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아-
횟집에 들어간 우리는 모둠회를 시켜서 먹었다.
바닷가 근처다 보니 아주 싱싱했다.
식감하며 감칠맛이 남달랐다.
회뿐만 아니라 밑반찬과 매운탕 역시 일품이었다.
다행히 심지현도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식사를 끝낸 우리는 가득 찬 배를 두들기며 바깥으로 나왔다.
“정말 잘 먹었네요.”
“그치요? 역시 회는 부산인가 봐요.”
“지현 씨, 소화도 할 겸 우리 산책이나 할까요? 바닷가 풍광도 좋아 보이는데.”
“그래요. 좀 걸어요.”
근처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몇몇 주민들이 이곳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해변을 따라 걸었다.
시간이 꽤 되었기 때문에 하늘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서울에선 보기 힘든 별들이 이곳에선 보였다.
파도 소리가 귀를 간질였고, 바닷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걸었다.
“봉사활동은 얼마동안 하신 거예요?”
“아, 독거노인하고 말벗해드리는 거요?”
“네. 그거.”
“한 1년 정도 됐죠.”
“우와, 정말 대단하시다.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 거예요? 저 같으면 힘들어서 못할 것 같은데.”
“뭘요.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저 때문에 외로움을 달래신다고 생각하니까 뿌듯하고 좋더라고요. 제가 남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잖아요.”
말하는 것 봐.
심지현은 정말 남들과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주술사라는 클래스가 좋은 것 같아요. 비록 전투의 전면에 서지는 않지만, 뒤에서 남들을 더 강하게 해주고 사냥을 도와주니까요.”
“지현 씨는 그러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어요? 꿈같은 거요.”
“기왕이면 최고의 주술사가 되고 싶어요. 최고의 다른 헌터들을 도와서 훨씬 더 빨리 던전들을 세상에서 없애고, 원래대로 안정을 찾도록 만들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번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에게 기부도 많이 하고요.”
“정말 멋있어요. 지현 씨는 꼭 이룰 수 있을 거예요. 프레이야의 화신도 너끈히 하실 겁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런 점에서 현민 씨를 만난 게 진짜 다행인 것 같아요.”
“무슨 의미예요?”
“현민 씨 덕분에 지금 말도 안 되는 성장을 하고 있잖아요. 헌터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레벨이 23이나 되었어요.”
“흐흐흐, 저 역시도 지현 씨 덕분에 폭풍 성장하는 걸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죠.”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심지현은 남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데 강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별 것 아닌 칭찬 한 마디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현민 씨는 어때요? 현민 씨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어요? 심지어 굳이 마법사를 클래스로 선택하실 정도면, 큰 목표가 있는 것 같은데.”
“으음··· 저도 있긴 하죠.”
“뭔데요?”
“그냥 다른 헌터들이랑 비슷하죠. 얼른 강해져서 세계를 구해내는 거죠.”
오글거리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선 다르겠지만.
나는 ‘몬스터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
크로노스와 김재권의 마수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것이 제일목표다.
던전을 없애고 세계를 복구하는 건 그 다음에 생각해도 좋을 일이다.
언제쯤 이런 속 깊은 곳에서 끓고 있는 내 생각들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
아무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어 답답하긴 하다.
확실한 건 아직은 이르다는 것.
적어도 자라투스트라에게라도 먼저 이야기하고 난 뒤여야겠지.
“좋네요. 요즘엔 헌터를 그냥 신분상승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현민 씨는 강력하니까 꼭 큰일을 해내시리라 믿어요.”
“흐흐흐, 고마워요.”
쏴아아아아-
해변에 서서 들고 나는 파도를 지켜보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자연스레 속 깊숙한 곳에서 한숨이 나왔다.
후회나 걱정의 한숨이 아니라 여유와 정화의 한숨이었다.
“부산 바다 정말 아름답네요. 이런 데는 남자 친구랑 같이 왔어야 하는데.”
“엇, 지현 씨 남자 친구 있나 봐요?”
“아니에요. 지금은 없죠. 그냥 애인이 있었으면··· 여기 와서 놀면 좋았겠다는 이야기였어요, 흐흐···.”
“그러게요. 저도 여자 친구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현민 씨는 여자 친구 있어요?”
“저도 없어요.”
“크크크, 둘 다 솔로네요. 괜찮아요. 연애가 뭐 중요한가요?”
“그렇죠, 뭐. 약간 정신승리 같긴 하지만, 흐흐···.”
우리는 바다를 보며 낄낄대며 웃었다.
그렇게 한참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숙소에 들어갔다.
돌아다닐 때는 몰랐는데 막상 숙소에 들어오니 많이 피곤했다.
들어가자마자 졸음이 쏟아져서 씻고 바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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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의 사냥은 2주간 계속되었다.
매일같이 심지현과 함께 던전에 들어갔다.
동굴들을 순회하면서 전갈을 때려잡았다.
레벨은 계속해서 올랐다.
33이었던 나의 레벨은 40이 되었다!
심지현도 덩달아 30을 찍었다.
스킬레벨도 많이 올랐다.
마법 구체의 레벨은 7을 찍었다.
신성한 마나 호흡과 불 속성 부여는 레벨 3을 찍었다.
이제 나는 불 속성 부여의 상위 스킬인 익스플로젼을 배우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다.
그러나 스킬 획득을 위한 퀘스트는 나중에 깨기로 했다.
순간 이동은 쓸 일이 없어서 숙련도를 올리지 못했다.
괜찮아. 나중에 올려도 늦지 않을 테다.
“더불어한국당 홍길동 의원이 오늘은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장면 보시겠습니다.”
TV에서는 정치판의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정치 따위. 될 테로 되라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보자 몇 개야 이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전갈 코인 아니겠나!
