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장 신이 되고 싶은 자.
최탑은 더 이상 듣기 싫은가 보다. 천천히 돌아눕는다. 잠시간 적막이 흐른다. 다시 너무 조용하다. 뭔가 분위기가 야리꾸리하다. 마명은 갑자기 한기가 든다. 추운데 이마에선 땀이 흐른다. 최탑의 말이 사실인 것 같다. 뒤를 돌아보고 싶어 죽겠다. 하지만 결과에 목숨이 달렸다는 판단에 목이 말을 듣지 않는다. 몸은 돌아보고 싶은데 의지가 강철이다. 의지는 모른 척 하고 그냥 누우라고 간절하게 충고한다.
“아~ 심심하네. 잠이나 자야겠다.”
마명은 천연덕스럽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세를 바로 한다. 눈동자는 순간적으로 뒤였던 방향을 본다. 문까지 확인한다. 역시 없다. 괜히 쫄았다.
“젠장, 역시나 사기 치는데 타고났어.”
괜히 조마조마했던 것이 억울하다. 원망이라도 해야 하니 안 좋은 말이라도 내뱉는다. 한마디로는 모자라니 얼굴 보고 짖어야한다. 마명은 최탑을 휙 돌아보며 주둥이를 벌린다.
“…….”
“괜찮나?”
“숨 쉬는 것은 괜찮습니다. 움직이는 것이 아직…….”
“음, 며칠 쉬면 괜찮을 테니 몸부터 추슬러.”
“네. 그런데 민서의 위치는?”
“곧 찾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최탑의 침상 옆에 서 있는 검은 그림자는 귀신이 아닌 사람이다. 마명이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조용히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본부 내에 단 둘 뿐이다.
국장과 진월!
마명의 입은 벌어진 상태에서 닫히지 못한다. 아니 닫혔다. 침을 꿀꺽 삼키려니 입이 닫혀야 삼켜진다. 구석진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의 반짝이는 두 눈이 마명을 향한다.
꿀꺽!
다시 한 번 큰 삼킴 소리가 들린다.
뚜벅 뚜벅
들리지도 않던 진월의 군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린다. 마명의 흔들리는 동공은 도살장에 들어가기 전 소의 눈동자와 닮았다. 곧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다. 진월의 걸음이 멎는다.
“괜찮나?”
“…….”
최탑에게 건넨 질문과 같다. 다만 답이 돌아오지 않을 뿐이다.
꿀꺽!
답은 마르지 않는 침샘에서 솟아나오는 침 삼킴이다.
“괜찮지 않은가 보군.”
진월의 손이 마명의 이마를 꾸욱 누른다. 저항한다고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바닥이 마명의 눈 부위를 지나친다. 악관절에 멎은 진월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어, 억!”
마명의 신음과 함께 입이 절로 벌어진다. 어마어마한 진월의 악력이 마명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몸보신부터 해라. 네가 원하는 보약이다.”
“으, 어, 억~”
진월의 손바닥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마명의 입에 떨어진다. 괴기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모든 과정이 끝났다. 참, 비위 약한 사람은 보기도 힘든 장면이다. 받아먹는 사람은 고역, 그 자체일 것이다. 아닌가? 마명은 입술 주변에 묻은 피를 혀로 핥는 변태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최탑은 고개를 돌려 보다가 한마디 한다.
“하여튼 독특하고 징그런 놈이다.”
진월은 마명을 보며 피식 웃는다. 독특하고 징글징글할지는 몰라도 그만큼 회복에 대한 의지는 강하다는 반증이다.
“더 빨리 낫겠지. 그때 보도록 하지. 지금은 우선순위가 다른 곳에 있으니.”
“넵!”
대답하며 씩 웃는 마명의 치열에는 피가 보인다. 뭐가 좋은 걸까? 뒈지게 맞는 일만 남았는데 말이다. 체질적으로 싸움을 좋아하는 마명에게 진월만한 상대는 일생을 두고 찾기 힘든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진월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 * *
깊은 밤.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술 취한 취객조차 찾기 힘든 새벽으로 향하는 시간이다. 멀쩡하던 가로등 불빛이 깜박거린다. 한두 번 시간차를 두고 깜박거리더니 해군 신호등이라도 되는 듯 열나게 깜박거린다. 누가 스위치로 장난질을 치는 것 같다.
