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 장 나, 너희 국장이야.
어둑어둑해질 무렵 NSCT 본부에서 차량 한 대가 빠져 나온다. 맡은 임무의 특성 상 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지만 정확하게 퇴근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부국장 여인희다. 40대 중반이지만 커리어 우먼답게 더 젊어 보인다. 관리 좀 받는지 동안에 제법 괜찮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얼굴과 몸매를 지니고 있다. 성취욕이 많은 여자로 상사들에게 충분히 성적 어필도 가능할 정도는 되어 보인다.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 시간에 맞춰 본부를 빠져나간다. 건너편 옥상 위에 두 남자가 서 있다.
“저 여자가 맞지?”
“맞다.”
“내가 맡도록 하지. 넌 다른 놈을 맡아라.”
“알았다.”
두 남자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나는 부국장을 향하고 다른 하나는 본부를 향한다.
부국장은 그녀가 머무는 오피스텔에 도착한다. 성공을 위해 결혼도 포기한 채 살아왔다. 지금 이 공간은 오로지 그녀만을 위한 공간이다. 집에 들어선 그녀는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벗는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슬쩍 미소가 머문다. 아직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몸매가 거울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붉게 물든 노을이 거실의 창을 통해 들어와 나신을 물들인다. 그 모습이 더 매혹적으로 보이는지 얼굴에 띤 미소가 짙어진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몸을 뒤덮는다. 부국장은 깜짝 놀라 거실의 창을 본다.
“악~!”
부국장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그녀의 오피스텔은 7층이다. 7층 거실 창에 사람의 그림자가 떠 있다면 누구나 소리를 지르는 게 당연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휴대폰을 찾아 움직인다. 검은 그림자의 손에 검은 불길이 일어난다. 유리창에 그 손이 닿자 유리창은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펄럭~! 팔에 달린 날개가 한번 펄럭이자 검은 그림자가 거실 안으로 쑥 밀려들어온다.
부국장은 창피한 것을 무릅쓰고 벌떡 일어나 안방 문을 쿵 닫는다.
손에 들린 스마트폰의 스위치를 누르지만 오늘 따라 유난히 반응이 느리다. 액정에 불이 들어오는 것이 마치 굼벵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리게 느껴진다. 손 또한 벌벌 떨리고 있어 그 큰 숫자패드를 누르는 것도 힘들다.
11……. 번호 두 개를 눌렀다.
퍽! 검은 손이 문을 뚫고 들어왔다.
“억!”
부국장의 목이 검은 손에 잡힌다. 순식간에 숨골이 막혀 호흡이 곤란하다. 전방의 시야가 황금빛에 물드는 것처럼 노랗게 변한다. 죽여 버릴 것처럼 강하게 움켜쥐던 손이 풀린다. 부국장 또한 힘없이 쓰러진다.
끼익! 굳게 닫혔던 문이 천천히 열린다. 문에 기대고 있던 부국장 또한 천천히 밀려난다. 의식을 잃을 뻔 했던 부국장이 켁켁 거리며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의 눈앞에는 온통 검은 깃털에 덮인 조인이 서 있다.
“부국장 여인희?”
“…….”
* * *
NSCT 본부 내!
국장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소집된 회의다. 당연히 부국장 여인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일찌감치 퇴근을 했기 때문이다. 국장이 그래도 부국장을 찾는다.
“부국장은?”
“연락은 됐습니다. 이미 퇴근하셔서 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십니다.”
“기다릴 수는 없고 회의 진행하도록 하지.”
“네.”
매수 실장이 준비된 자료를 모니터에 띄운다. 현장요원의 주검이 모니터에 디스플레이 된다. 조인의 침투 경로부터 살해된 추정 시간까지의 정황이 브리핑된다. 설명을 모두 들은 국장이 진월을 향해 묻는다.
“알아 봤냐?”
“들은 바로는 나찰조랍니다.”
“나찰조? 나찰하고 같은 부류냐?”
“같답니다. 일종의 신족으로 분류되는 종자들입니다.”
“그래? 이제는 그냥 귀신도 아니고 신족 나부랭이들까지 등장을 하는군.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지?”
“대처는 무슨?”
“그럼 대처 안 할 거냐?”
