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 장 민서의 위치?
방안의 침묵은 꽤 긴 시간 유지된다. 쉐인의 표정은 가관이다. 저걸 내가 신이라고 모시고 살아왔나 하는 회한이 어린 얼굴이다.
진월이 한참 뒤 다시 확인을 하듯 묻는다.
“정말 모릅니까?”
“정말 몰라!”
너무나도 자신 있게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협의는 없는 것으로 해야겠군요.”
“잠깐!”
쉐인이 나선다.
“완전히 모르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
“그러면 그렇다고 말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게 그거지.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데 그게 아는 것은 아니잖아.”
쾅! 쾅! 쉐인이 가슴을 내리친다. 마치 무슨 북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북을 치듯 가슴을 치겠는가!
“제가 이러고 산답니다.”
“답답하겠군.”
진월이 보기에도 답답한 종자다.
위치의 근처만 알아도 범위는 확 줄어드는 것이니 도움이 된다. 아직 어디쯤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가뭄의 단비인 것이다. 진월이 묻는다.
“어떻게 근처는 아는 것입니까?”
“사실 지구상에 있는 능력자의 위치는 모두 추적이 가능합니다. 다만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자의 위치는 빼고 말입니다.”
“그 뜻은?”
“그렇지요. 민서씨를 구속하고 있는 자의 능력이 바알님을 넘어서거나 그렇지 않다면 뭔가 더 강한 힘으로 추적을 막고 있다는 뜻이지요.”
“흥! 후자야. 절대 전자일리는 없어.”
“그건 모르잖아요. 이연후, 그 인간이 마신이라도 소환했는지 알게 뭡니까?”
“…….”
아주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닌지 바알이 입을 다문다. 진월의 고개도 옆으로 기운다. 눈앞에 신이라는 자가 있으니 참 부인하기도 애매한 답이다. 현실 세계를 살아가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진월이지만 마신 소환이란 이야기까지 듣자 어지러워질 지경이다.
진월이 확인하고 싶어 묻는다.
“정말 그런 것도 가능한 것입니까?”
“불가능 하지는 않지. 제물만 충분하다면…….”
“제물?”
“왜 고대 설화 보면 있잖아. 젊은 처자나 피를 바치고 악마를 불러내는 소환의식 같은 것 말이야. 아예 없는데 이야기가 만들어 지지는 않았을 것 아니야.”
진월의 시선이 쉐인을 향한다.
“왜 저를 보세요?”
진월의 턱 끝이 바알을 가리킨다. 바알은 무엇으로 불러냈냐는 의미다.
“아하~ 저 그렇게 나쁜 놈 아니랍니다.”
“…….”
“안 믿으시는군요.”
믿을 놈을 믿으라는 눈빛이다.
“우선 마계의 마신이 아니잖습니까?”
“악신으로 변했다고 하던데…….”
“그건 잘못된 홍보 때문이고요. 성질머리도 한가락 하기는 했지만.”
“그럼 제물이 없었다는 뜻인가?”
“있었지요. 소환에는 그에 응하는 제물이 꼭 필요하답니다.”
“……?”
진월의 눈빛이 꼭 답을 해야만 한다고 요구한다.
“쩝! 말씀드리지요. 제 명줄입니다.”
“……?”
진월은 정말 의아한 눈빛이다.
“엄밀히 말하면 생명력을 소모했지요. 전 요런 것으로 생명력을 다시 충당할 수 있거든요.”
딱! 쉐인이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검지와 엄지 사이에 붉은 작은 병이 나타난다.
“저 나이 엄청 많아요. 사실 인과율을 위배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할 일이 남아 있어서요. 저 양반 불러낼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마시고 또 마셔도 얼마나 뺏어 가는지 말입니다.”
“야! 이 정도 공간을 만들려면 그 정도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
“흥! 욕심만 많아서 그 많은 마나 모두 저축해 둔 것 모를 줄 아십니까?”
“또!”
진월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둘 다 진월의 ‘또’ 란 말에 뚝 멈춘다.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건 도움을 받으러 온 건지 주러 온 건지 헷갈린다.
진월은 갑자기 제물이란 말에 마음이 급해진다. 혹시 민서가 제물로 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이른다. 바알이 알아차렸는지 말한다.
“내 보기에 민서는 제물용은 아닐 거다. 그녀의 능력이 특이하니까.”
“그래도 혹 모르지 않겠어요? 그러니 빨리 말씀해 줘버리시지요.”
“이번에는 좀 멀어. 거기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거의 그 근처일거야.”
“그러니까 거기가 어디냐고요?”
“신안.”
