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장 둘은 끝나고 개별면담이다.
“왠지 미끼를 던져 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그렇군요.”
통제 실장도 진월의 말에 동감한다. 다시 얼굴은 붉은 홍시가 된다.
짝!
“으아악~!”
진월의 솥뚜껑만한 손바닥이 실장의 등짝에 박히자 비명소리가 진동한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의기소침해가지고…….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팀원들의 생명이 달린 일이니 한 번 더 저놈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도록 해.”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나 확인해 주실 것이 있습니다.”
실장은 몇 장의 사진을 화면에 띄운다. 그 사진 속에는 정장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좋은 체격의 남자가 등장한다.
“IUC본사 건물은 정문으로의 출입만 허용합니다. 4개의 측문이 있지만 일정 등급 이상의 보안카드를 지닌 자들만이 출입 가능합니다.”
“요지는?”
“사진 속의 저 남자는 IUC 보안 등급에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측문으로 출입을 한다?”
“그렇습니다. 혹시 보신 적 있는 자인지?”
“없다. 추적은 해봤겠지?”
“여러 번 실패했습니다. 그러다 그 자가 사라진 지점의 주변을 무작위로 스캔했더니 이런 것이 걸려들었습니다. 밤이 아니었으면 찾지도 못했을 겁니다.”
“어디지?”
“도봉구와 의정부시 경계 지역입니다.”
“길게 일렬로 빛나는 점들은 뭐지?”
“환풍구로 추정됩니다. 환풍구의 위치와 숫자로 봤을 때 길이만 1킬로미터를 넘는 지하 시설로 추정됩니다.”
“좋아! 출구는?”
“현재 파악된 바로는 두 곳입니다. 여기와 여깁니다.”
실장의 손놀림이 신이 나서 출구를 가리킨다. 한건 올렸다는 마음에 엔돌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고 있다.
“앞의 것은 미끼인 것 같고 이것이 진짜인 것 같군.”
“그렇습니다.”
실장은 방금 전의 실수는 본인이 저지른 일이 아닌 것 마냥 자신에 차있다. 진월이 실장을 본다.
“넌 앞의 것이 미끼인 줄 알면서 나한테 던진 거냐?”
“그, 그건…….”
“굳이 먼저 떡밥을 던져놓고 가장 의심스러운 것을 뒤에 말한 이유가 뭐냐? 날 시험에 들게 한 이유를 대봐라.”
“…….”
실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앞의 것이 진짜 같았다고 말한다면 능력 없는 놈이 된다. 그러니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그렇게 배정했다고 말한다면 정말 생각 없는 인간이 된다. 이래서 사람이 처신을 하는데 중용(中庸)의 도를 지키기가 어렵다. 아무 말도 못하는 통제실장을 향해 거친 입을 자랑하는 강희가 한마디 한다.
“아까 차라리 자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 중심도 못 잡는 가운데 것 쓸데도 없는데 그것 자르면 되겠습니다.”
“잘라달라는데 거절하면 그것도 도리는 아니지요.” 최탑이 동조한다.
“실장님, 심장 터질 것 같아요.”
창민의 귀에서 실장의 심장이 요동치는 것이 너무나도 잘 들린다.
통제 실장은 결국 무릎을 꿇는다. 다들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목이 멘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말이다. 진월의 손이 올라가고 실장은 눈을 질끈 감는다. 아까는 등판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자를지도 모른다.
“수고했다. 백업 잘 부탁한다.”
“…….”
진월의 묵직한 목소리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실장의 시선에는 진월의 엄지가 크게 부각되어 보인다. 최고라는 의미의 수인사다. 장난이 조금 심했지만 다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말도 안 되는 말꼬리 잡고 놀리기는 그들 나름의 긴장을 푸는 방법일수도 있다.
“타격대에 지원 요청하고 20분 내로 개인장비 챙겨서 집합한다.”
“네.”
모처럼 기합이 팍팍 들어있는 모습이다. 민서 이하 팀원들은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이 팀은 특별한 능력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국장이 군 출신인 것 또한 크게 한몫했다. 기본적인 군사훈련 뿐 아니라 특수 상황에 맞는 훈련까지 6개월 과정을 모두 통과했다. 비리비리해 보이는 창민조차 알고 보면 깡다구로 뭉쳐있다고 볼 수 있다.
