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 장 하크 주술사 마고의 등장.
진월과 블랙은 어둠을 뚫고 이동 중이다. 비상 통로는 한 사람이 통과하기에 적당한 크기다. 빛이 들지 않아 횃불이 없이는 앞을 볼 수 없다. 동물과 같은 진월의 시력이 아니라면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어둠이다. 진월이 갑자기 속도를 올린다.
“추적자들이 붙었다. 상당히 빠르다.”
“벌써요?”
“마치 알고 움직이는 것 같다.”
“설마요.”
블랙이 말을 하고나서 갑자기 움찔 멈춰 선다. 진월이 알고 휙 돌아본다. 진월은 움직이는 중에도 여러 곳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왜 그러지?”
“바람이…… 속삭여요.”
“……?”
진월이 이해하기는 힘든 말이다. 순간 정신이 돌았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진월이 별 소리를 다 한다는 듯 돌아서며 말한다.
“따라 잡힐 수 있다. 쉬지 마라.”
“네…….”
블랙은 수긍하며 따른다. 그런 그녀의 귓가를 계속 간질이는 목소리가 있다.
‘조심해야 해요. 조심, 조심…….’
“알고 있다고!” 블랙의 입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다.
“쉬지 말라는 말이 그렇게 기분이 나빴나?”
“아, 아니에요. 정말 속삭인다니까요.”
“피를 먹은 부작용이 저렇게 나타나나?”
“사람이 말을 하면 진지하게 좀 들어요.”
“더 늦기 전에 돌아가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군.”
“뭐가 늦어요?”
“미쳐버리기 전에…….”
진월은 본인이 할 말만 한 후 다시 앞서 달린다. 블랙은 어이가 없다. 하지만 미적거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진월의 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블랙도 뛴다.
얼마나 달렸을까? 상당히 많이 달려온 느낌이다. 어두운 곳을 뛰다 보니 시간과 거리 감각이 소실되었다. 블랙은 뛰는 도중에도 미칠 지경이다. 귀를 간질이는 속삭임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해도 믿어주질 않으니 더 짜증이 치민다. 그때!
‘조심!’ 경고성이 블랙의 뇌리를 때린다.
쐐액! 뭔가가 대기를 가르며 날아온다. 블랙도 신속하게 반응한다. 뒤를 향해 풍벽을 구현한다.
티잉! 풍벽에 부딪친 뭔가가 벽으로 튕긴다.
콰곽! 화살이 벽에 깊숙이 박힌다.
드드드등~ 화살의 깃이 날아온 힘을 해소하기 위해 심하게 흔들린다. 진월과 블랙의 시선이 동시에 화살에 집중된다. 진월은 뒤를 본다. 통로가 직선이기는 했지만 뒤를 쫓는 자들의 기척은 아직까지 멀다. 직선거리로 최소 200미터 이상은 날아왔다는 느낌이다.
“대단한 자들이군.”
“…….”
블랙은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한다.
진월의 두 손이 양 옆의 벽에 박혀든다. 벽은 마침 돌로 된 구간이다.
콰드득~ 양 옆의 벽이 마치 두부처럼 잘려 나온다. 타고난 신력에 영력까지 더해 바위를 잘라냈다. 손짓 두 번에 통로는 1미터 두께의 바위로 막혀버렸다. 돌아서는 진월의 뒤로 소음이 들린다.
콰곽!
투툭! 1미터 두께의 바위를 꿰뚫고 나온 화살의 촉이 보인다. 석회질이 많은 바위기는 했지만 그걸 뚫는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두 발 연속이다.
“오래는 못 막을 것 같군. 가지. 얼마 남지 않았다.”
“무서운 자들이군요.”
“난 네가 미칠까 봐 더 무섭다.”
“…….”
휙! 진월은 할 말만 한 후 몸을 날린다. 블랙은 어이가 없지만 꾹 참고 뒤를 따른다. 지금은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느껴지는 바람이 달랐다. 습한 동굴 속의 공기가 아닌 약간은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진월은 멈춰 서지 않는다. 분명 시야는 막혀 있지만 서지 않고 그대로 돌진한다.
우둑! 진월의 주먹이 강하게 쥐어진다. 대기를 가르며 뻗어나간다.
우웅~ 대기가 진동을 하며 울음을 토한다. 금빛 영사로 만들어진 권영이 통로를 밝히며 앞으로 뻗어나간다.
콰아앙~ 후두두둑~
비상 통로의 출구를 막고 있던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진다.
바위가 부서지며 먼지가 피어오름에도 진월은 멈추지 않는다. 그대로 밖으로 내달린다. 뚫린 통로로 빛과 바람이 새어 들어온다. 뒤를 따르던 블랙이 바람의 속삭임을 다시 듣는다.
