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거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가게 안을 자욱하게 메우고 있던 연막이 걷혔다.
오서희와 오재호 그리고 심지현은 이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여직원은 정신적 충격이 심했는지 바닥에 엎드려서 기절해 있다.
그 옆에서 오 씨 남매의 아버지는 볼썽사납게 뻗어 있었다.
바닥과 혼연일체가 된 볼을 타고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빠···.”
오서희가 아직 몸을 발발 떨면서 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현민아, 어떻게 된 거야?”
오재호가 나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걱정 마세요. 잠시 기절시킨 거예요.”
“후··· 그렇구나.”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오재호는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주망태로 엎드려 있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나 문득 어떤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게··· 아마 어제 우리 가게가 뉴스에 뜬 걸 보셨나봐. 그래서 찾아오신 것 같아. 돈도 다 떨어지신 것 같고.”
아하. 그게 촉발제가 되었구먼.
아마 뉴스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겠지.
찢어지게 가난하던 아들 딸이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가게를 차렸으니까.
게다가 성장 일변도에 있는 가게를 말이다.
집안에 돈 나올 구멍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간 찾아오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들 딸이 돈줄이 되어준다면야 그로선 기쁜 일일 테다.
그는 이곳에 찾아와서 당연한 듯 돈을 요구했겠지.
그러나 이런 아버지를 위해 누가 선뜻 돈을 내어주겠는가?
뻔뻔해도 분수가 있지.
솔직히 나 같으면 당장 잡아서 내쳤을 것 같다.
오 씨 남매가 그나마 연민의 정이 있어 이 정도로 끝난 것이다.
난 선반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져있던 현금 다발을 정리하며 오재호에게 말했다.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글쎄다.”
“아까 아버님이 행동하는 거 보셨죠? 제가 보긴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것이 틀림없어 보였어요.”
“맞아··· 사실 네가 오기 전에도 이상한 말을 죽 늘어놓으셨는데··· 나도 그런 생각이 들더군.”
“경찰에 신고해야하지 않을까요?”
“······.”
오재호가 말없이 아버지를 쳐다본다.
비록 그의 표정은 겉으론 아무 감정도 없어 보였지만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수백 번도 더 원망했을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 놈의 혈연관계가 뭔지 조금은 정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아까 아버지가 칼을 빼어들었을 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던 오재호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니 아버지를 제 손으로 신고하는 일도 쉽진 않을 것이다.
“전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정도로 불안에 떠시는 걸 보면 보통 범죄가 아님에 틀림없어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갈등하는 거야 오 씨 남매의 성격 상 어쩔 수 없겠다.
그러나 보는 나는 내내 답답하다.
이대로 또 어물쩍 넘어갔다가 오늘 같은 일이 안 생기라는 보장이 없다.
사실 내 돈 들여 지어준 가게인데 깽판이 쳐진 모습을 보니 화도 솟구쳤다.
내 생각엔 신고만이 모두를 위한 길이었다.
“······.”
오재호는 여전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서희의 얼굴 표정을 살펴보아도 난처한 기색이 드러났다.
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론 답이 없다.
“신고하겠습니다. 아무 말도 없으면 동의한 걸로 알 테니, 그리 알고 계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심지현만이 걱정된 표정으로 나를 따라 나왔다.
난 휴대폰을 들고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상황을 이야기하고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곧 출동하겠다는 대답을 받았다.
심지현이 나를 보며 말했다.
“현민 씨, 정말 괜찮을까요? 다들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니 제가 대신 해야죠. 어차피 전화가 끝날 때까지 막지 않은 걸 보면···.”
난 심지현보다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오 씨 남매는 우두망찰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직원은 언제 깼는지 의자에 앉아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헌터 경찰국 형사 강기민입니다.”
의외였다.
난 그의 인사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경찰도 아닌 강기민이 수사를 위해 찾아왔기 때문이다.
시점으로 따지면 분명히 그는 경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맞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현재 암살자 클래스의 루키이자, 훗날 나 다음으로 랭킹이 높았던 사나이를 말이다.
‘설마 이 일이 헌터 레지스탕스랑 관련 있는 건 아니겠지?’
그가 경찰에서 쫓겨난 이유는 헌터 레지스탕스의 꼬리를 지나치게 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들이 계획한 음모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허니 의심이 좀 들었다.
루키씩이나 되는 놈이 시답잖은 경범죄를 수사하려고 오진 않았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형사님.”
난 담담하게 인사를 받았다.
그에게 구태여 친절하게 굴 이유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잔뜩 굳어 있는 표정에서도 드러나듯 그의 성격은 심히 쌀쌀맞다.
아마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사람을 데리고 어떻게 같이 다녔는지 모르겠다.
“뭐··· 뭐야?”
그때 오 남매의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이제는 술기운이 가신 듯 명백한 표정으로 나와 강기민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연행해.”
강기민이 손짓하자 옆에 있던 경찰들이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앞에서 미란다 원칙 같은 걸 읊어대더니 수갑을 채웠다.
“이거 놔! 이래봬도 난 헌터라고!”
