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장 회유,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폭발의 화염 속에서 진월이 걸어 나온다. 폭발의 파괴력이나 화염조차 그에게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한 것 같다. 그의 충혈된 두 눈에는 분노와 안타까움이 섞여 있다. 약간의 자괴감도 든다. 결국은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위험에서 보호하지 못했다. 그들이 하는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주고 싶었다.
그의 몸 주변에 형성되어 있던 무형의 영력이 모두 사그라졌다. 흥분되었던 감정이 그나마 조금 가라앉았다는 증거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알 수 있다.
강희가 조용히 다가선다.
“통제조에서 뒤를 쫓고 있답니다.”
“…….”
진월은 말이 없다. 애초에 이런 상황을 만든 것 자체가 본인의 책임 같다. 더불어 추적이 무용지물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철저히 준비하고 온 자들이다. 절대 쉽게 꼬리를 잡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한 방향을 본다. 방해자들이 도주한 방향이다. 곁으로 다가온 강희에게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친 듯이 달린다.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그 속도 또한 엄청나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다. 달리는 그에게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다. 모든 전자기기가 그의 힘의 여파로 인해 먹통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후각을 동원한다. 향기가 잡힐 것 같으면서 잡히지 않는다. 뭔가 후각을 방해하는 효소가 작용하는 것 같다. 창민이라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멀리 떨어져 있다. 진월에게도 체력의 한계는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냄새의 흔적도 여러 갈래로 나뉘는 듯 갈피를 잡기 힘들어진다. 조그만 천(川)이 보인다. 교각 위에 선 진월의 손이 인도를 보호하던 펜스를 후려친다.
콰앙!
펜스가 종잇조각처럼 터져나간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바라본다. 어떤 이는 파손 신고를 하려는지 경찰서로 전화를 거는 이들도 있다. 자연스럽게 진월의 위치가 추적된다.
진월은 경찰차량이 도착할 때까지 고요히 흐르는 하천을 바라보고만 있다. 지켜보던 이들의 수군거림도 들리지 않는다. 경찰의 경고성도 들리지 않는다.
무슨 상념에 빠져 있는 것일까?
마음이 아프다. 아릿하니 저미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금속으로 만들어진 펜스가 진월의 손아귀 힘에 아우성친다.
콰드득!
권총을 겨누고 있던 경찰들이 놀라서 뒤로 물러난다. 놀라면서도 경고하는 것은 잊지 않는다.
그때 붉은 경광등을 반짝이며 몰려오는 차들이 있다. 경찰들도 정체불명의 차량에 의아해 한다. 정장차림을 한 남자들이 내린다. 그들이 신분증을 내민다. 자기들 권한이란다. 물러나주기를 요청한다. 신분이 신분인지라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한다. 현장에 나와 있던 경위 하나가 무전기를 빼든다. 그런 그의 시선에 검은 정장의 사내가 진월에게 다가서는 것이 보인다. 경위는 무전을 치려다 당황해 정장 사내를 잡으려 한다.
“어? 이봐…….”
정장 사내는 무작정 진월을 향해 간다. 진월에게 인사를 꾸벅 한다. 정중한 태도다.
“가시지요. 본부 내에도 침입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
목상처럼 서있던 진월이 정장 사내를 말없이 본다. 사내가 한마디 덧붙인다.
“인명 피해도 있었다고 합니다.”
“…….”
진월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몸은 정장 사내들이 타고 온 차로 향한다. 경찰들은 갑자기 움직이는 진월 때문에 당황한다. 아직 그들의 용무가 끝나지 않은 상태다. 무전을 하려던 경위가 머뭇거리다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말한다.
“112신고 건이라 같이 가주셔야 합니다.”
“…….”
진월은 이미 지나쳤다. 정장 사내는 아무 말이 없다. 거의 무시 수준이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본다. 진월은 무서우니 정장 사내를 향해 말을 건다.
“아니 그렇다면 연락처라도 좀 주고 가십시오.”
“연락처가 필요한 이유가 뭡니까?”
“공공기물파손에 대한 범칙금 부과입니다.”
“중앙에 청구하십시오. 그럼.”
정장 사내의 말에 경위가 당황하며 말한다.
“지방정부에서 중앙정부에다가 범칙금 부과하란 말입니까?”
“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전례는 있고 주기는 한답니까?”
