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너머엔
끼야아아아앍!
벨로시랩터들을 터뜨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던전이 폭발하면 개체수가 급증한다. 허니 드넓은 사막임에도 불구하고 놈들이 우글거렸다.
내 주변으로 폭발하는 천벌 스킬 아래 놈들은 싸늘한 시체가 되고 말았다. 꽤나 사냥을 했는지 레벨 190이던 내가 레벨 192가 되었다.
“언제까지 가야 하지?”
발진을 사용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패트리샤가 물었다. 지금 네 시간 째 우리는 앞으로만 나아가는 중이다.
“글쎄. 적어도 아직은 던전 안인 것 같은데.”
벨로시랩터들이 여전히 우글거리는 것을 보니 던전 바깥은 아니다.
뭐, 그것도 사실 추측일 뿐이지만.
던전 끝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그것을 판별할 방법이 내게 있을 리가 없다.
“저기··· 길드장님은 아직 괜찮으신 거 맞죠?”
임우진은 현정환을 업고 달리고 있었다. 그의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임우진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길드장의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우리에게 그의 상태를 물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심지현이 웃으며 임우진에게 대답했다.
임우진의 표정이 재차 밝아졌다.
“하, 제대로 가고 있는 건 맞겠지?”
패트리샤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사실 나도 좀 걱정이 된다.
던전의 구조에 대해선 알 턱이 없다.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 가지 가정은 던전 입구로부터 일정 반경 이내가 던전으로 기능한다는 것. 그에 따르면 한 방향으로만 무작정 달려도 던전 너머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단지 가정일 뿐.
실제 던전의 구조는 마치 리아스식 해안처럼 복잡한 경계를 가질 수도 있다.
“그냥 무작정 가보는 수밖에. 그래도 많이 온 것 같아.”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보통 던전에 들어올 때 가장 깊이 들어온 거리보다도 훨씬 많이 왔다.
이만큼 오면 사실 제한 시간 내에 던전 입구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무작정 앞으로 가는 것밖에 답이 없다. 돌아가면 진짜 사라진다.
휴식은 그만.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또 걸어갔다.
‘이제 몬스터들이 거의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주변을 돌아보니 득실거리던 벨로시랩터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한두 마리 정도.
왠지 감이 좋았다. 던전의 외곽까지 도달한 것 같았다.
“엇, 현민 씨! 저기 뭐죠?”
또 얼마나 걸었을까. 심지현이 저 멀리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과연 무언가가 있었다.
“저건··· 사람이잖아······?”
임우진이 먼저 형체를 확인하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그것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
분명히 우리와 같은 존재의 사람일 순 없었다. 일단 던전에 들어온 사람은 현정환을 제외하곤 단지 우리 넷이었으니까.
던전은 매번 리셋되니 먼저 들어와 있다는 것도 말이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한 가지.
‘이 사람은 마즈다의 사람이다.’
내가 가장 먼저 그 자를 향해 뛰어갔다. 그러자 나머지 세 명도 얼른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이내 우리의 전신을 스쳐 지나가는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마치 수면 바깥으로 나가는 미심쩍은 기분. 결계 엇비슷한 걸 통과한 게 아닐까.
“ekdtlsemfdms snrnwl?!”
그때 우리가 발견한 그 사람이 우리를 가리키며 무어라고 말을 했다. 당연히 우리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자가 상당히 당황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진짜 우리가 던전 너머로 온 건가?”
패트리샤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자 자신의 뒤편을 바라보고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현민··· 저길 좀 봐.”
손가락으로 뒤편을 가리켰다. 그녀를 따라 나도 뒤를 돌아보았다.
‘······진짜, 넘어왔다.’
그제야 우리는 던전 바깥으로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안에서 볼 때는 전혀 몰랐는데. 바깥에서 보니 꿀렁꿀렁한 물결파와 함께 결계가 어렴풋이 보였다. 방금 우리가 통과했다고 느낀 것이 바로 저 얇은 막이었던 모양이다.
“우리 성공한 거 맞죠?”
임우진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도저히 성공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을 성공했다. 그로 인해 우리는 목숨을 건졌다.
지금 그의 등에서 죽어가는 현정환도 어쩌면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tjfak ekdtlsemf wj rufrPdptj sjadjdhs rjsrk?”
우리 앞에 서 있던 이세계의 노인 남성이 자꾸만 뭐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말을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것은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저 자가 뭐라는 거야?”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그러나 바디랭귀지는 이세계에서도 소통할 수 있는 한 가지 수단이었다. 본인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챈 노인이 우리에게 다가오라 손짓했다.
“다가오라는 것, 맞지?”
“그런 것 같군.”
우리는 그에게로 슬쩍 다가갔다. 그러더니 노인은 뒤편을 살짝 가리켰다.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찰칵-
마치 사진기 셔터 같은 소리와 함께 결계 너머가 번쩍 빛이 났다. 그러더니 일순간 고요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설마 방금 본 게 던전 리셋의 순간인가?’
저런 광경을 자아낼만한 사건은 던전 리셋밖에 없었다. 그것을 보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진짜로 우리가 넘어오는 데 성공했다는 것.
그리고 조금만 늦었어도 저 찰칵 소리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겠구나 하는 것.
침이 저절로 꼴깍 넘어갔다.
“wjrl, sjadjdhs rjdi, djEjgrp?”
노인은 결계를 가리켰고, 바닥 아래를 가리켰고, 그 다음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만으로도 대충 그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떻게 저기를 넘어왔냐는 거겠지.
나 역시 바디 랭귀지로 응수했다.
“저도 모르겠는데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노인은 에잉, 소리를 내더니 혀를 쯧쯧 찼다.
다음으로는 따라오라는 듯 우리에게 손짓했다.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고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라갔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갔다.
