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장 귀천의 능력
승승승승승~
최탑이 날린 비도가 모조리 회색빛의 배리어 속으로 사라진다.
전철 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주먹을 움켜쥐자 회색빛의 중력장 안으로 사라진 비도가 일그러지며 소멸한다. 전철 부장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마명을 향한다.
퍼억!
“…….”
쓰러진 마명을 걷어차 버리자 주욱 미끄러지더니 거의 통로의 반대편까지 굴러간다. 마명은 충격에 소리도 내지 못한다. 거의 초죽음 상태라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전철 부장의 앞에 다시 회색빛의 중력탄이 형성된다. 두 개다. 하나는 최탑을 향해서 하나는 쓰러진 강희를 향해서다.
“피해라!”
진월의 음성이다. 갑자기 싸움터를 떠나 내달리는 전철 부장을 따라온 것이다.
전철 부장의 시선이 진월을 향한다.
“막아 줘야 할 것이다.”
“…….”
진월의 팽팽해진 전신 근육이 순간적으로 수축한다.
쿠둑~ 팡!
음속의 벽을 뚫고 전진한다. 전철 부장의 얼굴에 미소가 슬쩍 어린다. 진월이 뛴 순간 중력탄도 최탑과 강희를 향해 날아간다. 마치 시간적 여유를 준 것 같은 태도다.
최탑은 갑작스런 전철 부장의 등장에 놀랐다. 그의 비도가 중력장에 빨려 들어가 소멸되어 버리는 모습에도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다. 그들과는 수준의 격이 다른 인간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전철 부장은 중력탄을 날려 보냄과 동시에 큰 체격의 용자룡을 어깨에 가볍게 들쳐 맨다.
“조금 있다 보지.”
“…….”
최탑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다. 위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는 공격을 날려놓고 조금 있다 보자고 한다. 최탑은 남은 비도를 모조리 공중에 띄운다. 비도의 주변으로 따닥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염동력을 발휘한 것 같다. 비도 주변으로 에너지 장이 아지랑이처럼 보인다. 비도가 한 무리는 날을 세우고 중력탄에 대항하고 한 무리는 원형의 틀을 만든다. 과거 하영철이 날려 보낸 전격을 막아낼 때와 같은 틀이다.
텅~ 지지지징~
전방에 세워진 비도가 중력탄 안으로 쑥 들어간다. 그러나 방금 전과 같이 허무하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최탑의 염력이 주변을 감싸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대신 최탑의 이마에는 그 짧은 순간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그 땀을 식혀주려는 듯 바람이 분다.
콰앙!
진월의 흑빛 영사 팔이 강희를 노리는 중력탄을 쳐낸다. 이젠 적응이 되었는지 흑빛 영사 팔도 중력탄의 충격을 이겨낸다. 중력탄의 형상이 타원형으로 일그러질 정도의 강한 충돌이다.
쩌저정~
진월의 곁에서 소음이 들린다. 최탑이 비도로 만들어 놓은 원형의 비도진이 점점 벌어진다. 최탑이 두 손까지 들어 안간힘을 쓰지만 비도의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진월의 손이 비도진을 향한다. 흑빛 영사가 죽 늘어나더니 비도들을 얽는다.
즈즈증~
약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진다. 진월의 손짓에 따라 비도진과 부딪친 중력탄이 옆 벽을 때린다.
파아~
중력탄의 크기만 한 구멍이 뻥 뚫린다. 콘크리트 방벽의 두께가 삼십 센티는 되었지만 마치 두부를 뚫듯이 구멍이 뚫렸다.
전철 부장은 뒤에서 들리는 소음에 피식 웃는다. 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게끔 던졌다. 단지 시간을 벌기 위한 술책이었을 뿐이다. 어깨에 들쳐 맨 용자룡이 꿈틀한다.
“방심하지 말라고 했건만!”
“큭. 죄, 죄송…….”
“말을 아껴!”
“네…….”
심장에 비도가 박혔음에도 죽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들인지 알 수 없다. 전철 부장이 향한 곳은 민서가 있는 곳이 아니다. 우선은 용자룡의 회복을 위한 곳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 * *
퓩! 퓨슝!
