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장 쉐인은 스펠캐스터!
쉐인의 손이 올라간다. 손가락은 검지와 중지를 세운 후 강희를 가리킨다.
승~!
공명음이 발생한다. 순식간에 거대한 해머가 강희의 전방에 형성된다. 쉐인 주변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거인의 손에 해머가 들린 모습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쉐인이 강희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저를 여러 번 놀라게 하시는군요. 이 정도의 능력자들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어서 즐거웠습니다.”
“하아~ 하아~”
강희는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다. 말하는 에너지도 아껴야 할 판이다. 당장 쓰러질 지경이어도 눈빛만은 살아있다. 강희의 시선에 떨어지는 해머가 보인다.
후웅~!
콰앙!
강희는 아홉 번째 능력을 발현시켜 간신히 피한다. 최탑이 달려온다. 원래 원거리 타입의 능력이지만 지금은 강희를 구해야 한다.
쉐인의 다른 팔이 올라간다. 거인 형상의 다른 팔에도 해머가 하나 더 형성된다.
움직이는 최탑의 손이 쉴 새 없이 허공을 가른다.
까가가강!
최탑이 날려 보낸 은침들은 거인 형상의 가드를 뚫지 못하고 떨어져 내린다. 은침도 모두 떨어졌다. 최탑의 손이 주저하지 않고 품에 있던 권총을 뽑아든다.
타타탕!
세발의 총성이 울린다. 총탄의 물리적 운동력은 은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최탑이 왼 주먹을 강하게 움켜쥔다. 허공에 있는 물건을 쥐는 것 같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연이어 발사된 총탄이 정렬한다.
쉐인도 총소리에 최탑을 주시한다. 최탑이 쥐었던 주먹에서 검지만 편다. 뭔가를 조준하는 모습이다. 쉐인의 눈동자가 커진다. 뭔가에 놀란 눈치다.
퍽! 거인의 형상에 탄환이 파고든다.
탄환의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탄의 모양까지 일그러진다. 최탑의 물질감응염동력에 의해 보호되고 있음에도 변형이 일어난다. 거인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기운의 압력이 상상을 불허한다는 의미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까? 최탑은 당황하지 않는다. 바로 연이어 신기를 보여준다.
앞의 총탄의 뒤를 다음 총탄이 때린다. 뒤이어 마지막 총알까지 힘을 보탠다. 속도가 줄던 총탄의 속도가 확 빨라진다. 이런 모습이 쉐인의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그가 놀란 것이 바로 총탄의 움직임 때문이다. 약간은 당황하는 모습도 보인다. 형성되었던 거인과 해머의 모습이 약간 흔들린다. 그와 동시에 쉐인이 어깨를 휙 돌린다.
퍽!
“음.”
쉐인의 입에서 약한 신음이 흘러나온다. 그의 오른 손은 왼쪽 어깨를 잡고 있다. 붉은 피가 비친다. 그런 상황에서도 쉐인은 천천히 눈앞의 둘을 바라본다.
강희는 간신히 서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눈으로 보인다. 이미 전투를 할 상태가 아니라 판단된다. 남은 최탑에게 시선을 준다. 마치 마음에 새겨두겠다는 듯한 표정이다. 쉐인이 왼쪽 어깨를 잡고 있던 오른 손을 들어올린다. 피가 많이 묻어난다. 뚝뚝 떨어질 정도다.
“상상 이상을 보여주시는군요.”
“그만 항복해라.”
최탑은 계속 총을 겨누고 있다.
“이 정도 상처로 항복하면 제가 섭섭해서 안 된답니다.”
“다음번에는 머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순순히 같이 가는 것이 좋다.”
“스친 상처로 기고만장하시네요.”
“스친 상처……?”
“좀 깊게 스치긴 했군요. 답례를 해야겠지요.”
쉐인이 들어 올린 손으로 뭔가를 써내려간다. 손가락 끝에서 붉은 피가 문양을 만들어 간다. 붉은 피로 써진 문양은 점점 밝은 붉은 빛을 발한다. 쉐인의 중얼거림이 들린다.
“인간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는 존재이니……. 나 그대에게 필멸(必滅)을 선물한다. 마나저(Mannaz)!”
허공에 떠 있던 붉은 글씨가 풀어진다. 마치 밧줄처럼 풀린 붉은 글씨는 실타래처럼 꼬이더니 빛처럼 쏘아져 나간다. 최탑은 바로 반응한다. 그에게 남겨진 무기는 총밖에 없다.