빠직!
결국 가로등 불빛이 나간다.
파직~
가로등 밑의 벽면에서 푸른 불빛이 갑자기 튄다. 깜박거리던 가로등이 꺼진 자리를 대신하고 싶었을까? 스파크가 튀듯 반짝이던 푸른빛이 전등이 켜지듯 확 퍼진다. 징징 거리는 소음이 한참 지속된다. 얼마 후 눈이 빛에 적응된다. 푸른빛 안에서 뭔가가 나온다. 늘씬한 다리다. 성큼 내딛는 발걸음이 주변에 대한 탐사가 끝났나 보다. 하늘거리는 옷자락과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신비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녀는 어둠을 뚫고 어딘가로 사라진다.
* * *
시력이 닿는 곳은 모두 회색빛 시멘트벽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답답한 곳은 아니다. 지하인 것은 분명한데 공기는 상쾌하다. 환풍 시설이 잘 되어 있는가 보다. 잡혀왔지만 포로의 느낌은 갇혀있다는 것뿐이다. 억압하지도 고문하지도 않는다. 잡혀온 이유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자들이다.
민서가 갇혀 있는 공간은 웬만한 오피스텔보다 낫다.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사생활이 없다는 것과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구속만 있을 뿐이다. 그녀의 눈앞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오는 남자가 서있다. 바로 전철이라는 사내다.
“오늘로 3일째인데, 생각보다 느리군.”
“뭐가 느리다는 거지요?”
“너를 찾아오는 것 말이다. 오늘쯤은 올 줄 알았는데 아직 함흥차사군.”
“두더지마냥 지하에만 숨어있는데 찾는 것이 쉬울 줄 아나보군요?”
“여기가 지하라고?”
“지하 아닌가요?”
“하하~ 오해가 심하구나. 지하는 아니고 오히려 지상이지. 높은 지상.”
그렇다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지금 민서가 갇혀 있는 곳은 산 중의 굴속이라는 의미다.
“한 가지 오해는 풀어줬으니 이제 조금만 협조를 해줬으면 좋겠군.”
“…….”
처음으로 저들이 뭔가 요구를 해온다. 민서는 그저 지켜볼 뿐이다.
“석판에 대해서 알고 있나?”
“석판이요?”
“그렇지. 석판.”
“당신들의 지하 연구소에서 본 것이 전부에요.”
전철이 민서의 얼굴을 뚫어질 듯 쳐다본다. 잠시 후 피식 웃는다.
“늙은 너구리가 꽁꽁 싸매고 있었나 봅니다.”
“그랬나 보군.”
갑작스레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서있었을까? 구석진 어둠 속에서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걸어 나온다. 광택이 나는 검은 지팡이를 짚고 있다. 한쪽 다리가 약간 불편해 보인다. 유리창 앞까지 다가온 남자의 모습은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깔끔해 보인다. 머리카락 색깔 때문에 오히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인상이다. 늙었음에도 준수해 보이는 인상은 젊었을 때 꽤 미남이란 말을 들었을 것 같다. 유리창 앞에 선 남자가 민서를 바라본다.
“실물로 보니 더 예쁘군. 매력적인 아이야.”
“그렇지요. 그러니 진월이란 놈도 마음을 두고 있겠지요.”
“…….”
민서는 어이가 없다. 본인을 두고 품평회를 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남의 마음까지 제멋대로 판단하는 것은 무슨 기준인가?
“소설을 쓰시네요.”
“아이야! 내기 한번 할까? 그가 구하러 오는지 안 오는지?”
“관심 없네요. 용건이 없으면 그냥 절 풀어주시는 것은 어떠세요?”
“그건 곤란하다. 우리가 하는 일에 자꾸 걸림돌이 되니까.”
“그럼, 절 계속 이곳에 잡아두겠다는 말인가요?”
“너뿐만이 아니겠지.”
“…….”
민서는 말을 잃는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일을 벌이기는 쉽지 않다. 그들의 의중이 더 궁금해진다.
“제가 얌전히 있지 않고 저항을 하게 된다면…….”
“그렇게는 안 될 거네.”
“그건 두고 볼 일 아닌가요?”