* * *
기동타격대 4개조 16명이 검은 방탄복을 걸치고 대기 중이다. 4명이 한조를 이뤄 네 개 팀이다. 한 개 조는 오백 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두 번째 출구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남은 세 개 조는 나무와 수풀을 엄폐물 삼아 조용히 대기 중이다.
“팀장님 아직 안 오셨냐?”
“곧 오신다고 했다.”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얼굴이 낯이 익다. 바로 진월을 시험하기 위해 골목길에서 민서를 괴롭히던 정장 사내 둘이다. 그때 입었던 부상은 다 나았는지 멀쩡해 보인다. 골절상을 입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회복력이다. 누군가의 특별한 보살핌이 있었던 것 같다.
“4조는 퇴로만 막으면 되지만 우린 침투를 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아 보이지?”
“응. 조용하게는 절대 불가능해 보인다.”
“쩝~ 그러게 말이다. 적외선 감지기가 양쪽에 한 대씩이고 입구는 보이지도 않으니……. 저 감지기 사이가 입구는 맞겠지? 열려라 참깨! 해야 하나?”
“한번 해볼래? 하러 가다가 네 몸에 난 구멍으로 저쪽 경치를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입구는 맞겠지?”
“알고 있으니 저기가 입구지. 모르면 백퍼센트 그냥 지나친다.”
“그렇지.”
둘의 대화대로다. 이미 적외선 열원으로 확인을 했기에 출구의 위치를 추정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절대 알아차리기 힘들다.
대화를 나누는 둘은 좀 엉뚱해 보인다. 진월과 처음 대면했을 때에도 약간은 엉뚱해 보였다. 목영호와 마명이라 불리는 둘은 타격대 1, 2조 조장이다. 더불어 국장이 약간 공을 들여 가르치는 놈들이기도 하다. 그런 놈들이 왜 진월에게 그렇게 허무하게 당했을까? 발악이라도 해봐야 맞는 것이 아닐까? 대답은 간단했다. 격하게 부수지 않으면 쉽게 제압하기 힘든 실력자들이라는 의미도 된다. 진월이 보통의 인간 능력으로 그들을 제압하려 했으면 시간이 좀 걸렸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목영호는 저격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고 마명은 단검술에 능했다. 둘은 기다리기 지겨운지 거의 동시에 시계를 들여다본다. 마명이 조금 더 성격이 급하다.
“뭐냐?”
“그러게 말이다.”
“이십분이나 지났어.”
“장난하나?”
“장난이야 하겠어요?” 창민이 언제 나타났는지 끼어든다.
“넌 뭐냐? 왜 혼자 오냐?”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벌써 많이 기다렸거든?”
“짜증나면 대장 하던가?”
“이 자식이~?”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 있으면 저 적외선 카메라에 안 잡히나요?”
“인식 범위 밖이다.”
“확실해요?”
“확실해!”
“이상하네. 팀장님이 화내면서 먼저 들어가시던데…….”
“…….”
창민의 말에 순간 적막이 감돈다. 이건 무슨 말인가? 먼저 들어갔단다. 왜? 어떻게? 당연히 드는 의문이다. 목영호와 마명의 눈에는 이런 모든 의문이 들어있다. 창민은 설명을 해줘야 할 괜한 의무감을 느낀다.
“뭣부터 설명해줘요?”
“왜 화를 내신거지?”
아주 조심스런 질문이다.
“저것 두개 성능이 아주 좋답니다.”
“…….”
두 조장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서로를 본다. 결국 그들은 바보짓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미 그들의 급습은 탄로가 났다는 말이다. 근접전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기습은 이미 물 건너갔다.
“그럼 어, 어떻게 들어가셨는데……?”
“힘 좋잖아요. 당해 봤으면서 뭘 물어요?”
“설마?”
“아마 그 설마일 겁니다.”
