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장 해부하시지요.
나찰 오환도 이미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 그의 몸에서 미친 듯이 기운이 방출된다. 이제껏 그가 흡수한 모든 요력을 모조리 소비하는 것 같다. 검은 불길이 강하게 퍼져 나왔다가 다시 줄어들기를 반복한다. 시선은 그를 향해 날아드는 비도에 집중되어 있다. 진월 때문에 움직일 수 없으니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음파로 공격과 방어를 겸하려 한다.
진월이 그것을 느꼈을까?
우두둑~ 진월이 오환의 목덜미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넣어 목을 꺾어 버린다. 무시무시한 괴력이다. 어차피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목이 꺾인 상태에서 오환의 깃털이 모조리 일어선다. 정말 끈질긴 생명력이다. 그의 깃털이 날아드는 비도를 향해 날아간다. 비도가 막힌다면 의도한 바가 어긋난다.
“알기즈(algiz)! 보호에 의한 강화!”
쉐인의 주문이다. 날아가던 은빛 비도에 힘이 더해진다. 알기즈의 흰빛이 은빛 비도에 더해진다. 비도와 깃털이 부딪치려 한다. 깃털의 의도는 비도를 막는 것이지만 교차할 경우 목표는 최탑이 된다. 비도를 조종하는 것은 최탑이니 그가 흔들리면 비도의 공격도 흔들린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두 가지를 노린 공격이다.
최탑의 이마에 짧은 순간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지금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해 수백 개의 비도를 조종하고 있다. 아마 이 공격이 끝나는 순간 최탑은 제자리에 서 있지도 못할 것이다. 그만큼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카카카캉~ 일부는 깃털과 부딪친다. 비도의 방향을 틀었다 해도 모두를 피할 수는 없었나 보다.
서로 부딪친 순간 최탑의 손이 허공에 뿌려진다. 모조리 최대 속도로 날려 보낸 것이다. 검은 깃털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갑자기 속도를 더한다. 이제 목표는 최탑이다. 최탑도 그대로 서 있다가는 죽음을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푸푸푸푸푹~ 뭔가 박히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맞은 자는 과연 최탑인가? 나찰 오환인가?
“헉헉헉~!”
거친 숨소리가 난다. 누구의 숨소리일까?
최탑이 주저앉아 거친 숨을 쉬고 있다. 옆에는 강희가 서있다. 마지막 순간 강희가 최탑을 구했다. 그렇다면 나찰 오환의 모습은…….
온몸에 은빛 비도가 박혀 있다. 수백 개의 비도가 몇 센티 간격으로 촘촘히 박혀 있는 모습이다. 더구나 쉐인의 보호와 강화 주문으로 깊숙이 박혔다. 쉐인을 구속하고 있는 진월의 팔에도 박혀있다. 하지만 나찰 오환의 몸에 박혀 있는 것만큼 깊지는 않다.
진월이 구속을 푼다.
턱! 터턱! 나찰 오환이 구속에서 풀려나자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진월의 팔에서는 박혀 있던 은빛 비도들이 빠져 나온다. 그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신체 반응이다.
진월의 시선이 나찰 오환의 몸에 머문다. 은빛 비도는 몇 센티 간격으로 오환의 몸에 박혀 있다. 저 비도에 드러나지 않은 부위는 진월이 막고 있던 어깨 부위뿐이다. 인간으로 치면 심장만한 크기를 어깨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두둑~ 꺾여있던 나찰 오환의 고개가 들린다. 들려진 얼굴에서 보이는 나찰 오환의 눈빛은 살아있다. 진월의 미간도 같이 구겨진다.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크아아~”
나찰 오환이 갑자기 괴성을 지른다. 진월조차 손을 들어 전방을 막아야 할 정도의 충격파가 밀려든다. 그와 동시에 쉐인의 영창도 들려온다.
“게보(gebo)의 힘으로 케나즈(kenaz)의 불빛을 밝혀라.”
게보는 조화와 균형의 힘을 나타낸다. 조화와 균형을 위반한 힘을 감지할 수 있다. 케나즈는 길을 밝히는 횃불이다. 정신적 창조의 힘도 뜻한다. 두 힘이 결합되어 이질적인 힘을 찾아낸다. 갑자기 나찰 오환의 몸에 붉은 색의 선들이 나타난다. 케나즈의 불빛이다. 붉은 선들이 모두 한 곳과 연결되어 있다. 심장에서 피가 흘러나가듯 그들 또한 핵에서 모든 힘이 발현된다.
붉은 선들이 모이는 곳이 보인다.
우둑~ 진월이 주먹이 강하게 쥐어진다.
투두두둑~ 나찰 오환의 몸에서는 은빛 비도가 뽑혀져 나온다. 하지만 아직 오환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박혀 있는 비도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핵에는 상처를 입지 않았다. 묘하게도 진월이 꺾어 버린 목 부위에 핵을 숨겨 두었던 것이다.
나찰 오환의 몸에 다시 검은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비도가 빠진 곳부터 일어난다. 그 부분의 케나즈의 불빛은 사라진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진월 또한 움직인다.
