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 장 트롤 쿤도의 허무한 퇴장.
회피하기엔 너무 가까운 거리다. 피할 곳은 없었다. 방법이 있다면 뚫고 나가는 방법뿐이다.
진월의 주먹이 불끈 쥐어지더니 앞으로 죽 뻗어나간다. 그에 따라 그의 권 주변으로 금빛의 칼날들이 생겨난다. 방금 전에 주비엘에게 사용한 폭우검이다.
쐐애애액~ 폭우검이 대기를 가른다. 전방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과 그물을 향해 날아간다. 그런데 위력이 그전만 못하다. 아마도 주비엘에게 과한 힘을 쓴 이후라서 일까? 진월의 몸에 생긴 문제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기다란 혈선이 그려져 있다. 주비엘의 곡도에 맞은 상처가 꽤 깊다. 더구나 상처가 잘 아물지 않고 있었다. 주비엘의 곡도에 실린 기운이 상처의 회복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콰과과곽~ 폭우검이 화살과 부딪치고 마력의 그물을 잘라낸다.
진월은 잘려버린 마력의 그물 사이를 통과하려 한다. 하지만 연이어 날아오는 그물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물들이 또 있었다.
진월의 손에 거대한 칼날이 흑빛 영사로 만들어진다. 그 위를 금빛 영사가 마친 검강처럼 뒤덮는다. 그 길이만도 족히 삼사 미터는 될 것 같다.
후웅~ 거대한 칼날이 대기를 가른다. 다가서는 마력의 그물을 당장에 동강내버릴 것만 같다.
슥! 마력의 그물이 힘없이 잘린다. 진월의 칼날을 이겨내기에는 마력이 약했다.
콰앙~ 진월의 거력이 남긴 칼날이 지면을 때린다. 휘두른 힘이 워낙 강해 대지가 두 동강이 난다. 하지만 전방의 그물만 해결이 되었다. 허공에서 떨어지는 화살들도 많았다.
콰곽! 하늘에서 떨어지던 마력의 그물들은 진월의 몸을 덮는다. 뚫고 나갈 전방에 신경을 쓰느라 위쪽은 어느 정도 무시를 했다.
지지직~ 마력의 그물이 진월의 영사 갑옷에 달라붙으며 힘을 발휘한다. 진월을 구속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진월의 힘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진월이 몸에 들러붙은 그물을 손으로 뜯어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도 마력의 그물이 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은지 진월의 속도가 많이 줄었다.
다크 엘프들 중 일부가 검을 빼들고 진월에게 달려든다. 활을 든 다크 엘프들은 진월에게 다시 활을 쏜다. 일부는 계속 마력의 그물도 달아서 날린다.
퍼퍼퍽! 진월의 몸에 암흑 마력이 실린 화살이 날아와 박힌다. 영사 갑옷을 뚫지는 못하지만 힘을 상쇄시키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주비엘에 비해 마력은 현저히 약하지만 다크 엘프 여럿이 검을 빼들고 달려들자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더구나 현재는 상처가 깊고 상대는 속도가 빨랐다. 그들이 휘두르는 검의 날카로움도 대단했다.
검붉은 마력이 허공에 수를 놓는다. 피할 틈도 없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검광들이 일대를 수놓는다. 그 사이를 빠져나가는 진월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다크 엘프들의 검이 진월의 몸 근처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가고 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자 진월의 육탄 공세가 시작된다.
진월이 검을 쥔 다크 엘프의 팔을 구속한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어깨가 상대의 가슴을 강타한다.
콰앙!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굉음이 몸에서 난다. 물론 그 다크 엘프는 허공에 뜬 채 뒤로 날아간다. 진월은 국장의 팔태신술을 변형해서 활용하고 있었다. 워낙 강희와 대련을 많이 했기에 국장에게 배우지 않아도 기술의 대부분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퍼퍽! 권영 두 개가 다른 쪽에서 검을 날리던 다크 엘프의 면상과 복부에 작렬한다. 주먹으로 거리가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음에도 다크 엘프가 맞고 떨어진다. 이제는 영력으로 격공의 기술을 구현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진월이 전방을 슬쩍 본다. 블랙이 있을만한 자리다. 검은 구름이 근처의 하늘을 덮고 있다.
우르르르릉~ 콰과광~
번개가 번쩍번쩍 빛난다. 천둥이 치더니 굉음이 울린다. 지면으로 떨어진 번개가 꽤 많다. 끊이지 않고 지면을 때리는 것이 인공적인 마법의 힘처럼 보인다. 뛰어난 진월의 시력에는 날카로운 바람과 강력한 번개로 인해 다크 엘프들이 꽤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다크 엘프들도 필사적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필사적으로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쿵쿵쿵쿵!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린다.