그들이 은신하고 있는 지점으로부터 백여 미터 떨어진 곳의 환풍구가 통째로 뜯겨져 나가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미 드러난 것 가릴 것은 없었다. 환풍구를 통해서 온통 검은색으로 통일한 4명이 떨어져 내린다.
그들은 다이아몬드 형태로 포지션을 잡는다. 진월의 수신호에 따라 움직인다. 각자의 손에는 자동소총과 권총이 들려있다. 통로는 침입자를 알리는 신호와 붉은 빛이 번쩍인다.
입구를 향해 움직이던 진월은 뭔가 이상함을 느낀다.
‘생각보다 인기척이 없다. 뭐지?’
신속하게 움직인다. 입구를 향해 가다가 마주친 인원은 달랑 둘이다. 총알을 허비할 필요도 없었다. 민서가 앞으로 나선다. 그녀의 눈빛이 반짝인다 싶은 순간 총을 들어 올렸던 경비들은 스르륵 팔을 내린다.
“문을 여세요.”
경비들은 두 말하지 않고 보안카드를 이용해 출구를 연다. 밖에서 지켜보던 목영호 외 타격대원들은 깜짝 놀란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지면이 위로 솟구쳐 오르고 출입문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출입문에 진월이 나타나고 그의 수신호에 따라 타격대가 신속하게 이동한다.
진월을 지나쳐 가는 목영호와 마명의 귀로 음성이 들린다.
“둘은 끝나고 개별면담이다.”
“…….”
“1조는 통제실을 맡는다. 2조는 연구시설의 자료를 조사한다. 3조는 경계임무다.”
“…….”
대답을 못하는 이유가 다르다. 둘은 할 말이 없으니 입을 다문다. 임무 하달에 대해서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 답하는 것이 기도비닉을 유지하기 위한 원칙이다.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각 조장은 조원들을 이끌고 이동한다. 나뉘는 통로에서는 각각 조별로 산개한다. 산개한 이후부터는 충돌에 대해서는 독자권을 가진다.
청력이 좋은 진월과 창민의 귀로 소음기를 장착한 자동소총의 격발음이 연달아 들려온다. 다른 조에서는 이미 교전이 시작된 것을 뜻한다.
“보고!”
[1조 네 명 무력화! 무장 확인!]
[2조 격리 구역 접근 중!]
[3조 이상 무!]
각 조별 상황을 보고 받은 진월은 팀원들을 이끌고 지하로 향한다. 그의 손에 들린 소형 패드에는 창민이 연구 시설 내 네트워크에서 해킹해낸 지도가 담겨있다. 지하 7층까지 만들어진 시설이다. 최고의 기밀을 요구하는 군사시설도 이 정도로 짓기는 쉽지 않다. 패드에는 맨 마지막 층이 디스플레이 된다. 3중의 보안문을 통해 들어가게 설계되어 있다. 이 정도 시설이라면 혹시 게이트(gate)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엘리베이터를 부른다. 외부에서는 엘리베이터가 몇 층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진월이 탑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탑은 10미터 떨어져 대기!”
명령에 탑은 엘리베이터와 거리를 유지한 채 납작 엎드려 대기한다. 진월의 손가락이 강희, 민서, 창민을 향하며 양쪽으로 갈라설 것을 지시한다. 마치 모의 훈련을 해본 것처럼 절도 있게 엘리베이터 문 양쪽으로 소산한다. 진월이 창민을 본다. 창민은 중얼거리듯 상황을 보고한다. 진월의 청력을 알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셋입니다. 좀 특이합니다. 심박수가 비정상적으로 빠릅니다.”
“대기!”
지시를 내린 진월이 최탑을 보며 수신호를 보낸다. 오른 주먹을 쥔 후 왼손바닥을 가볍게 친다. 문이 열리면 바로 공격하라는 신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푸슝~ 푸슝~ 푸슝~
연이어 세 발의 작은 소음이 들린다. 소음기를 관통하는 탄환이 내뱉는 소리다.
창민의 눈으로 본다.
창민의 눈에는 1초가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진다. 탄환이 날아가는 궤적과 탄환의 형태가 흐릿하게 보인다. 10미터의 거리다. 이 정도 거리면 철판도 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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