“잡든지, 죽이던지 둘 중 하나를 해야지요.”
“그래? 그럼 죽여라. 잡아놓으니 돈이 더 든다.”
결국 모든 것은 돈이 문제다.
“누가 그렇게 쉽게 죽어준답니까?”
“그럼 어떻게 하냐? 저대로 두면 우리 애들 더 죽을지 모르는데. 그놈들 눈과 영혼을 먹고 나면 피해자의 기억까지 흡수하는 종자들이잖아.”
“…….”
진월의 고개가 국장을 향해 팩 돌아간다.
“전 그들의 특성에 대해 국장님께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아직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저 말고는 없습니다.”
분위기가 묘해진다. 국장 또한 꿀 먹은 벙어리다. 진월이 조용히 팀원들을 부른다.
“최탑! 강희!”
“넵!”
부름에 둘은 격하게 반응한다. 국장의 퇴로를 막아선다. 창민까지 권총을 빼들고 국장을 노린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매수를 비롯한 비전투 요원들은 슬그머니 책상 밑으로 사라진다.
국장의 얼굴에 사악한 빛이 가득하다. 뭔가 꼭 일을 저지르기 전의 모습이다.
“왜 그러지?”
“정체를 밝혀라.”
“나? 너희들이 보는 것처럼 너희 국장이야.”
“믿게끔 하고 싶다면 한 대만 맞도록 하지.”
우둑! 진월의 주먹이 강하게 쥐어진다. 그의 능력이 발현되니 팔뚝에 굵은 혈관이 울퉁불퉁 튀어 오른다. 한 대만 맞아도 최소 사망이다.
“늙은이를 아주 골로 보내려 하는구나.”
“필요하다면!”
훙! 진월의 권이 허공을 가른다. 이미 한번 겪어본 적이 있기에 금빛 영사가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다. 진월이 다가섬에도 국장은 약간 여유로워 보인다. 국장의 손도 진월의 권이 오는 방향을 막아간다.
파앙~ 공기가 터지는 풍압이 휘몰아친다. 국장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린다. 몸이 휘청하기는 했지만 밀려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진월의 공격을 크게 무리 없이 받아낸다.
“여기까지!”
국장의 음성에 진월도 옆으로 비켜선다.
“매번 이럴 수는 없잖아?”
“그렇지요.”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냐?”
“없습니다. 특이한 힘을 뿜기는 하는데 그거야 힘을 써야 알 수 있으니까요.”
“이것 참……. 바로 옆에서 찌르면 당해야 한다는 결론인데…….”
대책회의지만 결론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진월이 궁금한 듯 국장에게 묻는다.
“나찰조의 특성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괜히 이 본부의 수장인 줄 아느냐? 나 공부 많이 했다.”
“이거 괜히 쉐인을 찾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도움이 많이 될 자라면서?”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되지요.”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움직인다. 뜻밖에도 쉐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회의실 밖에 서있던 보안 요원들도 갑자기 나타나서 문을 여는 쉐인을 제지하려 한다.
우선은 진월이 됐다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먼저 방문을 알리는 것이 순서 아닌가?”
“누군 알리고 오셨나요? 차부터 뒤집고 본 사람이 누군데…….”
국장은 쉐인의 말이 더 궁금하다.
“차를 뒤집었냐? 그럼, 그 차는?”
“…….”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쉐인의 얼굴에 득의만만한 표정이 떠오른다.
“이봐요. 이봐. 일 저질러 놓고 보고도 안 했을 줄 알았어요.”
“그럼, 자네는 자동차 값 청구하러 온 건가?”
국장이 묻는다.
“겸사겸사해서 왔지요.”
“분명히 하지.”
입 다물고 있던 진월이 나선다. 국장도 옳거니 하고 집중한다.
“내가 부순 것은 보닛하고 차 지붕 눌린 것 정도다. 차의 삼분의 일을 태워버려 폐차하게 만든 것은 염화다.”
“원인제공을 하셨잖아요. 원인제공!”
“결과는 염화가 만들었다.”
“정말 면상 두꺼우시네요? 도와줄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리네.”
“……?”
도와준다는 말에 국장의 안색이 확 변한다. 분명 뭔가 있기에 쉐인이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더불어 재정권은 국장이 쥐고 있다.
