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장 속는 셈 치지.
파앙~
“큭!”
“앗! 뜨거! 더럽게 뜨겁네.”
강희는 염화를 가격한 후 뒤로 무른다. 강희의 손에는 미약하지만 기가 실려 있다. 아직 국장의 실력만큼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제법 기를 다루는 단계다. 기로 손을 보호했음에도 염화의 열기가 침투해 들어온 것이다.
염화 또한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나 있다. 입 주변으로 피가 비치는 것이 내부를 다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오기가 서린 눈빛은 죽지 않았다.
“내가 네년한테까지 당하면 내 성을 간다.”
“호오~ 그래. 그러면 성을 갈아야 할 거다.”
“네 년이…….”
“왜 고추라도 달아줄까?”
“…….”
역시 강희다. 입씨름으로는 웬만해선 지지 않는다.
강희의 모습이 다시 훅 사라진다.
파파파팡~
불길이 타오르는 염화의 강화복 위를 강희의 장이 계속 두드린다. 염화는 정신이 없다. 그래도 치명타는 면하고 있다. 워낙에 불길이 뜨겁고 얼굴 쪽은 팔을 들어 잘 막고 있다. 염화의 불길이 점점 더 뜨거워진다.
쉐인이 고개를 휙 돌려 염화를 본다. 좋지 않은 상황이다.
쉐인이 구현한 붉은 갑옷을 걸친 거인의 앞에는 커다란 해머가 하나 더 만들어져 있다.
마치 진월을 못처럼 땅 속에 박아버릴 심산인 것 같았다.
콰콰과과~
진월의 영력과 거인의 두 주먹이 맞닿은 곳에서 힘끼리의 충돌이 세차게 일어난다. 진월 또한 머리 위로 다가서는 해머를 보고 있다. 위험을 감지하고 능력 이상의 능력을 끌어낸다. 진월의 미간이 일그러질 정도다.
크두두~
진월의 바지가 터져나갈 것처럼 부푼다. 영력은 현재 거의 최대치다. 남은 것은 육체적 능력뿐이다.
훙~
진월의 다리가 지면을 박차고 쉐인을 향해 날아간다.
콰앙~
거인의 두 주먹이 비어버린 공간을 가르며 서로 부딪친다.
쉐인이 미간을 구긴다. 하지만 당황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나 보다.
쉐인의 왼손이 허공에 들렸다가 내려온다. 목표는 다가서는 진월이다. 허공에 떠있던 해머 또한 손짓에 따라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쇄도하는 진월을 정확히 노리며 떨어진다.
쉐인은 하나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른손은 염화를 향해 있다. 염화 또한 악에 바친 괴음을 토해낸다.
“으아아악~”
화아아악~
염화의 몸 주변으로 불길이 퍼져 나간다. 마치 드래곤이 브레스라도 뿜어내는 것 같은 불줄기다.
쉐인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린다.
“쩝! 성질이 나면 조절 기능들이 약해서…….”
“케나즈(kenaz)의 알기즈(algiz)!”
케나즈의 뜻은 여러 가지다. 불을 뜻하기도 하고 의지의 힘을 뜻하기도 한다. 열정의 의미도 있다. 알기즈는 바로 보호를 뜻한다.
쉐인은 불을 다루는 염화에게 추가로 ‘불의 보호’를 걸어준다.
불에 시뻘겋게 달군 쇠몽둥이들이 염화의 주변에 만들어진다. 모양은 사슴의 뿔 모양이다.
싸사상~ 쩡!
강희는 신속하게 뒤로 무른다. 벌써 여섯 번째 능력의 발현이다.
염화는 충격이 상당히 누적되었음에도 꽤 잘 버티고 있다. 어쩌면 버티기 힘들어 악에 바쳐 마지막 발악을 하듯 힘을 방출한 것일 수도 있다.
너무 강한 불길에 강희는 난감하다. 다가가자니 근처에 가기도 전에 녹아버리게 생겼다.
후우~
강희가 심호흡을 한다.
“하압!”
기합을 발한 강희가 발을 구른다. 몇 걸음 달리더니 힘차게 도약한다.
휙~
강희의 신체가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텔레포트라도 하듯 허공에 모습을 한번 드러내더니 다시 사라진다. 일곱 번째 능력 발현이다.