“낸들 압니까?”
“…….”
정장 사내는 휙 돌아서 가버린다.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들만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멍하니 사라지는 검은 색 차량들을 바라본다. 사라지는 차량을 바라보며 나이 좀 먹은 경위가 중얼거린다.
“잘났네. 잘났어. 새끼들이 나이 먹은 보람이 없게 만드네. 어른 대접을 안 해줘.”
경위의 말을 듣고 있던 이파리 3개 경장이 옆의 순경에게 작게 속삭인다.
“있을 때 말은 못하고 가고 나서 지랄이냐?”
“…….”
순경은 동조하지 않는다. 이미 봤기 때문이다. 경위가 다가서고 있는 것을…….
역시 세상은 출세하고 봐야 하는 더러운 곳인가 보다. 그렇지 아니한가?
* * *
벌써 3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통제조에서 추적을 했지만 민서를 잡아간 자들의 꼬리는 잡지 못했다. 통제조에서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서를 찾고 있다. 진월이 아무 말도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통제실에 들린다. 무언의 압박이다. 매수 실장의 피가 마를 지경이다.
최탑의 경우 부상의 정도가 심했다. 폐를 관통한 칼날로 인해 조금만 늦었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고로 지금 그는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다. 그런데 누군가 그에게 이상한 짓을 저지른 것 같다. 병상에 누워있는 그가 웃고 말을 한다. 생기가 있는 것이다. 콜록 거리면서 주둥이를 나불거릴 기운이 있다는 점이다. 거참 이상하다.
옆에서 마명이 깝죽거린다. 그 또한 팔의 상처가 깊어 요양 중이다.
최탑의 경우 부상 정도로 봤을 때 중환자실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깝죽거리는 마명이 곁에 있는 것으로 봐서 둘 중 하나다. 마명이 중환자실에 문병을 왔거나 아니면 같은 병실을 쓰고 있거나 다.
타격조원들이 우르르 와서 문병이랍시고 하고 간다. 병실이 아니라 도떼기시장 같다. 다 가고 목영호만 남아있다. 이런 상황으로 봤을 때 절대 중환자실은 아니다. 분위기도 일반 병실이다. 최탑이 진월도 아닌데 참 회복이 빠르다. 목영호도 이상한지 갸웃거리다가 최탑을 보며 말한다.
“형님도 참 운이 좋습니다.”
“음.”
탑은 사람들이 가고 나자 기운을 아끼려는 듯 대답도 간단히 한다. 그런다고 물러날 목영호는 아니다.
“저는 오늘 옛사람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탑이 의아한지 쳐다본다. 무슨 말이냐는 뜻이다. 이런 경우 목영호는 답을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잘 웃으시던데요.”
“그게 뭐?”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니…….”
“큭!”
마명이 옆에서 크게 웃다가 팔을 잡고 구른다. 몸이 흔들리니 상처가 아프다. 환자는 환자다.
“억!”
갑작스런 신음소리가 또 들린다.
마명은 본인이 아픈 것은 잊고 혹시나 최탑이 열 받아서 상처가 도진 것은 아닌가 싶어 얼른 돌아본다. 탑은 멀쩡하다. 변한 것이 있다면 탑의 검지와 중지가 붙여진 채 세워져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수상하다. 최탑이 능력을 발현할 때 취하는 동작과 같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목영호를 향한다.
목영호의 목 부위 경동맥에 작은 주사기 바늘이 박혀있다. 깊이 박히지도 않았다. 정확히 박혔을 뿐이다. 피가 분수처럼 쭉 뻗어 나온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도 장관이다. 어쩜 저렇게 주사기로 쏘는 것처럼 예쁘게 뻗어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전적으로 마명의 감상평이다. 최탑의 후기도 따른다.
“내 능력은 몸으로 부리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다. 주둥이 나불거리지 마라.”
“쫌! 장난 아임니까?”
목영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사 바늘을 빼들며 항변한다.
“워메, 아까운 피가 한 사발은 나와부렀네.”
마명은 후렴구를 추가해준다.
“야! 영호야, 얼릉 피 닦아라~. 더러서 못 봐주겄다야.”
“이 새끼가 아프다고 오냐오냐했드만 그카나? 친구한테~ 팍!”
“창피해서 어따 말도 못하겄다야. 총알도 아니고 주사기 바늘에 맞아서 피를 철철 흘려부렀으니…….”