가는 동안 보이는 것은 단지 바위 사막뿐이었다.
간헐적으로 동물들이 보이긴 했다. 그러나 던전 안에 보이는 몬스터들과는 달리 한없이 순해보였다.
지금 우리가 따라가는 이 노인은 약초꾼으로 보였다. 옆구리에는 바구니를 끼고 있었고 그 안에는 말라붙은 이파리들이 슬쩍 보였다.
“어··· 도시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임우진이 겨우 입을 열었다. 그의 말대로 전방에 도시 하나가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부류의 도시는 아니었다.
지구 역사상 존재했던 사막 왕국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이긴 했지만 어딘가 현대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아랍이나 페르시아적 정취가 묻어났지만 또 중세 유럽의 냄새도 조금 섞여 있었다.
한 마디로 일축하면 어쨌든 이세계의 도시라는 것.
“wjdwl.”
도시를 지키고 있는 병사 한 명이 우리들의 길을 막았다. 병사이긴 했지만 냉병기를 들고 있진 않았다. 아무래도 그 역시 마즈다의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 아닐까.
그는 앞에 있던 노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자꾸만 우리들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잠시 후 병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역시 바디랭귀지로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고개를 까닥거리며 안쪽을 가리키는 걸 보니 따라오라는 뜻인 것 같다.
그를 따라 들어갔다. 도시의 수많은 공간을 스쳐지나갔다.
성문을 통해 펼쳐진 대로.
그 대로 사이로 쭉쭉 솟은 높은 건물들.
왔다 갔다 하는 마즈다의 시민들.
우리는 그 많은 공간 중에서 가장 중앙에 솟은 5층짜리 건물로 들어갔다. 많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아 이른바 시청의 기능을 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야, 대단한 걸?”
아까부터 패트리샤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어떤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지는 다 잊은 모양이다.
심지현 역시 신기하다는 눈동자를 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임우진만이 주변에 집중하지 못한 채 현정환을 신경 쓰고 있었다.
“ek dhkTtmqslek.”
병사가 문 안쪽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역시나 대충 들어가라는 뜻으로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딱히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음에도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내 궁궐같이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그 가운데의 왕좌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설마······.’
앞으로 천천히 걸어갈수록 그 자의 모습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나와 다른 이들이 어느 정도 지점까지 가까워지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도 우리에게 걸어오기 시작했다.
“당신은······.”
그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쓰는 자였다.
“이현민 씨.”
그는 바로 신장神將 크세르크세스였다.
“뭐야··· 저 사람은 하··· 한국말을 쓰잖아?”
크세르크세스의 한 마디를 듣자 임우진이 깜짝 놀랐다. 그것은 패트리샤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쟤는?”
패트리샤 역시 크세르크세스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 말은 크세르크세스가 지금 한국어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
그는 그저 마즈다의 언어로 이야기를 한 것뿐이며 시스템의 필터를 걸쳐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되는 것뿐이다.
다른 마즈다의 주민과 달리 그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다.
신장.
신장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시스템의 매개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신들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거죠?”
“그냥, 던전을 넘어 왔습니다.”
“던전을··· 넘어 왔다고요? 저 뚫을 수 없는 결계를 넘어서요?”
‘뚫을 수 없는 결계’라고 하면 오늘 약초꾼 노인을 만났던 장소에 있던 그 결계를 이야기하는 거겠지.
그런데 왜 뚫을 수 없다는 걸까. 우리는 아무런 무리 없이 뚫고 나왔는데.
“믿을 수 없군요. 공허 균열이 생긴 이후, 저 결계를 넘어서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마즈다의 다른 사람들은 나갈 수 없는 건가요?”
“네. 저 밖으로 나가려는 다른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죠.”
그런가. 그러면 저 결계는 안과 밖이 다른 성질이란 건가. 안에서 밖으로 나올 순 있어도 밖에서 안으론 들어갈 수 없는 구조.
그렇다면 나중에 나갈 수는 있는 걸까?
“사실 저조차도 저 밖으론 나갈 순 없지요. 그래서 현민 씨가 수제자 시련을 할 때도 제가 환영을 통해서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건가. 다리우스도, 크세르크세스도, 심지어 자라투스트라도 직접 던전에 찾아오지 않은 것이. 그냥 그것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당신들은 저 결계를 넘어 다닐 권한이 있는 모양이군요. 우리 마즈다의 사람들과는 달리.”
“단순히 결계의 안팎의 성질이 다른 게 아닐까요?”
“아닙니다. 환영으로나마 안으로 들어가 본 저로써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저는 안에서도 바깥으로 나올 순 없었습니다. 저 결계는 저를 비롯한 마즈다의 존재들에겐 절대적인 어떤 것이죠.”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위대한 자의 신장조차도 알지 못했던 결계의 비밀. 그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오직 우리 세계의 인간만이 저 결계를 통과할 수 있다.
마즈다의 존재들은 저 결계를 넘을 수 없다.
그렇다면 다른 공허의 지역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티탄, 안개, 발퀴레 등 어떤 땅의 존재들도 결계를 넘어 던전엔 들어올 수 없다.
자라투스트라가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각각 공허의 지역들이 독립적이라는 말. 어떤 존재도 다른 공허의 지역에 간섭할 수 없다는 말.
그런데 던전에조차 그것이 적용될 줄은 몰랐다.
“이거 머리가 좀 복잡하네요.”
크세르크세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수제자 시련 때, 크로노스가 왜 인간 세계를 노리려 했는지 물어본 적 있지 않던가요?”
“네, 기억납니다.”
“만약 크로노스가 당신들은 저 결계를 넘어 다닐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면···.”
그는 고개를 저으며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가 인간 세계를 노리려는 목적은 분명하군요.”
일동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을 통한 공허 각 지역의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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