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민
[이현민]
- 레벨 : 140
- 클래스 : 마법사
- 서클 : 3
- 존재 등급 : 수제자
- 마나 : 27000/27000
- 능력치 : 힘(90), 민첩(90), 마력(442+50), 집중력(161+50)
한동안 사냥에 집중하여 레벨 140을 찍었다.
같이 사냥한 심지현의 레벨은 이제 130이 되었다. 그녀 역시 수제자 시련을 통과하였고 엄청난 스킬과 스탯을 보상으로 획득했다.
틈틈이 카르마 바에서 술을 마시며 정보를 캤다. 이제 간부들은 김민훈과 박상필, 구종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렴풋이 추측하기 시작했다. 전성현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에 한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성현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단체로 탈퇴를 한 것이 아닐까. 사람을 붙여 그들을 추적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전진 길드 내부에서도 이미 실종으로 처리가 된 후였다.
전성현은 그래서 그들이 무리하게 사냥을 하다 죽음을 맞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어서 오세요.”
여느 때와 같이 카르마 바에 들렀다. 금요일 늦은 저녁이라 그런지 왁자지껄 사람이 많았다. 난 그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와 같이 앉은 사람들은 모두 새로 독서 모임의 동료가 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다지 레벨이 높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때웠다.
‘으응?’
그때 시야에 들어온 사람 한 명이 있었다. 구석에 새초롬하게 앉아 사색에 잠긴 듯한 얼굴이었다. 간부라도 옆에 있을 때와 달리 한껏 우울감에 빠진 이지민. 난 잠시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나를 슬쩍 보더니 태세를 바꾸었다. 언제 우울한 적이라도 있었냐는 듯 생긋 미소 지었다.
“누구세요?”
그녀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웃고 있으면서도 친절하지는 않았다. 귀찮으니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투였다.
이곳에 일하는 다른 일반인이었으면 꿈도 못 꿀 태도. 그러나 간부의 총애를 받는 이지민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안녕하세요, 이현민이라고 해요.”
나는 그녀의 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소개를 했다. 뻔뻔하게 그녀의 반대편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이 상황이 제법 재미있었나보다. 자기가 이렇게 먼저 철벽을 치고 나서면 어떤 헌터도 쉽게 다가오지 못했는데. 나는 굴하지 않고 옆자리에 앉았던 것이다.
“우울해 보이시네요.”
“우울하다니, 누가요. 별로 그렇지 않은데.”
“아까 전까지만 해도 사색에 잠기신 것 같던데.”
“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긴 했죠. 그래도 우울하진 않아요. 전 언제나 낙천적인 편이니까.”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그녀는 대뜸 들이대는 나의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잠시간 사이를 두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내게 일렀다.
“저기요, 제가 누군지 알아요? 보아하니 여기 들어오신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러다 후회하실 수도 있어요?”
“누군지 잘 알죠. 헌터 레지스탕스 사람이라면 어떻게 지민 씨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아는 사람이 그래요?”
그녀는 내가 더 뻔뻔하게 말대답을 하자 조금 기세가 누그러졌다. 이쯤하면 모두들 나가 떨어졌는데. 이렇게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은 처음인 것이다.
혼자 있을 때 그녀의 표정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녀는 천성부터 까칠한 사람은 아니었다. 헌터 레지스탕스 틈바구니에 치이다보니 방어기제를 갖게 된 것뿐이었다. 내가 끈덕지게 붙으니 더 이상 쳐내진 못했다.
“그럼요. 아니까 이러는 거예요.”
“뭐······ 나를 이용해서 간부들한테 잘 보이려는 심산이신가보네. 그런 일이라면 제가 도움을 드리긴 힘들 것 같은데요. 전 누구의 청탁도 받지 않거든요.”
“사실 제 목적은 반대에요.”
“반대라고요?”
“네.”
