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장 윙슈트!
구석진 어둠 속에서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걸어 나온다. 광택이 나는 검은 지팡이를 짚고 있다. 한쪽 다리가 약간 불편해 보인다. 유리창 앞까지 다가온 남자의 모습은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깔끔하고 늙었음에도 준수하다. 바로 IUC(IMMORTAL UNION COMPANY)의 회장인 이연후다. 민서가 갇혀 있는 룸의 유리창 앞에 서 있다. 그의 곁에는 전철 부장의 모습도 보인다.
침대에 누워 있던 민서가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탈출을 감행한 여파가 아직 다 가시지 않은 모습이다.
전철이 유리창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다.
“탈출을 감행했다지?”
“…….”
민서는 전철이란 남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분명 그가 두드린 유리창의 부위가 금이 가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상대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다시 말한다.
“대단했더군.”
“실패한 것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네가 상대한 자들이 대단한 자들이지. 쉽게 당할 자들은 아니거든.”
“그렇지.”
이연후 회장이 동의한다.
“그나저나 이곳도 노출 되었으려나?”
“실력이 되는 자들이니…….”
“충분히 가능성은 있겠지?”
“그렇습니다.”
“혹시 모르니 경계를 강화하도록 하지. 그런데 나 과장은?”
“동해 3공구에 가 있습니다.”
나 과장은 바로 블랙이다.
“9번째지?”
“그렇습니다.”
“진척은 있는가?”
“특이점이 발견되어 가기는 했습니다만…….”
“특이점이라……?”
“네. 공간의 균열이 보인답니다.”
“그래? 어떤 모습이지?”
“아무래도 봉인에 금이 간 것 같답니다. 균열의 틈새로 타천(他天)이 보인답니다.”
“그런 경우는 처음인 것 같군. 보이는 곳은?”
“…….”
전철이 처음으로 민서의 눈치를 본다.
민서를 앞에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야 조심하는 모습이다.
전철이 회장의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속삭인다. 회장의 눈썹이 슬쩍 들린다.
“처음이군.”
“그렇습니다. 회장님께서 원하시던 것과 직접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승희가 직접 간 이유인가?”
“그렇습니다.”
둘의 대화는 그렇게 끝난다. 시선은 다시 민서를 향한다. 회장이 민서를 향해 묻는다.
“생각의 변화는?”
“…….”
“고집이 세군.”
“…….”
“대답하지 않아서 너에게 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다. 시간을 많이 줬고 기다려 줄 시간도 많지 않다. 하루의 시간을 더 주지. 내일도 답을 주지 않는다면…….”
회장의 시선이 전철에게 향한다.
“요법을 시행하도록 하지.”
“이지를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만…….”
“적이 되는 것보다는 낫겠지.”
“알겠습니다.”
전철의 시선이 민서를 향한다. 그의 눈에는 뭔가 애석한 빛이 담겨 있다.
회장이 떠나려고 움직이다가 생각난 것이 있는 듯 전철을 다시 본다.
“저번에 저 친구를 잡아온 친구가 용자룡이라고 했나?”
“네.”
“그 친구 쓸 만하더군.”
“그 노인네의 제자이니까요. 현역에 있을 때 투신이라 불릴 정도였습니다. 지금 드러낸 것은 본인 실력의 반도 안 될 것입니다.”
“나과장도 없는데 이쪽에 투입하도록 하지.”
“이미 오고 있습니다.”
“잘했군.”
회장이 슬쩍 웃더니 천천히 걸어간다. 그런데 멀어지는 모습은 상당히 빠르다. 마치 축지법이라도 쓰는 것 같았다.
전철만 남았다. 민서는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제가 탈출하기를 바란 것 아닌가요?”
“…….”
“왜 대답을 안 하시는 거지요. 분명 당신이 두드린 유리창이…….”
“그만하지. 벗어날 수 없다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좋다.”
“당신은 분명 나를 도와주려고 하셨어요. 그렇지요?”
“착각하지 마.”
“착각이라고요?”
“경계를 강화하라는 말 못 들었나?”
“…….”