국장이 갑자기 쉐인의 손을 쥔다. 그것도 아주 꽉 쥔다. 피할 사이도 없이 쥐었다.
“악!”
“이런 미안하네. 악수를 한다는 것이 그만 조금 세게 쥐었구먼.”
능글맞기가 극강의 고수 수준이다.
쉐인은 손이 아프니 자연스럽게 손 쪽으로 몸을 굽히게 되고 그 상태 그대로 국장이 귓가에 대고 속닥인다.
“좋은 세상 아닌가? 좋은 것 놔두고 그러나?”
“좋은 것? 좋은 것 뭐요?”
“보험 처리하면 되잖은가? 자기차량손해 항목 있잖은가?”
“허참! 누굴 바보로 아시나 보죠? 그렇게 녹아버린 차가 어떻게 스스로 사고가 났다고 생각하겠어요. 보험회사도 바보 아니잖아요.”
“이 사람이 순진하기는…….”
“순진이요? 바보의 좋은 말이군요.”
“그 상태 그대로 두면 당연히 의심하겠지. 태우려면 확실히 태워버리면 되잖은가? 운전하다가 기름통에 처박았고 보기 좋게 타서 녹아버렸다. 뭐 이렇게 말이야. 우리가 도와주지. 제대로 타게끔 말이야.”
“이야~”
쉐인이 국장과 진월을 번갈아 보며 희한하고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휘 돌아본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표정이다. 쉐인은 갑자기 입맛이 씁쓸해진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태우는 것 도와주겠다는데 마다고 할 이유도 없다. 속으로만 욕을 한다.
‘보험 사기꾼 집단!’
도와준다는 명목 하에 자동차 값 좀 뜯어내려 했는데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절대 쉬운 인간들이 아니다.
“오르는 보험료는요?”
“그 정도는 내가 보존해줄 수 있지. 어때 되었나?”
“끙!”
할 말이 없다. 이미 초는 쳐놨으니 안 되면 그때 가서 해결하는 것도 방법이다. 쉐인이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가 해결되자 진월이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온 이유는?”
“이쯤 되었으면 나찰조란 것들이 본부 안에 침투했을 것이란 전언입니다.”
“네?”
매수 실장이 깜짝 놀라 반문한다. 쉐인처럼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면 본부 내로 들어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입구에서부터 동공 인식 프로그램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마 모든 것을 똑같이 복제할 수 있다는 겁니까?”
“뭐 그 정도 되니 신족의 끝자락에 걸터앉을 수 있었겠지요.”
“난감하군.”
진월이 손으로 턱을 만진다. 바알의 예지라면 신빙성이 높다. 더구나 능력자에 대한 추적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찰조도 쫓던 자들이니 분명 그의 추적 범위 내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누구인지까지는 모르나?”
“지상에서 바알님이 힘을 쓸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저의 한계가 그의 한계가 되곤 하지요. 부분적인 것밖에는 볼 수 없답니다. 전지전능한 신을 생각하면 안 된답니다.”
“결국 대강의 틀만 알 수 있다는 것이군.”
“그렇지요. 그러니 민서씨가 있는 곳도 방해를 받으니 파악하기 힘든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내부에 있다면 인원 통제를 시작한다.”
진월이 매수 실장에게 말한다. 매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각 부서에 인원을 파악하도록 전달한다. 퇴근자와 휴가자를 제외한 모든 인원 보고가 들어온다. 퇴근자와 휴가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거의 비상대기처럼 근무하고 있는 중이다.
삐~ 삐~
회의실 내의 전화벨이다. 매수 실장이 급하게 받는다. 인원보고일 것이라 생각하고 받았다. 하지만…….
“상황 발생입니다.”
“무슨 상황?”
“주차장에서 부국장님의 차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보안 요원 몇이 갔지만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끝까지 말썽이군.”
국장은 부국장이 미워 한마디 한다. 밉다밉다 하니까 끝까지 문제의 중심에 선다. 진월은 어차피 벌어질 일이 알아서 벌어져 줬으니 반가울 뿐이다. 진월과 팀원들이 회의실 밖으로 뛰어 나간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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