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장 협상 결렬
[끼아아아~]
검붉은 날개를 펼친 닉시의 괴성은 사람의 마음을 괴롭힌다. 하영철 또한 머리를 잡고 다시 주저앉는다. 염화는 기절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멀쩡히 서 있는 두 인물도 있다. 바로 쉐인과 진월이다.
“저런? 저런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이군.”
“저 말입니까?”
“당신 아니면 누가 있나?”
“둘이나 더 있는데 말입니다.”
뻔뻔스러움의 극치다.
진월의 시선이 닉시를 다시 한 번 본다. 지금도 괴성을 지르고 있다.
하영철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때가 쉐인을 구속하기 위해 가장 좋은 순간이다.
진월이 움직인다. 그러나…….
“자, 잠깐!”
“…….”
“쟤 도망갑니다.”
“…….”
닉시란 여인이 갑자기 생긴 날개를 펄럭이고 있다.
펄럭펄럭~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조금씩 떠오른다.
“어어! 도망가라고 달아준 것 아닌데…….”
“미친 작자 같으니…….”
진월은 별 수 없이 방향을 튼다. 일을 벌인 놈 따로 있고 수습하는 놈 따로 있다.
“하하.”
움찔!
쉐인의 웃음에 진월이 움찔한다. 아니 그의 웃음 때문이 아니다. 쉐인의 영창 때문이다.
“라이도(raidho)의 틀에 갇힌 라구저(laguz)의 속박으로 구속한다.”
라이도는 이동과 규율을 뜻한다. 바퀴의 형상을 상징한다.
라구저는 물을 상징하고 흐름과 의존하던 힘의 사라짐을 뜻한다.
두 개의 룬어가 결합되어 흐름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졌다. 힘의 흐름을 강제로 짓눌러버린 것이다.
움직이려던 진월의 주변에 밝은 붉은색의 바퀴 형상이 만들어진다. 바퀴의 안에는 녹색빛의 뭔가가 차오른다. 물을 형상화 한 것 같다. 진월의 발이 천근만근이다.
“이 자가…….”
진월이 이를 악문다. 그의 몸에서 금빛과 담흑빛의 영사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다. 마치 휘날리는 망토를 걸친 것 같다.
콰광~
기운과 기운이 격돌하며 굉음을 울린다. 대기 중으로 충격파도 퍼져 나간다.
“호오~ 역시 대단하시네.”
“뭐 하자는 짓이지. 너는 저 여인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뭐 어차피 저한테 이미 구속됐으니까요. 저 날갯짓이 바로 제 힘이잖아요. 바보짓 하고 있는 거지요.”
“…….”
“더 놀아드리고 싶지만 손님들이 오시네요.”
강희와 창민이 드디어 용왕정 근처까지 온 것이다.
“네놈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
“제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별로 없어서 말입니다.”
넘치는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일까?
진월은 비겁하지만 별 수 없이 인질을 잡는다. 바로 쓰러져 있는 염화다.
그 모습을 본 쉐인의 입이 열린다.
“라이도(raidho)!”
승!
하영철이 갑자기 사라진다.
빠지직!
진월의 고개가 획 돌아간다. 바로 곁에서 전격이 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라이도를 통한 신속한 공간 이동으로 하영철이 진월의 바로 곁에 나타났다.
퍼억!
하영철의 손에 맺힌 전격파가 그대로 진월의 옆구리에 박힌다.
빠지지직~
맞은 곳은 물론이고 진월의 전신으로 전기가 퍼져나간다. 염화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린다. 갑작스런 전기 충격으로 염화는 정신을 차린다. 염화가 떨어져 나오자 하영철은 전격의 강도를 더 올린다. 진월을 태워 죽이려는 것 같았다.
“…….”
충격에 머리가 한껏 뒤로 젖혀졌던 진월의 고개가 원상태로 돌아온다. 그의 눈에는 금빛의 서기가 일렁인다. 담흑빛의 서기 또한 금빛의 뒤로 달리며 나부낀다.
진월의 시선이 하영철을 향한다. 하영철은 진월의 눈빛을 마주하며 한기를 느낀다.
진월의 입이 열린다.
“네…놈만은 꼭 잡아주지.”
콰악!
진월의 우악스런 손아귀가 하영철의 이마를 움켜쥔다.