“전남 신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섬에 숨은 것 같아. 그 근방에서 끊겼어.”
“…….”
참 답답할 노릇이다. 신안군의 섬만 해도 유무인도 합쳐 1004개다. 그래서 천사의 섬이라고 한다. 다 뒤지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어야 할 것이 분명했다. 그때 바알이 선심 쓴다는 듯 한마디 더 던진다.
“배타고 들어가지는 않았어.”
다리가 연결된 섬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범위가 확 줄어든다.
“매수!”
지직~ 지직~
“여기는 통신 안 돼. 나중에 해. 굳이 하고 싶다면 저 전화기 이용하고.”
진월은 주저하지 않고 전화기를 붙잡고 전화를 건다. 전화기도 얼마나 오래됐는지 버튼식이 아닌 다이얼식이다. 진월이 매수 실장에게 수색 범위를 지정해준다. 현재 육지와 연결된 다리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압해, 증도, 자은, 암태, 팔금, 안좌, 장산 등 10여개 안팎의 연륙교뿐이다. 그 섬들만 집중적으로 조사하면 된다. 바알은 사실 엄청난 도움을 준 것이다.
바알이 픽 웃더니 진월을 본다.
“급하긴 급했군.”
“…….”
“이제 우리 쪽하고 관련된 문제겠지?”
“그렇습니다.”
“그놈들은 원래 악신이었지.”
“악신?”
“부처 밑에 있는 놈들 있잖아.”
“나찰을 말하는 것이오.”
“맞다. 그놈들 나찰로 불렸지. 같은 부류지. 나찰조라는 놈들이니까. 원래는 악신의 무리였지만 부처 밑으로 들어가 착하게 살아가는 놈들이지.”
“그런데 왜 지상에 나타나 살인을 일삼는 것입니까?”
“구멍이 뚫렸으니까. 다른 세상과 이쪽 세상이 연결되는 통로가 생겼어. 그것도 그쪽 하늘에. 이쪽 하늘 말고. 그러니 그쪽에서 날개 달린 놈들은 넘어올 수도 있지. 통제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다 이 한 세상 하직하고자 하는 놈들은 말이야.”
“그렇다면 그쪽에서는 통로가 있음을 알면서도 넘어오지 않는 자들이 많다는 뜻입니까?”
“넘어올 이유가 없으니까. 그쪽이 여기보다 상위의 세계인데 왜 넘어와. 네놈들이 말하는 구원을 받더라도 그쪽이 훨씬 더 가까운데 말이야. 더구나 그쪽 사정도 바쁜데 여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지. 넘어온 것들은 그저 그런 쓰레기들이야. 그들이 주로 소비하는 양자에너지도 여긴 척박해.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이 살아가기에는 이 현세가 정말 사막과 같은 곳인 거지. 착했던 놈도 넘어오면 미치광이 되기 딱 좋아. 그러니 다들 미쳐서 날뛰는 것이지. 나정도 되니까 이렇게 고고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지.”
“결국은 자기 자랑이시네.”
쉐인이 바알을 비꼰다. 하지만 진월은 심각하다.
“그렇다면 그 나찰조라는 것들이 신들의 세상에서 이곳으로 넘어왔단 말입니까?”
“그건 아니지. 그렇게 말하면 인간들이 신계에 구멍을 뚫었다는 말이 되잖아.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야. 정해진 순리라는 것이 있는데 너무 앞서가는 것은 분명하지. 그 IUC라는 놈들 말이야. 내가 그래서 그놈들이 미워. 네 편도 들어주기 싫지만 그놈들이 더 미우니 별 수 없이 네 편을 들게 되잖아.”
바알은 너무 솔직하다. 그렇다고 진월 또한 기분 나빠하지도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중간계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아. 과거에 부처 따라서 신계로 간 놈들도 있고 남은 놈들도 있거든. 나찰이라고 해봐야 신계에서 최하층 부류 중 하나야. 신으로서는 말이지. 문지기나 하면 딱일까? 문지기들 중 대장이 사대천왕이잖아. 그렇지? 그러니 자유를 갈구하는 놈들은 남았지. 하지만 가진 바 능력이 있으니 중간계까지는 어떻게 입성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인 것이지. 쓰레기들! 내가 참 신세가 처량해져서 그런 것들을 거둬 쓰고 있다.”
“그러면 저도 쓰레기?”
“너, 너는 아…….”
“……?”
바알은 말을 하다 말고 쉐인은 바알의 입만 쳐다본다. 진월이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중얼거린다.
“똑같은 것들…….”
둘 다 쓰레기란 뜻이다.
