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 장 몽중로(夢中路)!
본부로 귀환한 진월은 숙소에서 두문불출한다. 과연 숙소에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고요만이 흐른다. 국장이 애가 타는지 창민에게 묻는다.
“살아는 있냐?”
“네.”
“확실해? 어디서 심장 뛰는 소리 나는 기계 가져다 놓고 자살이라도 한 것 아니냐?”
“저 양반, 죽고 싶어도 쉽게 못 죽는 것 아시잖습니까?”
마명이 옆에서 말 같은 소리를 하라는 듯 국장을 핀잔준다. 국장이 괘씸하다는 듯 눈을 부라리다가 일리 있는 말이라 수긍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만…….”
“다만!”
창민이 다시 입을 연다. 그런데 다만! 이란다.
“다만? 뭐?”
“뛰다가 안 뛰다가 그럽니다.”
“…….”
퍽! 창민의 뒤통수에 국장의 단단한 손이 박힌다.
끄르륵~ 창민이 거품을 문다. 기절하기 위한 사전 동작이다. 마명이 국장을 따라 그 옆을 지나치며 중얼거린다.
“내가 팰라 했는데…….”
꽝! 문이 부서져 날아간다. 장석 째 통째로 문이 떨어져 나간다. 국장의 발길질 한 번에 그렇게 되었다. 문은 날아서 반대편 거실 창문까지 부순다.
와장창~ 거실 창문을 부순 문짝은 그대로 대로로 날아간다.
마명의 입이 놀라서 찢어지게 벌어진다.
“워매, 워매~ 뭔짓이당가요? 지나가는 사람 대갈통 터지겄습니다.”
“그건 그놈 사정이고!”
국장의 눈은 바쁘게 움직인다. 진월을 찾고 있다.
“우리 진월이 어디 갔냐?”
스르륵! 침대에서 귀신처럼 일어나는 그림자가 보인다. 막 들어선 국장과 두 눈이 딱 마주친다. 아직 잠에서 덜 깼으니 동태 눈깔이다. 국장은 걱정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말한다.
“허어! 상태가 안 좋긴 안 좋구나. 곧 죽을 놈 눈동자야.”
“…….”
진월이 국장을 한번 일견한 후 깨어진 거실 창도 본다. 원룸 형태니 침대에서 모든 것이 다 보이는 구조다. 두 손으로 얼굴을 마사지 하더니 중얼거린다.
“악몽 속에 나왔던 눈빛을 현실에서도 보게 될 줄은…….”
“뭐라고 하는 거냐? 제 정신이 아닌 거냐?”
“됐습니다. 어디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깨자마자 어딜?”
“꿈이 너무 생생해서 말입니다.”
“심장이 뛰었다 말았다 하는 놈이 가긴 어딜 가?”
“…….”
진월은 무슨 말인가 싶다. 국장이 설명을 덧붙여준다.
“창민이가 그러더라. 네놈 심장이 뛰었다 말았다 한다고…….”
“그래서 문짝을 저 모양을…….”
“그랬지. 네 목숨보다 문짝이 소중한 것은 아니잖아.”
“꿈속에서 제가 한 번 더 죽었더니 심장도 따라서 멈췄나 보군요.”
“……?”
“……?”
국장과 마명이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쳐다본다. 무슨 심장이 자율신경도 아니고 의지에 따라 뛰었다 멈췄다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아니 그러면 심장 박동은 왜 그렇게 약하게 뛰었는데?”
“저도 부상 회복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최대한 다른 곳에 쓰이는 에너지는 줄이기 위해 동물이 동면을 하는 것과 같은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사람 맞냐?”
“인도의 차크라를 수행하는 자들도 보이는 모습입니다. 저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굳이 왜?”
“너는 수도하는 자가 아니잖아.”
“그런가요? 이제 아셨으니 되셨잖습니까?”
진월이 상의를 걸치더니 거실 창 쪽으로 걸어간다. 밖에서 벌어진 진풍경에 피식 웃는다.
삐뽀삐뽀~
경찰차가 들이 닥친다. 빨리도 반응했다. 마명 또한 바깥의 모습을 보고 있다.
“워매! 반 토막이 나불었구마잉.”
“뭐가?” 국장이 반문한다.
마명이 착실하고도 침착하게 대답을 해준다.