“큭!”
하영철은 진월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당황한다. 그가 전격을 가하고 있음에도 진월이 움직이고 있으니 더 당황스럽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지 의아하다.
진월은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신체 능력을 발현한다. 근력, 지구력, 회복력 모두다.
하영철의 공격에 피해를 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더구나 영력이 방출되며 하영철의 공격력을 감소시키고 있었다. 강화된 진월의 근력은 트롤과도 맞먹을 것이다. 하영철이 그런 진월의 악력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진월이 하영철의 머리를 잡은 채 그대로 짓누른다.
콰앙~
하영철의 신체 또한 능력에 의해 강화되어 있는지 두개골이 부서지지는 않는다.
대신 바닥을 꾸미고 있는 보도블록이 부서진다. 머리는 블록을 부수고 땅속까지 처박힌다.
지직~ 지직~
하영철의 몸에서 발생되던 전기장이 사그라진다. 아마도 그가 의식을 잃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하나는 도망갔고 하나는 기절 상태다. 진월의 몸을 타고 흐르던 전기장도 사라진다. 진월의 시선이 쉐인을 향한다. 그의 곁에는 어느새 정신을 차린 염화가 서 있다. 그러나 쉐인의 시선은 엉뚱한 곳을 보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닉시를 향해 있다.
“어? 진짜 도망가네.”
“…….”
정말 할 말 없게 만드는 작자다.
“쩝, 멀리 가지는 말아야 할 텐데…….”
쉐인은 아쉽고 걱정된다는 듯 중얼거리며 진월을 다시 본다. 그리곤…….
“역시!”
“…….”
“항상 제 예상을 벗어나는 분이셔. 이러니 적으로 삼기 싫단 말이지요.”
“동료가 되고 싶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트러블은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다.”
“뭐, 저야 그래도 상관없는데……. 제 주인 되는 분은 그럴 분이 아니셔서 말입니다. 하하. 더구나 제가 데리고 있는 자들이 당신 입장에서는 잡아들여야 할 자들이 많아서요.”
쉐인이 진월을 보며 눈을 찡긋한다. 딴에는 애교를 부리는 것 같다.
진월의 입장에서는 역겹다.
“협상은 결렬이군.”
“협상 권한이 저한테 없는 거지요.”
“변명은 그만하도록 하지.”
진월은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는 듯 쇄도한다.
“참 융통성 없는 양반입니다.”
“하나는 잡았으니 당신까지 포함해 셋만 더 잡으면 되지.”
“누가 잡혀나 준답니까? 닉시! 더 멀리 도망가라.”
끝까지 장난질이다. 이 정도 되면 안낼 화도 내게 된다.
“강희! 저 강화복 입은 여자 제압해.”
“네.”
“창민!”
“네.”
“도주 예상로 파악해서 지원 요청해.”
“그걸 어떻…….”
“네 능력을 믿는다.”
진월은 창민의 입을 막아버린다. 믿는다는데 실망시킬 수는 없다. 창민의 모든 감각이 개방된다. 육감까지 모조리 다. 창민은 묘한 느낌을 받는다. 갑자기 그를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 한 줄이 끊어진 것 같은 기분이다. 머리에서 팅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동공이 확장된다. 주변의 모든 빛을 빨아들일 듯 커진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다. 주변의 모든 정황을 눈에 그려야 하나 지금 창민의 앞은 검은 어둠 속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들리는 것 또한 없다. 그의 모든 능력이 한순간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왜 이러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이건 뭐지?’
“창민아!”
“…….”
강희가 부르지만 답이 없다. 강희는 그 순간 염화를 향해 달리는 중이다.
“야! 설창민!”
“…….”
역시나 답이 없다. 그런 창민의 전방에는 붉은 화염의 구가 떠 있다. 염화가 가장 약해 보이는 창민을 향해 불덩이를 날려 보낸 것이다. 강희는 별 수 없이 창민을 향해 몸을 날린다. 그나마 그녀가 가까이 있기 다행이다.
훙~
강희가 공기를 가르며 달린다. 그녀가 입은 옷 색깔이 허공에 선으로 표현될 정도의 속도다.
