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 장 사내한테 중요한 것.
여인희, 부국장의 이름이다. 국정원 4급 과장급이다. 43세의 나이에 NSCT 부국장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굉장히 빠른 진급 케이스다. 줄이 좋았던지 실력이 좋았던지 뭔가는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여자다. 저번 NSCT가 침투를 받았을 때 확실히 정보를 제공해 준 낌새는 챘지만 물증은 없다. NSCT를 창설할 당시 반대한 의원들의 줄로 부국장의 자리에 내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작전 브리핑이 있는 날이다.
물론 부국장도 그 자리에 참석했다.
발견되지 않았던 고구려 고분에서 석판을 발견한 후 비밀작전이 펼쳐졌다. 중국은 자국 내 유물의 해외반출은 엄밀히 금하고 있다. 더구나 고구려 관련 자료라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다. 그런 유물을 몰래 빼오려니 007작전의 열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비밀리에 이루어진 발굴이라 가능했지,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부국장은 조용히 앉아서 모든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세세히 듣고 기록한다.
마침내 발표자가 발표를 끝마친다.
“……해서 AM 08:20 에 공항에 도착, 현재는 비밀 안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왜 이쪽으로 가지고 오지 않는 거지요?”
부국장 여인희의 질문이다.
“저번 석판 도난 사건도 있고 해서 비밀 안가 중 하나로 이송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결정은……?”
“물론 국장님께서 하셨습니다.”
부국장의 시선이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국장에게로 향한다. 이번 일 역시 본인에게는 한마디 상의도 없었다. 그녀는 이 조직 내에서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그것을 각오하고 들어왔지만 대놓고 외면당하는 것에 슬슬 염증을 느끼고 있다. 진급과 권력에 대한 욕심만 아니었다면 이런 희생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부국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남아 있어 봐야 건질 것이 없다. 정보는 다른 루트를 통해 확보하면 된다. 이 조직 내에 잠입해 있는 자는 그녀 말고도 또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리를 뜨자 국장이 기다렸다는 듯 눈을 뜬다. 진월과 눈이 마주친다. 진월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뭔가 그들끼리 협의된 것이 있는 것 같다.
부국장이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온다. 통제실에서는 매수 실장이 그녀의 사무실과 그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다른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고 그 혼자만 일을 하고 있다. 비밀리에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있음이다.
부국장이 방에서 나오자 폰으로 바로 문자를 보낸다. 진월의 폰으로 날아가는 문자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진월과 최탑이 부국장이 지나가는 통로에 나타난다. 부국장의 손에는 그녀의 폰이 들려 있다. 전화를 하려고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았다. 내부 회선은 아무래도 감청의 위험이 높았다. 만의 하나라도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런 모습은 여러 번 CCTV에 잡혔기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덩치 좋은 남자 둘이 갑자기 통로를 가득 채우고 나타나니 부국장은 순간 당황스럽다. 하지만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진월과 최탑은 최근에 사건이 없다. 모처럼 주말에 쉴 것 같은데 뭘 할거냐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국장의 모습이 보이자 슬쩍 목례를 한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한 후 지나칠 때쯤 진월과 최탑이 부국장의 양 옆으로 갈라진다. 마치 길을 열어주려는 것처럼 보인다.
탁! 최탑의 손이 마치 실수처럼 부국장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툭 건드린다.
최탑의 반대 손은 이미 국장의 휴대폰을 다른 방향으로 날리고 있다. 그의 물질감응염동력이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참 손가락에 슬쩍 부딪친 것 치고는 멀리도 날아간다.
“아! 이런…….”
“어머!”
타닥탁~ 휴대폰이 바닥을 구른다. 그런데 바닥에 부딪쳐도 기차게 모서리로 부딪치며 구른다. 중요한 것은 그 와중에 휴대폰의 뒷면 케이스가 벗겨졌다. 행동은 진월이 제일 빠르다. 부국장의 시야를 완벽하게 가리며 그 넓은 등판으로 주저앉는다. 휴대폰을 주워든다. 물론 곁에 떨어진 뒷면 커버도 같이 들어올린다.
딱! 따닥!
뒷면 커버까지 딱 맞춘 후 부국장에게 와서 건넨다.
“조심하지 그랬나?”
“죄송합니다. 살을 좀 빼야지 이 넓은 복도가 좁네요.”
