼손이 대장의 권을 향해 펼쳐지며 굉음이 일어난다. 검은 영사의 방패가 대장의 권을 막아냈다. 하지만 대장의 권의 위력이 상당했나 보다. 진월의 몸이 죽 밀려난다. 그와 동시에 대원의 복부에 박혀 있던 영사의 단검도 쑥 뽑혀 나온다.
“후우~”
대장이 긴 숨을 내쉰다. 거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던 것 같다. 그의 몸에서는 순간적인 기력소모에 의한 훈기가 피어오른다. 대장의 눈빛이 바쁘게 움직인다. 먼저 검상을 입은 대원이 몸을 일으킨다. 강인한 회복력으로 인해 몸을 움직이는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조금은 의문스럽다. 단번에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음에도 왠지 모르게 여지를 둔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다. 공격에 물러나긴 했지만 전혀 타격은 입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전개하지 않고 있다.
“왜지?”
“안 보이나?”
진월의 손가락이 안가의 안쪽을 가리킨다. 캠코더로 모든 것을 녹화하고 있었다.
“보안 장치는 네놈들이 제거할 것이 분명했으니 이렇게라도 해야지.”
“…….”
“더불어 정보가 새고 있으니…….”
“증거 확보를 위해 우리를 유인한 것이군.”
“고맙군. 친절하게 녹화에 협조를 해줘서.”
“…….”
대장이 대원들을 향해 눈빛을 보낸다. 몸을 빼라는 눈짓이다. 진월 또한 전혀 잡을 마음이 없어 보인다. 원칙대로라면 그들이 촬영된 녹화 자료까지 없애야 하지만 남아 있다가는 시체만 남기게 생겼다. 그들이 빠르게 몸을 날린다. 마치 개라도 쫓아오는 것 같이 빠르게 달린다.
사라지는 뒷모습을 묵묵히 보고 있던 진월이 뒤를 돌아본다.
“작동 잘 되나?”
“네.”
“놓치지 마라. 이번에도 놓치면 그 놈은 직접 떡을 쳐준다. 약도 충분히 만들어 놨으니까. 효과 빠른 농축액으로.”
“…….”
[…….]
현장에 있는 팀원이나 통제실에 있는 매수 실장이나 침묵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이 보고 있는 모니터에는 빨간 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빨간 점은 두 개다. 바로 진월이 복부에 영사 단검을 박아 넣은 대원들의 위치를 나타낸다. 진월이 노트북 모니터에 나타나는 빨간 점을 보며 중얼거린다.
“민서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할 텐데…….”
부국장을 옭아맬 모든 자료는 이제 준비가 되었다.
캠코더를 들고 있던 팀원이 다가온다.
“본부에서 연락입니다.”
“뭐지?”
“사건이 하나 접수되었답니다. 국장님이 바로 현장으로 가보라고 하시는데요.”
“일은 꼭 있을 때만 생기는군.”
“팀원들은?”
“먼저 사건 현장으로 갔다고 합니다.”
“이건 때문에 전달이 늦은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진월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시선은 사라지고 있는 빨간 점을 계속 주시한다. 왠지 미련이 남는 것 같은 눈빛이다.
“너희 둘!”
“넵!”
“책임지고 매수 곁에 붙어 있어. 만약 일이 생기면 직접 연락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열심히 합니다.]
블루투스를 통해 매수 실장의 목멘 음성이 들려온다.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
섣불리 답을 할 수 없다. 장담했다가 만일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지옥을 맛볼 것 같기 때문이다. 진월은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현장으로 간다. 침묵이 대놓고 갈구는 것보다 더 무섭다.
현장에 도착한 진월은 창민부터 부른다.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범인의 인상착의는?”
“사람이 아닙니다.”
“뭐지?”
“샙니다.”
“뭐가 새?”
“…….”
창민이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진월을 본다.
“봐라. 죽다 살아나니까 사람이 갔잖아.”
“갑자기 추워졌어.”
강희와 최탑이 진월을 향해 각자 한마디씩 한다.
진월이 그들을 보고 피식 웃는다. 간단한 사건 개요 파일을 들고 있던 진월이 묻는다.
“그냥 새라면 살아 있는 사람의 눈을 파먹지는 못했을 것이고…….”
“그렇지요.”
“죽어 있는 상태였나? 그것도 두 명이 동시에?”
“그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덮침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새라고? 그게 성립이 되려면 독수리보다 커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만 했습니다. 회색과 검은 색의 거조였습니다.”
“……?”
“정말이라고요.”
모두 창민의 말을 믿기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안 믿자니 창민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강희가 혹시나 하고 묻는다.
“혹시 창민이가 환각 같은 것에 걸린 것 아닐까요?”
“아~ 진짜! 이러시면 앞으로 저 일 안 합니다.”