콰앙! 화르르륵~
불덩이의 파편이 여기 저기 튄다. 부딪친 이후에도 꺼지지 않고 화악 타오른다. 만약 강희가 능력을 발현해 창민을 구하지 않았다면 창민은 한 마리 훈제구이가 되었을 정도다.
찰싹!
강희가 창민의 뺨을 때린다.
“정신 차려! 지금 무슨 짓이야.”
“어~ 어?”
창민은 뺨을 맞고 나서도 어버버 한다. 강희는 창민의 상태가 걱정된다. 왜 이러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월 또한 혹시 쉐인이나 닉시가 마법을 건 것은 아닌가 싶어 살핀다. 그러나 그런 기색은 전혀 없다. 오히려 쉐인이 궁금한 표정으로 창민을 보고 있다.
그때 창민은 어둡던 전방이 하얀 빛을 발하며 확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
진월이 보이고 강희도 보인다. 짧은 장면 하나 하나가 뚝 뚝 끊어지듯 눈앞에 그려진다.
그 중 하나는 진월과 쉐인이 대결하고 있는 장면이다.
짜악~
경쾌한 소리다. 창민의 고개가 획 돌아갈 정도의 강도다.
“악!”
창민의 입에서 드디어 제대로 된 비명이 나온다.
“너 미쳤어?”
“왜, 왜 때려?”
“싸움 중에 정신을 어디다가 팔아.”
“어? 분명 팀장하고 저 사람하고 싸우고 있지 않았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강희!”
“네. 아? 젠장! 너 조금 있다 봐.”
강희는 다시 염화를 향해 몸을 날린다. 진월 또한 쉐인을 향해 쇄도한다. 진월의 쇄도를 보면서도 쉐인의 눈은 창민을 향해 있다. 눈빛에는 장난기와 함께 호기심도 가득하다. 진월에게 시선을 주며 중얼거린다.
“예지능……?”
말은 다 내뱉지도 못한다.
“으헉!”
거의 코앞까지 근접한 진월로 인해 화들짝 놀란다. 행동만 그렇다. 이미 그의 몸 주변에 형성되어 있던 거인의 형상은 방어를 위한 자세를 갖춘 이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창민의 입이 벌어진다.
“어? 저 다음은……?”
“테이와즈(teiwaz)!”
“맞아. 저거였어.”
“……?”
쉐인의 영창, 창민의 환호, 진월의 의구심이 잇따른다.
쉐인의 영창에 따라 붉은 빛의 창들이 허공에 만들어진다. 마치 번개의 창 같다. 거인의 형상도 약간 변화했다. 붉은 갑옷을 걸쳤다. 더 강화된 모습이다.
“군신 티르의 창이 그대의 심장을 가를지니!”
“저것도!”
창민의 2차 환호가 이어진다. 강희는 염화의 불덩어리 공격을 피해 들어가다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저게 미쳤나?”
“누나 모습도!”
창민의 외침은 끊이지 않는다. 급 흥분 상태다.
붉은 창들이 허공에 만들어지자마자 진월을 향해 날아든다.
콰과과광~
진월의 강화된 육체와 부딪치며 붉은 창들이 깨진다. 진월의 몸 주변에도 금흑빛의 영사들이 너울댄다. 약간의 속도를 늦추는 것에는 성공했다. 이어 붉은 갑옷을 걸친 거인의 공격이 이어진다. 날아드는 거인의 거대한 주먹이 진월을 압사시킬 것만 같았다.
콰앙!
드득!
달리던 진월의 신형이 뒤로 밀린다.
콰앙~
이번에는 반대 손이다. 충격파가 땅과 나무들을 흔든다.
괴물들이라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결과는 백중세다. 거인의 두 주먹과 진월의 두 손이 맞닿아 있다. 진월의 몸 주변에도 이제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의 영력이 너울댄다.
크두두두~
진월의 발이 지면을 파고든다. 그만큼 거인이 내리누르는 힘이 강하다는 반증이다.
그때 강희가 염화의 근처까지 도달했다. 그녀의 능력이 발현된다. 염화에게는 어쩌면 강희같은 타입이 상극일수도 있다. 신체적인 능력은 확실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염화도 위험을 감지하고 전신에 불길을 일으킨다.
강희의 흐릿한 잔상이 염화의 주변에 모습을 드러낸다. 잔상의 이미지를 자세히 보라. 이미 손바닥이 염화의 몸과 지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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