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 장 뜻밖의 거래.
블랙의 말에 진월이 다시 고개를 들어 균열을 본다.
“타천으로 가는 통로라……?”
“스카이게이트(Skygate)라고도 하지요. 이렇게 자연 형성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고요.”
“우리가 알기로 너희는 게이트를 인공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호호, 그건 극비라…….”
“부정하지는 않는군.”
“알고 물어보는데 굳이 부정할 필요는……. 하지만!”
“하지만?”
“목표를 정확하게 지정할 수는 없지요. 더구나 현재의 과학으로는 엄청난 에너지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만!”
“무슨 말인지 알겠군.”
“자 중요한 정보를 드렸으니 이제 저와 거래를 해볼 생각은 없나요?”
“거래?”
“그렇지요. 거래!”
“거래를 하려면 내 궁금증을 하나 더 풀어줘야 할 것 같군.”
“그래요?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요.”
“방금 전에 말한 회장이란 자에 대해서다. 내가 만난 자가 IUC의 회장인 이연후란 말인가?”
“회장이 그 분 말고 또 있나요?”
“알려진 외모와 전혀 달랐다.”
“광고하고 다닐 일 있어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고 해도 당신이 확인할 방법은 전혀 없지요. 그만큼 그는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
“자 궁금증이 해소되셨으면 이제 저와 거래?”
“무엇에 대한 거래지?”
“저와 함께 저 공간의 균열로 가는 겁니다.”
“과, 과장님?”
“괜찮아. 뭘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그래.”
“그래도 부장님이 아시게 되면 저희들 목이 달아납니다.”
“너희 목 날아가는 것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 알고 있니?”
“…….”
할 말이 없다. 블랙이 피식 웃는다.
“농담, 농담! 부장님은 내가 해결하지 걱정 마.”
“그래도…….”
블랙이 휙 돌아본다. 부하는 블랙의 눈빛에 찔끔한다. 그에게는 전철 부장만큼 무서운 사람이 블랙이다. 더구나 이 동해 공구에 대한 감독 권한은 그녀에게 있었다.
진월이 보기에는 어이없다. 아직 결정도 하지 않았는데 지들끼리 콩치고 팥치고 다 한다.
“내가 당신의 거래에 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원하는 대답을 해줬잖아요.”
“그렇군. 그렇다면 뭘 위해서 당신과 함께 가야하지?”
“답답한 양반이네. 저곳이 당신을 부른다면서요.”
“그랬나?”
“당신 바보 아니에요.”
“그럼, 질문을 바꾸지.”
“저 지금 면접 보는 것 아니죠?”
“잘하면 팀원이 될 수 있는데 당연히 면접 정도는 봐야 하는 것 아닌가?”
“호오! 가긴 가겠다는 뜻이군요.”
“잘하면, 이라고 했는데.”
“전 잘해요. 뭐가 됐든지.” 블랙의 두 손이 골반 위에 얹어진다. 골반도 옆으로 약간 틀린다. 예쁜 둔부라인이 도드라진다.
“묘한 의미를 내포하는군.”
“잘 생각해보라는 거지요.”
“적과의 동침은 사절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에요.”
블랙은 말싸움만은 절대 지지 않을 타입이다.
“저 타천이란 곳에서 무엇을 원하는 것이지?”
“알면서 왜 물어요?”
“모른다. 난 그저 꿈에 나타난 자를 만나보고 싶어서 왔을 뿐이다.”
“꿈에 나타난 자?”
“두 중년인이 보이더군. 복색은 우리가 입는 옷과는 많이 다르고…….”
“개꿈을 따라 여기까지 왔단 말이에요?”
“완전한 개꿈은 아니지 않나? 여기가 실제로 있으니 말이야. 다시 한 번 묻지.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모른다면 말해줄 수 없어요.”
“협상 결렬인가?”
진월의 눈빛이 빛난다. 영력을 발현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블랙 또한 움찔하며 방어 자세를 취하려 한다. 만약 그가 정말로 무력시위를 한다면 막아낼 수 있다 자신할 수 없다. 이곳에 머무는 병력 또한 많지 않았다.
