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구름을 타는 자.
한 남자가 어두운 골목을 걷고 있다. 뭔가에 쫓기는 듯 약간은 불안해 보인다. 주변을 자꾸 돌아보는 모습이 그런 불안감을 더한다. 불이 모두 꺼진 골목길은 을씨년스럽다. 바람이라도 불면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풍경이다.
붉은 빛의 전광 글씨가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전광판의 글씨는 ‘Cloud’.
그 남자는 멍하니 서서 불이 깜박이는 간판을 쳐다본다. Cloud란 글씨 밑에는 소주 & 호프라고 작게 쓰여 있다. 불이 켜진 것으로 보아 장사를 하는 가게인데 문에 붙어 있는 전단지는 최소 십년은 지난 광고물 같아 보인다.
남자는 모든 것을 훑고 나서 고개를 푹 수그린다. 뭔가 실망이 가득한 표정이다.
‘그럼, 그렇지. 무슨 뜬구름 잡는 것도 아니고……. 구름은 구름이네. Cloud!’
혼자 중얼거린 남자는 한번 와 봤으니 됐다는 듯 돌아선다.
끼익!
돌아서던 남자는 갑자기 들려온 소음에 발걸음을 멈춘다.
‘문이 열려있다.’
나가거나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뒷골이 오싹해지는 상황이다. 물론 열린 문 뒤에 누군가 서있을 수도 있다.
“손님?”
목소리만 들려온다. 몸은 감정에 충실하다. 저도 모르게 화들짝 놀란다.
“…….”
“아하! 이런, 이런~ 제가 문 뒤에서……. 실례를 했습니다.”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웨이터 복장이다. 아주 깔끔한 모습이다. 가게의 겉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어둠 속에서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은빛의 머리카락을 지녔다. 긴 머리를 잘 묶어 가지런한 모습을 보인다.
떨리는 자신을 진정시킨 남자는 문 옆으로 모습을 드러낸 은발의 남자에 주목한다.
‘조각 같다.’
단 한마디로 표현된다. 그만큼 잘생겼다. 강한 인상은 아니다. 여자처럼 곱상하다 표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남성적인 면도 강하다.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은발의 남자는 다시 한 번 멍해진 남자를 향해 미소를 날린다.
“하하, 저를 처음 보는 분들은 모두 선생님처럼 똑같은 반응을 보인답니다.”
재앙급 왕자병이다. 완전 푼수 그 자체다. 손을 들어 머리를 매만지는 모양새가 병증이 아주 깊다. 푼수 같은 발언에 찾아온 남자는 화들짝 정신을 차린다. 방문한 목적을 상실하고 뚱한 표정을 짓는다. 조용히 말없이 돌아선다.
“…….”
“오! 노노노, 가시면 안 되지요.”
“제, 제가 잘못 찾아온 것 같아서요.”
“…….”
잘못 찾아온 것 같다는 말에 은발의 사내는 답을 하지 않는다. 남자는 뚜벅거리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한다.
“하영철씨!”
“헉!”
남자는 은발의 사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란다. 몸은 자연스럽게 다시 뒤를 돌아본다.
“어, 어떻게 제 이름을?”
“구름을 타는 분께서는 모든 것을 아신답니다.”
“구, 구름을 타는 분이요?”
“간판 보세요. 클라우드잖습니까?”
“아~! 예?”
간판이 클라우드인 것과 구름을 타는 것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기왕 오셨으니 소원은 이루고 가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소원이라니요?”
“바라시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 있습니다만. 대가도 없이 소원을 이뤄준다는 것은 믿기가 힘들어서요.”
“누가 대가가 없다고 했습니까?”
“분명 잡지 구석의 광고란에는 그렇게 나와 있었는데요.”
“아~하! 주간 설국이란 잡지에 나간 광고 말씀이군요.”
“그,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잡지가 인쇄가 좀 조잡했지요. 하단에 조그맣게 대가에 대한 부분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요.”