“믿는다.”
“진즉 그러실 것이지.”
“범행 시간은?”
창민이 기억을 더듬는다. 그가 시공추상력으로 본 기억을 되새긴다. 주변에서 시계를 찾는다. 참 편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어제 밤 열두 시 이십 분 정도입니다.”
“아직 만 하루가 안 지났군. 범행 후 사라진 방향은?”
“저쪽으로 날아갔습니다.”
창민이 가리킨 쪽은 북한산 방향이다.
“날아갔다?”
“왜 그러세요?”
“왜 그쪽일까 생각 중이다.”
“날개 달린 놈들이니 가고 싶은 곳으로 갔겠지요.”
“그렇다면 혹시 날아온 방향도 알 수 있나?”
“음. 동쪽이요.”
진월이 어두워져 잘 보이지도 않는 동쪽 방향을 보며 또 한참을 말이 없다.
“경찰서 사건 기록 데이터 조회 한번 해보지.”
“어떤 기록을 조회합니까?”
“동일 유형의 살인 사건이다.”
“설마 같은 사건 기록이 있으려고요?”
“며칠 내에 벌어진 건들만 조회해봐.”
“알겠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요.”
창민이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한다. 며칠 이내의 건이니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않는 일이다.
삐! 삐! 삐!
“어? 어!”
패드가 검색 조건에 맞는 건들이 나올 때마다 작은 비음을 토한다. 창민도 덩달아 놀란 음성을 토한다.
“세 건이나 검색됩니다.”
“어디지?”
“평창, 원주, 여주에서 각 한건씩입니다.”
“연쇄 살인이군.”
“날아오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의미군요.”
“그렇지. 사건의 간격은?”
“하루 차이입니다.”
“하루에 한 건씩이라…….”
삐!
“어? 한 건 더 있는데요.”
“어디지? 원주에서 발생한 건이 한 건 더 있습니다. 그런데…….”
“뭔데?”
강희가 끼어든다. 하지만 창민은 그 건에 대해 자세히 보고 있다.
“이건 뭔가 이상한데요.”
“왜지?”
“먼저 죽은 사람들 중 한쪽의 부모가 똑같이 당했습니다.”
“……?”
침묵이 흐른다. 모두가 의아한 상황이다. 동일 유형의 살인 사건이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 피해자 중 한쪽의 부모가 동일한 유형으로 살해를 당했다고 한다. 진월이 침묵을 유지한다. 그에 따라 모두 똑같은 분위기가 된다.
진월이 갑자기 검은 시체 백에 쌓인 피해자들을 본다.
“저 사람들 가족의 주소 전부 파악해 봐.”
“……네.”
창민이 주변에 세워진 특수경찰차로 급히 달려간다. 패드로 조회를 하기엔 무리가 있다. 특수경찰차에 준비된 랩톱에 앉더니 손가락이 날아가기 시작한다. 신원조회가 이루어지고 주민등록 서비스에 접속한다. 오래지 않아 가족관계를 파악한다.
창민의 눈이 깜짝 놀라 동그랗게 뜨여진다.
“서울 종로 가회 북촌로 8길…….”
“북한산 방향이군.”
“네.”
“네 말대로 그냥 새는 아니군.”
“어떻게 가족을 알고 가는 거지요. 과거에 원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인간만큼 큰 새라며?”
“네.”
“그런 새가 인간 세상에서 무슨 원한관계가 있겠나?”
“그것도 그러네요.”
“우선 출발한다. 그 집 전화번호 파악해. 연락 넣어 봐.”
“알겠습니다.”
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이동 중 강희가 집으로 전화를 넣는다. 신호만 갈 뿐 전화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안 받습니다.”
“…….”
느낌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 * *
북촌로 8길, 주택 안!
마당에 앉아 일을 하던 나이 든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창호야! 전화 좀 받아라.”
“…….”
뚜르르르~ 뚜르르르~
“창호야!”
“아~ 정말~ 저희 어젯밤부터 전혀 못 잤다고요.”
창호라 불린 아들이 짜증이 난다는 듯 일어나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가려한다. 그때 길게 울리던 전화벨이 멈춘다.
“아! 짜증나네. 그런데 아버지는 언제 오신데요?”
“오늘 좀 늦으신단다. 그런데 너희 저녁도 안 먹고 잤는데 배는 안고프니?”
“오기 전에 따로 먹은 것이 있어요. 빨리 오셔야 할 텐데…….”
“별일이구나. 네가 아버지를 다 기다리고.”
“그럴 일이 있어요.”
대답을 하는 창호의 눈빛이 방 안에 누워 있는 친구를 향한다. 친구 또한 깨어 있다. 마주 친 눈빛이 반짝 빛을 발한다. 특이하게도 머리카락의 색깔이 검지 않고 탁한 회색이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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