대답과 동시에 난 휴대폰을 들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 떠 있는 것은 레아모 카페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때 이지민이 무언가를 건네주었던 바로 그 남성.
그 남자가 이지민 측 헌터의 눈치를 보며 차를 홀짝이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화들짝 놀라다 못해 뒤로 주춤 물러났다.
“······어떻게?”
소리를 낮추며 나를 노려보았다. 좀 전의 까칠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것과 같군.’
이 사진은 레아모 카페를 빠져나오기 전 몰래 찍어둔 것이었다.
아무래도 모든 상황이 수상했다. 이지민과 의문의 남성. 왜 하필 그들은 이지민을 감시하던 헌터가 화장실을 갔을 때 교류를 했을까. 그것도 주변을 잔뜩 경계하면서.
이유는 딱 한 가지로 보였다.
이지민은 헌터 레지스탕스에게 들키면 안 될 어떤 일을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변을 경계할 필요도, 헌터의 감시를 떼어놓을 필요도 없었다. 지금 그녀가 불안에 떠는 것도 또한 내 예상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 남자 알죠?”
“······몰라요.”
“모르긴요. 지민 씨가 직접 물건을 건네주는 것도 봤는데.”
“······.”
“만약 내가 교육장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그러자 이지민의 표정이 아연실색이 되었다. 그녀는 눈에 잔뜩 힘을 준 채로 나를 노려다보았다. 힘겹게 입을 떼었다.
“원하시는 게 뭐죠?”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시면 돼요. 이 남자는 누구고, 그에게 뭘 건네줬는지.”
“······말할 수 없어요.”
“그래요? 그러면 그냥 교육장님에게 레아모 카페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도 될까요?”
“이봐요, 현민 씨.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솔직히 증거도 없잖아요. 그 사진 한 장이 뭘 말해주는데요? 그 남자가 나랑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해도 믿어줄 것 같아요? 생각해봐요. 현민 씨랑 나 중에 누가 더 교육장님이랑 친할까요?”
압박감이 심해지자 그녀는 짜증을 내면서 말을 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내가 전성현한테 간다고 해도 그녀를 몰아세우긴 힘들었다.
그녀가 물건을 건네는 장면을 사진으로 포착한 게 아니었다. 사진 속엔 웬 남자의 얼굴만 있었으니까. 단순 증언으로는 증거가 되기 어렵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내 목적은 그녀를 협박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상관이 없었다.
“지민 씨. 저는 지민 씨를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예요.”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지민 씨도 헌터 레지스탕스 마음에 안 들잖아요.”
“······.”
급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그녀는 당황하고 말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의 저의를 의심했다.
그녀는 함부로 이 질문에 긍정을 표할 수 없었다. 상황이 그녀에게 더 불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었기에.
“저도 그렇거든요. 이 쓰레기 같은 단체를 확 엎어버릴 생각이에요.”
그래서 내가 먼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선수를 쳤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함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나를 구덩이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대로 간부에게 가서 이르면 헌터 레지스탕스엔 더 이상 잠입할 수 없을 것이다.
허나 난 그녀의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히 헌터 레지스탕스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표정에서 드러났으며, 레아모 카페에서의 행위에서 드러났다. 그녀는 반드시 긍정적인 대답을 해야만 했다.
“······진심이에요?”
“당연하죠. 전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들어온 건데요.”
“제가 그걸 어떻게 믿죠?”
“믿지 않으면 하는 수 없죠.”
난 주변을 슬쩍 살펴본 뒤 인벤토리를 열어 물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이지민에게 건네어 보여주었다.
순간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를 뻔하였으나 겨우 틀어막았다.
“이건······.”
“이제 믿을 만하죠?”
그것은 바로 헌터경찰국과 국정원에서 보증하는 신분증이었다.
구종환이 구속된 이후. 국정원과 헌터경찰국 측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먼저 구종환의 구속은 완전한 비밀에 부쳐졌다. 그래서 전진 길드는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조차 그의 생사를 알 수가 없었다.