“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 우선 들어가실까요? 저희 회장님이 기다리십니다. 아! 그리고 제 이름은 ‘쉐인’입니다.”
“…….”
본인의 이름을 밝히는 쉐인의 눈빛이 반짝인다. 선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베일에 싸인 것 같은 묘한 매력을 발하는 사내다. 하영철이란 남자는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채 쉐인을 따라간다.
‘내가 왜……?’
하영철은 의지와 상관없이 따라가는 몸에 의문을 느끼지만 그다지 거부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밖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놀란다. 유럽 중세풍의 인테리어다. 돌로 쌓아진 벽들로 칸막이가 되어 있다. 벽난로부터 각종 장식물들까지 실물을 보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간다. 특이하다. 상당한 거리를 걸은 것 같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실내의 끝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양쪽으로는 문들이 있는 좁은 통로다.
“으아아~!”
갑자기 옆에 있는 문에서 신음소리가 들린다.
“뭐, 뭡니까?”
“아! 별거 아니랍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저, 그냥 갈게요.”
“여기까지 오셔서 어딜 가신다구요. 지금 저기서는 밖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온 자에 대해 처벌을 하고 있답니다. 정신을 개조하기 위한 방법이지요.”
“다, 당신들은 경찰도 아니지 않습니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한 권리가…….”
하영철은 말을 하다가 굳어버린다. 부드럽기 그지없던 쉐인의 눈빛에서 살기를 봤기 때문이다. 사람의 모습이 천사를 연상시켰다가 한순간 악마로 변한 것 같았다. 쉐인은 하영철을 살벌한 눈빛으로 보다가 또박또박 말한다.
“구름을 타시는 분께서는 세상의 모든 일에 관여할 권능이 있으시지요. 더구나 잘났다고 뻐기는 놈들은 더욱 더 혼이 나야하지요. 저놈은 특별한 능력을 이용해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대가는 반드시 받아야지요. 구름을 타시는 분께 허락도 받지 않고 살인을 했으니 말입니다.”
“그, 그 말씀은 구름을 타시는 분께 허락을 받으면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다는 말씀인가요?”
“구름을 타시는 분께 권능을 받은 분들은 가능합니다. 그들의 영혼은 구름을 타시는 분에 의해 구제될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깊이 있는 대화는 나중에 하기로 하지요. 하여튼 지금 소리를 지르고 있는 놈은 남의 꿈만 파먹었으면 좋은데 장난을 좀 심하게 해서 써먹으려면 교육이 필요한 놈이랍니다. 하영철씨는 권능을 부여받더라도 그런 점은 주의하셔야 합니다.”
“권능이요?”
쉐인은 물음에 답하지 않고 걸어간다. 하영철은 쉐인이 움직이자 본인도 모르게 따라 움직인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복도 정중앙에 다른 문 보다 훨씬 커 보이는 문이 보인다. 언제부터 보였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들어가세요.”
끼이익~
쉐인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저절로 열린다. 하영철의 목구멍에서는 침 삼키는 소리가 연신 흘러나온다.“바알님! 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래? 그래~ 그래~”
쉐인의 말에 묻듯 답하는 목소리가 마치 메아리가 치는 것 같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중첩되어 울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의자를 뒤로 돌린 채 앉아 있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쓸만한 것 같아? 딴 짓을 하지는 않게 생겼나? 그냥 쓰지 뭘 물어보나?”
연속해서 세 개의 질문이 이어진다. 정말 이상한 것은 목소리가 다 다르다.
뿌득!
의자의 가죽이 눌리는 소리가 들린다. 동시에 의자가 회전한다. 하영철의 눈동자는 극도로 커진다. 그의 눈에 흉측하게 생긴 세 개의 얼굴이 들어온다. 몸은 하나지만 얼굴은 세 개다.
* * *
깊은 잠에 빠진 것 같던 하영철의 모습이 극도로 불안해 보인다. 감겨진 눈꺼풀 안에 들어 있는 눈동자는 미친 듯이 좌우로 움직인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으아아악~!”