타타타탕~
최탑은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긴다. 남은 모든 탄환을 쏟아 붓는다. 붉은 빛을 향해 날아가는 탄환이 동그란 원을 형성한다. 물질감응염동력으로 총알을 움직인 것이다. 최탑은 총을 던져버린 후 오른 손으로 주먹을 쥔 왼팔의 팔목을 잡는다. 왼손의 손가락이 손에 뭍은 물방울을 튕기듯 확 펴지며 퉁겨진다.
쉐인이 날려 보낸 붉은 빛과 탄환이 충돌한다.
쾅~
“윽!”
최탑의 몸이 흔들린다. 인상 또한 구겨진다. 탄환을 조종하던 팔도 하늘로 솟았다. 충격의 여파가 몸에까지 미친 것이다. 왼손은 떨리기까지 한다. 최탑의 상태로 봐서 다음 공격은 불가능해 보인다. 탄환은 충격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다. 약간의 시간을 번 것 외에는 아무 효과도 없다. 그만큼 쉐인의 공격은 강했다.
최탑의 총탄 방어에 마치 줄넘기 줄이 출렁이듯 약간 휘었던 붉은 빛줄기가 다시 쇄도한다. 암울했다. 다음 방법을 궁리하던 최탑의 손이 마지막 남은 탄창으로 향한다. 그때!
퍼억!
최탑도 쉐인도 깜짝 놀란다. 붉은 빛줄기는 최탑의 어깨 부위를 스치며 허공으로 치솟는다.
“제기라알~!”
강희가 괴성을 내지르며 쉐인의 허리 부위를 어깨로 치받았다. 두 팔은 거인의 형상을 강하게 조이고 있다. 마지막 능력 발현이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는 것 같다. 거인의 형상이 일그러진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쉐인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부정의 의미라기보다는 상대에 대한 인정이 얼굴에 묻어난다.
“대단한 분들……?”
쉐인은 말을 하다 멈춘다. 그의 눈앞에 좋은 체격의 남성이 서 있다. 본인조차 지근거리에 모습을 드러낼 때에서야 그 남자의 기척을 느꼈다.
턱!
남자는 강희의 뒷덜미를 다짜고짜 움켜잡는다.
“탑! 받아라.”
“…….”
뭐라고 답을 하기도 전에 강희의 몸은 허공을 날아온다. 쉐인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이 달싹인다.
“당신이……?”
“인사는 이것으로 대신하지.”
훙~!
진월의 주먹이 인사를 대신한다. 쉐인은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한다. 쉐인 본인이 전사 타입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강희를 상대할 수 있었던 것도 어디까지나 마력의 도움이다. 그것도 아주 뛰어난 마법사임에 분명하다. 의식하면 바로 마법이 구현되는 단계의 마법사다. 근접전에서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강희를 요리할 수 있었던 이유다.
문제는 눈앞의 이 남자는 강희보다도 빠르다는 느낌이다. 사람이 뿜어대는 중압감이란 것이 있는데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주저치 않고 방금 전에 구현했던 마력을 발현한다. 거인의 형상 손에 해머가 다시 들린다. 현재 그가 가장 빨리 구현할 수 있는 마법이다.
진월의 주먹이 향하는 방향으로 해머가 형성된다. 그 크기가 이전 것과 비교해 훨씬 크다.
쩡!
금속끼리 부딪친 것 같은 음향이 퍼진다. 쉐인의 매력적인 눈매가 약간 꿈틀한다.
진월은 이렇다 할 능력을 발현시키지 않은 주먹으로 거대 해머와 동등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 신체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화악~!
진월의 주먹에서 금빛과 검은빛이 섞인 불이 피어오른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분명 눈에 보인다. 쉐인의 눈매가 꿈틀한다. 진월이 가진 바 신체 능력 외에 뭔가 하나를 추가하고 있었다.
쩌쩡~! 해머가 갈라진다.
쉐인도 바로 이어서 뭔가를 외친다.
“알기즈(algiz)!”
발 빠른 대처다. 보호와 관계된 구동어다.
콰앙~! 진월의 권과 강화된 해머가 부딪치며 굉음과 충격파를 발한다.
쩌적!
격돌의 충격으로 땅바닥이 갈라진다. 주변의 흙과 모래먼지가 일어난다. 엄밀히 말하면 시멘트 바닥이다. 그만큼 충격파가 엄청났다는 의미다. 쉐인이 원래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움푹 파인 자국이 생겨났다.
“후~우!”
“…….”
쉐인의 감탄사 비슷한 음성이 들린다. 한 육칠 미터는 떨어진 자리에 쉐인이 서 있다. 발은 바닥에 닿아있지 않다. 약간 떠 있는 모습이다. 그런 그의 한 손에는 하영철의 뒷덜미가 잡혀있다.