“마지막에 남는 것은 죽음뿐이겠지.”
“…….”
노인이 남긴 마지막 말에는 확신이 담겨있다.
“하지만 협조를 하거나 편을 갈아탄다면 그에 해당하는 특혜도 주어지겠지. 어떤가?”
“흥!”
“대답할 가치도 없는가?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될 터인데 말이야.”
“당신이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아세요.”
“되고 싶기는 하다네. 허허~.”
말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민서는 오기가 치민다. 그렇게 자신하는 능력이 있다면 시험해 주고 싶어진다. 민서의 눈빛에 묘한 기운이 담긴다. 잡혀 오기 전 그녀는 현재 능력 이상의 뭔가를 느꼈다.
민서의 눈 주변에 일렁이는 기운이 있다. 예전보다 그녀의 능력이 한 단계 진보했음이 분명하다. 그녀의 작고 도톰한 입술이 달싹인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바라보는 둘의 귓가로는 음성이 들린다.
‘문을 열어!’
“…….”
아무런 반응이 없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민서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것이다. 민서는 더 오기가 치민다. 그녀의 눈 주변에 붉은 빛이 더해진다. 일렁이는 기운의 파동이 유리벽에 부딪칠 것 같다.
즈증~
이상한 소음이 인다. 유리벽에서는 무지갯빛 파장이 일어난다. 민서도 뭔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민서를 바라보던 전철의 손이 가슴에 꽂혀있는 선글라스로 향한다. 서있던 노인도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그가 물러나자 검은 어둠이 살아 움직이듯 그의 모습을 감춘다.
“열어, 열라고!”
민서의 목소리가 유리벽에 부딪친다. 음파가 부딪친 곳에서 빛이 폭사되어 옆으로 퍼져 나간다. 그 목소리는 벽을 뚫고 전철과 노인의 귀에 들린다. 전철의 어깨가 움찔하는 것이 보인다. 그도 모르게 팔이 움직이려 했다. 전철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노인을 향해 말한다.
“후후~ 대단하군요.”
“그렇군. 양자차단막을 뚫고 나올 정도의 능력이라……. 예상보다 훨씬 강한 능력이구만. 더구나 언령(言靈)의 능력까지 겸하고 있을 줄이야. 탐나는 아이로구먼.”
“후욱~”
민서는 갑작스레 큰 힘을 쓰고 나서 숨을 몰아쉰다. 열린 공간에서 이 정도의 힘을 썼다면 한 명이 아닌 단체에 대한 정신 지배도 가능했을 것 같다.
민서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 댄다. 노인은 어둠 속에서 가만히 민서를 바라보고 있다. 노인이 지팡이를 들어올린다. 지팡이가 쑥 늘어나서 유리벽을 슬쩍 두드린다.
딱!
“이 유리벽…….”
설명이 이어진다.
유리벽은 능력자의 초능력에 저항력을 지니게끔 형성된 양자로 보호되고 있었다. 민서는 능력이 통하지 않자 잔뜩 끌어올렸던 능력을 흩어버린다. 괜한 힘만 소비하게 되고 그녀만 지친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두 개의 눈동자를 주시한다. 신비한 능력을 지닌 자들임에 분명하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어둠 속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점점 멀어진다.
“넌 아직 작은 새란다. 내 품에 들어오면 전설 속의 불사조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내게 저항하고 국가란 단체에게 충성해봐야 남는 것은 없다. 잘 생각해 보거라.”
“…….”
노인의 말이 민서의 마음에 약간의 충격을 준다. 이제껏 잊고 지냈던 사실 하나가 떠오른다. 바로 엄마의 죽음이다. 의문의 죽음을 맞은 엄마. 엄마의 죽음엔 석연치 않은 사실들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국가의 개입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민서의 엄마는 프랑스 출신의 능력자였다. 국가에 등록된 능력자는 국적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이유는 당연히 국력의 해외유출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어지럽다. 아직 발현에 익숙지 않은 능력을 거칠게 끌어올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노인의 말이 민서의 심상을 흔들었을까? 민서는 전철이 앞에 있건 말건 천천히 앉는다. 민서의 모습을 본 전철도 자리를 뜨며 말한다.
“회유가 길진 않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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