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 장 힘 좋은 쉐인.
귀천이 빙의된 민서의 검은 눈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한다. 쉐인이 꿋꿋하게 서 있다. 현혹에 걸리지 않은 것이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쉐인이 예의 그 깐죽거리는 표정으로 묻는다.
“당신이 완전히 빙의하지 못하고 깜박거리니 틈이 생기지 않겠어요?”
“…….”
“참, 창피할 일이지요?”
“네 놈!”
“놈이라니요? 당신보다 내가 몇 살 더 많지 않나요?”
“죽여 버리겠다.”
“그 소리 오늘 많이 하시네요. 죽이지도 못해놓고.”
“익!”
귀천이 빙의된 민서의 얼굴이 구겨진다. 깐죽거림의 대가인 쉐인이다. 절대 입놀림으로 쉐인을 이기기는 힘들다. 상대가 흥분하자 쉐인은 한 술 더 뜬다.
“어떻게 멀쩡한지 궁금하시나요?”
“…….”
굳이 궁금할 것도 없다.
“궁금하실 텐데…….”
“…….”
“궁금해 죽어버리라고 말 안하렵니다.”
“끄아악! 네 주변에…….”
귀천이 흥분한다. 목소리조차 본래 그의 목소리가 울려 나온다. 민서의 힘이 실렸는지 거칠지만 묘한 느낌을 준다.
“어둠을 내린다.”
시커먼 암흑이 쉐인을 덮친다.
민서의 발달된 능력은 일정 공간에 환영을 만들 수 있나 보다. 그 환영이 대상자에게는 현실과 똑같은 느낌과 상처까지 주니 정말 무서운 능력이다. 이번에는 전체적인 공간이 아닌 쉐인 개인에게만 국한된 능력을 발현했다. 그만큼 집약되고 집중된 공격이라 위력이 더 강하다.
쉐인이 흠칫 놀라더니 뭐라고 중얼거린다.
“스펠을 안 걸어놨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쉐인의 몸에서 밝은 불이 일어난다.
“케나즈(kenaz), 의지의 불꽃!”
쉐인의 음성에 몸에 일어난 불이 더 크게 퍼진다. 의지의 힘을 강화하는 주문이다. 민서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정신계의 능력이다. 당하는 자의 의지가 강하다면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할 수 있는 것이다.
“알면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지요.”
“흥! 지저의 얼음지옥에 떨어지리라!”
어둠이 갑자기 물러나고 주변에 눈보라가 몰아친다. 차가운 냉기가 얼음 창이 되더니 급기야 주변이 온통 얼음벽이 된다. 얼음벽이 쉐인의 불꽃을 짓누른다.
쩌저저적~
얼음벽은 짓누르고 불꽃은 버틴다. 팽팽한 대결이 펼쳐진다. 쉐인이 검지와 중지를 펴서 가슴 앞에 둔다.
“다가즈(dagaz)!”
쉐인의 영창과 동시에 불꽃의 형상이 날개를 편다. 마치 거대한 불꽃의 나비가 날개를 펼치는 것 같다.
콰과곽~
얼음벽이 허물어지며 공간이 생긴다. 귀천이 빙의된 민서의 미간에 구김이 생긴다.
쉐인이 씨익 웃는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도 땀이 맺혀 있다.
“제가 좀 힘이 좋아요.”
깐죽거림은 여전하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볼까요?”
“……?”
“소울로(sowulo)!”
쉐인의 영창에 따라 팔랑거리는 불의 나비가 날아간다. 목표는 진월이다. 천천히 날갯짓을 하는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진월의 몸에 붙는다. 진월의 몸 주변으로 주홍색의 밝은 빛이 맺힌다. 그렇지 않아도 회복 중이던 진월의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한다. 소울로는 회복과 생명력에 관한 스펠이다.
쉐인의 말 많은 입이 한 가지 일을 해놓고 다시 열린다.
“사실 저 양반이 당신이 차지한 여자가 다칠까봐 힘을 못 써서 그런답니다. 저렇게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닌데 말이에요.”
“시끄러워!”
쩌저저적~
얼음벽이 창처럼 날카로워지며 다시 쉐인을 압박한다. 펼쳐졌던 불꽃의 날개가 얼음의 창에 의해 쫙쫙 찢어진다.
“헉! 무서워라!”
당최 긴장감이 없는 사람이다.
“죽인다.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상대가 악에 받치는 것은 당연하다.