“창민!”
진월이 달리면서 창민을 부른다. 그의 내밀어진 손으로 창민이 권총을 내던진다.
타앙~ 손에 잡히자마자 불을 뿜는다. 특수철갑탄이 핵을 향해 날아간다.
퍼억! 탄환이 목 부위를 관통한다. 붉은 피가 퍽 튄다. 하지만 핵이 맞지는 않았다. 진월은 이미 오환의 앞까지 다가와 있다. 육체로 이루어진 이상 타격을 입으면 주춤할 수밖에 없다.
퍼퍽! 진월의 권이 오환의 두 눈을 봉쇄한다.
“크헉!”
정말 질긴 목숨이다. 진월의 몸에서 금빛 영사가 폭사되어 나간다.
푸푸푸푹~ 날카로운 바늘처럼 쭉쭉 뻗은 영사가 오환의 몸에 박혀든다. 진월이 마치 고슴도치가 된 것 같다. 두 눈을 봉쇄했음에도 핵을 움직여 피하는 오환을 향해 마지막 방법을 구사한 것이다. 오환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통하지 않을 방법이지만 지금은 그도 약해져 있다. 진월의 영사가 오환의 몸을 파고들어 범위를 좁혀간다. 핵이 움직일 범위를 좁혔다.
타타타타탕~ 진월의 손에 들린 권총이 불을 뿜는다.
찰칵! 탁! 순식간에 탄창이 교체된다. 다시 불을 뿜는다. 진월의 눈은 방아쇠를 당기면서도 전혀 깜박이지 않고 있다. 핵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그대로 따라잡으며 총구가 움직인다. 그러다 오환이 살기 위해 발악을 한다. 갑자기 총을 맞으면서도 가슴을 쭉 편다. 몸에 박힌 비도가 진월을 향해 날아든다. 비도에는 그의 검은 불길도 붙어 있다. 막지 않는다면 진월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 짧은 순간 움직이던 핵도 잠시 주춤했다.
타앙! 붉은 총탄이 총구를 떠난다.
움찔! 나찰 오환이 급살을 맞은 듯 부르르 떤다.
“끝내는 잡으셨네요.”
쉐인이 곁에서 웃으며 말을 건다.
“그런데 이 비도를 그냥 맞을 생각이셨습니까?”
“…….”
진월은 답을 하지 않는다. 진월의 앞에는 쉐인이 만들어 놓은 방패가 있다. 그 방패에 오환이 되돌려 보낸 비도가 박혀 있었다. 비도뿐 아니라 쉐인이 만들어 놓은 방패에까지 검은 불길이 옮겨 붙어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방패까지 타올라 사라진다. 만약 그대로 맞았다면 진월 또한 꽤 피해를 입었을 공격이다.
진월의 시선이 오환에게로 향한다. 핵이 파괴되자 본래 지니고 있던 형체가 무너진다. 검은 불길을 피우던 깃털은 불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타오른다. 전신으로 퍼지는 검은 불길에 오환의 몸이 타들어간다. 빠른 속도로 타들어가더니 결국 한 줌 재로 변한다.
핵이 파괴되면 결국 육체도 와해되는 과정을 밟는 특성이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제거를 했으니 한숨 돌렸다 싶은 순간 진월과 쉐인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아직까지 재가 되지 않고 남아 있는 놈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쓰러졌던 오철이 정신을 차리는 순간이다. 눈을 뜬 오철이 있어야 할 오환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왜 자신이 이런 모습으로 있는지 한참을 생각한다. 머리에 충격을 받으며 기억까지 날아간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던 쉐인이 소리친다.
“저 놈, 잡아!”
“…….”
아무도 반응하는 사람이 없다. 국장이 바로 앞에서 피식 웃고 있다.
“미친놈!”
“왜……요?”
“니가 잡아라.”
“…….”
그랬다. 결국은 쉐인이 잡아갈 놈이었다. 이만큼 해줬으면 충분히 은혜에 대한 갚음은 해준 것이다. 쉐인과 정신을 차린 오철이 한참을 드잡이 질을 펼친다. 주변에서는 내기까지 한다. 부서진 차 값을 벌기 위한 내기다. 결국 쉐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강한 자들이 바로 나찰들이다. 그래도 더 떡이 된 것은 오철이다.
규율의 룬에 의해 강박까지 되어 있다. 오철을 구속하고 있는 금빛 줄 주변으로는 라이도(raidho)의 룬이 휘돌고 있다. 중복된 룬의 힘에 의해 구속하고 있는 줄의 색깔이 여러 가지로 변하는 모습이다. 사로잡기 위해서 조심하느라 쉐인이 힘을 많이 썼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잠시 후 한숨 돌린 쉐인이 만신창이가 된 본인의 모습을 보더니 중얼거린다.
“소울로(sowulo)! 온전한 새 생명을…….”
쉐인이 원래의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지켜보기에 마법이란 신기하기만 하다.
국장이 쉐인에 대해 진월을 보며 한마디 한다.
“우리에게는 저놈이 연구 대상이야. 어떠냐? 잡아서 해부라도 해보는 것이.”
