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에 도착하다
심지현의 도제 시련이 모두 끝나고 난 뒤.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일단 당연하게도 심지현의 성장 잠재력이 월등히 올라갔다.
프레이야가 심지현을 아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와의 대화를 통해 크로노스 세력과 맞서 싸우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의 모든 스탯 수치에 50의 상승이 있었다.
힘이나 민첩만 놓고 보면 나보다도 높은 수치가 된 것이다.
게다가 총 여덟 개의 스킬을 획득했다.
그중엔 일반적인 스킬도 있었지만 ‘부활’과 같이 규격 외의 스킬도 있었다.
두 번째로 달라진 것은 나와 심지현의 관계였다.
이제껏 나와 심지현의 관계는 외부에서 볼 때 사냥 동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까지 놓고 보면 내가 그녀를 착취하는 관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진심은 이미 그것이 아니었다.
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결국 어제를 기점으로 우리는 연인 관계가 되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한가로운 점심시간.
나와 심지현은 지금 라싸 시내의 한 식당에 앉아 있다.
“맛있게 드세요.”
점원이 어설픈 영어를 사용하며 음식들을 날랐다.
고소하고 콤콤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흐흐, 맛있겠네요.”
심지현이 젓가락을 들어 올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전과 다른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이제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부터 좀 노골적이게 된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흘러나오는 미소를 주체할 수 없었다.
“지현 씨,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음, 뭐예요?”
“혹시 프레이야가 어제 지현 씨한테도 따로 메시지를 보냈나요?”
말이 끝나자마자 심지현의 눈동자가 슬며시 좌측으로 돌아간다.
민망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사실 맞아요, 흐흐흐. 혹시 현민 씨도···?”
“저도 받았어요.”
“같은 내용··· 이겠죠?”
“그렇겠죠.”
서로를 보며 실실 웃었다.
내 예상이 맞았던 것 같다.
프레이야가 내게 메시지를 보냄과 동시에 그녀에게도 보냈던 것이다.
잘 어울린다느니 뭐니 하는 말들······.
그녀의 오지랖은 결국 유효하게 먹혀든 것 같다.
이토록 관계의 급변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참, 제가 그걸 말 안 했네요.”
“뭔데요?”
“제가 티베트에 오래 머물 거라고 했던 말 기억나죠?”
“그럼요. 그래서 짐을 이렇게 많이 챙겨왔는걸요.”
“사실 그 이유도 제가 회귀 한 사실과 관련이 있어요.”
“무슨 사건이라도··· 일어나나요?”
심지현이 긴장한 낯빛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이다.
“레벨 98짜리 몬스터를 잡으러 갈 거예요.”
“······네?”
어안이 벙벙하였는지 안 그래도 큰 두 눈이 동그래졌다.
이걸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까 나쁜 일이라고 해야 할까.
분간할 수 없는 표정인 것이다.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라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 수천 마리를 잡을 거예요.”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녀는 드디어 이 사건이 나쁜 일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아니 현민 씨, 그게 가능하기나 한가요? 아무리 현민 씨가 강하다고 하지만···.”
“흐흐흐, 제게 다 생각이 있어요.
나는 그녀 쪽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기울이면서 내 계획에 대해 말했다.
이틀 뒤에 던전 폭발이 일어난다는 사실.
이미 그 장소에 데려다 줄 사람을 섭외해 놓았다는 사실.
스킬과 아이템을 어떻게 활용하여 라르고 드래곤을 잡을 건지에 대한 이야기.
심지현의 스킬이 그 과정에서 어떻게 녹아들 건지 하는 이야기 등등.
그녀는 생각보다 치밀하게 짜인 나의 계획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음, 그럴듯하네요.”
“그치요? 이거 단번에 성장세를 끌어올릴 절호의 찬스라고요. 게다가 드래곤 코인이 가격이 얼만데요.”
“좋아요! 한 번 잘 해보자구요!”
심지현이 완전한 찬성의 뜻을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운 나머지 당장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좋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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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예정대로 사진의 위치를 가르쳐주었던 식당 주인의 안내를 받았다.
영어가 어려웠던 탓에 그의 아들도 동반했다.
그들 팀이 차를 타고 앞장섰고, 우리는 뒤에서 렌트카를 타고 그들을 따라갔다.
어느 정도 들어가니 차량 통행이 불가한 곳이 나왔다.
그곳에서는 그들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들어가야만 했다.
라싸에서 출발시각이 새벽이었는데 어느덧 해가 지려고 하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장엄한 기운이 깃들어 있는 산들.
그 사이로 펼쳐진 평원과 호수.
분명 이곳이 내 시스템 상에 저장되어 있던 그 이미지와 일치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는 소용돌이치는 모양의 던전 입구가 있었다.
식당 주인은 그 광경을 보며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어라 지껄였다.
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 아들에게 물었다.
“아버지께서 무어라고 하시던가요?”
“아··· 이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던전이 생겼다고 감탄하셨어요.”
“그렇군요. 감회가 남다르실 만하군요.”
