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의 비밀 23 – 경멸의 도시
연옥의 비밀 23 – 경멸의 도시
'여기쯤인가? 쳇 누가 이딴 곳에 던져 놓은 거야?'
【연옥이 처음 만들어질 때 메타킷의 몸체가 빨려 들어가 흩뿌려진 것 같습니다. 누가 숨겨 놓거나 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늪이다. 끝도 보이지 않는 늪 속에서 메타킷의 왼팔을 끄집어 올렸다.
경멸의 도시는 도시라기보다는 지역이라고 말해야 하지 싶다.
인간이 밀집된 도시가 있긴 한데 그것보다 수백 배는 더 넓은 초원과 숲과 늪지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소규모 마을 단위로 띄엄띄엄 존재한다.
이곳은 과학을 비롯한 신문화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을 거부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 정도랄까?
이곳이 경멸의 지역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지 여기 사람들의 이기주의적 사고에 따른 무조건 남 탓이라고 사고를 하는 사람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고로 여긴 소수로 이뤄진 고립된 생활을 즐긴다. 경멸할 대상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거니까.
언노운이 왼팔을 접합하는 동안 주변 경치를 살폈다.
창조주의 힘. 태고신의 힘인 사념으로 만들어진 곳. 즉 메타킷의 아스트랄계가 폭주하면서 데엑마가 창조의 샘이라 불렀던 창조의 사념이 흘러 들어와 그것을 야훼가 일시적으로 차원 안에 가뒀고 그 차원이 바로 연옥이 된 셈이다.
그리고 십이사도는 태고신의 사념을 이용해 각자 맡은 구역을 꾸몄다. 창조의 능력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니까.
실물과 똑같은 환경. 지구의 대기와 거의 흡사한 성분, 중력도 일치하고 심지어 환경 변화도 가능하다.
무생물에서 생물체까지 뭐든 창조해 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연옥이다.
다만 초기 연옥을 만들 때 쏟아져 나온 태고신의 사념은 무한이 아니라 유한이다. 십이사도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연옥에 문젯거리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복구하는 데 창조의 힘을 사용해야 하니까.
깡 시골에 갔을 때 맡을 수 있는 풋풋한 풀냄새. 늪이라 그런지 수중 이끼 냄새에 진득한 흙냄새까지 섞여 있었다.
무수한 토종 미생물, 곤충, 수중 생물, 말 그대로 지구 천연의 늪 생태계 그 자체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물론 대형 수중 생명체는 없다. 즉 인간을 해칠 만한 크기의 생명체는 없으며 그나마 개구리 정도가 몇 마리 돌아다닌다.
생명 창조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기에 대형류는 힘들고 아주 극소형 생명체만 무에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이들을 유지하는데도 에너지가 소비되니까.
이 생명체는 어차피 창조의 기운으로 만들었기에 번식도 하지 않고 병들지도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자리에 존재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연옥 12구역 데코레이션의 일부다.
레스티아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을 가졌지만, 몸은 기다란 도마뱀이다. 여기서 본 릴림도 그렇고 인간형 릴림 중에 추한 릴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매혹적이며 때로는 고결하기까지 한 아름다움을 가진 것이 릴림이다.
레스티아 또한 몸은 도마뱀인데 여인의 머리는 어찌나 아름다운지 사내라면 절대 눈을 뗄 수 없어 레스티아가 사라지고 난 다음 영원히 그쪽을 쳐다볼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얼굴만 놓고 봤을 때 십이사도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다고 한다. 다만 몸이 도마뱀이라서 아쉬울 뿐이다. 누가 아쉬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완료했습니다】
'수고 했어.'
메타킷은 재워 두고 있다. 얼굴 트고 나니까 이놈이 웬 수다가···. 견딜 수 없을 만큼이어서 재웠다.
머릿속 기억은 모두 훑었기에 얻을 정보도 없다.