민서는 답을 하지 못한다. 모든 상황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녀가 탈출하려다가 문을 열었다. 그녀가 어디 있는지만 알고 있다면 충분히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창민의 능력이 있고 위성으로도 살필 가능성이 충분했다. 모든 것은 그녀를 찾고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들 또한 진월의 움직임을 알고 있어야만 가능한 유인책이다.
전철이 피식 웃는다.
“이제야 이해가 되나?”
“어떻게……?”
“의아하겠지. 하지만 우리 쪽의 첩보 능력은 너희보다 훨씬 뛰어나다. 뛰어봐야 부처 손바닥 안인 것이지.”
“…….”
민서는 갑자기 불안해진다. 이들은 자신을 미끼로 함정을 파놓은 것 같았다.
* * *
“저도 데려가셔야 된다구요.”
“안 돼.”
“왜 안 되는데요.”
“험한 곳이다.”
“그걸 누가 몰라요. 저도 군사 훈련 받았습니다. 총도 쏠지 알고요.”
창민이 진월을 상대로 강짜를 부리고 있다.
“쏠 줄 아는 것만으로는 죽는다.”
“왜요?”
“저쪽 요원들 북측 특수사령부 놈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수준은 백오십 미터 목표물 정도는 봄과 동시에 당긴다. 명중률도 구십 프로 이상이다.”
“…….”
창민이 찔끔한다.
“저놈들을 데리고 가는 것도 모험이다.”
목영호와 마명의 조원들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딱히 변명할 말은 없다.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는 흑신우에게도 대판 깨졌으니 말이다.
“그래도…….”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희생될 수도 있다.”
“아직 다 낫지도 않은 탑이 형도 가잖아요.”
“탑은 제 몫을 할 수 있다. 넌 여기서 백업을 해줘야 한다. 우리 뒤를 봐줄 사람도 필요하지 않겠나?”
“…….”
창민은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직접 몸으로 뛰는 것보다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팀을 백업하고 조율해주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었다. 진월이 못을 박듯 마지막 말을 한다.
“돌아올 방법이 없다. 넌 우리가 보낸 자료로 퇴로를 확보해야 한다.”
“예.”
복귀 시 철책을 가로지르는 모험을 하기는 힘들다. 분명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창민이 정말로 해줘야 하는 일이다.
* * *
MC-130 특수전용 수송기가 하늘로 떠오른다. C-130 허큘리스 수송기를 특수부대 수송 임무용으로 개조한 수송기다. 특화된 전자, 항법장치를 갖추고 있으며 고속에서의 인원투하를 목적으로 후방 투하구의 형상도 개조되었다.
진월이 투입될 인원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
“고고도 강하작전이다. 자유낙하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내 꼬리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면 된다.”
“예.”
“일대 일 격투는 되도록 자제한다. 무장을 강화한 이유다. 알겠나?”
“예.”
“눈에 보이는 즉시 사살한다. 여지를 두지마라.”
진월의 말이 뜻하는 바를 알 수 있다. 적진이고 여지를 두었다가는 당사자가 죽을 확률이 높은 작전이기 때문이다.
수송기가 고도에 다다르자 낙하를 준비하라는 빨간 불이 들어온다.
“낙하!”
“낙하!”
진월의 명령에 따라 대원들이 한명씩 낙하한다. 수송기의 뒤에서 작은 전투기가 하나씩 나가는 것 같았다. 특수전 목적으로 특별히 제작된 윙슈트다.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되어 강도가 높고 가볍다. 삼각형의 날개 형태로 만들어졌다. 뒤쪽에는 두 개의 꼬리날개가 달려 있다. 삼각형의 꼭지점 뒤쪽으로 낙하를 위한 별도의 낙하산 가방이 부착된 형태다. 귀여운 작은 전투기의 형상이다.
전투모는 헬멧의 형태다. 헬멧의 안쪽에는 각종 전자 장비가 내장되어 있다. 데이터는 쓰고 있는 고글에 디스플레이 된다. 고글은 열적외선 감지 및 타깃팅 기능, 각 부대원의 시야를 공유할 수도 있다. GPS기능도 내장되어 팀원의 위치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장 또한 최상으로 갖췄다.