“대단하군요. 당신은 연구대상입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다음번에 천천히 상대를 해드리겠습니다.”
“이봐!”
“궁금하신 것이 많은 것은 안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군요.”
“그놈을 데리고 가면 너도 수배대상이 된다.”
“흠. 그것도 재미있겠군요.”
“…….”
진월은 상대의 여유에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물을 것은 물어야 했다.
“당신의 실력을 보니 현재 도망을 가면 잡을 방법은 없을 것 같군. 그러니 하나만 물어보도록 하지.”
“질문에 답해드려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하지만 물으신다면…….”
“충분히 우리 요원들을 제거할 실력이 됨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서로 부딪쳐서 좋을 것은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자 또한 우리에게 넘기는 것이 맞지 않나?”
“제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저 말고 따로 계약하신 분이 있습니다. 전 매니저일 뿐이랍니다.”
“……?”
진월이 이해하기 힘든 발언이었다. 그렇다고 블랙과 관계된 자는 절대 아니었다. 모습을 드러내고 계약 운운하면서 행동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런데 말입니다. 질문은 하나였는데요? 제가 바쁜 사람이라서…….”
쉐인이란 자는 아무리 봐도 너무 뻔뻔한 캐릭터다. 진월 또한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우리와 같은 편에 서 있나?”
“흐음~ 꼭 답을 바라시나요?”
진월은 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같은 편은 아닌 것 같군요. 결코 같은 편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뭐, 적의 적은 동지가 될 수도 있으니……. 그건 좀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모든 것은 구름을 타는 분께서 결정하실 일이랍니다.”
이건 무슨 손오공도 아니고 틈만 나면 구름을 타는 분이란다. 대답 자체도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말이다. 적이면 적이지, 무슨 적의 적은 동지란 말인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들의 정체를 묘하게 감추고 있다. 진월은 어떤 확신을 갖고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
“문을 통해 온 존재들 아니냐? 이 말을 묻고 싶은 거지요?”
“귀신이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쉐인이란 자 자체가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것 같다. 진월의 고개가 약간 갸웃해진다.
“하하~ 그렇게 고민하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신적인 존재는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같으니까요. 그를 표현하는 명칭만 다를 뿐…….”
“…….”
쉐인의 황당한 말에 진월조차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신적인 존재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쉐인은 상당히 거친 싸움을 했지만 여유롭다. 얼굴에 묻어나는 미소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저 때문에 그 분이 깨어나셨다고 볼 수도 있지요. 물론 직접적인 개입은 불가(不可)가 원칙입니다. 그리고 궁금해 하시는 것처럼 저 또한 문(門)의 존재를 알고 있고요. 이 정도면 답이 되셨을까요?”
“마법사 같은 존재가 정말 있을 줄은 몰랐군.”
“마법사라……. 보기에 따라서는 마법사일수도 있겠군요. 약간 다르기도 하지요. 너무 많은 것을 알려드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직업의 정식 명칭은 스펠캐스터(Spell caster)라고 불리지요.”
“그래서 특이하게 룬(Rune)어에 의한 구현을 하는 것이었군.”
“멋이지요.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 이만…….”
“일단은……. 하지만 그 자는 놓고 가기 바란다.”
“그건 좀 힘들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계약이 남아있어서 말이지요. 더구나 제 계약도 아니고 구름을 타는 분의 계약이란 말입니다. 바로 그 분의 군…….”
말을 하던 쉐인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한다. 진월의 시선도 그곳을 향한다. 창민과 민서가 도착해서 뛰어오고 있다. 쉐인은 그 중 민서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쉐인의 입술이 달싹인다. 진월은 그 모습에 집중한다.
“오데……뜨?”
“오데뜨?”
“하, 하하~ 아닙니다. 오데서 갑자기 나타나셨나 하고요.”
“…….”
농담하듯 말을 돌리는 쉐인의 표정이 왠지 우울해 보인다. 더 이상의 용건이 없다는 듯 쉐인이 갑자기 돌아선다. 돌아서는 순간 그의 중얼거림이 주변에 낮게 퍼진다.
“일루셔니스트(Illusionist)! 나에게 기쁨과 아픔을…….”
쉐인의 모습이 흐려지고 진월은 그런 쉐인을 향해 쇄도한다.
말끝이 흐려짐과 동시에 쉐인의 모습도 사라졌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진월 또한 쉐인이 사라진 자리에 가만히 서있다.
일은 계속 꼬이고 커져간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자가 등장했다. 뭔지 모르지만 무언가가 시공간을 뒤틀고 있었다. 모두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고 만들어진 현상이었다.
- 작가의말
저녁에 한편 더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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