하영철은 벌떡 일어나 앉는다.
“후우~ 후우~”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의 모습은 악몽을 꾼 것 같다.
“젠장~! 젠장~!”
연신 뭔가 불만스러운지 소리를 치는 하영철은 불안해 보인다. 덜덜 떨리는 그의 손은 심경을 대변한다. 머리를 쥐어뜯는 그의 뇌리로 쉐인의 마지막 당부가 머문다.
“소원의 대가는 영혼이랍니다. 바로 당신의 영혼! 반은 선불로 반은 후불로……. 선불로 지불한 영혼을 돌려받는 방법도 있지요. 이미 말씀드렸으니 꼭 기억하시길…….”
* * *
하영철은 얼마 전 우연히 첫사랑을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길에서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남자와 함께 있었다. 잘생긴 놈이다. 바쁘지만 않았다면 어떻게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옆에서는 친구가 재촉한다.
“빠, 빨리 가야 돼. 잡히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
멍한 표정으로 여자를 보던 하영철은 오토바이 헬멧의 앞가리개를 닫는다. 지금은 도망치는 것이 우선이다. 여자가 어디 사는지 알아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바로 지금 그를 재촉하는 친구 또한 해킹에는 일가견이 있다. 가야 한다.
부릉 부릉 부아아앙~
오토바이 배기통이 시끄러운 소음을 내뱉는다. 아직까지 경찰차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현금지급기를 턴 것만 열한 번째다. 돈도 꽤 모였다. 이 상태로 몇 번만 더 한다면 당분간 돈 걱정은 없이 지내도 될 것 같다.
뒤에서는 친구가 크게 소리를 지른다.
“우와악~!”
현금지급기를 그렇게 털었지만 아직까지 꼬리를 잡히지 않았다. 부여받은 권능은 거짓이 아니었다. 왼손을 들어본다. 장갑을 끼었지만 푸른빛의 방전 현상이 장갑을 뚫고 나온다.
빠직! 지지직!
처음 판금기계가 저절로 작동해 관리자를 죽였을 때는 우연인 줄 알았다. 그 당시에는 단순히 화가 났을 뿐이었다. 관리자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기계를 험하게 다뤄 자꾸 고장이 나지 않느냐? 비켜 서 있어라. 병신 같은 새끼가……. 등등의 욕설이 난무했다. 욕을 한껏 해댄 관리자는 기계의 스위치를 내린 후 기계 내부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그 모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하영철은 마음속으로 되뇐다.
‘죽어버려라. 죽어버려! 지랄 맞을 놈아. 죽어라!’
빠지지직~
철컹! 퍼억! 쉬이익~
푸른빛의 전기가 기계 위에서 튀었다. 들려있던 압축판은 스위치가 들어간 것처럼 내려왔다. 잠시 후 붉은 빛의 증기가 새어나오는 소리와 모습이 보인다. 그 순간 하영철은 멍해졌다. 그가 생각한 몽상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자신도 모르게 기계에서 더 멀어졌다.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소란스러워진다. 기계로 다가서는 사람. 전원을 찾는 사람. 압축되어 버린 관리자를 살피는 사람. 전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하는 사람. 정신이 없다. 갑자기 구역질이 난다.
우웩~
사건의 발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영철의 몽상은 거기서 끝난다. 친구의 목소리가 그의 귓등을 때린다.
“어디까지 갈 거냐? 이미 많이 지나온 것 같은데…….”
“내려라.”
“어디 갈 데라도 있냐?”
“그냥 내려.”
“알았어.”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대장은 하영철이다.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권능이 소심하고 소극적이던 왕따 하영철을 이렇게 만들어줬다.
하영철은 본인이 털었던 현금지급기가 있는 곳을 향해 출발한다. 얼마 후 그 근처에 도착한 하영철은 경찰차가 보이지 않는 곳에 오토바이를 새워둔 후 걸어 나온다.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은 큰일이 났나 싶어 구경중이다. 이미 밤이 깊었다. 거리의 불빛이 없다면 사람의 얼굴을 식별하기 어렵다. 하영철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주변의 사람들을 살핀다.
