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5 장 위험한 냄새가 난다.
주비엘이 마상에 앉아 숲속을 바라본다. 그의 뛰어난 시력이 진월이 있을만한 위치를 탐색하고 있다. 물론 수풀이 우거지고 거리가 있어 정확히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옆에는 주술사 마고와 크로엘이 있다. 뒤로는 가드처럼 하프가 버티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군.”
“방벽까지 만들어 뒀습니다.”
“둘이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주비엘이 그의 주변을 둘러본다. 길게 늘어선 병력만 오백이 넘는다. 급조하긴 했지만 다크 엘프만도 백이다. 하크 일족이 사백이 넘고, 쿤도의 트롤이 오십이 동원되었다. 그들의 힘에 이끌려 끌려온 고블린과 코볼트들도 뒤를 받치고 있다.
둘을 잡기 위해 끌어들인 것치고는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다다익선이라도 많아서 나쁠 것은 없다. 주비엘이 명령을 내린다.
“하프는 나와 함께 대기한다.”
“네!”
“크로엘이 병력을 이끌고 마고가 뒤를 받친다.”
“네.”
“하엘님께서는 되도록 생포하기를 원하신다. 숨통만 붙어있으면 된다.”
주비엘의 말에 크로엘의 눈빛이 빛난다. 그의 얼굴에 새로 생긴 상처로 손이 간다. 상처는 어느새 아물어 있었다. 하지만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끄둑! 그의 손에 들린 말고삐가 가해지는 힘에 의해 비명을 토한다.
크로엘의 손이 들린다. 그의 손이 지면을 향하자 하크 일족이 괴성을 토하며 내달린다.
“크아아아~”
“우워워워~”
그들의 뒤를 이어 몸집이 더 거대한 트롤들이 돌진한다.
쿠쿠쿠쿵~
맨 마지막에 다크 엘프들이 천천히 뒤를 따른다. 크로엘과 마고가 움직인다. 그들의 곁에 다른 트롤에 비해 더 거대한 덩치를 지닌 트롤 하나가 있다. 크로엘이 그 트롤을 부른다.
“쿤도!”
“…….”
대답은 하지 않고 쳐다만 본다. 뭔가 표정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크로엘도 그걸 아는지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저놈들만 잡으면 당분간 너희들의 생활을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게 언제까진가? 말만 항상 그래왔지.”
“저놈만 잡아라. 내가 직접 나서서라도 막아 줄 테니…….”
쿤도라 불린 트롤이 피식 웃는다. 별로 믿지 않는 표정이다. 하엘이란 절대자가 나타나 다크 엘프 이외의 종족들이 눌려 사는 세상이다. 그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핍박은 계속 될 것이었다. 쿤도가 크로엘의 얼굴을 본다.
“그 상처, 저기 있는 놈이 만든 것인가?”
“…….”
“그랬군. 네 말 믿어보도록 하지.”
콰앙! 쿤도가 두 손을 부딪치자 굉음이 일어난다. 쿤도의 두 손에는 거대한 건틀렛이 끼워져 있다. 두 손안에 뭔가 들어갔다면 그것이 바위라도 가루가 될 것 같은 괴력이다. 손에서 빠져나온 풍압이 크로엘과 마고의 얼굴을 가격한다. 마고의 로브 모자가 휙 벗겨질 정도다.
크로엘이 슬쩍 웃는다. 쿤도가 정말로 힘을 보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은 확실했다.
쿤도에게 줬던 시선을 전방으로 돌린다. 미소가 머물던 그의 눈가가 갑자기 꿈틀하고 구겨진다.
“저, 저건…….”
팅! 티팅~ 뭔가 줄 같은 물체가 끊기는 소리다. 물론 그 근처에서만 들린다.
슈웅~ 거대한 통나무가 사방에서 떨어져 내린다. 거대한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것이라 지상에 있는 이들의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가로로 떨어지는 것도 있고 세로로 떨어지는 것도 있다.
가로로 떨어지는 통나무에는 날카롭게 깎여진 나무들이 박혀 있다.
퍼퍼퍽~
“커억!”
“큭!”
앞만 보고 달리던 하크 일족 몇이 목창에 꿰인 채 통나무와 함께 허공을 가른다. 목창이 몸통에 박히거나 바로 머리에 박혀 절명한 자들도 있다. 그들은 그나마 낫다. 세로로 떨어지는 거대한 통나무에 박힌 자들은 몸이 터져 나간 자들도 있었다. 통나무가 곁을 스치고만 지나가도 떨어지는 속도와 무게가 있기 때문에 팔 하나 정도는 쉽게 떨어져 나간다.