진월이 책망을 하자 최탑이 부국장을 향해 사과한다.
“그럴 수도 있지요.”
“휴대폰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만약 이상이 있으면 이놈한테 수리비 청구하십시오.”
“알겠어요.”
“그럼, 이만.”
진월이 인사를 한 후 최탑을 데리고 사라진다. 부국장은 건네받은 휴대폰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이상은 없는 것 같다. 부딪친 부분에 약간 흠집이 난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혹시 몰라 뒷면 커버를 다시 분리해 본다. 국정원에 근무했던 직원답게 의심되는 상황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그 모습을 카메라로 모두 보고 있던 매수 실장이 피식 웃는다.
“당신이 신이라 해도 바뀐 것은 절대 몰라.”
“그렇지요. 내가 봐도 난 기특해요.”
“일절만 하지. 바꿔치기 한 팀장도 있으니까.”
“어찌되었든 흠집 하나까지 똑같이 카피한 것이 나잖아요.”
“그래. 대단하다. 대단해.”
“그런데 작동하나요?”
“잘 들린다. 숨소리까지.”
매수 실장의 귀에 꽂힌 블루투스를 톡톡 두드리며 말한다.
부국장의 휴대폰 뒷면 커버를 바꿔치기 한 것이다. 뒷면 커버에는 특수한 도청장치까지 내장을 해놓았다. 부국장이 아무리 귀신이라 해도 알아볼 수 없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잠시 후 부국장의 음성이 여과 없이 전달된다. 통화를 하는 상대는 남성이다.
“우리 쪽 안가의 정보를 알 수 있나?”
“알 수는 있습니다만…….”
“주소 파악해서 문자로 보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보내기나 해. 되도록 빨리. 오늘 안에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네.”
통화를 종료한 부국장은 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창민은 매수 실장의 옆에서 뭔가를 적고 있다. 매수 실장이 의아한지 모기만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렇게 말해도 창민은 다 듣기 때문이다.
“뭘 적냐?”
“전화번호.”
“누구?”
“저 여자가 전화하는 사람들 전화번호.”
“뭐어?”
갑자기 매수 실장의 목소리가 커지자 통제실 요원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린다. 창민이 손가락을 입에다 가져다 댄다. 매수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다. 그리고 요원들을 향해 씨익 웃는다. 요원들도 그러려니 하고 다시 하던 일에 매달린다. 바로 민서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찾는 일이다. 매수가 다시 조용히 묻는다.
“소리만으로 전화번호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
“그럼요. 번호마다 소리가 다르거든요.”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그럼 전화번호로 역추적도 가능하겠네.”
“그렇지요.”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부국장의 전화는 다시 어떤 남자에게 연결이 되었다.
“본부로 가져가지 않고 안가로 가져간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아직 안가의 위치는 모르고?”
“파악 중입니다.”
“그래. 파악되면 다시 연락을 주게나. 이쪽에서도 NSCT의 안가가 어디인지 파악해 보도록 하지.”
“네. 그런데 이쪽에서 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럴 거라는 것은 예상했지 않은가?”
“저번 침투 이후 확실하게 따돌립니다. 저번 작전이 너무 섣불렀던 같습니다. 국정원에서 이쪽으로 배치되는 인원들인 줄 알았다고 했지만 믿지 않는 눈치입니다.”
“물증은 없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만…….”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어차피 그들은 소모품일 뿐이야. 자네는 임시로 거기 가 있는 것뿐이고.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고 생각하게나.”
“하지만 팀장이란 자가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계획했던 일들이 모두 틀어져 이들은 존재 의의 자체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필요하긴 하지. 하지만 다른 것으로도 대체 가능하지. 굳이 우리 돈 써가면서 꼭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하지만…….”
“마음이 약해졌나? 그곳에서 한두 번만 실수가 벌어져도 우리가 들고 일어날 것이네. 근소한 차이로 통과된 기관이지. 찬성했던 자들도 할 말이 없게 되는 상황을 만들면 돼. 의뢰를 한 곳에서도 그들을 대체할 만한 재원은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했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그 기관의 국장 자리는 아마도 자네 것이 되지 싶은데 말일세.”
“……알겠습니다.”
“안가의 위치나 파악하게.”
“네.”
부국장의 통화가 끝난다.
