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가족이냐
“흠흠흠-”
난 콧노래를 부르며 거울 앞에 섰다.
심지현이 내게 선물해 준 옷을 입고 있었다.
“역시 안목 한 번 좋네.”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옷 자체도 엄청 예뻤는데 나에게도 잘 어울렸다.
한참을 같이 다니니까 내 스타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건 그냥 옷이 아니다.
명품 브랜드의 옷이었다.
찾아보니 가격이 백만 원대의 물건이라고 한다.
물론 내가 사냥에서 벌어들이는 금액의 70%을 가져가기 때문에 이 정도 물건은 옷장에도 많다.
하지만 심지현이 선물해준 물건이니 특별히 가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잘 입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뉴스입니다.”
거실로 나갔더니 언제나와 같이 엄마가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다.
아, 시청이라고 할 순 없겠네.
지금 보니 새근새근 주무시고 계신다.
누워서 드라마를 보시다가 잠에 빠지신 것 같았다.
난 엄마에게 담요를 살짝 덮어주고 소파에 앉았다.
“전사 클래스 중 랭킹 6위를 기록하던 소슬로프스키가 오늘 사망했다는 소식입니다. 던전에 들어갔다가 몬스터에게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같이 들어갔던 동료 전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주먹이 저절로 쥐어졌다.
이 상황이 어떻게 글러먹은 것인지 내겐 너무도 뻔했기 때문이다.
전사 랭킹 6위까지 하는 양반이 그렇게 쉽게 목숨을 잃겠나?
이유는 뻔했다.
전사들 내부의 암투인 것이다.
장쉬에밍을 필두로 하는 크로노스 파와 반 크로노스 파의 대립.
반 크로노스 파의 인물은 누가 있는지 사실 잘 모른다.
크로노스 파의 정체가 드러났을 땐 이미 내부가 정리된 이후였으니까.
그런데 어쨌든 소슬로프스키란 사람도 아마 반 크로노스 파의 일원이었겠지.
그래서 던전 안에서 죽임을 당한 거다.
같이 들어간 동료 전사란 사람은 울먹거리는 연기를 하며 말을 이었다.
저 닭똥 같은 눈물 좀 보라지.
올해의 연기 대상은 바로 너다.
“다음 뉴스입니다. S급 전갈 독병이 최초로 개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제껏 전갈 독병은 기껏해야 B급이 최대였는데, S급이 개발된 것은 이례적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성능이 기존에 비해 3배 정도 좋다고 하는데요. 김철수 기자가 최초 개발자와 인터뷰를 나눠보았습니다.”
화면이 전환되었다.
김철수 기자란 양반의 얼굴이 나왔다.
그런데 장면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저 뒤에 가게··· 서희네 가게 아닌가?’
과연 그러했다.
내가 오 씨 남매를 위해 차려줬던 바로 그 가게였다!
처음 봤을 때와 달리 많이 성장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방문하기 위해 들락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언제 직원을 고용했는지 몇몇 알바들이 나와서 손님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때 다시 화면이 전환되며 오서희의 얼굴이 나왔다.
“최초로 S급 전갈 독병을 개발해서 매우 기뻐요. 최근에 전갈 던전의 다량 출현으로 전갈 독침의 가격이 폭락해서 만들어보자고 한 건데, 저도 S급을 만들어낼 줄은 몰랐어요. 또 한 번 제 시그니처 아이템을 만든 것 같아서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순수한 모습.
내 마음이 다 뿌듯했다.
역시 가게를 내주길 정말 잘한 것 같다.
내주기만 하니 알아서 성장 일변도다!
전갈 독병이란 물건은 일종의 독 속성의 공격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던져서 중독에 성공하면 지속적인 데미지가 들어간다.
그런데 B급 전갈 독병의 성능은 매우 좋지 않다.
굳이 돈 들여 사서 사용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아마 S급이면 이야기는 좀 달라질 테다.
