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장 정보의 출처
사라졌던 쉐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 위에는 열심히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닉시가 보인다.
“쯧쯧! 갈 곳도 없으면서.”
[당신은 누구?]
“앞으로 네 주인 될 사람이지요.”
[제 마스터는 요정왕 밖에 없어요.]
“여기는 요정왕이 없거든요.”
[…….]
“어서 내려오세요.”
[싫어요. 절 내버려두세요.]
“쩝! 왜들 다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인지……. 내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을 텐데 말이야.”
본인만 모른다. 쉐인이 잘 생기긴 했지만 말투와 행동에서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것을 말이다.
“에잇! 힘쓰기 싫었는데.”
쉐인이 한 손을 오므린다. 힘차게 날갯짓을 하던 닉시의 날개가 갑자기 멈춘다. 하지만 닉시는 원래 정해진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서 떨어지지는 않는다.
[절 구속할 수는 없어요.]
“당신은 이미 구속되어 있답니다.”
쉐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검붉은 날개가 확 펼쳐진다. 그리고는 구체처럼 막을 만들어 닉시를 구속한다. 닉시가 만들어진 막을 손으로 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녀가 입을 벌려 뭐라고 말을 하지만 그 소리조차 전달되지 않는다. 닉시의 모든 능력을 봉쇄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던 쉐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머문다.
“제가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말입니다.”
쉐인은 그 능력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자였다.
* * *
NSCT(National Supernatural Counterstrategy Team)!
본부 내 통제실이 바쁘게 움직인다. 수십 개의 모니터에 펼쳐진 화면이 수시로 바뀌면서 뭔가를 찾고 있다. 조금만 의심스러우면 해상도를 크게 확대해서 면밀하게 확인한다. 실장인 김매수가 수십 개의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의심되는 것 없어?”
“포문 외에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정보가 맞긴 한 거야?”
“맞겠지요.”
“어떤 새끼가 이 따위 정보를 제공한 거야?”
“…….”
조원들 중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침묵이 흐른다. 한참 지난 후 선임 중 하나가 입을 연다.
“실장님이 가지고 오셨잖습니까?”
“내가 가져왔지.”
“그런데 저희한테 물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알고 있나 해서 물어본 것 아니냐.”
“누구한테 받으셨는데요?”
“누구긴 누구야. 국장님이지.”
“그러면 국장님한테 물으세요. 괜히 엄한 우리 갈구지 마시구요. 그렇지 않아도 눈알 빠질 것 같은데…….”
“이 자식이! 그냥 콱!”
“…….”
한번 크게 개긴 선임은 매수 실장의 제스처에 깨갱한다.
“일이나 해.”
“괜히 화는 내고 그러셔.”
“…….”
매수 실장은 화는 못 내고 주먹만 부르르 떤다. 정작 정확한 정보인지도 모른 채 계속 매달리기만 하니 답답하기도 할 만 하다.
“아무것도 없기만 해봐.”
“없으면?”
“그 누가 되었든 들이 박…….”
매수 실장은 물음에 답을 하다가 갑자기 멈춘다. 많이 듣던 목소리다. 그것도 나이 든 목소리다. 다름 아닌 국장이다.
“들이 박? 박, 뭐?”
“헤헤. 언제 오셨습니까? 전화도 없이.”
“꼭 전화를 하고 와야 되는 곳이냐?”
“그, 그건 아니지만.”
“내가 직접 전해주마. 네가 들이 박아버린다고 했다고 말이다.”
“…….”
국장의 말에 묘한 여운이 있다. 전해준단다. 그렇다면 정보 제공자가 필히 있다는 말이고 분명 자신도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갑자기 뒷골이 오싹해진다.
“혹시?”
“혹시는 무슨? 설마겠지?”
“그렇다면 설마?”
“알잖냐? 설마가 항상 사람 잡는 것 말이다.”
“허윽~ 혹시도 사람 잡더라고요.”
매수 실장은 바로 국장 앞에 무릎을 꿇는다. 역시 젊은 나이에 노른자 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굽힐 때는 확실히 굽힐 줄 아는 처세술이다.
“역시 크게 될 놈이야.”
“그렇지요. 그러니 살아남아야 합니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
“죽는 것 보다 더 무서운 일을 당할 것 같아서요.”
“하긴!”
국장 또한 동의한다.
“뭐, 봐줄까?”
“…….”
매수의 고개는 미친 듯이 끄덕거려진다. 조원들의 얼굴에는 봐주지 말란 표정이 가득하다.
“쯧쯧!”