메타킷의 몸은 12구역 전체에 흩어져 있다. 누가 무엇 때문에 메타킷의 몸을 절단해서 연옥에 뿌렸는지 아쉽게도 메타킷의 기억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메타킷은 1호 실험체에다가 매우 특별한 존재다. 음, 그는 엄연한 생명체인데 머리만 남아도 죽지 않고 몸체 또한 썩지 않고 연결되어 피를 통하게 하면 다시 되살아나는 것, 이 모든 것은 신성력 때문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소위 말해 메타킷 자체가 신성 유물인 셈인데 겉으로는 표시나 임의로 외부에 신성력을 흘리는 것도 아니어서 이질감 없이 연옥에 묻혀 있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십이사도가 연옥에 와서 처음으로 세상을 창조할 때 메타킷의 조각난 몸은 그 창조의 흐름에 휩쓸려 들어갔고 이렇게 흩어져 있게 된 거다.
신성력은 무한의 생명이다. 천사가 무한인 것도 신성력 때문이다. 메타킷은 신성력으로 보호되고 있어 비록 신체가 잘려도 죽지 않고 썩지 않고 무한의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
에덴 실험체 1호 이것이 메타킷이다. 물론 내가 메타킷의 조각을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메타킷이 발생하는 특수한 주파수.
언노운은 신성력에서 나오는 특정한 주파수라고 한다. 이걸 수신할 수 있는 것은 나노봇이다.
다만 나노봇이 수신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 때문에 검색해 보려면 온종일 날아다녀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메타킷의 몸을 완성하는 것은 순전히 내 행동 하나에 달린 것이다.
여기 왼팔도 며칠, 날아다닌 끝에 찾아낸 것이다.
뭐, 칼데아의 악마가 있는지도 살펴볼 겸 겸사겸사해서다.
시냅스가 가동되고 난 다음 솔직히 말해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뭐든 상상만 해도 결과가 저절로 머릿속에서 딱딱 떠오르는데 가령 128003784X480290480라고 생각만 해도 0.0001초도 안 돼서 답이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지경이다.
사물만 쳐다보기만 해도 용적, 체적, 무게, 구성성분까지 그냥 줄줄이 다 나온다. 세상이 모두 내 눈 안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만 한가지 맹점도 존재하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지식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서 팔짝 뛰는 개구리의 유전자 구조까지 보이지만 정작 개구리 이름은 모른다는 것이다.
뭐, 꼭 알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리고 기억력은 무한대라는 것. 한 번 듣고 보고 맛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는 것.
아스트랄계에서 데엑마와 대화한 것 그때 들었던 것은 전부 복기해서 저장할 수 있었던 것도 시냅스 덕분이다.
다만 여기서 또 아쉬운 것이 내 해마의 한계상 데엑마와 했던 이야기 중에 아주 삭제되어 지워진 기억은 복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는 스냅스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고 순수한 나만의 영역에 있었으니 그 한계로 인한 차이다. 복구된 대화 내용은 약 78% 정도다.
여기엔 언노운이 말해주지 않았던 정보도 상당수 있다. 대부분 데엑마의 과거 시절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서전 임펙트를 일으켰던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 누가! 무엇 때문에! 서전 임펙트를 일으켰는가다.
처음에는 인재라고 생각했다. 모든 우연이 맞아떨어진 인재.
확실한 것은 지금은 인간의 순수한 실수로 일어난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것은 안다.
이건 철저하게 계획된 결과의 산물이다.
천사들이 지구를 포기하고 철수한 의문도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포기를 모른다는 천사들을 생텀 의회에서 철수시켰다고?
이건 정말 말이 안 된다.
아! 말이 되는 경우는 단 하나. 야훼의 직접 명령 빼고는 말이다.
이제 이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내 몫이 되었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다.
공간 확장해 메타킷을 수납했다. 이제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어서 ITB에는 수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게 또 공간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가령 미친 듯한 속도로 날 때도 얘를 데리고 있어야 하니까. 물론 언노운이 제어해 주긴 하지만 이제 파워가 옛날의 그런 파워가 아니고 달 정도의 행성 정도는 간단히 빠개 버릴 수 있는 괴물이 된 이상 강한 상대를 만나서 싸우다 보면 메타킷을 넣어 놓은 공간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진짜 아쉬운 것은 인제 공간을 주무르는 단계여서 차원을 여닫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데엑마의 진짜 힘이 차원의 힘인데 이제 공간 정도 다루는 데까지 왔고 여기서 수련을 더 하거나 기연이 닿거나 하면 차원을 여닫고 최후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아직은 멀고 험난한 길이다. 보라 미카엘이 레이에게 심어 준 기술이 바로 차원을 여닫는 기술이다. 레이는 내 그림자 전체를 차원으로 만들고 그 속에 숨으니 그 어떤 존재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
왜냐하면 레이는 아예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도 완벽하지는 않다. 나와 이야기 나눌 때는 이쪽 차원 즉 그림자로 나와야 하므로 여기서는 예리한 상대에게는 들킬 수가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레이와 대화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주변에 다른 존재가 있으면 더더욱.