특히 저 레벨 구간이면 아주 유용할 것이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몬스터를 잡는 것이 가능할 테니까.
물론 그러면 스킬 숙련도를 쌓지 못하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기자는 계속 오서희의 가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블루포션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이제 방송을 탔으니 앞으로의 성장을 더욱 기대해도 좋을 것 같네.
난 그의 첫 방송출현을 축하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서희니?”
- 현민 오빠! 무슨 일이에요?
“바쁘냐? 지금 일하는 중이야?”
- 아니에요! 지금은 알바한테 맡겨두고 집에서 티비 보며 쉬고 있죠, 흐흐흐.
“설마 뉴스보고 있는 거야?”
- 헐! 어떻게 알았어요? 설마 현민 오빠도 방금 뉴스 본 거예요?
“맞아, 흐흐흐. 화면빨 잘 받던데?”
- 제가 좀! 괜찮게 생겼잖아요? 에헴.
“암튼 축하한다. 역시 넌 재능이 뛰어나다니까. 이제 방송도 탔으니 앞으로 더 잘나가시겠구먼? 알바도 벌써 고용하고 말이야.”
- 학교 일도 있고 아이템 제작만 해도 좀 바빠서 직원 좀 쓰고 있어요.
“모레 저녁에 축하도 할 겸 술 한 잔할까? 어때?”
- 좋죠! 재호 오빠도 대기시켜 놓을게요.
“그래 그래. 나도 지현 씨 데려갈 테니 오랜만에 보자. 푹 쉬어.”
- 넵 전화 고마워요!
전화가 끊어졌다.
어느덧 뉴스는 모두 끝나 있었다.
난 엄마를 깨워 안방으로 보냈다.
그리고 내 방에 들어가 신성한 마나 명상을 하다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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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내 생일은 가족과 함께 보냈다.
엄마가 차려준 거나한 식사를 먹으며 행복하게 지냈다.
그 다음 날은 오 남매와의 약속 날이었다.
오후엔 심지현과 함께 충청도의 그 던전에 들어갔다.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오서희의 가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게를 슥 들여다보니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가게 안이 뭔가 정돈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건들이 이리저리 깨져 있었다.
‘이젠 빚쟁이들이 들이닥칠 일도 없을 텐데?’
충분히 돈 갚을 능력이 생긴 그들이기 때문에 구태여 깽판을 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방송까지 탄 가게를 말이다.
어제 막 방송에 탄 가게를 헤집어 놓았다간 무슨 어그로가 끌릴지 알고 그러겠나.
그래서 더욱 수상했다.
심지현과 함께 얼른 달려갔다.
“제발 그만하세요!”
가게 근처에 다다르니 오재호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니 오재호는 한 남자와 대치를 하고 있었다.
키는 오재호보다 작았지만 나이는 훨씬 많았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좀 닮아 있다.
그제야 그의 정체를 추리할 수 있었다.
아마 오 남매의 아버지인 듯했다.
얼굴이 붉은 걸 보니 술 한 잔을 걸친 것 같다.
오재호는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외쳤다.
“제발 그만하세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않으신 거예요?”
“이 정도 가지고 어떻게 살라는 거야? 너희들 이제 돈도 많이 벌잖아!”
“지금 드린 금액만 해도 현금으로 200만원이에요. 저희도 이 이상은 무리에요. 안 그래도 저희가 아빠가 빌린 돈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아요? 빚을 갚는 데만 해도 빠듯하다구요.”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성이 났는지 선반을 쿵 쳤다.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오서희와 여직원 한 명이 소리를 꽥 질렀다.
“나 너희 애비다. 내가 너희를 낳고 키웠는데 그 대우가 고작 이거니? 너희들 심지어 집도 이사했던데. 내게 말도 안 하고!”
“아빠랑 연락도 안 되는데 어떻게 말씀을 드려요? 그리고 아빠가 저희를 키웠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고생은 엄마가 다 하셨죠!”
“불효막심한 자식··· 은혜도 모르는 몹쓸 자식···.”