“크아아아~ 죽여 버리겠다.”
트롤 쿤도가 정신이 돌아왔는지 진월을 향해 미친 듯이 몸을 날린다. 회복력 하나는 정말 대단했다. 덩치는 산만해서 신장만 해도 진월의 두 배는 됨직했다. 트롤 쿤도의 모습을 보게 된 진월이 그 자리에 멈춘다. 아니 쿤도 때문에만 멈춘 것이 아니다. 바로 목소리의 주인공 때문에 멈춘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익히 들어본 목소리다.
“줬으면 돌려받아야지. 그냥 가면 쓰나?”
“…….”
주비엘이 부옇게 일어난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옷의 복부 부위는 시커멓게 타들어간 흔적이 남아 있다. 한 팔에도 붉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진월의 영살을 막은 흔적이다. 그 피해가 적지 않았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피가 흐르는 팔을 들어올린다. 마치 자신의 현재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상처가 난 팔을 바라본다. 검붉은 불길이 팔꿈치 부분부터 서서히 올라간다. 붉게 흐르던 피가 불길에 타 올라간다. 피를 꾸역꾸역 흘려내는 상처 또한 서서히 아물어간다.
“방심한 대가치고는 너무 컸다. 사실 부하들 앞에서 쪽 팔리기도 하고 말이야.”
“말이 많은 놈이군.”
“뭐라고?”
“머리가 나쁘다고.”
“마고! 통역 아이템 없나?”
“궁금해 뒈지라고 말했건만 주둥이 계속 놀리는군.”
우둑우둑~ 진월은 할 말을 한 후 전신을 다시 푼다. 혼자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블랙에게 하는 말이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자네 먼저 강까지 가도록 하지.”
“…….”
들려오는 대답은 없다. 블랙이 당한 것은 아니니 진월의 말을 먹어 버린 것이다.
그 순간에도 쿤도가 미친 듯이 달려온다. 거의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주비엘은 분명히 나설 수 있는 상태임에도 불길을 일으켜 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진월에게 크게 한방 먹고도 여유 있는 모습이다.
쿵쿵쿵쿵~ 트롤 쿤도가 달리는 모습은 마치 녹색 괴물인 헐크가 달리는 모습과 비슷했다.
“우와아아~” 괴성을 지르며 거대한 해머를 휘두른다. 진월을 한방에 납작 만두를 만들어버리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진월은 그 순간 기체조를 하듯 두 손으로 허공을 쓰다듬는다. 안 멋지고 촌스러워서 배우지 않겠다던 팔태신술이 모두 동원된다. 바로 6식인 태기팔춤을 펼칠 때 국장이 하던 동작과 비슷했다. 진월의 몸 주변으로 흑빛과 금빛의 영사들이 휘돈다. 마치 태극의 문양이 그려지듯 허공에 그림이 그려진다.
쿤도의 거대한 해머가 진월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쿤도의 본래 신력과 달려온 힘까지 더해져 엄청난 파괴력이 실려 있다. 해머가 진월이 만들어 놓은 태극 문양의 영사 위를 지나친다.
“응?”
쿤도는 그의 해머가 갑자기 더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버릴 것처럼 강하게 밑으로 빨려 내려간다. 바로 진월이 만들어 놓은 태극 문양의 영사로 인한 작용이다. 상대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쿤도는 해머가 손에서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 꽉 잡는다. 그에 따라 그의 몸도 더 앞으로 훅 기운다. 의도치 않게 진월과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진월의 다리 하나가 앞으로 슬쩍 뻗어나간다. 해머는 진월의 뒤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월의 몸이 세차게 휘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커다란 영사의 팔들이 생성되어 있다.
터턱! 영사의 팔들이 진월의 의지에 따라 쿤도의 팔과 턱을 강하게 움켜쥔다.
진월의 허리가 앞으로 휙 꺾인다. 누가 보면 각 구십 도로 인사하는 줄 알게 생겼다. 유술의 엎어치기다. 쿤도의 눈동자가 확 커진다. 그 누가 있어 그의 거대한 덩치를 이렇게 매칠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그는 심지어 상대가 오거라 해도 이제까지 밀려본 적이 없었다.
쿤도의 몸이 허공에 붕 떠 있다. 그의 시선은 지금 진월의 등판을 보고 있는 형국이다. 손을 뻗어 잡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아니 손을 뻗을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빠르게 그의 몸이 허공을 휘돌고 있었다.
쿠둑! 진월의 왼쪽 발이 지면을 파고 들어간다. 엄청난 힘이 그의 발에 실리고 있었다. 진월의 몸이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의 오른 발은 앞으로 죽 뻗어있다. 보통 사람의 운동신경이라면 도저히 행할 수 없는 동작이다. 엎어치기 후 바로 앞차기가 행해진 모습이다.