12구역에는 칼데아의 악마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내가 찾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직 반 정도 검색했으니 또 찾아봐야지.
메타킷 왼팔은 우연히 걸린 거다. 자그레드도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놈은 루치페르다.
루치페르는 가면의 봉인을 푸는 방법을 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릴리스의 봉인을 지키는 존재기도 하다.
녀석은 분명히 릴리스를 부활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봉인 해결책을 내주려 할 것이다. 이것 또한 명백한 루시퍼의 계획이니까.
루피서 이 새끼는 항상 내 머리 위에서 노는 기분이다. 다른 차원에서 수도 없이 루시퍼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까.
다시 하늘을 날았다. 너무 빨리 날면 언노운의 검색 확률이 떨어지니까 천천히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음속의 백배 가까운 속도다 음, 이 정도 속도면 달까지 약 3시간 10분 정도 걸리는 속도다.
음속의 100배 정도면 빛의 속도 십분의 일 수준으로 나는 건데, 이게 평균 수준이다. 물론 더 전력을 내면 얼마나 더 빨리 날 수 있을지 아직 날아 보지 못해서 측정하지 못했다.
공간이라는 것도 일종의 삼차원 구성체이기에 속도에 따라 가해지는 부담이 증가한다.
만약 차원까지 제어 가능하다면 공간 도약이나 워프도 가능하다.
얼마 전에 아드라멜렉이 쓴 워프는 사실 자신이 이미 만들어 놓은 통로에 불과할 뿐이지 즉시 마음먹은 데로 이동할 수는 없다.
물론 악마나 천사 중에서도 차원 이동 능력을 갖춘 존재는 셀 수 없이 많다. 이 우주는 넓고 실력자들은 널리고 널렸으니까.
한참을 살폈으나 12구역에는 자그레드나 루치페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대놓고 찾아온 메기큘라나 정보 제공 받은 아드라멜렉을 제외하고는···.
만약 마음먹고 숨거나 피해 다닌다면 찾아내기 곤란하다. 이렇게 대 놓고 나 여기 있다고 광고하고 다니는 판국에···.
하늘을 가로질러 미친 듯이 날고 있으니 레스티아도 알고 있을 거고···.
만약 놈들이 작정하고 숨어다니면 정말 난도가 확 올라간다.
십이사도는 연옥이 상처 입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그러니까 내겐 여기 물건들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소중한 얇은 유리잔이라는 거다.
'방법이 없냐? 넌 알고 있으면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아.'
【이 경우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만, 확률에 근거해 워낙 많은 변수가 있기에 퍼센트로 치면 지금까지 경우의 수를 보면 3구역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긴 합니다. 이번 차원에서는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알수 없습니다】
'그렇겠지···.'
'응?'
'혹시 저것들 날 찾아다니고 있나? 움직임 패턴이 나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계산은 확실하다. 공중을 날고 있는 존재가 있다. 내가 워낙 빨라서 아예 따라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잠시 머물 때 내가 있는 쪽으로 오는 것이 확실했다.
"수고스럽게 고생시키지 말고 내가 마중 나가 볼까?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인데···."
-팟
목표가 정해지자 가공할 속도로 날았다. 스냅스의 계산으로 오차율 제로에 가깝게 최단 거리로 목표를 향해 날아갈 수 있었다.
난 어쩌면 신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이 연산 되어 들어온다.
주변 모든 공간과 환경이 벡터화 되어 기억 속으로 쏟아지는데 부담감은 일도 없다. 내가 앞으로 나갈 때 밀쳐질 공기의 양과 밀도, 압력, 온도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계산되어 들어온다.
"헤이, 안녕? 날 찾냐?"
- 작가의말
내일은 제 생일이라서 저녁에는 가족과 오붓한 한 잔을...
하필 크리스마스 담 날이 생일이라
하루 일찍 태어날 걸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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