간단한 부비트랩에 꽤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당연히 공포에 물들어 주춤거리는 자들이 나온다.
그 모습을 보고 크로엘이 소리친다.
“저들을 구속하는 자에게는 하엘님의 보상이 따를 것이다. 잡아라.”
“크와아아아~”
주춤하던 자들이 모조리 다시 달려 나간다. 하엘이란 자의 절대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후우우웅~ 갑자기 바람이 몰아친다.
크로엘과 마고의 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다. 마치 진월이 서 있는 곳의 대기가 비어버린 것처럼 그곳을 메우기 위해 세차게 바람이 몰려가는 것 같았다. 힘차게 달리는 자들의 뒤에서 태풍의 풍속과 비슷한 바람이 순간적으로 분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의 몸은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앞으로 패대기쳐질 확률이 높다.
역시나 구르는 자들도 있고 넘어질 것 같으면서 가까스로 버티며 달리는 자들도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슥! 스스스슥~ 구르며 달리는 자들의 신체에서 묘한 소음이 발생한다.
투둑 툭툭~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크로엘의 얼굴이 노기로 가득 찬다.
“이 노~옴!”
“저럴 수가…….”
주술사 마고는 눈앞에 펼쳐진 모습에 넋을 잃는다. 이제까지 그 누가 있어 그들에게 이런 피해를 줬단 말인가? 없었다.
진월이 만들어 놓은 통나무 방벽 주변의 대지 위에는 지금 하크 일족이건 트롤이건 고블린이건 멀쩡한 모습으로 있는 자는 없었다. 조각조각 분시된 육체의 조각들이 땅 위를 뒹굴고 있을 뿐이다. 미친 듯 달리던 자들이 모두 멈춰 섰다. 그 중에는 이미 육체의 절반 정도가 은사에 파묻힌 이들도 있었다. 그 상태로 멈춘 것이 신기해 보인다.
크로엘의 얼굴이 분노로 실룩거린다.
“간다!”
크로엘이 외친 후 바로 말을 몰아 달린다. 마고가 뒤따르고 쿤도도 달린다.
차창~ 크로엘이 그의 쌍곡도를 빼든다. 그의 눈이 번뜩이며 은사를 찾는다. 온통 피에 절어 있어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인다. 크로엘의 몸이 말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그의 쌍곡도가 떠오르는 태양빛을 받아 빛을 번쩍인다.
티~티리리링~ 크로엘의 쌍곡도에 의해 은사가 잘려나간다. 한쪽이 잘리자 은사가 마치 누군가 당기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한쪽 방향으로 움직인다. 마치 릴에 감겨 말리는 것 같은 모습이다.
촤아아악~ 콰과과곽~ 은사가 걸린 부분의 나무가 잘려나가고 있었다. 은사마저 그냥 철로 만들어진 쇠줄이 아니었다. 탄성까지 곁들여져 특별하게 만들어진 무기였다. IUC의 기술력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앞서 있었다.
은사와 마찰이 일어나는 부분에서는 열이 발생했고 그 열로 인해 나무는 더 빨리 잘려나갔다. 은사 자체가 마찰을 받으면 뜨겁게 열이 발생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은사만으로 물체를 자르기에 적합하도록 제작된 것이다.
우지끈! 쿠두두두~
“피, 피해라.”
아름드리나무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깔리면 이차 피해가 발생한다.
주술사 마고의 스태프가 빛을 발한다. 땅이 일어난다. 흙과 돌로 만들어진 방벽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가 막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피해가 최소화된다. 마고의 눈에도 불길이 일어난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일족이 바로 그의 일족이었다.
그의 스태프가 전방으로 향하며 붉은 빛을 발한다. 흙이 일어나며 거대한 팔이 만들어진다. 쓰러진 나무들에서 가지가 늘어나며 나무로 만들어진 팔도 만들어진다. 형성된 팔들이 진월이 만들어 놓은 방벽으로 날아간다.
쾅! 콰앙! 거대한 팔들이 통나무 방벽을 두드린다. 마고의 스태프가 밀어붙이다가 다시 당겨진다. 그에 따라 팔들이 통나무 방벽을 잡아당긴다.
우드득~ 우지끈~
두꺼운 통나무로 만들어졌지만 마고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팔들에 부셔져 나간다.