“새로 생긴 던전인가 보네요.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을 걸 보니.”
난 그에 대해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멀뚱히 산 너머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자 아들이 무안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언제 저희가 데리러 오면 될까요?”
“아, 필요 없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나갈 수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만 가볼게요.”
아들이 등을 돌리며 식당 주인을 재촉했다.
그리고는 저 멀리 멀어지기 시작했다.
‘잠깐만?’
난 그때 속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냈다.
생각해보니 이곳 티베트의 특별 던전법 규정에 따르면 던전을 본 사람은 던전을 반드시 신고해야만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사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신고를 할 경우 죄를 면할 뿐 아니라 포상도 받는다.
이 법은 일반인과 헌터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이들을 이대로 보내선 안 된다.
그렇다간 던전 위치를 협회에다가 알릴 수도 있으니까.
난 황급히 그들에게 뛰어갔다.
“잠시 만요!”
그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죠?”
“혹시 이 던전을 발견한 일을 비밀에 부칠 수 있을까요?”
“네? 하지만 포상금이 있어서 좀···.”
그들은 형사 처분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도 그들이 이곳에 왔다 갔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할 테니까.
다만 포상금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금액이 꽤 되었기 때문에 그들도 포기하긴 아까울 것이다.
“제가 발견 포상금의 세 배를 쳐드리겠습니다.”
“진짜요?”
“이 자리에서 드리죠.”
나는 인벤토리에서 음료수 박스 하나를 꺼냈다.
그들은 의아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그냥 음료수 박스가 아니다.
이 안에 현금 다발이 잔뜩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을까봐 미리 환전해둔 것들이었다.
아들이 그것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세 배는 아니고 딱 포상금 정도인 것 같은데.”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일부러 그런 것이다.
나머지는 나중에 지급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세 배를 주고 보내면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준 돈도 꿀꺽하고 포상금도 꿀꺽하면 더욱 이득이므로.
물론 물귀신 작전을 쓸 수도 있겠지.
그들이 신고를 하면 내가 검거될 거고, 그때 내가 그들에게 안내를 받았노라 진술하면 되니까.
허나 나는 이곳에서 외국인이었다.
불리한 상황을 굳이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취한 전략은 나중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신고를 하지 않고 기다리면 나중에 포상금의 두 배를 더 획득할 수 있다는 기대감.
“나머지는 나중에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전화번호 가지고 계시죠?”
“아···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들과 식당 주인은 음료수 박스를 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산비탈을 내려갔다.
뒤탈도 막아 놓았으니 이제는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던전 입구 앞으로 다가갔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중국 티베트 제11던전]
- 레벨 : 10
- 제한시간 : 3시간
- 인원제한 : 30명
정보만 확인하려고 했기 때문에 지금 들어가지는 않았다.
‘10레벨이라······.’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내 현재 레벨은 71에 불과하다.
그런데 내가 지금 상대하려고 하는 몬스터인 라르고 드래곤은 레벨 98.
무려 27의 레벨 차가 나는 것이다.
5레벨 정도 차이 나는 몬스터는 잡아본 적이 많지만.
27레벨의 차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나는 회귀 전에 이런 짓은 꿈도 꿔본 적이 없다.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법사로서 내가 가진 강력함과 상태 이상들.
심지현의 상급 버프.
그리고 훌륭한 아이템들.
잘 버무리기만 하면 충분히 녀석들을 쓰러뜨릴 수 있다.
“슬슬 날이 어두워지는데. 야영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심지현이 오들오들 떨면서 말을 했다.
던전 폭발은 내일 오후 1시이다.
미리 와서 기다리는 게 낫다고 판단해서 오늘 온 것이다.
그래서 진작 야영 준비물을 다 챙겨 놓았다.
“그래야겠네요.”
인벤토리에서 야영에 필요한 도구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다.
텐트부터 침낭, 코펠, 버너 등등등.
일사분란하게 설치를 시작했다.
회귀 전 전사 세력에 쫓길 때.
야영은 밥 먹듯이 해봤다.
그래서 이런 일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갖춰졌다.
불 속성 마법 구체를 아주 약하게 사용하여 장작에 불도 피웠다.
차갑던 공기가 따뜻하게 데워졌다.
“음··· 조금 설익긴 했는데 괜찮은 것 같네요.”
심지현이 밥을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다.
이곳은 해발고도가 4000m가까이 되는 티베트 고원.
밥이 잘 될 리가 없다.
그나마 내가 가진 기술을 동원하여 이 정도로 맞춰놓았다.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텐트 안에 들어갔다.
일찍부터 침낭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후···.”
그녀는 정말 많이 추웠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걱정되어 말을 걸었다.
“지현 씨.”
“후··· 네?”
“괜찮아요? 추워 보이는데.”
“좀 춥기는 하네요··· 후···.”
나는 그녀의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갖가지 옷가지들을 위에다 덮어주었다.
서로의 체온이 켜켜이 쌓인 옷 사이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그녀는 좀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흐흐흐,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고마워요.”
그렇게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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