코인이 워낙 많이 쌓여서 아공간 인벤토리에 보관할 수 있는 한도를 초과했다.
그래서 인벤토리에는 1000개의 코인을 보관했지만 그 이상은 따로 상자에 보관했다.
나는 숙소 침대에 앉아 총 개수를 세었다.
‘인벤토리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2300개네···.’
막대한 양의 코인이다.
심지현에게 30%를 떼어주고 남는 것만 모았는데 이 정도다.
개당 5만원이라는 헐값에 팔아도 1억 1500만원을 벌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이만한 물량을 사줄 사람도 없겠지.
필요가 없으니까!
허나 시간이 흐른다면···?
상황이 달라질 거다.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거 떡상하면 도대체 얼마까지 불어나려나?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다음 뉴스입니다. 바로 오늘 아침, S+급 레시피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 레시피는 전갈 코인을 사용하는데요, 그래서 지금 전갈 코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김철수 기자입니다.”
TV에서는 어느덧 정치 이야기가 끝나고 경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뉴스 내용을 듣고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갈 코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건 바로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다!
당장 TV앞으로 달려가 볼륨을 높였다.
“지금 저는 전갈 코인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던전인 부산시 사하구 던전에 나와 있습니다. 어제만 해도 전갈 코인의 시세는 51000원으로 저조했는데요. 오늘 아침부터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습니다. 관리소장과 인터뷰를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까 시세가 이상하더라고요. 분명히 요새 계속해서 하락세였는데, 갑자기 상승세로 바뀌더라고요. 알고 보니 무슨 레시핀가 뭐시긴가 발견돼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지금은 개당 가격이 10만원까지 치솟았어요.”
“그렇습니다. S+급 레시피의 발견으로 전갈 코인의 가격이 두 배가량 치솟은 겁니다. 그래서 현장은 지금 각지에서 온 헌터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장면이 전환되었다.
이제 TV에선 내가 허구한 날 들어가던 사하구 던전 앞의 풍경이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파리만 날리던 이곳 던전.
그런데 지금은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심지어 예약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빈자리가 날까봐 대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해 각종 주전부리를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분위기의 대반전이었다.
“S+급 레시피를 소유한 대장장이 길드 ‘조물주 공방’의 길드장 조물주 씨는 가능한 한 많이 전갈 코인을 확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전갈 코인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GBS, 김철수였습니다.”
조물주 씨.
이름 오랜만에 듣네.
그는 한국 최고의 대장장이였다.
그가 가진 엄청난 제작 능력과 희귀 레시피로 그는 어떠한 일반 기업보다 능가하는 부를 소유했다.
‘미쳤다. 오늘부터 떡상 시작이었다니···.’
어림셈을 해보았다.
지금 시세가 개당 10만원이랬지?
2300에 10을 곱하면 얼마지?
‘와우, 2억 3000만원이네.’
지금 당장 팔아치워도 2억에 상당하는 돈을 벌 수 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하지만 절대로 지금 팔아치울 순 없지.
이제부터 떡상의 시작인데 내가 왜 팔겠나?
얼마 뒤엔 10만원에 팔라고 해도 거들떠도 안보는 시기가 올 것이다.
지금은 아직 존버할 때다.
가즈아-!!!
“현민 씨!”
심지현이 상기된 목소리로 내 방에 들어왔다.
그도 역시 방금 뉴스를 통해서 떡상의 소식을 들은 것이다.
“어떡해요! 현민 씨 말대로 진짜 전갈 코인 가격이 치솟았어요!”
“흐흐흐, 제 말 믿길 잘했죠? 하지만 아직 기다려보세요.”
“엥? 왜요? 그러다 다시 가격 떨어지면 어떡해요.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전갈 코인을 벌러 왔는데.”
“저거 가지곤 아직 택도 없어요. 전갈 코인은 한동안 계속 떡상할 거예요. 이왕 지금까지 믿은 거 더 믿어보세요.”
“음- 좋아요!”
우리의 존버가 시작되었다.
이제는 예약 경쟁이 치열해서 던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레벨 40이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헌터 협회 룰에 따르면 이곳 4레벨 던전은 30레벨 즈음의 헌터에게 예약 우선권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오려는 사람은 차고 넘쳤기 때문에 나는 항상 순위에서 밀렸다.
괜찮아. 어차피 30레벨짜리들이 여기서 코인을 모아봤자지.
나를 능가할 만큼 모으는 놈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심지현과 나는 부산을 떠났다.
이곳 던전에서 볼 일은 더 이상 없다.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공급은 조금밖에 오르지 않았다.
내 예상대로 30레벨 언저리의 헌터들이 전갈을 잘 잡지 못했던 것이다.
뉴스에서는 무리하게 동굴에서 전갈을 사냥하다 죽임을 당한 헌터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그러면서 전갈 코인에 눈이 멀어 한탕을 해먹으려는 세태에 대해 비판했다.
어쨌든 코인은 떡상에 떡상을 거듭했다.
우상향 그래프의 기울기는 아주 가팔랐다.
오늘 확인한 시세는 개당 50만원.
무려 다섯 배가 또 치솟은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에 의존하면 이것보다 더 올랐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조금 더 존버하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성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불 속성 부여 3렙도 찍었으니 일단 익스플로젼 스킬을 얻어두는 게 좋겠지.’
스킬북창을 열었다.
그리고 [익스플로젼] 스킬을 활성화했다.
퀘스트창에 퀘스트가 하나 추가되었다.
[불의 시험]
- 난이도 : B
- 내용 : ‘대전시 유성구 제1던전’에서 제한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모래 망령’을 사냥하라. 오직 혼자의 힘으로만 해내야 한다.
- 보상 : [익스플로젼] 스킬 획득
이번엔 대전이네.
좋아, 한 번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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