‘조심하세요. 누군가 당신을 노리고 있어요.’
“넌 누구지?”
‘저요? 호호호! 제가 누굴까요?’
“장난치지 마! 난 정말 네가 누군지 궁금하니까.”
‘전 하나이기도 하지만 여럿이기도 해요. 만물이 살아가려면 꼭 제가 있어야 하기도 하고요. 전 당신의 존재를 느꼈을 때 자연의 법칙이 무너진 줄 알았어요. 이 세상에 바람의 정령왕이 둘일 수는 없으니까요.’
“바람의 정령왕?”
‘모르세요?’
“몰라. 무슨 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됐어. 지금은 바쁘니까 도망가지 말고 있어 봐.”
‘전 세상 어디에나 있답니다. 제 동료들도 이미 당신의 존재를 알아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걱정을 한다고 그래? 그나저나…….”
블랙은 진월의 뒷모습이 먼지를 뚫고 사라지는 것을 본다. 밖에는 분명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알고 저러시는 거겠지.”
블랙의 말대로 진월은 밖에 매복하고 있는 자들의 인기척을 이미 느꼈기에 주저 없이 몸을 날리고 있었다.
* * *
절벽 위에서 비상 통로의 입구를 막고 있던 바위가 폭발하듯 터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자가 있다. 갈색의 로브를 입고 있는 자다. 로브의 모자까지 깊숙이 눌러쓴 모습이 암울해 보인다. 로브 또한 약간은 낡아 보인다. 로브 위에 가죽 갑옷까지 덧대 입은 것이 좀 특이해 보이기도 한다. 더 기괴한 것은 작은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목걸이며 줄들을 몸에 치렁치렁 매달고 있다는 점이다. 목걸이에는 작은 원숭이의 두개골이 정 중앙에 걸려 있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부서진 바위조각들 하나하나가 암기가 되어 비산하고 있다.
무기와 방패를 들고 있던 자들은 공격하려다가 오히려 공격을 받는다. 활을 들고 있던 자들도 화살을 재고 있다가 방패를 든 자들 뒤로 숨는다.
바위 조각들이 쇄도한다.
퍼퍼퍽!
“크윽!”
“억!”
바위 조각에 맞아 쓰러지는 자들의 숫자가 꽤 된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주비엘이란 자의 곁에 서 있던 하프와 같았다. 바로 하크 일족인 모양이다.
절벽 위에 서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자는 하크 일족의 주술사인 마고란 자다. 하크 일족 중 가장 나이가 많고 현명한 자였다. 다크 엘프의 피가 섞이며 정령술과 마력에 소질이 있는 자들이 제법 있었다. 그 중 가장 뛰어난 자였다. 수명 또한 길어져 대부분 200살 이상은 살아간다. 주술사 마고의 나이는 이미 350살이 넘었다.
일반적인 하크라면 죽었어야할 나이지만 아직까지 정정하게 살아 있었다.
진월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는다. 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자들이 스물에 활을 든 자들이 열정도 된다. 그 중 열 정도가 바위 조각에 피해를 입었다. 치명상을 입은 자들도 있지만 행동에 약간의 제약만 입은 자들도 있었다.
쿠웅! 진월이 착지를 강하게 한다.
쩌적~ 우지지직~ 진월이 떨어져 내린 착지점 주변으로 대지가 쩍쩍 갈라진다. 마치 거미가 줄을 치듯 대지의 갈라짐은 쭉쭉 뻗어나간다. 약간의 무력시위다. 진월의 시선이 착지하자마자 위를 향한다. 그의 본능적인 감각이 가장 강한 자를 찾아 움직인 것이다.
로브의 모자를 덮어쓴 마고의 입술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간다. 그의 커다란 송곳니가 슬쩍 비친다. 나이를 먹어 누렇게 변색된 송곳니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만든다.
“주비엘님께 바치기엔 더할 나위 없는 놈들이로구나.”
마고의 말에 대한 대답은 진월의 뒤에서 들린다.
“내가 물건도 아니고 바치긴 뭘 바쳐! 그래. 저 사람은 놈이니까 바쳐도 돼. 하지만 난 안 돼.”
후우웅~ 블랙의 말소리에 바람이 폭풍처럼 휘몰아친다. 그녀가 화를 내자 대기도 요동을 친다. 진월이 블랙에게 조용히 말한다.
“네 말대로 내가 바쳐질 테니 넌 직선으로 뚫고 움직인다.”
“말이 그렇다는…….”