쉐인이 다시 한 번 진월을 본다. 상태를 파악하는 것 같다. 주변을 둘러싼 얼음의 벽도 그의 시야를 가로막지는 못하는가 보다. 그의 손이 다시 한 번 들린다.
“알기즈(algiz)!”
보호에 관계된 스펠이다. 진월의 주변으로 사슴의 뿔 형상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진다.
“전 할 것 다 했습니다. 이젠……. 허억! 자, 잠깐!”
콰지직!
갑자기 쉐인을 둘러싸고 있던 얼음의 벽에 구멍이 뻥 뚫리며 누군가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쉐인보다 한참을 올라가는 거한이다. 쉐인이 황급하게 영창을 한다.
“테이와즈(teiwaz)! 쑤리사즈(thurisaz)!”
붉은 빛이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쉐인의 몸 주변으로 금빛의 거인이 만들어진다. 테이와즈에 의해 붉고 날카로운 창이 만들어진다. 바로 군신 티르의 창이다. 쑤리사즈에 의해 나타난 거인의 손에 창이 들린다. 붉고 날카로운 창이 그를 향해 달려드는 거한을 향한다.
쉐인은 짧은 순간이지만 그가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거한의 주먹이 창끝을 향한다. 회색빛의 영력이 주먹에 맺혀 있다.
콰앙!
붉은 창의 날카로운 끝이 주먹의 회색빛 영력과 부딪치자 뭉개지며 터져나간다.
쉐인의 손이 바쁘게 허공을 찍는다. 허공을 찍는 곳마다 붉은 창이 만들어진다.
달려들던 전철 부장도 창을 향해 손을 놀린다. 회색빛 중력장이 사람의 몸집만큼이나 크게 형성되며 붉은 창을 잡아먹는다. 그 사이를 비집고 전철 부장의 몸으로 날아드는 붉은 창도 있다.
쉬쉭!
캉, 카앙~
붉은 창 중 일부가 전철 부장의 몸에 부딪친다. 그런데 금속을 때리는 소리가 난다. 붉은 창이 전철 부장의 몸에 박히지는 못하고 튕겨 나간다.
“괴물이시네요!”
“당신이야말로!”
“우리 이러지 말고 말로 하지요.”
후웅!
전철 부장의 힘이 실린 권이 다시 쉐인을 향한다. 대화로 해결할 생각은 없다.
쾅!
쉐인의 손을 따라 움직인 거인의 손과 전철의 권이 충돌한다. 거인의 손이 밀린다. 형태까지 일그러진다. 전철 부장의 주먹이 다시 대기를 가른다. 이번에는 주먹 형상의 중력탄이 발출된다. 목표는 쉐인의 얼굴이다. 쉐인의 표정이 구겨진다. 위험한 공격이다.
뒤로 슬쩍 피한다. 쉐인은 강화형 타입의 전사가 아님에도 강한 육체를 지니고 있다. 중력탄이 거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얼굴의 일부가 사라져 버린다. 물론 쉐인의 힘에 의해 금세 복원은 된다.
전철 부장이 갑자기 나섰고 서두르고 있었다. 쉐인 또한 낌새를 챈다.
“뭔가 있군요?”
“눈치 하나는 빠르군.”
잠깐 사이에 쉐인은 주변의 모든 물체를 파악한다. 마법의 힘을 빌렸다.
“설마?”
“알아챘으면 됐군. 이럴 시간이 없을 텐데.”
“저야 뿅 하고 사라지면 되니까 문제없지만 저 사람들이 문제군요.”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내 살길부터 찾아야지요.”
“그럼 같이 죽여주지.”
전철 부장의 몸에서 영력이 휘몰아친다. 그의 몸 주변으로 백색의 전격 또한 튀긴다. 회색빛의 영력이 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그가 마지막 공격을 하려는 것을 눈치 챘는지 귀천이 빙의한 민서 또한 얼음의 벽과 창들을 더 만들어 낸다. 쉐인의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다.
“젠장! 말 들을 걸.”
쉐인은 구름을 타는 자, 바알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잉구즈(inguz)!”
쉐인도 적들의 공격에 대비한다. 육체를 강화하는 스펠이다. 새로운 힘, 재생과 관련된 스펠이기도 하다. 쉐인의 주변에 만들어진 거인의 형상도 강화된다. 테이와즈에 의해 군신 티르의 힘을 불러온 것이 더 강화된다. 거인에게 갑옷이 입혀진다. 중세의 갑옷 형태지만 견갑이 날카롭게 세워진 특이한 형태다.