“용달차가 반 토막이 났습니다. 뒤를 따르던 승용차는 잘려서 서 버린 적재함을 들이받았고요. 옆에서 달리다가 깜짝 놀란 차는 급정지를 했네요. 그리고 그 차의 뒤 똥구멍을 그 뒤차는 보란 듯이 박았고요. 사람들의 손가락은 전부다 우리를 향해 있네요. 문이 날아온 방향을 제대로 보고 있는데요. 경찰들이 금방 올 것 같습니다.”
마명이 설명을 하다가 곁을 스치는 바람에 옆을 본다.
“워매, 워매. 혀, 형님! 아니! 팀장님 시방 뭐 하시…….”
슉! 진월이 뛰어내렸다. 진월의 숙소는 오층이다. 사람이 떨어지면 죽는 높이다.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진짜 자살을…….”
퍽! 국장의 매서운 손바닥이 이번엔 마명의 뒤통수를 갈긴다.
“억! 떨어진당께요.”
“너도 안 죽어. 한번 떨어져 볼래?”
“아니요.”
“저놈 도대체 어딜 가려고…….”
도로 가에서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다. 문이 날아온 곳을 가리키며 보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이 뚝 떨어져 내렸으니 놀랄 만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분명이 자살시도였기 때문이다. 출동한 경찰 중 일부가 건물로 다가온다. 그 모습을 보더니 마명이 쌤통이라는 듯 사부인 국장을 본다.
“돈 나가시겠네요. 그리고 보고서는 어떻게 쓰실까?”
재미있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네가 한 거다.”
“네?”
“니!가! 한 것이라고!”
“왜, 왜요? 분명히 사부님이…….”
“그러면 네가 사부 하던가!”
“히잉~”
“잘 써주마. 팀장을 살리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다 감봉 들어오면요?”
“내 꽁꽁 숨겨둔 비수 하나 가르쳐주마.”
“…….”
마지못해 수긍하는 마명의 표정에는 믿기 힘들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참 신뢰도가 낮은 사제 관계다.
* * *
진월은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한참을 달려가자 마음까지 씻어줄 것 같은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뚫려야 하지만 진월은 지금 가슴을 움켜쥐고 있다. 이연후 회장에게 당한 상처가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동해에 가까워 올수록 그 증상은 더 심해진다. 아니 조금 다른 증상이 더해졌다. 이상하게 쿵쾅거리며 두근거리는 감정이 느껴진다. 사춘기 시절 처음 이성과 가까이 대면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과 비슷했다.
지금 그가 향하는 곳은 꿈속에서 본 곳이다. 어찌나 선명한지 마치 현실에서 본 것처럼 생생했다. 거기에 더해 감각이 그를 안내하고 있었다. 마치 예전에 와본 것처럼 그의 몸이 절로 방향을 안내하고 있었다. 한참 산길을 걷던 진월이 멈춰 선다. 있어야 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꿈속에서 그가 걷던 길이 맞다. 그런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수풀과 나무로 가려져 있어 더 이상 사람이 다닌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진월의 예리한 후각이 동원된다. 창민보다는 못하지만 진월도 동물적인 후각이 있다. 분명 근처에 사람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의 뛰어난 시각도 한 몫 한다. 주변을 면밀하게 살핀다. 관찰력이 정말 뛰어나지 않다면 발견할 수 없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빛의 굴절이 미세하게 틀어지는 곳이 있다.
“결계란 것인가?”
진월의 손이 전면을 향해 뻗어나간다.
출렁! 마치 점성 있는 액체가 출렁이듯 전면이 흔들린다. 손도 안으로 쑥 들어간다. 아마 백동이란 자의 존재를 몰랐다면 쉽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기하군.”
진월은 서슴없이 결계의 안으로 들어선다. 사람의 냄새는 바로 결계의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결계의 안으로 들어서자 그가 꿈에서 봤던 길이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 * *
“침입자입니다.”
“침입자?”
결계를 펼친 주술사가 누군가에게 보고를 한다. 반문한 자는 여인이다.
“동물 아니고?”
“도, 동물은 아닙니다.”
“에이, 저번에도 동물보고 침입자라고 했잖아.”
“화, 확실히 아닙니다.”
“확실해? 내 눈 보고 똑바로 이야기 해봐.”
여인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확 벗고 눈빛을 맞춘다.
“헙!”
“자신 없지?”
“…….”
자신 없는 것이 아니다. 여인은 바로 블랙이다. 블랙이 사실 한 미모 한다. 하는 일이 살벌해서 그렇지 미모로만 따지면 민서에게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다. 민서는 이국적인 면이 많지만 블랙은 순수 토종 외모다. 더구나 눈웃음까지 슬쩍 치니 정면으로 보면 웬만한 간담으로는 마주하지 못할 정도다.