최전방에 서서 이동하는 목영호의 소총이 불을 뿜는다. 원 샷 원 킬이다. 심지어 상대의 머리가 내밀어지는 순간 총알이 박히는 경우도 있다. 사격과 저격에 있어서 만큼은 진월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참 군데군데 나타나던 적 경비 병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정적이 감돈다.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 정도다. 목영호와 팀원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며 주변을 휘돌아 본다. 물론 소총은 모두 견착 상태다. 부상자는 셋으로 늘어 있다. 하나는 다리, 하나는 팔, 하나는 복부에 총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에는 방해가 되지 않게끔 혼자 거동중이다. 부상자들을 중심에 놓고 남은 넷이 사방을 보호하는 형국이다. 부상당했다고 해서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 또한 소총은 들어 올린 상태다.
휙!
검은 그림자가 목영호의 전방을 지나친다.
퓩! 퓩! 퓨슝!
보임과 동시에 세 발의 총탄이 검은 그림자를 향한다.
파팍~ 티잉!
벽에 박히거나 튕겼다. 검은 그림자는 사라지고 없다. 모두의 신경이 날카롭게 선다.
‘뭐였지?’
의문을 느낀다. 인간의 움직임이라 보기엔 너무 빨랐다. 갑자기 뒷골이 쭈뼛쭈뼛 선다. 민서가 갇혀 있는 곳과 얼마 남지도 않은 곳에서 이상한 놈을 만났다.
그 이상한 놈이 소리도 없이 벽을 올라탔고 지금은 그들의 머리 위에 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검고 얇은 실크 천이 흩날리듯 나풀거린다. 손과 발은 분명 보이는데 그것 또한 진짜 손발인지 애매해 보인다.
바로 이연후 회장의 영혼 그릇 역할을 하며 항상 어둠 속에 머물던 고스트 귀천이란 존재다.
툭 떨어져 내린다. 소리도 없다.
나풀거리는 검은 형체만 없다면 도저히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을 것 같다.
부상당한 목영호의 조원 머리 위로 떨어진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마치 물이 스펀지에 스며들 듯 소리 없이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퓨퓨퓨퓩~
퍼퍼퍼퍽~
“커헉!”
네 방위를 점하던 조원 중 하나가 총에 맞아 쓰러진다. 모두의 시선이 순식간에 돌아간다. 바로 소음이 난 곳과 쓰러진 조원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뭐야?”
“주철!”
“너……?”
각자 놀라움을 담은 음성을 토해낸다. 복부에 총을 맞은 조원이 같은 조원을 쐈다. 총을 쏜 자가 주철이란 조원이다. 목영호가 쓰러진 조원에게 바로 가서 맥을 확인한다. 다행히 방탄복에 맞아 기절만 했을 뿐이다.
퍽!
주철이란 조원의 뒤에 있던 부상당한 조원이 소총의 개머리로 후두부를 친다. 우선 미친 짓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기절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다.
“…….”
기절을 할 정도의 타격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친 조원을 되돌아본다. 가까운 거리에서 고글 안에 보이는 눈동자가 하얀 색이다. 주철의 소총이 그를 향해 있다.
퓨퓨퓨퓩~
퍼퍼퍼퍽~
“…….”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이번에는 탄창에 있는 탄을 모두 비운다.
“…….”
“…….”
지켜보던 동료들이 모두 입을 벌린 채 멍해진다. 가족처럼 지내던 사이인지라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섣불리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이 개자식아! 왜 이러는 거야?”
목영호가 분노해서 그대로 들이친다. 소총의 개머리가 주철이란 조원의 턱주가리를 그대로 돌려버린다.
퍼억!
우당탕탕~
구르는 동작이 심상치 않다. 보통 사람이라면 구르면서도 몸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 동작을 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구르는 모습은 아무렇게나 몸을 던지고 있다. 압박을 해놨던 복부가 다시 터졌다. 피가 흘러나온다. 다리는 한쪽이 틀어졌다. 아무리 목영호가 강하게 쳤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 다칠 정도는 아니다.
스으윽!
다시 일어선다. 목이 약간 틀어져 있고 다리도 틀려 있어 제대로 서기도 힘들어 보인다.
우둑! 우두둑!