“어깨 말고 입주디도 꼬매주까?”
“입주디가 아니고 입주댕이라고야?”
최탑은 몸도 안 좋은데 옆에서 시끄럽게 하는 둘이 원수 같다. 둘의 대화에 못을 박아 준다.
“표준어는 주둥아리다. 조용히 좀 해라. 이 주둥아리들아!”
“아따 시방 병실을 피가 철철 흐르는 전쟁터 만들어놓고 조용히 해라가 뭔 말이다요? 글고~, 그랑께 형님은 꼭 서울 토박이 같소잉? 충청도 재원이 말이어라.”
“크크, 진짜 그카네. 충청도 사투리로 입주디는 뭔교?”
“…….”
조용하다. 너무 조용하니 둘 다 자연스럽게 손위 사람인 최탑의 눈치를 본다. 여기서 끝을 내야 맞다. 목영호가 조용히 일어선다. 적막강산에 마명만 남겨놓고 본인은 피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냥 갈 수는 없으니 불만 지펴 놓고 간다.
“무식해서 고향 사투리도 모!린!다!”
“저 새끼 아가지 내가 필히 찢어버린다. 억!”
“워매, 워매. 그만하시요야. 상처 다시 찢어지겄소야.”
목영호가 나간 문으로 뽑혔던 주사기 바늘이 다시 박혔다. 좋지 않은 상태에서 힘을 쓰고 열을 내더니 최탑이 고꾸라진다. 마명은 걱정 어린 시선으로 탑을 달랜다. 최탑이 끙끙거리며 숨을 달래자 궁금함이 일어난다.
“근디 아가지가 뭐다요?”
“…….”
아가지가 뭐겠는가? 뻔한 것을 물으니 결말도 뻔하다.
그날 밤 마명의 침대 주변에는 뽑힌 피로 흥건했다. 피가 모자라 갑작스런 수혈이 이루어졌다. 마명의 목 주변에는 뱀파이어들이 파티를 한 것처럼 붉은 점들이 많이 보였다. 마명이 탑을 보며 투덜거린다. 탑은 너무나 조용하다. 무시 수준이다. 마치 자기는 죄가 없다는 태도다. 반응이 없으니 재미가 없다. 화풀이 대상을 바꾼다.
“그 아가지 내가 찢어주께라. 됐소? 심심하니까 이야기나 합시다.”
“…….”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반응이 조금 있다. 마명의 마음속에서는 정말 덩치에 안 맞게 밴댕이 소갈머리라고 욕이 난무한다. 마명은 꾹 참고 궁금한 것을 묻는다.
“형님, 그건 그렇고 상태가 빨리 좋아지십니다. 그게 다 팀장님의 피 덕분인가요?”
“글쎄.”
“피가 아니고 특제 보약이네. 보약이야.”
“성혈(聖血)이라고 표현해야지.”
“하~. 무슨 성혈까지? 그 인간이 성인군자도 아니고…….”
“그 인간이라니? 팀장님한테 말버릇이 없다. 성인(聖人)이시지. 팀원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피도 아낌없이 나눠주시는.”
“난 맞아서 감정이 안 좋아요. 글고 아조, 진월교를 만드시지요. 사이비 교주에 딱이네. 딱이야. 그 뭐냐? 희미하긴 하지만 영롱하게 빛나는 영력에, 치료 능력까지. 완벽 그 자체네.”
“원하신다면 전도사 정도는 충분히…….”
최탑은 말끝을 흐린다. 시선은 멀리 있는 뭔가를 보는 듯 몽롱해진다. 마명은 뭔가 황홀해 보이는 최탑의 눈동자를 보며 어이가 없다.
“허! 피를 많이 흘리긴 흘리셨나보네. 어지러우셔? 그 인간이 이제는 영적 실체로 나타나기라도 하십니까?”
“너! 팀장님한테 자꾸 그 인간이라니……?”
“인간 맞잖아요. 그럼, 인간 아니고 괴물이라도 됩니까?”
“그 인간?”
“그래요. 그 인간!”
“네 뒤에 서계신다.”
“헐~ 사기꾼들 같으니……. 역시 사이비 집단으로 발전할 소지가 충분해.”
마명은 어이가 없는지 최탑과 진월을 모두 사이비 집단으로 몰아버린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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