블랙이 피식 웃더니 중얼거린다.
“누구지? 부장님은 가신지 얼마 안 되었으니 아닐 테고…….”
블랙은 중얼거리다가 다시 천정 부분에 형성된 균열을 본다. 사실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다. 파견팀은 보내는 족족 실종 상태다. 이제는 정말 자신이 가봐야 하나 고민 중이다. 전철 부장의 반대만 없었으면 진즉에 갔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출입구 쪽을 본다.
“손님이나 맞으러 가볼까? 만약 사슴 같은 거면 뿔을 끊어다가 똥침을 놔줄 테다.”
“…….”
결계를 형성한 주술사는 그도 모르게 손으로 엉덩이를 가린다.
밖으로 나가려던 블랙이 주춤한다.
“어?”
그녀의 시선에 출입구를 지키던 경비병 하나가 소리 없이 쓰러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경비병이라지만 그들이 사람을 뽑는 기준 자체가 엄격하다. 저렇게 맥없이 쓰러질 자들이 아닌 것이다.
“누구야?”
“오랜만이군.”
동굴의 입구를 거의 다 채우며 나타난 자는 바로 진월이었다. 블랙은 의외라는 듯 멍하니 진월을 보다가 웃는다.
“호호! 우리한테 무슨 추적기 붙여놨어요? 어떻게 이렇게 잘 찾아다니는 거지요. 얼마 전 우리 기지 하나 털었다고 하던데…….”
“털긴 털었지. 소득은 없었지만.”
블랙은 진월의 뒤를 힐끔 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설마 혼자?”
“오늘은 혼자지. 당신도 그렇게 많은 자들을 데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군.”
“그 말은 혼자서도 감당 가능하다는 뜻?”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호호! 자신감이 넘치시네. 우리 회장한테 한방 먹었다고 하던데.”
“회장?”
“어머! 이런? 모르셨나보네. 실수해 버린 것을 어쩌겠어. 그 분, 우리 대빵이세요. 세지요?”
“…….”
우둑! 진월의 주먹에서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블랙은 그 모습을 보며 배시시 웃는다.
“많이 당하셨나 보네. 그런데 그런 사람치고는 겉모습이 멀쩡하시네. 저번에도 그렇게 당하고 바다에 빠지더니 살아나고. 무슨 불사신인가?”
“…….”
진월의 눈빛이 반짝인다. 북쪽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마치 본 것처럼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힘 좀 푸시지요. 오라버니.”
“당신 같은 동생 둔 적 없다.”
“호적 보니 저 보다 두 살 많으시던데. 많으면 오빠 맞지 않나요?”
“당신과 말장난할 생각 없다.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이지?”
“어머! 모르고 오셨어요. 그러면 더 말씀드릴 수가 없는데.”
“…….”
진월의 시선이 블랙의 뒤를 바라본다. 블랙의 뒤에 서 있던 자가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고 조명이 더 밝아진다. 보통 뭔가를 숨기려면 조명을 어둡게 하는 것과는 반대 행동이다.
진월이 피식 웃는다.
“숨겨야 할 것이 밝은 것인가 보군.”
“참 시키지도 않은 짓은 잘도 해요.”
“전 그저 규정대로…….” 부하가 변명한다.
“임기응변 몰라? 임기응변? 저 사람 능력을 보고 대처하란 말이야.”
“…….”
뭘 해도 욕만 먹는다. 진월의 능력을 그가 알고 있을 리 만무하니 말이다. 부릴 짜증 다 부린 블랙이 다시 진월에게 묻는다.
“자! 용건이 뭐예요?”
“저게 날 부른 것 같군.”
진월의 손가락이 향한 곳을 블랙이 다시 본다. 불빛으로 가리려 했던 공간의 균열이다. 블랙이 어이가 없는지 같이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게 당신을 불러요?”
“…….”
진월은 고개만 끄덕인다.
누가 듣던 미쳤다는 소리 듣기 딱 좋은 말이긴 했다. 하지만 블랙은 의미 있는 미소를 베어 문다. 그 미소가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진월이 인상을 구긴다. 미소가 누군가와 너무 닮았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친숙한 미소다.
“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
“싱겁기는……. 저게 뭔 줄 알기나 하세요?”
“모른다.”
“우리는 저런 것을 타천으로 가는 게이트라고 한답니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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