오재호의 아버지는 욕설을 뱉으며 자신의 허리춤에서 칼을 꺼냈다.
그 검은 저 레벨 구간에서 사용하는 전사 클래스의 검이었다.
아마 그 역시도 최근 헌터로 각성한 모양이다.
그러나 헌터 일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돈을 구걸하러 이곳에 찾아온 거겠지.
오재호는 차마 자신의 아버지에게 검을 겨눌 순 없어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다행히 그의 아버지 역시 더 이상의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 남매의 아버지와 눈을 마주쳤다.
“누··· 누구야?”
그는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겨··· 경찰이지?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취기가 남아 있는 탓에 상황 분간을 잘 못하는 것 같았다.
도둑이 제 발을 저린다는 말처럼 나를 경계했다.
겁을 집어먹고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현민아.”
오재호가 이 사단에 대해 미안했는지 짧게 뱉었다.
아버지는 드디어 가게 안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카운터 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꺄아아아악!”
여직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는 오 남매 아버지의 우악스런 손에 묶여 있었다.
아버지는 한 손에 칼을 들고 여직원의 목에 겨누었다.
그리곤 흥분하며 외쳤다.
“가까이 오지 마! 죽일 수 있어!”
젠장. 상황이 악화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이 가게로 들어온 게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술에 취했기 때문에 그는 나를 경찰로 오인했다.
그리곤 엄청난 불안에 떨었다.
도대체 무슨 범죄를 저질렀기에 저렇게 떠는지 모르겠다.
만약 심각한 범죄라면···
그의 심정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아까 보았듯 그 역시 헌터였기 때문이다.
헌터의 범죄에는 특별한 룰이 적용된다.
어떤 범죄건 몇 배의 가중 처벌을 받았다.
아마도 이제까지 자잘자잘한 전과를 꽤 많이 쌓은 걸로 아는데.
거기다 헌터 룰까지 적용되면 헌터 자격 박탈에 감방 생활도 많이 해야 할 거다.
“꺄아아아악! 살려줘요!”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하다.
사람을 붙잡고 살해 협박이라니?
오재호와 오서희는 어쩔 줄 모르고 아버지를 바라봤다.
오서희야 연금술사니 아무런 제지 능력이 없다.
그래도 오재호는 상황이 달랐다.
그는 암살자였고 명백히 아버지보다 레벨이 높았다.
그는 다만 한 가지가 맘에 걸린 것 같았다.
상대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이유.
그것 때문에 손발을 묶인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속으로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성격인 걸 어쩌겠어.
내가 오지랖을 좀 부려야겠네.
“가까이 오지 마!!”
내가 한 발짝을 떼니 그는 더욱 크게 소리 질렀다.
흥분이 극에 달한 것 같다.
얼굴은 새빨갛게 홍당무가 되었다.
눈동자 역시 핏줄이 다 터져 붉은 색이었다.
난 선반에서 떨어진 아이템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것은 바로 연막탄이었다.
퍼어어어엉-
연막탄을 가게 안에서 터뜨렸다.
순식간에 가게 안은 회색의 구름으로 뒤덮였다.
“뭐야··· 이건?”
이제 아무도 내 행동을 볼 수 없을 테지.
난 마음 놓고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오 남매의 아버지 뒤 쪽으로 이동했다.
퍼어어억-
“으아아아악!”
그의 등을 세게 발로 후려 주었다.
그래도 힘이 40씩 되니 발에 제법 체중이 들어갔다.
그가 콰당탕 넘어졌다.
난 그의 목에 붙들린 직원을 얼른 구해주었다.
그리고 혼자 남은 그를 향해 번개 창을 날렸다.
물론 원래의 파워를 발휘하진 않았다.
아주 조금.
그냥 기절할 만큼의 파워를 실은 번개 창이었다.
지지지지직-
그의 몸이 번쩍하고 빛나더니 곧 정신을 잃었다.
코에 손을 대어보았다.
숨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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