마명같은 경우는 흑신우 대원이 가지고 있던 머신 건을 들고 왔다. 그들 입장에서도 처음 본 신무기다. 조원 중 하나는 스웨덴 육군부대에서 운용중인 대전차 로켓인 칼 구스타프(Carl Gustaf)까지 가슴 앞에 안고 있다. 칼 구스타프의 경우 다목적 로켓이다. 인마살상용 고폭탄, 벙커를 겨냥한 이중 목적탄, 건물을 파괴하는 다용도탄과 구조물 파괴탄, 조명탄, 연막탄, 화살탄 등 14개탄을 발사할 수 있다. 그 외에도 K-11 복합소총, 코너샷 등 최신 장비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갖출 수 있는 한 최신으로 최대한 장비하고 온 것이다.
윙슈트 또한 고도 10킬로에서 강하 시 80킬로까지 활강을 할 수 있는 최신의 장비다. 그들은 휴전선 한참 전에 낙하를 시작했지만 충분히 목적지에 도착을 하고도 남는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스텔스 기능이 있어 적들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월이 윙슈트를 선택한 이유다.
강하를 시작한 진월의 귀로 국장의 음성이 들려온다.
[함정일 확률이 이백 퍼센트다.]
“…….”
[지금이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
“후회할 일은 남겨두지 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고집은……. 별 수 없군. 다들 무사귀환하기 바란다.]
“예.”
감청의 위험이 있어 통신이 종료된다.
윙슈트를 입고 침투하는 인원은 총 11명이다. 진월, 강희, 최탑, 목영호 조, 마명 조다. 진월을 선두로 삼각 편대를 형성하며 허공을 가른다. 그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정말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것 같다. 시속 300킬로에 가까운 속도로 활공을 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어둠 속을 날고 있어 적들의 시야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진월의 시야에는 열감지와 GPS좌표 제공으로 정확한 위치의 파악이 가능했다.
슉슉슉슉~
윙슈트를 걸친 채 바람을 가른다. GOP와 GP를 순식간에 지나친다. 오성산의 자락을 타고 넘는다. 그들이 목표한 지점은 진월이 지도에 마킹한 지점이 아니다. 그곳은 낙하를 하기에 적당한 지점이 없었다. 진월이 제공한 좌표를 바탕으로 통제실에서 분명한 위치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인근에 착륙할만한 곳은 목표지점으로부터 4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파라라락~
길쭉한 낙하산이 바람을 안으며 펼쳐진다. 윙슈트를 걸친 채로 자연스럽게 바닥에 안착한다. 낙하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라 큰 어려움 없이 낙하지점에 모두 안착했다. 그들은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맡은 역할에 따라 작업에 들어간다.
1개조는 땅을 판다. 그리고 다른 조는 윙슈트를 분해한다. 공을 들여 만든 것이니 정보의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분 부분 분리해서 땅 속에 묻는 것이다. 모든 일이 끝이 나자 진월의 주변으로 모두 모여든다.
“장비 점검!”
“클리어!”
모두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등에 맨 군장의 크기는 아주 작다. 대신 몸에 두른 무기들은 모두 엄청났다. 가장 가벼운 무장을 한 이가 진월이다. 체격은 가장 크면서 달랑 몸에 맨 무기라고는 K-2C 한 정 뿐이다. 다른 이들은 K-11 복합소총을 기본 화기로 하고 추가로 화기 하나씩을 더 매고 있었다. 군장의 크기가 작다는 것은 작전을 긴 시간동안 행할 의도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화력에 치중했다. 무조건 빨리 치고 빠지겠다는 의미다.
진월이 움직이고 대원들이 따른다.
전방이기에 초소도 많고 경계 병력도 만만치 않은 곳이다. 진월은 적들의 움직임이나 주시 방향을 잘도 피해서 움직인다. 경험이 많기에 취할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런 능력 때문에 작전 성공률 또한 높았을 것이다.
한 시간여를 이동한 끝에 그들이 목표로 하는 지점에 도착했다. 진월이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전방을 주시한다.
- 작가의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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