‘있다!’
그녀가 있었다. 옆에는 남자 친구로 보이는 놈도 같이 있다. 그녀는 예전 모습 그대로다. 아니 더 청순해 보인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는 나이를 거꾸로 먹은 것처럼 보인다. 그녀와 남자 친구는 더 이상 볼 것이 없는지 어딘가를 향해 움직인다. 먼발치에서 그들을 보며 따라간다.
하영철은 갈수록 대담해진다. 버젓이 본인이 턴 현금지급기 근처의 경찰 옆을 지나친다. 그들의 무전이 좋아진 청력으로 인해 들려온다.
“같은 건입니다. 카메라는 오작동으로 인해 데이터가 손실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아무 것도 잡힌 것이 없나?]
“카메라 회로 자체가 타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데이터 또한 완전히 날아가 버렸습니다.”
[알았네. 바로 보고해야 될 건인 것 같군.]
서로 간의 교신이 끊긴다. 하영철은 걷던 걸음을 갑자기 멈춘다. 교신의 마지막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린다.
그 시간!
진월은 통제조와 함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고 지점을 가리키는 모니터에는 붉은 점이 반짝인다. 동시 다발적으로 붉은 빛이 여러 군데 들어온다. 그 중 그들이 수사하는 사건과 유사한 건들을 찾아낸다. 통제조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삼성역 근처 한겨례 은행의 365코너가 털렸습니다.”
“주변 CCTV 모두 돌려보지.”
진월의 오더에 의해 통제조원 모두가 모니터에 한겨레 은행 주변을 띄운다. 어두워서 정확히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두들 이래서는 잡아내기 힘들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다만 한사람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메라에 잡힌 사람들을 유심히 살핀다.
‘벌써 두 달 동안 열한 번째 현금지급기를 털었다. 카메라 자료는 모두 꽝! 그렇다면 이 놈 또한 뭔가 능력이 있다는 말인데…….’
사실 CCTV의 화질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구리다 못해 돈 처먹으려고 공사만 했구나 싶은 구역도 있다. 이러니 인상착의로 범인을 잡아내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인 경우도 다반사다. 흐린 얼굴들이 카메라에 스쳐 지나간다. 통제조원들이야 대부분 한두 개의 모니터만 들여다본다. 하지만 진월은 지금 은행 주변을 모니터하는 9개의 모니터를 한꺼번에 주시하고 있다. 그만큼의 동체시력이 뒷받침이 된다는 의미다.
진월의 고개가 옆으로 기운다. 뭔가 봤다는 의미다.
“C4 카메라 정지! 지금 잡힌 사람이 향하는 방향이 어딘가?”
“코엑스 방향입니다.”
“그 방향 카메라 전부 대기해. 지금 카메라에 잡힌 사람을 주의해서 잡는다.”
“네.”
진월의 명령에 통제조는 일사분란하게 답을 한다. 통제실장이라고 예외는 없다. 이미 한 번의 임무수행으로 진월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사라졌다. 더불어 그들도 이상함을 느끼고 있다. 카메라에 드러난 사람은 마치 모자이크 처리를 한 것처럼 흐릿해 보인다. 완벽한 모자이크는 아니지만 뭔가가 그 사람의 모습을 가린다. 카메라의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다른 카메라의 화상입니다.”
“역시!”
“카메라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군요.”
“외부에 나가있는 인원이?”
“최탑과 강희입니다.”
“연락하지. 우선 주의해서 뒤만 밟으라고 전해주도록!”
“나가실 겁니까?”
“나가야지. 전원 비상 걸고 창민이하고 민서도 호출하도록 하지.”
“민서가 많이 투덜대겠습니다. 들어간 지 두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요.”
“지 복(福)이지!”
휭 하니 사라지는 진월의 입가에는 미소가 머문다. 암만 봐도 골탕 먹이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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