“진정하시지요. 그리고 너!”
갑자기 부하를 가리킨다.
“네.”
“안 닫고 뭐해!”
“아!”
부하가 깜박했다는 듯 스위치를 누른다. 그에 따라 천장에서 지잉 소리가 나며 뭔가 움직인다. 원형 돔처럼 생긴 철제문이 닫힌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저건 못 뚫어요. 미사일에도 끄떡없게 만든 거니까.”
“…….”
진월은 어이가 없어 쳐다보고만 있다. 그가 막을 수 없어서 지켜봤을까? 그건 절대 아니다. 하는 짓이 어이가 없는 것이다.
“굳이…….”
“유치한 줄은 알지만 만일에 대한 대비에요.”
진월이 어깨를 으쓱한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연구자와 사무직이다. 경비 병력은 몇 있지도 않았다. 진월의 입장에서도 굳이 충돌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가 범죄현장이 아니란 점이다. 다만 진월의 입장에서 수배자인 블랙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원칙대로라면 그녀를 잡아들여야 맞다.
진월이 생각을 하다가 블랙을 다시 본다.
“저렇게 막아 놓으면 저쪽에서도 이쪽으로 나올 수 없나?”
“그렇지요.”
“좋은 일도 하는군.”
“우리가 무슨 악당인 줄 아세요?”
“악당 맞다.”
“미치겠네.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 우리가 무분별한 살인을 일삼는 조직은 아니랍니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법을 위반하니 문제겠지.”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소(小)의 권리는 누가 지켜주지?”
“그건 이 세상이 시작되면서부터 생긴 딜레마랍니다.”
“말은 정말 잘하는군.”
“그런 말 많이 들었지요.”
“조용히 해결하고 싶다. 나도 내 의문을 풀어야만 하니까. 그리고 얼마 전에 제거한 나찰조란 녀석들이 있었다. 그놈들의 이동 루트의 출발점도 바로 이곳과 연결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당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물론 너희들의 연구를 위해 필요해서 행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알아주니 고맙네요.”
“어차피 나는 가야 한다. 당신을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는 내 뜻에 달린 거지.”
“우리는 못 가게 막을 수도 있어요.”
“강권을 행사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다면 남는 문제는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당신이 나보다 더 강하면서 뭐가 걱정이세요. 잘 죽지도 않으면서.”
“그래서 하는 말이다. 혼자서는 쉽게 죽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저곳은 가본 적이 없는 곳이지. 차라리 혼자 가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 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럴 생각 없거든요. 백짓장도 맞드는 것이 낫고요. 더구나 미쳤다고 저까지 동원돼서 여기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 줄 아시나요. 벌써 파견 팀만 4번 보냈거든요. 그것도 능력자들로만…….”
“결과가 좋지 않았나 보군.”
“그러네요. 그래서 여기를 떠나지도 못하고 남아 있네요. 됐나요? 더구나 특단의 조치로 전철 부장님이 가시려다가 당신이 신안에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다시 되돌아가셨거든요. 어떻게 그 양반 빠진 자리를 차지하려고 귀신같이 나타났는지 몰라.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당신한테 억한 감정을 품어야 하는 것은 저거든요. 우리 창협이 당신이 죽였잖아요.”
“그 자의 이름이 창협이었나 보군.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들과 나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이다. 내 부하도 북쪽에서 너희 때문에 죽었으니 피차일반이지. 이런 상황에서 너에게 등을 맡기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제가 죽인 것은 아니지요. 그리고…….”
블랙이 갑자기 걸어서 진월에게 다가선다. 위협적인 모습은 없다. 진월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다. 블랙이 진월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입술을 달싹인다. 아주 작은 소리다. 블랙은 진월의 능력을 알고 있나 보다.
“전 고아였어요. 부모님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사실 재미있는 것은 부모님 얼굴도, 제가 이곳에 있게 된 것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지요. 좀 의문스럽지요?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뿌연 기억…….”
