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장 천운이구만 기래.
검은 그림자가 통로 끝을 지나친다. 위철상 소좌가 그 모습을 놓칠 리 없다.
“날레 뛰어 가는군.”
“쫓을 까요?”
“기래야지.”
“그런데 저쪽은 연구시설이 있는 곳입네다만…….”
“한 놈만 가는 것으로 봐서리……. 유인책?”
“글티요.”
“그래도 가야디. 하나만 남으라우. 기래도 이제까지 쌓은 정이 있는데 경고 정도는 해줘야 하디 않갔어?”
“예.”
선임들이 가장 후임에게 눈길을 준다. 당연하다는 듯 가장 후임이 남는다.
“딱 5분이어야. 그 안에 우리가 안 오면 바로 통제실로 연락 넣으라우.”
“예.”
위철상 소좌는 전철에게 보란 듯이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한마디로 말해 전철 부장의 모든 것이 다 잘난 척으로 보였다. 미운 것이다. 어쩌면 피부로 느껴지는 묘한 열등감이 작용하는지도 몰랐다.
위철상 소좌, 그의 앞에서 이제껏 주눅 들지 않고 어깨를 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만을 밟고 올라왔다. 하지만 반대로 전철이란 자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약간 주눅이 들었다.
‘재수 없는 아새끼! 내 보란 듯이 보여 주갔어.’
전철 부장이 놓친 것을 그들이 해결해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남조선 아새끼들! 돈으로 개지랄 하는 것들! 다 발 아래 깔아뭉개 주갔어. 두고 보라우.’
묘하고 상반된 심리다. 심성이 많이 비뚤어져 있었다.
분명 침입자가 한 명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바로 알리지 않았다. 아마도 한쪽이 뚫려서 혼란이 야기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전과가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5분이란 시간을 둔 것도 침입자가 더 깊이 침투하게끔 시간을 준 것이란 느낌이다.
위철상 소좌가 진월의 그림자를 쫓아 움직인다.
‘그 에미나이가 중요하긴 중요한가 보구만.’
위철상 소좌는 민서의 중요성을 느낀다. 직접 몸으로 체감해 봤으니 그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탁!
앞쪽 코너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침입자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통로로 들어갔다는 의미다. 위철상 소좌가 코너를 돈다. 그 뒤를 두 대원이 바짝 따른다. 위철상 소좌는 순간적으로 뒷골이 찌릿해지는 감각을 느낀다.
“숙이라우!”
“…….”
갑작스런 명령이다.
위철상 소좌는 말을 함과 동시에 전방으로 숙이며 몸을 굴린다. 구르는 그의 시선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보인다. 온통 검은 색 일색의 복장이다. 밤에 침투하기 위해 일부러 검은 복장을 착용한 것 같았다.
푹!
“컥!”
진월의 단검이 대원 중 하나의 심장에 그대로 박힌다. 두 번의 찌름도 없다. 우악스런 손아귀가 대원의 얼굴을 덮는다. 그대로 밀어붙여 벽에 박아버린다.
퍼억!
단검은 순식간에 다시 회수된다. 이미 진월의 몸은 두 번째 목표물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곁에 있던 북측 대원의 손에는 어느새 권총이 들려 있다. 그의 반사 동작도 만만치 않게 빨랐다.
* * *
강희가 선두에 서서 팀을 이끈다. 이미 시설 내 화상카메라의 영상은 그들도 보고 있다. 병력의 배치부터 통로의 구조까지 모조리 꿰고 있다. 문제는 시설 내부로 가기 위한 통로 근처에 위철상 소좌의 부하 하나가 버티고 서 있다는 것이다. 두 개로 나뉜 통로는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지나다니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이미 진월에게 통신은 받은 상태다. 5분이라고 했다. 뛰어난 진월의 청력이 상대의 대화를 이미 들은 것이다. 5분이 지나면 저 자는 침입자에 대한 경고를 할 것이다.
강희가 목영호를 향해 신호를 보낸다. 손을 들어 목을 긋는 모습이다. 기다려 줄 수 없으니 제거하라는 신호다. 소리 없이 제거하는 것이 관건이다. 상대도 실력이 있는 자이니 최대한 주의해야 한다.