또한 강기민과 나에게 여러 권한 위임이 이루어졌다. 둘만큼 헌터 레지스탕스에 대해 정보를 아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미 이곳에 마치 첩보요원처럼 잠입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경찰이라든지 국정원 직원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 신분증은 그것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이제 이지민은 나를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표정이 순간 차갑게 변했다.
“좋아요. 협조할게요.”
단호한 목소리였다. 역시 그녀는 헌터 레지스탕스에 대한 분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방금 전에 지민 씨를 압박한 건 사과드릴게요.”
“아까 그 남자가 누군지 궁금하다고 하셨죠? 제가 뭘 건네었을 지랑······.”
“네.”
“여기서 이야기하긴 곤란하니까 직접 이 남자를 찾아가주세요. 그가 자세한 걸 알려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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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난 이지민이 가르쳐준 장소를 찾아갔다. 낡고 허름한 판잣집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려보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문을 두드리고 잠시 기다리니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이내 한 남자가 바깥으로 나왔다. 그때 레아모 카페에서 보았던 그 얼굴이었다.
그는 당연하게도 일반인이었다. 나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내가 헌터란 것을 알아차렸다. 다소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지민의 부탁으로 왔습니다.”
“······당신 누구지?”
그는 문을 좁히며 나를 한껏 의심했다. 내가 헌터 레지스탕스 패거리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허나 이를 대비하여 이지민이 내게 건네준 물건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 장난감···?”
그것은 하나의 장난감이었다. 이지민이 그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안심하고 나를 받아들일 거라 일러두었던 물건이다.
남자는 그 물건이 진짜임을 확인하는가 싶더니 나를 들어오라 턱짓했다.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방구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희 누나를 도와주신다고요?”
이 남자의 이름은 이지석으로 이지민의 남동생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가 큰 빚을 진 대가로 이지민은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납치를 당했다고 한다. 결국 노예처럼 팔려 헌터 레지스탕스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이지석은 영문도 모르고 누나를 잃게 되었다. 꼭 죽은 줄로만 생각했다. 이후 부모의 자살로 그는 혼자 남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레아모 카페에서 본인의 누나를 목격했다. 이지민이 간부의 총애를 받아 외출을 제법 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로부터 사연을 듣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이렇게 몰래 교류를 했다. 연락을 주고받을 순 없었기에 일정 주기를 갖고 레아모 카페에서 만났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이지석이 일러주었다.
“그럼요. 헌터 레지스탕스를 궤멸하고 지민 씨를 구해드려야죠.”
“······좋아요. 그렇다면 보여드리죠.”
이지석이 본인의 노트북을 들고 왔다. 무언가를 이리저리 클릭하더니 곧 폴더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름은 ‘헌터 레지스탕스 관련 자료’였다.
“누나가 틈틈이 제게 전해준 정보와 자료를 정리해 놓은 겁니다. 천천히 읽어 보세요.”
하나씩 클릭해보았다. 대부분은 메모장 형식으로 짧게 끼적인 것이었다. 간부가 누구인지, 사상이 어떠한지 등등.
그러나 제대로 된 폴더도 있었다. 그 안엔 많은 문서들이 들어 있었다.
“이건······?”
“아, 이건 가장 최근에 누나로부터 전해 받은 겁니다. USB를 가지고 파일 그대로를 저장한 거라 가장 완벽한 자료라고 할 수 있죠.”
이지석의 말이 맞았다. 이것은 주워들은 정보를 통해 가공한 것이 아니었다. 날 것 그대로의 파일이었다.
대부분 ‘헌터 교육 협회’의 이름으로 작성된 문서였다. ‘모임 계획’ 같은 것도 있었고 ‘교육 방침’ 같은 것도 있었다. 아마도 이지민이 간부들이 방심한 틈을 타 복사한 자료들로 보였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면 거의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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