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장 신조차 죽일 수 있는 힘을…….
어둠이 공간을 덮고 있다. 지금이 낮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려진 블라인드의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 어둠에 눈이 적응되자 넓은 실내가 보인다. 사무실이다. 높은 직급의 인물이 사용하는 장소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서있다. 그는 바로 블랙이 부장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 남자다. 부장의 앞에는 예전의 나이 먹은 남자가 앉아 있다. 고민거리가 있어 보인다.
“쉐인 아처가 나타났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감시조가 멀리서 확인한 사실이지만 영상으로 봤을 때는 확실히 그였습니다. 영상을 보시겠습니까?”
“아니 됐네. 그냥 듣지. 그의 모습은 어떻던가?”
“예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이를 전혀 먹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허허~ 그래? 나는 나이를 먹어 가는데……. 그는 나이를 먹지 않았다?”
“영상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의 능력 또한 예전에 비해 나아진 것 같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는 계약에 의해서 능력을 얻는 자이니까. 젊음의 비법 또한 계약인 것일까?”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긴다. 손바닥 위로 불이 피어오른다. 동그란 호두 크기로 형성된 불덩이는 허공을 부유한다.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긴다. 이번에는 검지 끝에 물방울이 맺힌다. 손끝을 떠난 물방울은 천천히 작은 불덩이를 향해 날아간다. 둘은 마치 쌍둥이처럼 마주 보며 돈다. 잠시 후 둘은 섞인다. 불과 물이 섞인다. 붉은 색과 투명한 물의 빛이 섞여 영롱한 모습을 연출한다. 나이든 자가 손을 가볍게 휘젓자 소멸하듯 사라진다. 그의 얼굴에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비열한 미소가 감돈다.
“언제가 되었든 만나게 될 테지.”
“힘을 키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그와 부딪치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을 것 같네.”
“과연 그럴까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지.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파견된 요원들을 모두 제거하고 스스로 문으로 들어선 자이니 특별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저희들의 전력이라면…….”
“아니야. 아니야. 자네의 자신감과 능력은 알지만 피해가 클 것이네. 아직 우리 연구도 완벽한 것은 아니고 말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계약을 하면 능력의 비약적인 향상은 이루어지지만 종속 관계가 되지. 난 그걸 바라지는 않아. 독자적인 능력이 필요하지.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힘 말이야.”
“영속(永續)은 신의 영역입니다. 이제까지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 더 얻고 싶은 것이겠지. 신조차 죽일 수 있는 힘을…….”
“회장님…….”
“…….”
침묵이 흐른다. 나이 든 남자의 욕망은 분명 과욕이다. 이룰 것을 모두 이뤘기에 그 이상을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큰 부(富)를 지닌 인물이다. 이름만 대면 전 세계 누구나 최고로 인정하는 기업을 소유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 기업의 실소유주가 그인지는 아주 극소수만이 알고 있다. 회장이라고 불린 자는 부장을 본다.
“이번에도 그들이 나타났나?”
“그렇습니다.”
“팀장이란 자가 쓸 만한 것 같다고 했지?”
“팀원 모두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대로 두면 상당한 방해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팀을 해체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방법은?”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그래. 자네가 알아서 하도록 하게나.”
“…….”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다. 침묵은 용건이 없다는 신호다. 부장은 고개를 숙인다. 둘은 오랜 세월을 같이 해온 듯 이야기 하지 않아도 뜻이 통한다. 부장이 예전의 그 벽을 향해 걸어간다. 그의 모습이 사라진다. 어둠이 내려앉은 실내에 다시 고요가 찾아온다.
“귀혼(鬼魂)!”
“찾으셨습니까?”
대답과 함께 사무실의 구석에서 검은 형체가 드러난다. 사람의 형상이다. 후드 모양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 형상이 완벽하지 않고 바람에 흩날리듯 움직인다. 이름처럼 귀신같은 모습이다.
“나머지 석판의 위치는?”
“찾고 있는 중입니다.”
“자네 능력으로도 어려운가?”
“결계가 부서진 것들은 가능하지만 보호되고 있는 것들은 찾기가 힘듭니다.”
“흐음~ 지금까지 모인 것은 다섯 개다. 그 다섯 개를 이용하면 조금 더 쉽게 찾을 수 있지 않나?”
“어디쯤 있을지 유추는 가능합니다. 해당 지역을 정밀하게 탐색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지. 석판만 다 모으면 십이지검(十二支劍)과 성배(聖杯)의 행방을 찾을 수 있다.”
“그것들이 성스러운 영기는 지니고 있지만 영생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렇긴 했지. 과거에는 말이네. 그리고 자네가 살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지금 이곳에서는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단순한 보물이 아니게 되었지. 영력을 지니고 있으니 우리 같은 자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이긴 하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지. 바로 그의 피가 뭍은 검과 담긴 성배라는 것이지.”
“저는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허허, 자네가 살던 세상과 이곳은 다르니까 이해를 못할 수도 있지. 유전자라는 말은 들어봤나?”
“연구진들이 하는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 강화 인간들도 많이 보았지?”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유전자를 조작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군요.”
“자넨 육체를 버려 버렸으니 더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지. 어쩌면 자네가 가장 영생에 가까운 존재일 수도 있겠군. 허허~”
“저 또한 영기를 보충하지 않고 소비만 하면 소멸합니다. 육체를 버린 대가이기도 하지요.”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겠지?”
“네.”