“저도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습니다.”
“하하, 전 일도 해결되었으니 여기서 이만…….”
“잠깐!”
“네?”
“완전 쫄았군.”
“하하, 쫄긴요. 일이 다 끝났으니 그러는 것이지요.”
“우리가 빼앗긴 석판도 혹시 신안 쪽에 있나?”
“언제 석판도 빼앗기셨나요?”
“…….”
쉐인이 모르쇠로 일관한다. 더 이상 얽히기 싫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너구리같은 국장이 그것을 못 볼 리 없다.
“사실 석판에 보이지 않게 발신기를 부착해 놓았었다. 그런데 그게 이동을 시작하더니 전북 부근에서 갑자기 신호가 사라졌었어. 이 정도면 대답해줘도 되지 않나?”
“아하하~ 다 알아보셔 놓고 저한테 물어보고 그러십니까?”
“대답이나 해줘.”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서는 같이 일 못합니다. 그럼, 전 이만…….”
딱! 쉐인이 순간 이동을 위해 손가락을 튕긴다. 나찰 오철까지 데려가려고 어깨까지 잡고 있다. 그런데…….
“어?”
딱! 다시 한 번 튕긴다. 아무 반응이 없다. 마나가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쉐인이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국장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아니나 다를까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이렇게 되면 충분히 해부도 가능하지 않겠나?”
“이,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더구나 이렇게 좋은 장비를 만들었으면 아까 싸울 때 썼으면 훨씬 좋잖아요.”
“일회용이야. 양자에너지 모으는 것이 무슨 애들 이름도 아니고 부르면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맞는 말이다. 쉐인이 주문을 쓰려할 때마다 그의 곁에는 수류탄 비슷한 물체가 툭툭 떨어졌었다. 양자에너지가 충전된 양자 수류탄이다. 작은 양이지만 주문을 사용하는데 방해 작용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양이다.
국장이 다시 묻는다.
“협약을 맺었으면 정보 제공은 기본 아닌가?”
“아하하! 사실 그 석판 저희도 필요합니다. 목적은 그들과 다르지만요.”
“왜 필요하지?”
진월이 묻는다.
쉐인이 자초지종을 진월에게 작은 소리로 상세하게 말한다. 사실은 절대 기밀이라는 것까지 붙여서 말이다. 진월은 다 듣고 난 후 고개를 끄덕인다. 진월 측에서 볼 때는 그다지 나쁜 목적이 아니었다. 충분히 거래가 가능한 조건이었다.
“그런데 이제까지 석판을 노린 적은 없군.”
“찾아다니려면 힘들잖습니까? 다 모아놓으면 한 큐에 슥 하려고 했지요.”
“역시!”
약삭빠른 것으로는 따를 자가 없다. 국장이 쉐인을 씹는다.
“저러니 맞아 죽기 딱 좋을 상이지.”
“우리에게 석판이 모두 있어도 그럴 생각이었나?” 진월이 묻는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해부하시지요.” 진월이 국장을 보며 말한다.
“믿을 놈이 못 돼. 잡아라.”
“우아악!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다.”
갑자기 목표가 쉐인으로 바뀐다. 쉐인의 주변으로 남은 양자 수류탄이 모조리 떨어진다. 많이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쉐인이 쓰려고 하는 주문마다 틀어지고 제대로 실행이 되지 않는다. 도망을 전혀 갈 수 없는 상태다. 그리고 결국은 잡혔다.
“안 돼~에!” 쉐인이 비명을 지른다. 진월이 대검을 빼들고 다가서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칼끝이 점점 다가온다.
“협상! 협상!”
“협상? 믿을 놈을 믿지, 어떻게 당신을 믿나? 비밀이 이렇게 많은데 말이야.”
“믿음을 주면 되잖습니까. 믿음을…….”
“무슨 믿음? 어떻게 줄 건데?”
질문을 던지는 진월의 눈에 슬쩍 눈웃음이 머물고 있다. 진월은 이미 알고 있다. 쉐인이 쇼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주문력이 양자 수류탄에 의해 와해되었다면 나찰 오철 또한 이미 구속에서 풀려나 있어야 맞다. 하지만 구속은 지속되고 있었다.
쉐인이 엄살을 떨다가 정색을 하더니 말한다.
“제 마음이 천사처럼 착하다는 것이지요.”
“에라이~ 도둑놈이 제 스스로 도둑이라는 놈을 본 적이 없다. 이 썅!”
국장이 바람처럼 스쳐지나간다.
빡!
“컥!”
되게 맞았다. 이마에 혹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일 정도다. 진월은 이마를 짚는다. 머릿골이 지끈거린다. 쉐인이 정말로 제대로 맞아 기절을 한 것이다. 당연히 누군가는 구속에서 풀려난다. 갑자기 생겨나는 섬뜩한 기운에 국장이 나찰 오철이 있는 곳을 휙 돌아본다. 울상이 되더니 다시 진월이 있는 곳을 본다. 그곳에는 등을 보이며 사라지고 있는 진월의 모습이 보인다.
“이, 이 팀장아~”
“사고 친 사람이 수습하십시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