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장 동물, 인간, 진월!
진월의 눈은 고글을 통해 앞을 보고 있다. 사실 진월은 밤에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 고글이 필요하지는 않다. 다만 그가 보는 것을 대원들이 공유할 수 있기에 고글을 벗고 있지 않았다.
대원들의 목젖이 위 아래로 움직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진월의 고글을 통해 보이는 것이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천 길 낭떠러지 같다.
계곡의 협곡 사이에 만들어진 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원래는 수풀이 덮어버려 알 수 없었겠으나 민서가 한번 열어줌으로 인해 문 자국이 생겨났다. 문제는 진월이 서 있는 곳으로부터 문까지의 간격이 30미터는 된다는 점이다.
건너갈 수도 없고 간다 해도 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처음부터 폭발물을 쓰자니 침입을 광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도착하자마자 난관에 부딪치고 있었다.
한참 계곡을 보던 진월이 대원들에게 몸을 돌린다.
“최탑!”
“네.”
“밧줄 준비해 둬.”
“네. 그런데 어디 쓰시려고?”
“저 정도 거리는 정확히 던질 수 있겠지?”
“그건 가능합니다. 문제는 돌과 쇠벽이라 박힌다하더라도 사람이 잡고 건널 수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고.”
진월이 뒤로 약간 무르더니 앞으로 달려 나간다.
“억!”
“저, 저?”
목영호와 마명의 비명이다. 물론 입만 벌린 채 비명을 지르지 못한 이들도 많다.
크둑!
진월의 군화가 바위를 힘차게 밟는다. 그리곤 하늘을 나른다. 양팔을 벌린 채 공중으로 도약한 모습은 한 마리의 거조가 허공을 나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명의 입에서는 또 다른 말이 흘러나온다.
“저 양반이 자살을 할라고 여기까지 와부렀어. 씨벌! 디질라믄 혼자 디지제. 왜 우리까지 여기로 끌고 온 것이여? 응?”
퍽!
목영호가 가차 없이 마명의 뒤통수를 갈긴다.
“주디를 그냥 콱! 말이가 빵구가?”
“…….”
마명도 잘못한 것은 아는지 바로 입을 다문다.
콰곽!
양손에 들린 진월의 단검이 계곡 벽에 박혀든다. 30미터의 거리를 날아 반대 편 벽에 안착한 것이다. 대원들 모두의 고개가 절로 좌우로 왔다 갔다 한다. 마명이 다물었던 입을 다시 연다.
“생명체 분류를 다시 해야 한다.”
“어떻게?”
“동물, 인간, 진월!”
“끙! 틀린 말은 아니다.”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다.
30미터를 날아 문의 아래쪽에 안착한 진월은 단검을 벽에 박아 넣으며 위로 올라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에 도착한 진월이 잠깐 안쪽의 소리에 집중한다. 협곡을 통과하는 바람소리와 안쪽의 환풍 시설 소리에 잡음이 많다. 분간하기 힘들지만 최대한 집중한다.
미약한 사람의 호흡소리가 두 개의 벽을 넘어 들려온다.
‘둘이다. 경비 병력을 세워뒀군.’
민서의 탈출 시도 때문에 없던 경계 병력이 추가된 것이다.
진월이 영력을 돋운다. 모공에서 금빛과 담흑빛의 영사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다.
고글을 쓰고 있는 대원들에게 진월의 몸에서 뿜어지는 영사가 명확하게 보인다. 열원으로 감지되어 표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금빛은 열기를 지닌 밝은 색으로 흑빛은 차가운 어두운 색으로 표시된다.
뻗어나가던 영사가 진월의 오른 손에 들린 단검에 집중된다. 강력한 빛이 대원들의 고글에 표시된다. 마치 검 자체가 밝은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슥!
영사로 둘러싸인 단검이 문틈을 파고든다. 거칠 것 없이 마치 두부를 자르듯 파고들었다.
서컥!
걸쇠가 잘려나간다.
끼이익~
녹슨 쇠문의 경첩이 소리를 내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다만 경계병들이 바람소리 때문에 듣지 못했기만을 바랄 뿐이다. 진월의 몸이 날랜 표범처럼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선다.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도 보인다. 진월의 입장에서는 누구의 피인지 알 수 없다. 신속하게 내부 통로와 이어지는 철문 앞으로 움직인다. 경계병들의 호흡소리가 더 명확하게 들린다.