“…….”
진월은 블랙과 눈빛을 맞추고만 있다.
“의문스러워도 어쩔 거예요. 별 수 없지요.” 블랙이 어깨를 으쓱한다.
“좋은 세상 만들려고 한다는데…….”
“그래서 필요한 것이 석판인가?”
“……?”
블랙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알고 있으면서 이제까지 모른 척 했냐는 의문도 담고 있다.
“못 믿을 사람은 제가 아니고 당신이네요.”
“추측했을 뿐이다.”
“석판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 제가 왜 원하는지도 아시겠네요.”
“저곳이 만일 지구와 같이 넓은 곳이라면 석판은 어떻게 찾을 생각이지?”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다 방법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번이 처음도 아니니까.”
“그 말은 석판을 지구가 아닌 다른 타천에서 얻은 것도 있다는 말인가?”
“참, 궁금한 것도 많으시네. 그쪽도 연구진들 있을 텐데 그런 이야기는 안 해주던가요?”
“창고에 처박아 뒀더군.”
“헐~!”
블랙은 진월의 말에 할 말이 없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다.
“하긴 해석이 가능해야 뭘 할 텐데…….”
“알아야 면장도 해먹는 것이지.”
“참 일하기 답답하시겠네.”
“같이 일하기 답답한 놈들이 좀 있긴 하지.”
그 시각!
매수 실장은 진월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최탑, 강희를 비롯한 마명과 목영호, 국장도 다 같이 붙어 있다. 창민은 계속 졸도 중이다.
매수 실장이 갑자기 귓구멍을 후빈다.
“아씨! 누가 날 씹나?”
“왜요?” 마명이 묻는다.
“귓구멍이 너무 가렵다. 그것도 양쪽 다! 엄청 씹나보다.”
“그라요? 난 왜 이렇게 한기가 드는지…….”
둘 다 갑자기 국장을 바라본다. 그들을 씹거나 마음에 안 들어 할 사람이 현재 이곳에 딱 한 명 있기 때문이다.
국장이 둘을 멀뚱히 쳐다보며 입을 연다.
“그 증상! 난 둘 다 느껴진다.”
“……?”
“그렇다면…….” 눈치 빠른 매수가 누군지 알겠다는 듯 말한다.
“셋 다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빨리 좀 찾아봐요.” 강희가 보다 못해 화를 버럭 낸다.
“아! 답답해. 내가 이러는데 팀장은 미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야!”
강희의 절규에 셋 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강희가 갑자기 국장을 휙 돌아본다. 칼을 빼든 김에 뭐라도 썰 기세다.
“국!장!님!”
“왜, 왜?”
“창민이 저대로 둘 거예요?”
“저대로 안 두면?”
“애가 깨어나질 않잖아요.”
“괘, 괜찮아. 가벼운 뇌진탕일 뿐이다.”
“허참! 어떻게 때리면 뇌진탕이 올까요? 그것도 의식을 잃을 정도로! 저 정도면 최소한 뇌좌상인데요. 벌써 몇 시간…… 헙!”
국장이 갑자기 강희의 입을 막는다.
“피곤도 겹쳐서 자고 있는 거다. 숨소리가 고르잖아. 날 믿어라.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창민이가 자는 것이 아니라 바로 너네 팀장이다.”
“으휴~!”
강희가 별 수 없는지 속없는 셋을 번갈아 바라보며 화를 삭인다. 하지만 눈빛만은 셋을 잡아먹을 기세다. 셋 다 동시에 한기가 느껴지는지 부르르 떤다.
진월의 대답에 블랙이 피식 웃는다. 진월이 보기보다 재미있는 사람이란 생각도 한다.
“한 두 사람이 아닌가 보네요. 말에 한이 서려 있어요.”
“좀 돼지.”
뿌득! 이까지 갈린다. 국장을 비롯해 추위를 느낄 만 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어찌되었든 그것을 찾을 방법은 있다는 말이군.”
“그렇지요. 그러니 당신의 선택만 남았어요.”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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