염화의 주변에 사슴뿔 모양의 보호가 보이지 않는 곳은 유일하게 머리 위 밖에 없다. 강희는 그걸 노리고 위에서 뛰어내리는 것 같았다. 자칫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열기가 가장 많고 뜨거운 곳이 바로 불길의 끝단이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강희의 주먹이 허공을 가격한다.
파파팡~
권풍과 기풍이 합쳐지며 불길을 날린다. 염화 또한 강희의 권을 볼 수 없다. 다만 불어오는 기풍의 파동 때문에 어디서 다가오는지 알고 황급히 대비한다.
강희는 떨어져 내리고 그 찰나 염화는 불덩어리를 만들려 한다. 아주 작은 불씨가 강희가 떨어지는 곳을 향해 만들어지고 있다. 만들어지는 것이 먼저인지, 강희가 떨어지는 것이 먼저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강희는 일격에 끝내겠다는 듯 주먹을 한껏 뒤로 젖혀 기운을 최대한 모은다.
쩌어엉~
“어흑! 살살하시지.”
쉐인이 엄살을 부린다.
진월의 주먹과 팔에는 영사로 만들어진 거대한 어깨가 하나 더 붙어 있다. 금빛과 담흑빛이 어우러진 거대하고 멋진 팔이다.
영력으로 형성된 주먹과 해머가 부딪친 순간 해머가 하늘로 치솟았다. 쉐인이 엄살을 부린 이유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진월이 안으로 더 파고든다. 마치 권투의 인파이터 선수 같다. 이번에는 반대 팔에 똑같은 거대 팔이 형성된다. 닉시를 통해 배운 수법을 제대로 써 먹고 있다. 영력을 부리는데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쉐인이 감탄한 듯 말한다.
“실력이 갈수록 느시는 것 같아요.”
“…….”
말하는 것마다 비아냥거림이 담긴 것 같다. 그냥 들어주기 참 거시기 하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제가 여기까지 능력을 쓰게 된 것은 몇 번 안 된답니다.”
“……?”
“잉구즈(inguz)!”
쉐인의 영창과 동시에 진월의 주먹이 쉐인을 가른다.
훙!
잉구즈란 룬어로 펼칠 수 있는 마법이 무엇일까?
진월의 주먹은 쉐인을 분명 갈랐다. 군신 티르의 갑옷을 걸친 거인까지 뚫렸다. 총알까지 막아내던 거인을 생각하면 대단한 위력이다.
“……?”
진월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자란 표정이다.
주먹이 복부를 관통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서 있다. 마치 그림자를 친 것 같은 느낌이다.
스르륵~
쉐인의 몸이 마치 물렁거리는 진흙처럼 진월의 팔을 옆으로 빼낸다.
“후우~ 위험했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요.”
“…….”
진월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쉐인이란 자의 대단함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진월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공격을 가하려 한다. 쉐인도 갑작스런 영력 변화를 느꼈는지 손을 들어 만류한다.
“자, 잠깐!”
* * *
콰앙~
굉음이 들린다.
“크윽!”
“큭!”
연이어 두 사람의 답답한 신음도 함께 들린다.
쩌저쩡!
우당탕탕~
염화가 다시 바닥을 구른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다. 열 받게 생겼다. 쉐인이 만들어 준 불의 보호도 깨졌다. 염화가 강희의 공격에 의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몸으로 직접 부셨다. 그리고 그 충격의 여파로 지금 바닥을 구르고 있다. 강화복을 착용하지 않았다면 염화는 이번 공격으로 저 세상과 마주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꿈틀꿈틀~
그래도 아직 힘은 남았는지 쓰러진 상태에서 몸을 일으키려 한다.
강희의 모습이라고 가히 좋은 것은 아니다.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과 복부의 옷은 동그랗게 타기까지 했다. 그 짧은 순간 공격을 받은 것이다.
모든 것을 지켜본 창민이 쉐인을 보며 한마디 한다.
“여기서 저자가 한 말이 ‘다시 거래합시다.’ 였지.”
아니나 다를까 쉐인이 입을 연다.
“다시 거래합시다.”
“우와아~ 이게 뭐야? 데자뷰야?”
쉐인이 멀리 떨어져 있는 창민을 본다.
“본인도 몰랐던 능력을 각성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던 이야기나 계속 하지.”
“비겁하긴 하지만 하영철이는 남겨두지요.”
