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와아아아!!”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음성이 들렸다.
사람들이 함성을 내지르는 소리.
그리고 경쾌하게 울리는 총기 격발의 소리.
김재권은 그 음성들을 알람 삼아 잠에서 깨어났다.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소리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궁금하여 창밖을 내다보았다.
“······.”
수많은 군중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일반인들이었다.
무기고를 습격하여 총기를 탈취한 일반인들.
원래 같으면 총기 앞에 이들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의 파괴력은 '강철 신체'를 절대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지키는 전사들 한 명만 출동해도 저 치들은 모두 진압되고 말 것이다.
“으아아악!”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였다.
솜씨 좋게 쏘아올린 총알 한 방에 전사들이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제야 김재권도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자신의 몸에서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속으로 크로노스의 이름도 연달아 불러보았다. 허나 어떠한 반응도 따라 나오지 않았다.
상태창을 열려고 해도, 스킬창을 열려고 해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기분이 되었다.
“이럴 수가······!”
콰아아앙-
그때 김재권의 방문을 박차고 폭도들이 들이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정없이 방 안으로 진입했고 김재권에게로 달려들었다.
“인류를 팔아먹은 원수, 죽어라.”
김재권은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빗발치는 총알과 함께 싸늘한 시신이 되고 말았다.
----
공허의 힘 일부를 빌려 탄생한 존재.
공허의 협약이 맺어지면서 생겨난 존재.
협약 그 자체이자 시스템 그 자체였던 존재.
공허의 사제가 목숨을 잃었다.
동시에 나는 공허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공허를 욕보인 죄로 위대한 자의 지위마저 박탈당했다.
그리고 우리 세계는 저주받았다.
앞으로 우주의 어떠한 인간도 위대한 자의 지위에 오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자’라는 지위가 존재하면 오히려 쓸데없는 분란만 생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그 권능을 획득하기 위해 과열된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티탄엔 잘 다녀왔어요?”
“응, 이번에 내가 어떤 물건들을 가지고 왔는지 한 번 보라고.”
오재호가 물건 목록을 내게 보이며 말했다.
시스템이 목숨을 잃은 그 날.
크로노스의 낫 역시 구축되었다.
시스템을 통한 연결이 사라지니 그들의 힘은 일반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일반인들이 주도한 폭동으로 인해 그들은 모두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갔다.
“어디 보죠.”
시스템은 사라졌어도 공허의 균열마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던전은 여전히 존재했고, 던전 폭발은 언제나 잠재적인 위협으로 남아 있었다.
시스템이 사라진 직후.
신비의 힘을 깨운 나만이 그곳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허의 균열은 어쩌면 세계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오, 이게 말로만 듣던 ‘키클롭스’라는 풀인가요?”
“맞아. 서희 말로는 탈모 치료에 이게 도움이 된다지?”
그래서 나는 내가 획득한 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기로 했다.
확실히 처음 힘을 붙잡는 것이 힘들지 전수해주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내가 신비의 힘을 깨닫기까지는 사실 두 번의 생이 필요했는데. 그들은 몇 년 만 노력하니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주로 과거에 헌터였던 사람들만이 힘을 쉽게 깨달았다. 이미 시스템을 통해 이세계의 힘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오재호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이렇게 신비의 힘을 전수받은 사람들은 예전처럼 던전을 넘나들 수 있었다.
최초의 무역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땅으로부터 신기한 물건들을 수입했고, 우리의 땅에서 기이한 물건들을 수출했다. 이세계의 언어를 배우려는 사람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학자들은 이세계의 물질과 자연법칙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논문들이 쏟아졌다.
오서희 역시 학자로서의 커리를 밟는 중이다. 그녀는 지금 키클롭스의 탈모 치료에 관한 메커니즘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무역상이 된 오재호가 특별히 그것들을 공수해온 것도 그녀 때문이다.
아마 메커니즘을 상세히 밝힐 수 있다면 노벨상감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 참, 그걸 깜빡하고 말 안 했네. 티탄의 위대한 자가 바뀌었다더군.”
“반란이 성공적이었나 보죠?”
크로노스의 야욕이 실패로 끝난 이후.
티탄 내부에서 불만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신장들을 중심으로 반란이 시작되었다. 크로노스는 권능을 사용해 그것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본인의 계약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능력이 거대화인데, 본인의 계약자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래도 다행이야. 이번 위대한 자 ‘주피터’는 우리 세계 인간에게 관용적인 사상을 갖고 있다더군. 그들과 우리 사이의 무역이 서로에게 모두 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크로노스의 몰락을 지켜보니 난 다시 한 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땅에도 위대한 자라는 존재가 있었다면. 어쩌면 이런 혼란들이 역사를 이어 진행되지 않았을까.
차라리 어느 누구도 이 땅의 주인이 되지 않는 것이 백배는 나을 테다.
“그건 그렇고, 청첩장은 언제 줄 건데?”
오재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책상을 두드렸다. 심지현과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실실 웃었다.
“흐흐, 곧 드려야죠.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그렇게 모든 사건들이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인류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잘 모르겠다.
허나 이전과 다르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자연 너머의 신비를 찾았고, 공허 모든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니까.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인간은 또 잘 적응해낼 것이다.
최초로 던전이 생기고 헌터가 나타났던 그 때처럼.
- 작가의말
이번 화가 마지막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Commen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