“왜 그러십니까?”
매수 실장은 고양이 눈이 되어 국장을 애처롭게 본다. 하지만 국장의 입에서는…….
“대중의 뜻이 너의 뜻과 좀 다른 듯하다.”
“이 노무 새……. 꽃등심 쏜다.”
“…….”
꽃등심이란 말에 다들 모니터에 얼굴을 박는다. 이번에는 봐주겠다는 묵언의 의사표시다. 역시 뇌물이 통하지 않는 세상은 없는 것인가? 하지만!
“난 고기 안 먹는다.”
“헉!”
“원래 크게 될 사람일수록 더 깊고 더 큰 시련을 겪는 것이다. 그래야 더 큰 세상과 만나는 것 아니겠느냐?”
“…….”
매수 실장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어떤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진월의 강직한 얼굴만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한다. 머리를 처박고 악령을 쫓기라도 하듯 기도문까지 외운다.
그 모습을 보던 국장이 의아한 듯 묻는다.
“원래 너 신자였냐?”
“…… 저를 보살피시고 …….”
물어도 답은 없고 계속된 기도만 따른다. 기도문 또한 많이 듣던 것이다. 그런데 현세에 믿는 모든 신이 다 나오는 것 같다.
“머리 좋은 놈이라 이것도 틀리구만.”
“현세에 이루지 못한 것, 내세에는 필히 이룰 수 있도록…….”
“윤회까지 고려해서 기도하는 놈은 또 처음보네.”
매수 실장의 겁 많은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한가 보다.
“안 되겠다. 이송해라. 정신병원 예약하고, 폐쇄병동 있는 곳으로 골라라.”
벌떡!
“국장님만 믿겠습니다.”
“미친 놈!”
“제 정신으로는 이곳에 근무하기 힘듭니다.”
“됐고. 파악은 됐나?”
“아니요.”
“…….”
매수의 자신 넘치는 답변에 국장은 침묵한다. 침묵이 상당히 길다.
매수 실장의 침 넘기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다. 침묵을 깨고 국장의 음성이 들린다.
“살려주려 해도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
“누가 있는 곳이라고?”
“민서가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못 찾았지요.”
“죽을라고?”
“아니요. 꼭 찾겠습니다.”
“좋아. 지켜보도록 하지.”
국장은 정말 지켜볼 심산인지 그대로 서 있다. 매수 실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이다.
“노냐?”
“네?”
“노니까 좋냐?”
“아, 아닙니다.”
매수 실장이 쩔쩔 맨다. 진월이나 국장이나 사람 갈구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다.
매수 실장은 후다닥 움직여 모니터 앞에 앉는다. 이제는 직접 찾아 나서기 위해서다. 그때 음성 경고가 통제실 내에 울린다.
[5분 뒤 위성의 통제권을 상실합니다.]
“…….”
타다닥 거리며 자판 두드리던 소리가 갑자기 사라진다. 통제실 내에 고요만이 흐른다. 국장이 혀를 차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 같다.
“쯧쯧!”
* * *
분위기가 일반 농촌과는 사뭇 다르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정적과 고요가 흐른다. 주변에는 나무도 없다. 황량함을 넘어 고독이 몸부림을 칠 것만 같은 풍경이다.
철책이 여러 겹이다. 사람은 돌아다니지 않는다. 군인만 있다. 각 초소마다 병력이 배치되어 있고 초소마다 밀어내기식의 순환 근무가 이루어진다.
최전방 철책선이다.
한 초소에는 초병이 유독 많다. 초소가 미어터질 지경이다. 전부다 초병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 중 한 사내가 말한다.
“뭔가 보이나?”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는데요.”
“전방이 아닌 후방에 출입구가 있을 가능성이 높긴 하지.”
“그런데 저 포문은 정말 크네요.”
“일 년에 두 번 열린다.”
“두 번이요?”
“그렇지. 청소할 때만.”
“하하. 포가 들어있기는 한 겁니까?”
“우습게보지 마라.”
“왜요?”
“기네스북에 오른 포란다.”
“에이. 거짓말도 잘 하셔.”
“진실은 확인해 보면 알겠지.”
“뭐로 기네스북에 올랐는데요?”
“저기서 쏘면 의정부까지 날아간다지 아마.”
“헐! 거의 100킬로 가까이 나올 텐데 말이에요.”
“그러니 기네스북 감이지. 포가 거의 미사일 사거리가 나오니 말이야.”
“전 팀장님이 농담하시는 것에 더 놀랐어요. 기네스북 감입니다.”