파아앙~ 통나무 방벽이 부서져 나간다. 거대한 팔들에는 통나무 조각들이 잡힌 채 허공으로 비산한다. 주술사 마고의 시선이 방벽의 뒤를 향한다. 검은색 방호복을 걸친 진월이 그곳에 가만히 서 있다.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고의 시선이 주변을 빠르게 훑는다. 하지만 블랙은 보이지 않는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크로엘도 흥분해 있는 상태지만 마고가 느끼는 것과 같았다. 크로엘의 입술이 씰룩거린다. 진월의 모습을 보자 상처가 아려왔고 더 흥분이 된다. 위험물과 앞을 막던 방벽까지 제거되었다. 거칠 것이 없는 상황이다. 크로엘이 명령을 내린다.
“숨만 붙여 놔라. 잡아라!”
“크워워워~”
쿵쿵쿵쿵~ 머뭇거리던 병력들이 진월 하나를 향해 쇄도한다. 각자의 손에 들린 무기로 진월을 조각내 버리겠다는 기세다.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주비엘이 갑자기 인상을 구긴다.
“뭔가 위험한 냄새가 나!”
“…….”
하프는 주비엘의 말에 갑자기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 온몸의 피부가 불길한 기운에 반응하며 소피가 일어난다. 동물적인 그의 시력이 진월의 모습을 확대해 본다. 엄청난 병력이 그 하나를 노리고 달려들고 있음에도 주눅 든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투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신체 주변 사물들의 모습이 일렁이며 굴곡진 모습을 보인다.
“저대로 둬도…….”
“이미 늦었다.”
주비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굉음이 울린다.
콰앙! 부서진 방벽의 바로 앞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폭발이 일어난 범위 20미터 이내의 병력은 모두 몰살했다. 살았다 해도 멀쩡한 모습은 아니다.
진월이 손이 올라간다. 손에 뭔가 들려 있다.
딸깍! 엄지가 빨간 스위치를 누른다.
콰과과광~ 방벽의 좌우로 순차적인 폭발이 일어난다. 미친 듯이 진월을 노리며 달려들던 병력들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그들의 몸에는 파편과 구슬들이 수없이 박힌다. 살았다 해도 당장에 전투를 벌일 상태는 아니다. 순식간에 백이 넘는 숫자가 대지 위에 누웠다. 한 사람이 짧은 순간에 준 피해로는 상상할 수 없는 타격이다.
주비엘이 계속 중얼거린다.
“위험해. 위험해!”
주비엘이 느끼기에는 진월이 가지고 있는 무기 자체가 이 세상에 위험한 물건이었다. 마력에 의해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력과 마력을 파훼하는 힘이었다. 어쩌면 상극인 물건이다. 오로지 능력자들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으로 보였다. 무기의 힘을 상쇄시킬만한 힘이 없다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될 수도 있었다.
“하프! 꼭 잡아라.”
“네.”
하프도 나선다. 주비엘도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나간다.
모든 힘이 진월 하나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진월의 시선이 전방을 주시한다. 중심에 가장 뛰어난 능력자들이 몰려 있었다. 방벽이 세워져 있던 곳이다. 진월의 자세가 낮아진다. 그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류의 흐름이 빨라진다. 근육에 많은 혈액이 공급되며 팽창을 시작한다.
“후우~”
진월의 입에서 춥지 않은 날씨임에도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그의 몸 안에 돌고 있는 힘의 위력을 가늠하게 만들어준다.
꾸두둑! 진월의 군화가 접히며 비명을 토한다. 그의 몸이 총알처럼 쏘아져 나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트롤 쿤도가 눈을 부라리며 앞으로 튀어나온다. 그때!
진월의 발이 전방의 지면을 강하게 밟는다. 그의 발이 땅속으로 움푹 파고 들어갈 정도다. 진월의 갑작스런 멈춤에 그를 향해 달려들던 쿤도가 움찔한다. 뒤를 받치던 크로엘과 마고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잡아야 할 자다. 그들의 쇄도는 멈추지 않는다. 진월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면밀히 그의 모습을 살핀다. 이제까지 당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진월의 손이 품으로 들어간다. 크로엘이 그 모습에 움찔 놀란다. 얼굴에 흉터를 만든 무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조심…….”
딸각! 뭔가 눌리는 소리다. 주변이 너무 조용했기 때문일까? 그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크로엘의 시선에 땅이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그의 동체 시력도 총알을 막을 정도로 뛰어나기에 사물의 움직임을 슬로우로 볼 수 있다. 쿤도의 전방에서 일어난 최초의 폭발이 쿤도를 덮친다.
콰아앙~
그리고…….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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