“그 조건으로 셋을 놓아 달라 이건가?”
“뭐 어차피 하나는 저렇게 점으로 변할 정도로 날아갔으니 둘이란 표현이 맞겠군요.”
닉시는 이미 멀리 날아가고 없다.
“나쁘지 않군. 하지만 저 여자를 데리고 가야만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니 당신만 놓아주는 쪽으로 하지.”
“그건 좀 그렇군요. 어차피 제 몸 하나 빼는 것은 어렵지 않답니다.”
“아직 당신과 싸울 여력은 충분하다.”
“전 내뺄 여력이 넘칩니다. 저 둘을 다 데리고도 가능할 수도…….”
“…….”
진월이 잠깐 고민한다. 쉐인이 그 틈을 치고 들어온다.
“아까 드리기로 한 것 드리면 될까요?”
“속는 셈 치지.”
“오성산!”
“오성산?”
“네.”
“설마 북한의 오성산을 말하는 것인가?”
“제가 알기로 이 땅에 큰 오성산이 두 개가 있는데 아마도 그쪽이지 싶군요. 찾기 쉬운 곳에 있을 리는 없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그곳까지…….”
“IUC는 무서운 놈들이지요. 그리고…….”
쉐인의 손가락이 땅을 가리킨다.
“원래 그쪽이 굴을 잘 파지요. 이쪽에서도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어쩌면 그곳과 협력체계일 수도 있고…….”
“당신은 어떻게 아는 것이지?”
“하하, 구름을 타는 분께서는 많은 것을 알고 계시지요.”
“도대체 구름을 타는 자는 누구를 말하는 것이지?”
“궁금하시면 우리 쪽으로 오시는 것이…….”
“난 당신을 스카우트하고 싶군.”
“저희 이대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
쉐인은 꼭 삼천포로 빠진다.
“제 정보가 맞다면 다음부터는 이런 충돌은 자제를 좀 해주시는 것이…….”
“생각해 보지.”
“원래 적의 적은 동료 아닙니까?”
“적의 적은 미래의 적일뿐이지.”
“역시 융통성이라고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양반이군요.”
대화를 나누던 쉐인의 손이 갑자기 허공을 가른다.
“거기까지만 하시지요. 강희양!”
꽝!
강희의 주먹이 방패 형상의 방벽에 부딪친다. 간신히 일어선 염화를 향해 아홉 번째 능력을 발현시켜 주먹을 날렸다. 쉐인은 진월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모든 정황을 다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진월은 쉐인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지금까지 만난 자들 중 가장 강한 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과 싸우면서도 항상 여지를 뒀다. 중간 중간 본인의 수하들을 돕기까지 했다.
말버릇과 밉상인 행동만 아니라면 대단히 매력적인 사내다.
진월이 강희를 단속한다.
“그만둬라. 둘은 놓아준다.”
“그럼?”
“쓰러진 자만 구속해라.”
“잠시 맡겨두는 것이니 해치지는 마시기를…….”
승!
미약한 소음을 발하며 사라진 쉐인이 염화의 곁에 한번 모습을 드러낸 후 다시 사라진다.
정말 현실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란 생각이 물씬 든다.
강희는 아직까지 정신을 잃고 있는 하영철에게 수갑을 채운 후 밧줄까지 동원해 꽁꽁 묶는다.
진월의 곁으로 다가온 강희가 툴툴 거린다.
“팀장님!”
“왜?”
“우리는 저놈들 같은 강화복 안 만들어 줘요?”
“…….”
진월의 시선이 구멍 뚫린 강희의 상의에 머문다. 브래지어 하단까지 시꺼멓게 탔다.
“팀장도 남자가 맞긴 하나 보네. 거기만 보네.”
“볼 것도 없으면서.”
“뭐요?”
“누가 널 여자로 보지?”
“이 아저씨가 지금! 한번 벗어 봐요?”
“눈 버린다.”
“허, 허~”
강희는 진월의 대답에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다. 그때 창민이 곁으로 다가오며 말한다.
“벗어 보지?”
“……지? 말이 짧다. 이게 죽을라고.”
“손을 들기만 하더라고. 때리지는 않고. 하하!”
퍽!
“컥!”
“데자뷰? 예지몽? 지랄하네.”
창민은 결국 알 수 없는 능력 각성 덕에 매를 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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