갑옷을 걸친 거인의 형상의 손에는 거대한 망치와 붉은 창이 들려 있다. 붉은 창에는 화염의 불길까지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다.
전철 부장이 천천히 걸어온다. 이미 그의 최고 능력을 끌어냈다. 바쁘게 서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차피 쉐인의 뒤는 얼음의 벽과 창으로 인해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쉐인의 손이 움직인다. 그에 따라 거인의 손에 들린 화염의 창이 대기를 가르며 전철 부장을 향해 쇄도한다.
후웅~
전철 부장의 손이 창을 잡는 동작을 취한다. 회색빛 영력이 그의 손을 따라 움직인다. 진월이 만들어 낸 것과 비슷한 거대한 손이 허공에 나타난다. 회색빛 영력의 손이 화염의 창을 움켜쥔다.
지징!
화염의 창과 영력의 손이 맞닿은 곳에서 에너지끼리의 충돌이 일어난다. 하지만 화염의 창은 이미 손 모양대로 움푹 패여 있다. 그리고 점점 손 안으로 흡수되어 사라진다. 전철 부장이 발현하는 중력장의 힘 때문이다. 걸음을 옮기던 전철 부장의 발이 떠오른다. 지면을 밟지 않음에도 앞으로 이동하고 있다. 모두 영력을 이용해 중력장까지 형성할 수 있는 전철의 능력 때문이다.
그때 쉐인은 투덜거리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너무 센 것 아니냐? 왜 이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 이런 식의 힘을 쓰는 것은 반칙이다. 등등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끝까지 딴청이다.
이후 그의 입에서는 스펠이란 스펠은 모조리 동원되는 것 같다. 그 짧은 순간에 그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거인의 손에 들린 망치가 허공을 가른다. 망치는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의 스펠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 특히 알기즈에 의해 보호가 여러 차례 걸리며 망치의 옆면에 사슴 뿔 형상이 새겨진다.
전철 부장의 주먹이 망치를 향한다.
콰앙!
힘과 힘이 격돌하며 홀이 흔들거린다. 내부가 무너질지도 모를 정도의 충격파가 수평으로 퍼져 나간다.
쨍!
전철 부장의 중력장에 의해 망치에 금이 가며 깨진다. 보호를 걸었음에도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전철 부장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허공에 떴던 그의 발이 다시 지면과 맞닿아 있다. 그도 망치의 힘에 눌린 것이다.
망치가 다시 허공으로 들린다. 그 순간에도 망치는 번쩍이며 강화되고 있다. 전철 부장의 몸 주변에도 회색빛의 음영이 더 진해지고 전격도 더 번쩍인다. 망치가 세차게 다시 내리쳐 진다.
콰앙!
다시 한 번 전철 부장의 권과 망치가 허공에서 충돌한다.
쿠둑!
전철 부장의 발이 바닥을 파고 들어간다. 쩌적 거리면서 바닥에 금까지 간다. 전철 부장이 밟고 있는 바닥이 원형을 그리며 밑으로 주저앉으려 한다.
뜨응~ 두드드~
바닥을 구성하고 있던 격자형 철골 구조물이 서로 떨어지기 싫다고 아우성을 친다.
전철 부장의 중력을 다루는 힘을 쉐인이 힘으로 눌러버린 것이다. 전철 부장의 눈빛이 번뜩인다. 쉐인을 바라보며 오른팔을 들어올린다. 손바닥이 쉐인을 향해 있다. 손바닥 중심을 향해 영력이 집중된다. 회색빛의 영력이 집중되며 검은 빛으로 변해간다. 중력탄을 최고조로 집중시키고 있다.
증!
마치 검은 레이저가 발사되듯 중력탄이 검은 선을 그리며 쉐인을 향해 쇄도한다.
“…….”
쉐인이 중력탄을 보며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인상이 확 구겨질 뿐이다.
“웃자고 나섰더니 죽자고 달려드네요.”
“막아내면 놓아줄 용의도 있다.”
“피하면 그만이지만. 그렇다면…….”
쉐인이 손을 들어올린다. 그에 따라 거인 형상의 손도 들린다.
“알기즈(algiz)!”
쉐인의 영창에 따라 거인 형상의 손에 방패가 쥐어진다. 방패에는 사슴뿔 모양이 양각되어 나타난다. 시커먼 중력탄이 거인 형상의 손에 들린 방패와 충돌한다.
- 작가의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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