“급하면 사람은 본심이 나온다.”
“정말 이럴…….”
“이럴 거다.”
“밴댕이 소갈머리…….”
훙! 진월이 휘몰아치는 바람을 뚫고 움직인다. 블랙의 말은 이미 바람 소리에 묻혔다. 하지만 진월이 듣지 못했을 리 없다. 뛰어난 청력이 이럴 때는 좋지 않다.
이미 그의 몸에는 영사의 갑옷이 형성되어 있다. 한 단계 진보한 모습이다. 전신을 보호하는 검은색 영사에 갑골문자와 비슷한 문양의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금빛의 영사로 수놓아져 있다. 예전 진월이 노래한 글귀지만 진월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문구들이 뜻하는 바를 어렴풋이 이해하는 중이다.
영사의 갑옷도 형태가 아주 뚜렷해졌다. 아니 디자인이 멋져졌다고 표현해야 맞겠다. 아마도 영사가 영강의 단계로 접어들며 강성이 더 좋아진 것이 이유인 것 같다. 팔꿈치에는 날카로운 영사의 칼날도 새로 달렸다. 얼굴을 가린 가면은 흑빛과 금빛이 서로 엉키며 변화를 준다.
뻗어나가는 진월의 왼손이 주먹을 쥔다.
촤르륵~ 흑빛과 금빛이 섞인 쇠사슬이 쭉 뻗어나간다. 그 쇠사슬의 끝에는 거대한 방패가 달려있다. 흑빛 방패 형상이 틀을 이루고 금빛 영사가 보호막처럼 덮여있다.
날아오는 방패를 보며 하크 일족들 중 뛰어난 자들은 방패를 들어 막는다.
콰앙! 진월의 방패와 그들의 방패가 부딪친다.
우둑 우두둑~
“컥!”
“끄악!”
방패를 들고 있던 손과 팔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신음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그들의 몸은 충격에 뒤로 날려간다.
후웅~ 퍼억~ 우당탕탕~
방패를 든 자들의 뒤에 서 있던 궁수들까지 같이 어우러져 바닥을 뒹군다.
쉬쉬쉭~ 공격을 받지 않은 자들이 화살을 날린다. 제법 강한 궁을 지녔는지 화살의 속도가 보통이 아니다. 아마도 다크 엘프들의 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통로 안에서 200여 미터를 날아온 바로 그 활이다.
화살이 빨래줄 같은 선을 그리며 진월의 등을 노리고 날아든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화살들의 앞으로 떨어져 내린다.
푸푸푹~ 화살들이 뭔가에 박힌다.
화살들의 앞에는 블랙이 서 있다. 그녀의 손은 전방을 향해 펼쳐져 있다. 손의 앞에는 방어 기술인 공벽이 펼쳐져 있다. 바람과 바람의 사이로 진공의 공간이 펼쳐지는 기술이다. 화살은 첫 번째 바람은 뚫었지만 진공의 공간에 갇혀 있다. 블랙의 반대 손이 앞으로 힘차게 펼쳐진다. 그에 따라 공벽에 박혀있던 화살들이 모조리 주인들에게 날아간다.
쐐쇄색~ 날아온 속도의 배는 되는 속도로 되돌아간다. 바람의 힘까지 가미되어 있다.
푸푸푸푹~
“컥!”
“커억!” 하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간다. 그 모습을 위에서 지켜보던 주술사 마고의 얼굴이 굳어진다. 진월과 블랙의 능력이 그의 생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주술사 마고의 두 손이 들린다. 한 손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스태프가 들려 있었다. 스태프의 머리 부분에는 정교하게 가공된 붉은 마나석이 박혀 있다. 붉은 마나석이 빛을 발한다. 그의 입도 쉼 없이 움직인다. 뭔가를 읊조리고 있었다. 그의 감겨졌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스태프의 마나석과 같은 붉은 광망이 그의 눈에서 쏘아져 나간다.
“모두 뒤로 물러라.”
그의 명령에 하크 일족이 모조리 뒤로 물러난다.
두드드드~ 갑자기 지면이 흔들린다.
쩌저저적~ 가뭄에 땅이 갈라지듯 지면이 쩍쩍 벌어진다.
주술사 마고의 입이 열린다.
“샌드 웜(Sand Worm)!”
쿠아아아~ 지면을 꿰뚫고 두 마리의 거대한 모래 벌레가 튀어나온다. 바위와 흙으로 만들어진 마법 생물이다. 뱀처럼 기다랗고 쩍 벌어진 입에 돋아난 이빨은 가시처럼 뾰족했다.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며 진월과 블랙을 삼키려 돌진한다.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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