쿤도의 거대한 덩치가 거꾸로 떨어지고 있다. 덩치가 크다보니 유연성이 좀 떨어져 등판이 아닌 머리로 떨어진다. 비만인 복부가 진월의 앞에 펼쳐진다. 그곳에 진월의 우측 발이 박힌다.
퍼억!
“컥!” 쿤도의 입에서 분비액이 튀어 나온다. 갑작스런 충격에 뱃속에 있던 것들이 역류한다. 쿤도의 몸이 진월의 발차기에 의해 뒤로 훅 밀려난다. 거대한 덩치가 한 십여 미터는 더 날아간다. 그만큼 진월의 다리에 실린 힘이 강했다.
쿠웅~ 두드드드~
쿤도가 거꾸로 처박힌 채 땅을 파헤치며 밀려난다.
쾅! 콰광!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쿤도의 몸이 밀려나다가 멈출 때쯤 다시 그의 몸에 폭격이 떨어진다. 진월의 권에 실린 권영이 쿤도의 몸을 가격하고 있었다. 쿤도의 몸은 충격에 움찔거리며 뒤로 밀린다. 다크 엘프들이 진영을 이루며 진월을 노리고 있는 근처까지 밀려난다. 완전히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법 큰 역할을 할 줄 알았던 쿤도의 허무한 퇴장이다.
진월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다크 엘프들의 틈으로 파고든다.
콰앙! 진월의 양손에서 터져 나온 영력에 검을 휘두르던 둘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드드득~ 티이잉! 진월의 바로 근처에서 화살들이 날아든다.
콰과과곽~ 화살들이 진월의 영사 갑옷을 파고든다. 진월의 모습이 순식간에 고슴도치처럼 변한다. 하지만 그의 쇄도는 멈추지 않는다.
퍼퍼퍽! 가로막는 모든 이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날아간다. 다크 엘프들은 그래도 뒤로 물러나지 않는다. 죽음을 각오하며 진월을 막아선다. 그만큼 충성도와 결속력이 높은 자들이었다. 다크 엘프들 중에서도 조장급에 해당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실력은 훨씬 더 뛰어났다. 진월의 전방을 다크 엘프 둘이 검을 들고 막아선다.
카캉~ 둘의 검이 진월의 팔과 부딪쳤다. 강화된 영사 갑옷과 부딪치며 금속음을 낸다. 팔과 부딪친 검을 젖히며 진월의 두 손이 다크 엘프들의 목을 움켜쥐려 한다. 그 순간 그 둘이 옆으로 빠르게 비켜난다. 진월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뭔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 둘이 사라진 바로 뒤로 활을 든 자들 둘이 서 있다. 화살 끝에 이글거리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다. 검을 든 다크 엘프들은 조금 더 뛰어난 조장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앞선 것이 분명했다.
이글거리는 기운을 담은 화살이 날아든다. 바로 코앞에서 시위를 놓은 화살이다. 더구나 진월의 양팔은 회피하던 다크 엘프 둘이 검으로 짓누르고 있다. 진월의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대치지만 반응 속도를 늦추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대치다.
화살이 노리는 곳은 다름 아닌 주비엘의 곡도에 상한 부분이다. 그곳은 영사의 갑옷이 아직까지 완전하게 수복되지 않았다. 상처 또한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퍼퍽! 두 개의 화살이 진월의 가슴에 박힌다. 가까운 거리에서 강한 기운이 실린 화살이라 그런지 영사의 갑옷이 뚫린 것처럼 깊게 박혔다. 다행히 상처 부위는 그 짧은 순간에 피했다. 더불어 검을 들고 있던 두 검수의 목이 진월에게 잡혀 있다.
우둑! 우둑!
다크 엘프 둘의 숨골이 부러진다. 그대로 활을 쏘던 조장들을 향해 그들을 던진다.
“이런, 이런…….”
주비엘이다. 언제 다가왔는지 바로 옆쪽이다.
“우리 쪽 피해가 너무 컸어.”
목소리는 들린다. 하지만 주비엘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진월의 반응은 많은 체력 소모로 인해 느려져 있다.
흠칫! 진월이 살기에 반응한다. 뒤에서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뜨끔함이 느껴진다. 앞으로 휙 구른다. 이번에는 측면이다. 다시 반응한다.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의 빠름이다. 마치 유령을 상대하는 것 같은 쭈뼛함이 계속 느껴진다. 그러다 세 곳에서 동시에 살기가 느껴진다. 피할 곳은 전방밖에는 없었다. 진월의 몸이 육감을 믿고 움직인다.
푸욱!
“윽!”
움직이던 진월의 좌측 복부를 파고든 후 뒤로 삐죽 머리를 내민 은빛 곡도가 보인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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