매수 실장과 창민의 눈에서는 불꽃이 일어나 이글이글 타오른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욕이란 욕은 전부 튀어나온다.
* * *
마명의 앞에 꿀려 앉혀진 남자가 있다.
“자! 받아 적는다. 실시!”
“네? 뭘?”
“시방 죽고자픈갑제?”
팅팅~ 단검의 날을 엄지로 쓰다듬는데 금속음이 발생한다. 엄지가 같은 쇠로 만들어진 줄 알겠다.
“콱! 콧구멍을 엄지로 쑤셔불라!”
“…….”
무릎 꿇고 있는 남자는 이미 몇 대 맞았는지 얼굴은 퉁퉁 부어있다.
곁에 있던 목영호가 불쌍한지 얼굴을 들어 이리 저리 돌려본다.
“그건 벌이 아니다.”
“뭔 말이냐?”
“콧구멍이 너무 크다. 허벌창이다. 엄지발가락 정도는 꽂아줘야 쓰겄다.”
“새끼! 쓰잘데기 없는 것만 크구마잉. 거기는 어짤가란 모르겄다야.”
마명의 시선은 콧구멍에서 묘하게 아래로 향한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꿇려 앉혀진 채 쪼그라져 있는 거시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튼다.
“중요하긴 한갑다야.”
“뭐할라꼬?”
“뻔뻔하게 군디 그대로 두면 쓰겄냐? 잘라부러야제.”
“우야까?”
옆에서 추임새 넣는 목영호가 더 밉다. 마명의 단검이 남자의 벨트부터 잘라낸다. 얼마나 갈아뒀는지 슬쩍 대기만 해도 슥 잘려나간다.
“헉!”
“기태명이?”
“네, 네.”
“언제부터 첩자질 했어?”
“…….”
“말 안하지? 안 하면 다 자른다. 잘 말해라.”
“다, 다섯 달 됐습니다.”
“그래? 그럼 5센티만 잘라주마.”
“심하다.”
“왜?”
“거의 뿌리까지겠는데…….”
“새끼, 콧구멍하고는 반대구마잉.”
거시기 앞에서 반짝이는 단검을 본 기태명이란 남자는 결국 거품을 문다. 기태명이란 남자는 바로 부국장과 통화를 했던 NSCT 내부 첩자였다. 그는 깨어난 후 열심히 문자를 치고 있다. 주소는 바로 ‘서초구 우면동 바우뫼로…….’이었다. 안가의 주소를 날린 것이다. 거시기를 살리기 위해서 그는 일신의 영화를 포기했다.
“역시 사내한테 저것만큼 중요한 것이 드물제.”
“맞다 아이가.”
마명이 임무를 완수한 후 진월에게 연락을 취한다. 연락을 받은 진월은 작전의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부국장은 문자를 확인 후 그가 연락하는 의원에게 바로 전달한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행동이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 *
밤이 왔다. 도시의 밤은 그다지 어둡지 않다. NSCT 안가에도 불이 훤히 켜져 있다. 담벼락이 제법 높았지만 침입자들이 넘기에 그다지 힘든 높이는 아니다. 전문가들인지 담에 둘러쳐진 보안 장치도 쉽게 해제한다.
밖에서 경비를 서는 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뭔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한다.
‘경계 병력이 하나도 없다?’
주변을 둘러본다. 같이 침투한 자들이 세 명이다. 세 명 모두 경계 병력은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건 뭐지? 란 생각이 들 때쯤 그들의 눈에 집 안에 있는 자가 보인다. 그들도 잘 아는 자다. 훤칠한 체격의 진월이 의자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그의 곁으로 검은 양복을 빼입은 남자들도 같이 앉아 있다.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태도다. 하지만 상대방은 이 안가가 거짓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지키고 있는 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진월이니 말이다.
“죽었을지도 모른다더니 멀쩡하게 살아있군.”
“저 자도 무서운 자군요.”
“그러니 전철 부장님과 맞장을 떴겠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원 요청하고 대기한다. 양동 작전을 써야지. 추가 인원은 보이나?”
“저기 있는 인원이 다 인 것 같습니다.”
“…….”
파라락~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 같은 소리다. 침투한 자들 모두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나타난 자가 일부러 들으라는 듯 소리를 낸 것 같다.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침입자들의 귀를 자극한다.
“그렇지.”
“……?”
“저 인원이 다지.”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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