그는 발버둥 치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당연하게도 여기 경찰들 역시 헌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기민은 나보다도 레벨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직 저 레벨인 그로선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결국 경찰차까지 질질 끌려갔다.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죠?”
강기민을 향해 물었다.
“아 오상민 씨요? 일반인 살인 혐의입니다.”
그는 꽤나 심각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오서희는 그 말을 듣고 약간 신음을 흘렸다.
심지현도 기분이 나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역시 그런 사연이 있었던 거군.
그러니까 그렇게 불안에 떨었겠지.
헌터가 일반인을 살인했다면 일단 헌터 자격 정지는 당연하다.
던전 출입이 모두 불허된다.
게다가 무기징역도 쉽게 내려질 수 있다.
어쩌면 여생을 헌터 전용 교도소에서 보내야 할지도.
이곳은 정말 끔찍한 곳이다.
범죄자들은 무기가 없어 스킬을 활용하진 못하지만 그들 상태창의 수치는 바뀌지 않는다.
만약 저 레벨의 헌터가 소위 이곳의 ‘형님’들께 잘못 보였다간?
무시무시한 고생을 해야 했다.
그것을 못 견디고 탈옥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교도관 역시 고 레벨 헌터이다.
게다가 조물주 공방에서 특수 제작한 재료들로 건축된 건물이라 정말 쉽지 않았다.
“오상민 씨의 연인이 있었는데요, 그 분과 피해자가 바람이 났나봅니다. 그래서 몸 다툼이 있었죠. 그때는 오상민 씨가 헌터가 되기 전이라 된통 당했나보더군요. 헌터가 되고나서 그는 복수를 시도했습니다. 결국 피해자를 무참하게 살해하고 말았죠. 살인 현장은 정말 처참했습니다.”
끔찍한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쌀쌀맞은 표정에서 나온 이야기라 그런지 더욱 오싹하게 느껴졌다.
그는 분명히 앞의 두 사람과 오상민이 친족관계란 걸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외에도 경범죄 전과는 수도 없이 많고요, 폭행, 사기, 협박, 도난 혐의도 있습니다.”
쯧쯧. 이 정도면 선처를 받기도 힘들겠군.
오 씨 남매는 체념한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잠시 후, 남아 있던 직원을 포함한 우리는 모두 경찰서로 향했다.
오늘 겪은 일에 대해 상세하게 진술했다.
유치장에 갇혀 있던 오상민은 우리가 서성이는 걸 볼 때마다 삿대질을 하며 화를 냈다.
물론 덩치 큰 경찰이 와서 한 번 으르렁대면 꼬리를 내리고 조용해졌다.
“그러면 이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다음에도 증언이 필요하면 연락드리죠.”
강기민이 우리를 보고 말했다.
그의 배웅을 따라 바깥으로 나왔다.
그런데 나는 다른 이와 보조를 맞추지 않았다.
조금 뒤편에서 천천히 걸었다.
오 씨 남매와 심지현, 그리고 직원 한 명이 도로가로 나갔을 때 난 강기민의 옆에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뭐라도 놔두고 오신 건가요?”
“아 아니에요. 할 말이 있어서요.”
“무슨 할 말이죠?”
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강기민을 데리고 구석으로 갔다.
내 진지한 표정을 보자 그도 저항하지 않고 나를 따라왔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혹시 이번 사건이 중대한 일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중대한 일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죠?
“형사님은 암살자 클래스의 루키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무리 강력 사건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수사를 맡아서 하실 것 같진 않아서···.”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강기민이 한사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이쯤하자 나는 돌려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헌터 레지스탕스.”
“······.”
“혹시 그들과 이번 건이 관련이 있는 건가요?”
“······그들에 대해 알고 계신 건가요?”
“많이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세요?”
“네.”
“······.”
강기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본인의 명함만을 말없이 내밀었다.
“다음에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군요.”
난 강기민이란 이름 석 자와 전화번호가 적힌 그것을 받아들었다.
“좋습니다. 다음에 뵙죠.”
대화를 끝내고 도로가에 있는 무리에 합류했다.
오서희는 감정을 참지 못했는지 드디어 펑펑 울고 있었다.
오재호와 심지현이 등을 토닥거리며 달래주었다.
심지현이 나를 보며 말했다.
“현민 씨, 무슨 얘길 나눈 거예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좀 궁금한 것이 있어서···.”
“후··· 그나저나 같이 즐겁게 술 한 잔 하러 와놓고 이게 무슨 꼴이래요. 너무 안타깝네요···.”
이제는 그조차도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걸 보니 나 또한 마음이 아려왔다.
아버지를 잘못 만나서 진짜 이게 무슨 꼴이람.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엔 장애인 아버지가 좀 미웠는데.
이들을 보니 나는 정말 행복한 가족이었던 것 같다.
그들도 이제 좀 행복했으면 좋겠다.
파르마콘의 마수로부터도 벗어났고, 재판만 끝나면 아버지의 횡포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건 이제 탄탄대로일 것이다.
그네들과 함께 가게로 돌아갔다.
난장판이 된 가게를 같이 청소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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