환풍구 안에서 더 많은 소음을 일으킨다면 분명 저들의 귀에도 들릴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경계병들을 바로 제거할 경우 내부에 있는 CCTV에 그들의 침입이 바로 알려질 가능성이 높았다.
진월이 환풍구 내부를 살핀다. 분명 전원이 연결되는 단자가 있을 것이고 통신망 또한 연결되는 배선이 지나갈 것이다. 진월의 단검이 다시 쇠벽에 박힌다. 소리는 나지 않는다. 영력이 실린 단검은 쇠벽을 네모나게 잘라낸다.
굵은 선들이 지나가는 배관들이 보인다. 그도 기본적인 지식은 있지만 확실한 확인사살이 필요했다.
“창민!”
[대기하고 있습니다.]
“보이나?”
[배선이 분리되는 허브 포트가 중간에 있을 겁니다. 찾아보세요.]
진월은 창민이 시킨 대로 벽을 뜯어내 가며 허브 포트를 찾는다. 꺾이는 지점, 선로가 나뉘는 곳에 허브가 장착되어 있었다.
NSCT 통제실에는 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지금 누구 하나 잡음을 내지 않는다. 모니터에는 진월과 대원들이 보는 장면이 그대로 펼쳐지고 있다. 현장에 있지 않지만 현장에 있는 것과 똑같은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진월이 보고 있는 허브를 보게 된 창민이 슬쩍 웃는다.
[운이 좋네요. 빈 포트에 가지고 간 교신기 장착해주세요.]
딸각!
이미 꽂혀 있던 선을 가를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운이 좀 따라주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창민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키보드를 두들기는 그의 손가락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창민의 또 다른 능력이 바로 천재적인 해킹 실력이다. 통제실 내의 모니터에 화면이 하나씩 추가된다. 11인의 시야로 보는 화면 말고 지금 진월이 들어간 시설 내의 모습이 하나씩 들어오는 것이다.
침투한 각 대원들의 고글에도 시설 내부의 화면이 나뉘어 작게 표시된다. 최첨단 장비다. 처음에는 너무 복잡하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대원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익숙해지자 작전의 성공률은 월등히 향상되었고 대원들의 사망률은 급감했다. 어려운 작전일수록 ‘랜드워리어’라 불리는 이 장비 없이는 작전을 하지 않겠다는 이들이 나올 정도였다.
탁!
창민이 마지막 엔터키를 친다.
시설 내의 모든 시스템에 침투가 가능해 지는 시점이다.
진월이 환풍룸 앞을 지키는 경계 병력의 위치를 파악한다. 한 명은 가까운데 한 명이 룸과 좀 떨어진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난감한 상황이다. 전 대원이 진입하기 전까지는 기도비닉을 유지하는 것이 작전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진월이 방법을 강구하는 사이 바깥쪽의 대원들은 민서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강희가 뛰어난 동체 시력으로 작은 화면들을 훑는다. 하지만 민서가 보이는 화면은 없다.
“창민아!”
[네.]
“보이니?”
[삼중 블락이 걸려 있는 시설이 있는데 아마도 그쪽에 있나 봐요. 무서운 놈들인데요. 별도의 보안 체계가 또 있어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니?”
[글쎄요. 지금 하고 있으니 기다려 보세요.]
“팀장이 저놈들 제압하면 바로 진입할 것 같다. 서둘러라.”
[네.]
창민의 손이 다시 바빠진다. 모든 시스템에 대한 접근 권한을 취득한 줄 알았는데 상위의 보안권한이 따로 있었다.
시설 내의 통제실 모니터에 환풍룸의 문을 지키고 있는 경계 병력이 보인다.
모니터링 요원의 시선이 그 모니터를 한번 봤다가 다른 모니터로 향한다. 모니터에 1초 정도 두 줄의 선이 형성되었다가 사라진다. 뭔가 간섭이 있었다. 경계 병력의 모습은 방금 전과 같았다. 모니터의 이상 반응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민서의 탈출을 저지했던 북측 대장의 고개가 갸웃한다. 이제껏 모니터에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저거 LCD 아님메?”
“맞습니다.”
“남조선 아새끼들 것도 불량이 많구만 기래.”
“왜 그런 말씀을?”
“아니야. 됐서야.”