“…….”
진월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는다. 대신 초병이 중얼거린다.
“진짠데.”
“…….”
창민이 초병의 말에 다시 진월을 본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냐는 표정이다. 그리고 정말 사실인지 의심스러웠다. 초병에게 다시 묻는다.
“사실인가요?”
“비상이 걸리면 저 포문 매번 열립니다. 그 외에는 정말 청소할 때만 열리구요. 저들의 포화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그건 아는데…….”
“비상 시 인사계가 정신 교육과 안심을 시킵니다. 전쟁나면 군인이 제일 적게 죽는다면서요. 미사일은 주요 도시와 주요 시설은 노리니 걱정하지 말고 경계 근무에 만전을 기하라면서요. 하지만 고참들은 저 산을 바라보며 한마디 하지요.”
“뭐라고요?”
“똥포는 노요? 라고요.”
“헛!”
“그 질문에는 인사계도 답을 하지 못하더군요. 실상 정말 무서운 것은 저런 똥포들이지요.”
“음!”
창민도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저치들은 재래식 무기에서는 우리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찌 산을 뒤에서 파서 앞쪽에 포문까지 만들 생각을 했는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포문이 열리면 마징가 제트라도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다.
창민은 다시 전방을 주시한다. 지금까지 살핀 시간만 두 시간이다. 그런데도 다시 집중한다. 초병들은 망원경도 없이 계속 전방을 살피는 창민이 사실 의아스럽다. 특별히 돌출되거나 시야를 가리는 것이 없으니 전망을 살피는 것은 무리가 없다. 하지만 뭔가를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에스키모 인이 아닌 한 망원경은 필수다.
초병 중 후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궁금해서 그럽니다. 뭐가 보이십니까? 망원경 쓰셔도 됩니다.”
“…….”
창민이 초병을 본다. 초병은 누군가에게 철모를 한 대 맞는다.
탁!
“왜 때리십니까?”
“방해하지 마.”
강희의 경고다. 이제껏 조용히 초소 구석에 박혀 있었다.
“도움을 드리려는 것뿐입니다.”
“방해라고.”
“…….”
후임이 강희의 강한 어투에 주눅이 든 모습이다. 사실 선임의 시선은 현재 한 시간 동안 말할 때 빼놓고 강희만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 강희가 언짢아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반응한다.
“누님이 방해라고 하시잖아. 물러나 있어.”
“…….”
선의를 베풀려 하다가 괜히 봉변당한 꼴이다. 후임이 뾰로통해 있는 모습은 관심도 없는지 선임이 다시 강희에게 말한다.
“누님,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계속 좁은데 서 계시는데 여기 앉으셔도 됩니다.”
“…….”
뜻하지 않은 호의에 오히려 강희가 당황스럽다.
그 모습을 보던 진월이 웃더니 선임에게 한마디 한다.
“누가 누님이지?”
“헉! 누님 아니신가요? 저보다 좀 더 드신 것 같아서…….”
“어딜 봐서 여자지?”
“팀!장!”
“여자 맞습니다. 여인의 향기가 느껴지십니다. 묘한 귀여움이 있는 분이십니다.”
“미친 놈! 굶긴 많이 굶었구나. 암컷의 냄새겠지. 무슨 여인의 향기야.”
* * *
북한군 초소!
후임이 선임에게 남측 초소를 감시하다가 말한다.
“조기 무슨 일이 있나 봅네다.”
“와?”
“초소 안에 동무들이 많습네다.”
“기래?”
선임이 바로 망원경을 가져다가 진월이 있는 초소를 살핀다.
“많긴 많구만 기래.”
“글티요?”
그때!
강희가 진월의 말에 광분했다.
“암컷! 냄새! 그래, 팀장이고 뭐고 한판 떠보자 이거지요? 어제부터 누구 때문에 잠복하고 씻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팀장이란 작자가 그런 말을 해요. 우아아악~!”
강희가 흥분해서 진월을 향해 장을 날린다. 초병들의 눈에는 강희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도 않는다.
콰앙!
초소의 벽이 뻥 뚫리며 벽돌들이 허공을 나른다.
지켜보던 북한군 초소에서도 난리가 난다.
“존간나 새끼들! 저것들이 단체로 미쳤구만 기래. 초소 안에서 포를 쏘고 지랄이네. 헉! 구멍 뚫린 것 보라우. 저것 우리들한테 쏜 것 아니네? 비상 걸라우. 비상!”
“비상~!”
북한군 초소에서 쌩쇼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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