강희가 움직인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는 바람만이 머문다.
목영호 또한 그 순간 코너를 돌아 달린다. 지금은 그저 강희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아 있던 북측 대원이 움찔한다. 전방에 흐릿한 잔상의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뒤쪽에서는 사람이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몇 번이나 죽음을 넘어서는 훈련과 실전을 거쳤다. 근육의 움직임까지 읽을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며 고개를 튼다. 이미 손에 들린 권총의 총구는 보이지 않는 강희를 향해 있다.
타앙!
노림과 동시에 방아쇠는 당겨졌다. 강희의 눈동자도 커진다. 몸의 속도만큼 그녀의 동체시력 또한 높아져 있다. 총알이 그녀의 복부로 향하는 것 또한 보인다.
* * *
통로를 타고 총소리가 울려온다. 진월의 미간이 구겨진다. 기도비닉 유지는 물 건너갔다.
“별 수 없군.”
진월의 손이 그를 향해 있는 권총을 잡으려다 멈춘다. 권총을 쏘지 못하게 하려 했던 행동이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탕, 타앙~
연이어 두 발의 총성이 통로를 타고 흐른다.
진월의 복부를 향해 있던 총구에서 불이 뿜어진 것이다. 하지만 진월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이미 옆으로 벗어나 있다. 북측 대원 또한 진월의 움직임을 보고 다시 연이어 한 발을 더 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겨드랑이 사이로 지나간다.
총구는 진월의 몸을 따라 움직이고 진월은 총구를 피해 움직인다. 세 번째다. 다시 한 번 총구에서 불이 뿜어진다. 이번에는 미간이다.
타앙!
티잉~
진월의 단검에 총알이 맞는다. 비스듬히 맞은 총알은 진월의 머리를 빗겨나간다. 진월에게 세 발의 총을 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진월의 단검이 그대로 총을 향한다. 북측 대원이 섬뜩함을 느낀다. 단검으로 총알을 막아낸 모습을 보자마자 상대의 실력이 그보다 위라는 것을 직감한다. 다시 한 번 방아쇠에 담긴 손가락이 당겨진다.
촥!
“윽!”
북측 대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의도치 않은 소리다.
진월의 단검은 어느새 대원의 팔목을 훑고 지나갔다. 검지를 당기는 근육과 인대가 잘려나갔다. 더 이상 방아쇠를 잡아당길 수 없는 상황이다.
진월의 시선은 권총을 들고 있는 대원을 향해 있지 않다. 앞으로 굴러 피했던 위철상 소좌를 보고 있다. 그가 신색을 수습한 후 단검을 빼들고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더 간단한 총이 아닌 단검을 빼들고 있다. 총알을 피하는 모습을 봐서일까? 아니라면 그의 자존심 때문일까? 알 수 없다.
진월의 눈은 위철상 소좌를 보면서 단검은 북측 대원의 몸을 향한다.
사람은 몸에 상해를 입으면 자연스럽게 방어기제가 작용한다. 상처 부위를 보게 되거나 그 부위를 압박하게 된다. 하지만 고도의 훈련을 받은 북측 대원은 그렇지 않았다. 진월의 단검을 향해 오른손에 들린 권총을 왼손으로 빼들어 다시 쏘려 했다.
쭉 뻗던 진월의 단검이 순식간에 역수로 잡힌다.
푹!
“…….”
북측 대원 왼팔의 하박에 단검이 순식간에 박혔다 뽑힌다. 진월의 몸은 단검의 움직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 진월의 우악스런 왼손이 대원의 얼굴을 잡아 시선을 가린다. 그런 순간에도 북측 대원의 다리가 올라온다. 정말 대단한 반사 신경이다. 그러나 상대하는 진월은 더 대단한 자다. 상대의 다리가 올라오는 곳에 이미 진월의 무릎이 버티고 있다.
퍽!
오히려 차올린 북측 대원의 허벅지에 진월의 무릎이 박힌다. 그럼에도 신음소리 한번 새어나오지 않는다. 방어를 하는 와중에도 진월은 두 가지 동작을 같이 한다. 하나는 북측 대원의 몸을 옆으로 돌리는 동작이다. 위철상 소좌가 쇄도하는 방향을 가로 막는다. 다른 하나는…….