“십이지검과 성배에는 고대 신족이라 일컫는 이들의 피가 묻어 있지. 석판의 일부 내용은 환인에 대한 이야기였어. 우리가 최초라 믿는 안파견 환인, 그 이전부터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였지. 우리가 아는 흑마법도 아닌데, 일천년 이상을 살았다고 하더군. 더 중요한 것은 말이야. 그들의 죽음에 대해 기록한 것이 아니야. 그저 대표자의 신분을 내려놓고 홀연히 사라졌을 뿐이지. 뭘 의미하는 것일까?”
“굳이 신족이 아니라도 일천년을 사는 종족은 많습니다.”
“신의 형상을 가장 닮은 인간 중에는 없지.”
“그렇긴 하군요.”
“그들의 피를 해석하면 답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네. 잘 찾아주길 바라네.”
“이미 주인의 기쁨이 제 기쁨입니다.”
“…….”
귀혼의 대답에 회장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귀혼의 모습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 없이 사라진다.
***
진월의 사무실에 삐삐 거리는 신호음이 울린다. 긴급 호출이다. 전화기의 반짝이는 호출 버튼이 통제실을 가리킨다.
“무슨 일인가?”
“저번 병원 주차장에서 잠깐 나타났었던 통통한 놈 기억나십니까?”
“기억하지. 결박술을 구현하던 놈을 말하는 것 아닌가?”
“맞습니다. 일치율이 98%입니다.”
“위치 파악해놓도록. 지금 가지.”
“네.”
진월이 움직이고 나머지 팀원에게 바로 호출이 들어간다. 짧은 시간 안에 통제실에 모든 팀원이 모인다.
“경기도 이천인가?”
“외진 곳입니다. 선산의 납골묘 같습니다.”
“적외선 탐지 결과는?”
“깊은 곳까지는 탐지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지하에 상당한 시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지하 이층까지 탐지된 열원만 이십 명이 넘습니다.”
“연구시설인가 보군. 그놈은 어떻게 찾았지?”
진월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자들이 보였다는 것이 의문이다. 통제실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답을 한다.
“불법을 좀 저질렀습니다.”
“그래도 되나?”
“3주 넘게 뒤졌는데 안 보인다면 어딘가 숨어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IUC(Immortal union corporation)본사의 보안카메라를 해킹했습니다.”
“허?”
“왜 그러십니까?”
“어이없어서.”
“뭐가 어이없다는 것인지?”
“자네 같으면 어이없지 않겠나?”
“…….”
통제실장은 속으로 울부짖는다.
‘묻지 말고 말을 하라고? 알아야 답을 해줄 것 아니냐고~ C~봐~’
“질문을 했으면 답을 해야지. 왜 불만이 상당한 표정이다. 욕했냐?”
“서, 설마요.”
“했군.”
“했네요.”
“분명 했습니다.”
민서와 창민이 옆에서 거든다. 민서는 하나 더 추가한다. 통제실장의 눈을 보며 말한다. 현혹이다.
“말해 봐!”
모두 다 움찔한다. 설마 이 상황에서 통제 실장에게 능력을 발현시킬지는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통제 실장의 눈빛이 약간 멍해지더니 입이 벌어진다.
“묻지 말고 말을 하라고? 알아야 답을 해줄 것 아니냐고~ C~봐~”
마음속으로 했던 이야기가 그대로 흘러나온다. 모두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른다. 입을 막고 고개를 숙이는 이들도 있다. 민서만 피식 웃는다.
“C 보래요? 무슨 C지? 자판에 있는 영문 C는 아닌 것 같고…….”
“…….”
정적만이 감돈다. 통제 실장은 정신이 돌아왔다. 민서의 목소리도 명확하게 들었다. 그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한 상태다. 얼굴은 붉다 못해 검붉다. 살인충동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느껴진다.
“민서가 장난이 심했다. 사과해라.”
“죄송합니다.”
“…….”
참 짜고 치는 고스톱 같다. 어쩜 욕을 듣고도 저렇게 태연할 수 있으며 사과하란다고 바로 사과는 하는지……. C 보라고 했던 사람만 바보 된 느낌이다. 진월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질문한다.
“말해 봐?”
목소리만 틀리지 똑같은 말에 통제 실장은 다시 움찔한다. 주변에서는 입을 막고 웃느라 정신없다. 여기서 정말 정신을 차려야지 잘못하면 배로 당한다.
‘내가 반드시 전근 신청한다. 두고 봐라.’
창민의 귀가 꿈틀거린다. 뭔가 그의 청각을 자극한다.
‘두고 봐라~ 두고 봐라~’
창민의 시선이 통제 실장을 향한다. 창민의 얼굴에는 설마 하는 표정이 어려 있다. 통제 실장 또한 창민과 시선이 부딪치자 화들짝 놀란다. 창민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진월을 본다. 창민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통제 실장 또한 안심하는 눈빛이다. 창민은 시각, 청각, 후각의 세 가지 감각이 뛰어날 뿐이다. 절대 속마음까지 알 수는 없다고 단정한다. 주먹을 꽉 움켜쥔 후 용기를 낸 실장이 말한다.
“어이없어 하시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엘리트라며?”
다시 자존심을 건드는 공격이다. 그래도 할 말이 없다.
“모르겠는 것을 어쩝니까?”
“이젠 욕도 모자라 반항이냐?”
“차라리 자르십시오.”
“반항 맞네요.”
“잘라주지. 어디를 자를지는 내 마음이고 말이야.”
“…….”
“내가 어이없어 하는 이유는 말이야. 이제까지 털려도 우리가 털렸지. 그 IUC인가 뭔가 하는 것들이 털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지. 우리 쪽이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그 쪽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최신 장비는 그쪽이 더 많지 않나?”
“…….”
진월의 날카로운 지적에 모든 직원들의 표정이 멍해진다. 생각해보니 아주 간단한 논리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