바알이 광분하고 쉐인은 그나마 이성이 남아 바알을 막는다. 그렇게 협상은 끝이 났다. 친해지기에는 양쪽 다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쉐인이 진월을 탓한다.
“왜 거기서 그런 말을 합니까?”
“신이 신 같아야 신 대접을 해주지. 신는 신만도 못한데 무슨 신이라고…….”
“…….”
침묵은 동의를 뜻한다. 거기에 더해 고개까지 끄덕이고 있다.
“고생이 많군.”
“자초한 거지요. 내 인생 자체가 순탄하지 못해요.”
“해 뜰 날 있겠지.”
“언제가 될는지……. 그런데 저 나이 많다고 말씀드렸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반말 하실 겁니까? 안보고 살 거면 모르지만 이제 자주 보게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인생 자체가 순탄하지 않다면서. 그냥 그렇게 살지?”
“허~!”
“우린 어디까지나 전략적 제휴를 맺은 상태야. 이게 편하지 않나?”
“뭐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으니까.”
“그런데 당신 민서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던데 말이야.”
“아하하~ 전 그런 적 없는데요.”
“…….”
진월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인다. 속일 사람을 속이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쉐인은 괜히 온몸이 꼬인다. 지은 죄도 없는데 말이다.
“살기로 사람을 죽이시겠네요. 닮았습니다. 닮았어요. 제가 알던 사람과…….”
“착각을 할 정도로…….”
“네. 그럴 정도로요. 완전히…….”
“좋은 사람이었나 보군.”
“…….”
명랑 쾌활한 쉐인이 입을 다문다. 그의 눈빛이 달빛을 받아 반짝인다. 눈동자가 맑은 것인지 습기가 어린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진월도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고 조용히 허공만 응시하고 있다. 밖은 분명 낮이건만 이곳의 밤은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맑은 밤하늘이다.
둘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자 지켜보던 팀원들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왠지 떠들면 매 맞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쉐인이 진월을 응시한다.
“나찰조가 나타나게 되면 연락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걸 쓰도록 하지.”
진월이 휴대폰 하나를 건넨다.
“여긴 안 터진다고 말씀드리니까 그러시네.”
“그건 당신 몫이고.”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능력되니 어떤 방법이든 찾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쉐인의 물음이 더 가관이다.
“여기 민서씨 휴대폰 번호도 들어있나요?”
“…….”
역시 똑같은 것들이었다. 그 바알이라는 작자나 쉐인이나 똑같으니 같이 붙어사는 것이다.
그때 차에 갇혀 있던 염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 나왔구나. 그렇지 않아도 데리러 가려던 참인데.”
“허~ 참! 빨리도 데리러 가시네요.”
“이야기 하다 보니 늦었지 뭐냐. 그런데 차는 어떻게 했니?”
“…….”
염화는 답이 없다. 쉐인의 시선이 뒤쪽에 서 있는 남자에게 향한다. 대답을 강요하는 눈빛이다. 염화도 무섭지만 사실 쉐인이 더 무서운 인간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남자가 주저하다가 입을 연다.
“고치기는 글렀습니다.”
“억! 왜?”
“차체가 삼분의 일은 녹아내렸습니다. 그 덕분에 저희도 익을 뻔 했습니다.”
“새, 새 차를…….”
쉐인이 뒷목을 잡는 순간이다. 원망의 화살은 진월을 향하려 한다. 그때 염화가 진월을 향해 말한다.
“밖에 당신 찾아 온 사람들 있어. 본부에서 나온 것 같던데.”
“……?”
아마도 신호가 차단되어 연락을 할 방법이 없으니 찾아온 것 같았다. 근처까지는 왔지만 어디인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잠시 후 요원들의 앞에 진월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의 얼굴이 밝아지며 진월을 향해 바쁘게 움직인다. 상당히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무슨 일이 있나?”
“네. 그 조인들에 의한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상한 일이지만 뭔가 있나 보군.”
“그렇습니다. 피해자들 중에 저희 측 요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출근을 하지 않아 확인 차 갔던 요원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현장요원인가?”
“네. 그날 팀장님과 같이 움직였던 대원 중 하나입니다.”
“…….”
진월이 말이 없다. 결국 나찰조라는 그 오환과 오철이란 자들이 하늘 높이 날아 도망을 간 것은 눈속임이었다. 빠른 속도와 뛰어난 시각으로 같이 파견 나온 자들 중 하나를 골라 그의 눈을 파먹었다. 희생된 요원의 기억까지 취했을 테니 진월과 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과연 그들이 향하게 될 곳은 어디일까?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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