푸푹! 푹!
“헉!”
북측 대원의 입에서 드디어 신음이 새어나온다. 진월의 단검이 흉부에 두 번, 복부에 한 번 깊숙이 박힌다. 진월은 단검을 옆으로 틀어 뽑는다.
진월의 손이 얼굴이 놓아주자 북측 대원이 스르륵 무너진다.
위철상 소좌는 단검을 찔러 넣다가 부하의 몸이 앞을 가리자 잠시 멈칫한 상태다.
“존간나 새끼! 죽여 버리갔어.”
“가능할까?”
진월이 고글을 들어 올리며 빈정댄다.
“너 이 새끼!”
“오랜만이군. 네놈 때문에 아끼는 동생 하나 황천 보낼 뻔한 적이 있지.”
“크크, 기래? 그 아새끼, 살았나?”
“살아있지. 건망증이 심해졌지만.”
“대가리에 구멍 나고도 살았으면 천운이구만 기래. 오늘 동무도 천운이 따라주나 한번 보갔서.”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빨리 시도해 보는 것이 좋아.”
“턱주가리에 기름칠 제대로 했구만 기래. 잘 움직이는 것을 보니께니.”
“기름칠은 전신에 잘 되어 있지.”
“기래?”
위철상 소좌의 단검이 진월의 목을 향해 직진한다.
캉!
불꽃이 튄다.
단검을 찌르는 속도가 빨라 진월의 몸 또한 옆으로 조금 틀어진 채 막아냈다. 뛰어난 실력이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여유를 두고 상대하고 싶은 자다.
바쁜 상황이기에 진월이 약간의 영력을 동원한다.
쭈삣!
위철상 소좌는 다시 뒷골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빠르게 뒤로 물러난다.
진월도 위철상 소좌의 모습을 보며 미간을 구긴다. 그가 영력을 발현하자마자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 * *
“쳇!”
강희가 낭패한 음성을 내뱉는다. 상대가 느낌만으로 방아쇠를 당길 줄은 몰랐다.
훙~
강희의 몸이 강하게 옆으로 젖혀지자 대기가 몸살을 앓는다. 흐릿한 잔상이 갑자기 옆으로 꺾이자 총구도 따라 움직인다. 실력들이 보통이 아닌 자들이다. 특수전 사령부 상위 1프로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일반적인 특수부대원 열은 찜 쪄 먹고도 남을 실력들이다. 그냥 인간이 아닌 초인에 가까운 실력이라는 의미다.
출발점으로부터 3초가 지났다. 강희의 형태가 슬쩍 드러난다.
‘여자?’
북측 대원은 모습을 드러낸 강희의 성별을 구분한다. 그 짧은 순간 파악한 것이다.
움직이던 총이 잠깐 주춤한다.
“미친 놈!”
강희가 소리치며 다시 능력을 발현한다.
화악!
북측 대원의 얼굴로 바람이 몰아친다. 그 안에는 기풍도 같이 섞여 있다. 피부로 소름도 돋는다. 위험을 알리는 신호다.
총을 쏘기엔 상대의 쇄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뒤로 무른다. 몸도 최대한 뒤로 뺀다. 팔은 전방을 가드하며 최대한 당긴다.
파앙~
북측 대원의 가드 위로 충격파가 터진다.
“큭!”
팔로 막았음에도 내부가 진탕되는 느낌이다. 호흡이 힘들어 자연스럽게 나온 신음이다. 그의 의지가 아니지만 충격 때문에 몸이 뒤로 밀려난다. 그 힘든 와중에도 그의 권총을 든 손이 전방으로 뻗어 나온다. 목표는 가격을 위해 몸을 드러낸 강희를 향해서다.
탕!
한 발의 총성이 통로를 울린다. 총구가 다시 움직인다.
타앙!
두 번째 총성이다. 강희의 움직임을 쫓아가며 쏜 것일까? 아니다. 북측 대원의 시선은 강희의 뒤쪽에 있는 그림자를 보고 있다. 갑자기 나타난 목영호를 보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총성은 바로 목영호를 향해 쐈다. 무서운 인간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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