틀어진 뼈와 부러진 뼈를 제자리로 가져다 놓는다. 고개를 들어 올리는 주철의 얼굴에는 헬멧과 고글이 떨어지고 없다. 드러난 눈동자는 뭔가에 씌인 듯 하얀 빛이다.
“크크큭!”
음산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젠장!”
목영호가 쓰러진 조원을 확인하며 욕지기를 뱉는다. 아쉽게도 생을 달리했다. 탄창의 있는 탄을 모두 비울 정도로 갈겼으니 급소에 한두 발 쯤 박히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것도 바로 코앞이었다. 목영호의 시선이 다시 일어선 주철을 향한다.
“개자식! 정체가 뭐냐?”
“죽을 놈들이니 이름 정도는 말해주지. 그런데 너무 많아서 무엇으로 말해줘야 할까? 귀천이 좋겠군. 이곳에서는 귀천이라고 부르지.”
“…….”
목영호는 대답을 듣고 나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귀천이란 놈이 들어간 주철의 몸은 그래도 아끼는 조원이고 동생이기 때문이다. 그 고민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귀천이 피식 웃는다.
“인간들이란…….”
* * *
진월은 강희와 마명의 상태를 살핀다. 다행히 둘 다 숨은 붙어 있다. 진월이 옆에 달린 조그마한 주머니를 연다. 노란 빛의 액체가 담긴 앰플 이다. 주사 총도 같이 들어 있는 것이 응급구조팩이다. 최탑이 궁금한지 묻는다.
“뭡니까?”
“매번 피를 먹일 수는 없잖아.”
“그럼?”
“내 혈액 속에서 세포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효소만 추출해서 만들어낸 앰플 이라고 하더군.”
“언제 그런 것을……?”
“너희들이 너무 쥐어 터지니까 만들어 보라고 했다.”
“…….”
“죽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니냐?”
“네.”
최탑은 주사 총을 건네받아 둘에게 주사한다.
“흑!”
강희는 갑작스런 이물질에 놀란 신체 반응을 보인다.
“하아~”
약쟁이 마명은 마치 마약을 맞은 듯 느낀다. 최탑이 피식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월은 그때 뭔가에 집중하고 있다. 소음이 들린다. 그의 뛰어난 청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주변 또한 조용해 졌기에 멀리 있는 음향도 들을 수 있었다.
소총의 격발음과 목영호와 조원들의 고함 소리도 들린다. 분명 일이 틀어졌음을 나타내는 소리다. 몇 마디는 알아먹었지만 다 들리지는 않는다.
“목영호!”
무전으로 불러본다.
“…….”
대답이 없다. 팔목의 패널을 조종해 목영호의 시야를 가져온다. 뭔가 문제가 있는지 지직 거리며 보이지 않는다.
‘뭐지?’
분명 장비의 이상은 없다. 다만 전자기에 간섭하는 에너지가 있었다. 최탑을 본다.
“강희와 마명을 챙겨서 C구역으로 와라.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알겠습니다.”
진월의 신형이 바람처럼 사라진다.
* * *
절뚝! 절뚝!
귀천이 빙의된 주철이 부러진 다리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걸어온다. 바닥에 떨어진 소총을 다시 집어 든다. 탄이 다 떨어진 탄창도 여유롭게 갈아 끼운다. K-11이라서 뒤쪽의 20mm 고속 유탄 탄창까지 갈아 끼우는 여유를 보인다.
목영호도 그 모습을 보고 있다. 총을 잡은 그의 손이 부르르 떨린다.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아무리 특별한 존재들과 함께 일을 한다지만 귀신이 쓰인 존재는 낯설다. 번민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조원들도 잘 안다. 하지만 답이 없다고 모두 다 죽어줄 수는 없었다.
“조장!”
“…….”
조원의 부름에도 목영호는 답을 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도 귀천이 쓰인 주철이 앞으로 걸어온다.
“내가 이놈을 잘 골랐나? 이놈이 너희들 막내지?”
“…….”
기함을 할 노릇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쉽게 죽이지 못하지. 인간들은 그 놈의 정 때문에 말이야.”
귀천은 말을 하며 K-11을 들어올린다. 고속 유탄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철컥!
“모두 한 번에 보내주지.”
- 작가의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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