북측 대장은 됐다면 서도 뭔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참 그러고 있더니 대원의 어깨를 슬쩍 두드리며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진월은 화면이 고정된 것을 확인한다. 경계 병력을 비추는 화면이 바로 전의 화면으로 바뀌었다.
탕!
진월은 일부러 소리를 낸다. 두 경계병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룸 안에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에 뭔가 꼭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환풍구 안으로 작은 생물들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이 다가와 문의 손잡이를 잡는다. 한 명은 뒤로 약간 물러나 문을 조준한다.
기이잉~
두꺼운 철문이 서서히 열린다.
열리는 문틈으로 슬쩍 봤지만 아무 것도 없다. 문이 반쯤 열리자 뒤에서 조준하고 있던 경계병 또한 약간 안도하는 기색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둘이 모두 약간씩 접근을 한다.
한명은 아예 화기와 고개를 문 안으로 집어넣는다. 뒤에서 조준하고 있던 동료가 묻는다.
“떨어진 것 있냐?”
“…….”
대답이 없다.
“왜 그래?”
다시 묻는다. 하지만 동료가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문 안으로 들어온 그의 두개골에는 진월의 단검이 깊숙이 박혀있었다. 영력이 실려 있는 진월의 단검은 소리도 없이 경계병의 머리를 꿰뚫었던 것이다.
퍼억!
뭔가에 맞는 소리가 들린다. 문안으로 고개를 내민 동료의 몸에서 들린 소리다. 뒤에서 조준을 하고 있던 경계병의 눈이 확 커진다. 동료의 몸이 순식간에 크게 확대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부딪쳐 온다.
퍼억!
“헉!”
부딪쳐서 내뱉은 신음이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것을 보고 난 후 나온 신음이기도 하다. 동료가 날아오는 것 뒤로 뭔가 검은 물체가 뒤따랐다. 검은 물체에서 빛이 번쩍였다.
퍽!
경계병은 등 뒤에 뭔가 부딪치는 느낌을 받는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 묵직한 저음의 음성이 들려온다.
“감정은 없다. 편이 다를 뿐이지.”
“…….”
경계병이 부딪친 것은 진월의 가슴이다. 날려진 경계병 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는 결론이다.
지금은 둘 모두 진월의 품 안에 들어 있다. 경계병 둘을 그대로 들어 환풍룸 안으로 옮긴다. 둘의 두개골에는 단검이 아직까지 박혀 있다. 뽑지 않았기에 피도 흐르지 않는다. 주변에 흐트러진 흔적이 없으니 다시 화면이 전환된다 하더라도 경계병들이 자리를 비운 것으로 보일 것이다.
진월이 환풍룸 안으로 들어와 반대편 계곡으로 신호를 보낸다. 최탑이 준비된 로프 끝에 그의 단검을 매단다. 그의 능력인 물질감응염동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내던진 단검은 로프를 매달고 정확하게 진월을 향해 날아간다. 진월이 로프를 잡아 단단히 고정을 한 후 대원들이 하나씩 계곡을 건너온다. 모든 대원이 거의 건너왔을 무렵 창민의 경고가 들린다.
[누군가 옵니다. 네 명입니다.]
진월 또한 급히 고글의 화면을 확인한다. 손목에 달린 패널을 이용해 다가오는 4인의 모습을 확대한다. 파악된 도면과 비교해 봤을 때 향하는 방향은 분명 진월 팀이 있는 환풍룸이다. 복장이 낯이 익다. 얼굴을 확대해서 확인한다.
“음!”
낮은 비음이다. 진월이 아는 자 같았다. 창민이 묻는다.
[아는 사람이에요?]
“이쪽에서도 독하기로 유명한 놈이다. 위철상 소좌. 특수전 사령부 교관이지.”
“우리 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제가 유인해서 시간을 끄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강희가 묻는다. 진월이 고개를 젓는다.
“우리만 능력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 저 자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저 자, 특수전 사령부 내에서 손가락으로 꼽는 자다. 네 실력도 많이 늘었지만 아마 일대 일로도 어떨지 알 수 없다.”
“…….”
기도비닉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난감한 일이 발생했다. 결코 쉽지 않은 자들이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 수 없다. 양동 작전이다.”
“어떻게 하시려고…….”
“내가 미끼 역할을 하도록 하지. 너희들은 그 사이 내부로 침투해라. 민서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혼자서…….”
강희는 뭔가 말을 하려다 만다.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더 위험한 것은 그들 자신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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