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들
쐐애애애애액-
‘뭐··· 뭐지?’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같이 검이 허공을 갈랐다.
말 그대로 허공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기에 있던 심지현이 사라졌다.
나는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모든 광경을 묵도했기 때문에 상황이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 한 순간에, 눈 깜박하는 것보다 더 짧은 순간에, 그의 형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만 어리둥절한 것이 아니었다.
갈색의 방어구와 방패를 들고 있는 두 전사 놈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그는 심지현을 향해 쇄도를 사용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원래라면 쇄도한 검이 심지현의 방어구를 뚫고 살갗을 파고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어떠한 타격감도 느끼지 못했다.
애꿎은 공기만 갈라놓았을 뿐이다.
“민수야, 어떻게 된 거야?”
노랑머리의 전사가 ‘쇄도’를 사용한 전사에게 말했다.
저 녀석의 이름이 민수인가보군.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여자가 사라졌어.”
민수라는 녀석은 말을 끝마치자마자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이런 장면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라고, 이 자식아.
나도 좀 당황스럽다고.
“뭐, 어찌되었든 상관없어. 일단 얘부터 노리지 뭐.”
놈이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냈다.
역시 우리를 처음부터 노린 거였어.
우리의 발자국을 추적해서 따라왔나 보군.
주술사 두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니 손쉽게 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순순히 우리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거야.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넌 혼자고 우리는 둘이야.”
“게다가 우린 전사고 너는 주술사지.”
나는 대략적으로 그들의 레벨을 추산해보았다.
들고 있는 방패나 검을 보건대 둘 다 레벨이 대략 22는 되는 것 같다.
곤란한데.
쟤네들이 작정하고 덤비면 진짜 죽을 수도 있겠어.
아무리 마법 구체의 파워가 강하다고 하지만 상황이 여러모로 불리하다.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끔살인 건 확실하다.
나는 방어구도 하나 없다.
마력 방어를 시전해봤자, 저 녀석들은 물리 공격을 사용하기 때문에 효용이 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수적 차이도 있고.
대충 구슬려서 저들이 원하는 걸 들어주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뭘 원하지? 내가 갖고 있는 아이템을 원하나?”
“아이템? 아이템 좋지.”
“아이템을 넘겨주면 이대로 물러날 건가?”
“풋-”
민수라는 녀석이 콧방귀를 뀌었다.
뒤에 있던 노랑머리도 덩달아 실실 웃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렇게 단순할 줄 아는가?"
"무슨 말이지?"
"아이템을 다 빼앗더라도 네가 살아나가면 신고를 할 게 아닌가? 그러면 우리로서도 골 아파진다고."
"그렇단 말은...?"
"넌 여기서 죽어줘야겠어. 어차피 네가 죽으면 아이템은 덤으로 따라오는 거니까."
녀석들의 의지는 단호했다.
맞는 말이긴 했다.
내가 여기서 살아나와서 신고라도 하면 괜한 분란을 일으킬 것이다.
일단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간 내 아이템들과 내 증언만으로도 그들의 범행을 증명하기에 어느 정도 충분했다.
그러니 나를 죽이는 게 답이다.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더라도 이렇게 둘러대면 된다.
몬스터를 잡다가 죽은 사람이 있어서 유품으로 수거해왔을 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이제 협상은 결렬이다.
나는 내 모든 걸 바쳐서 너희들과 싸울 것이다.
처억-
나는 스태프를 곧추세웠다.
놈들에게 전투의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호오, 싸워보겠다는 건가? 그 비실비실한 작대기로?”
“에이 뭐야, 그런 선택지를 고를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닥쳐, 이 새끼들아. 이제 더 이상 타협은 없어. 오늘 내가 죽나 너희가 죽나 끝까지 가보자.”
민수라는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실 웃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내 행동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틈에 나는 마법 구체를 시전했다.
지이이이이잉-
“저 앙증맞은 구체는 뭐지? 애기들 사탕이라도 되나?”
아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응대하는 녀석이다.
근데 한 번 맛보면 그런 여유로운 표정은 짓지도 못할걸?
슈우우우욱-
퍼어어어어엉-!
굉음을 내며 마법 구체가 민수라는 녀석 앞에서 폭발했다.
구체가 터지면서 눈덩이가 이리저리 흩날렸기 때문에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잠시 후 녀석의 형체가 드러났다.
“미··· 민수야.”
노랑머리가 충격적인 표정으로 민수라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의 방어구가 너덜너덜해졌다.
방어구가 충격을 흡수한 덕분에 아직 몸은 성한 듯 보였다.
하지만 정신적 충격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전의 그 여유만만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후후, 내가 이렇게 센 줄은 몰랐겠지?
“너 뭐 하는 놈이야···? 주술사 따위가 이렇게 강력하다고?”
녀석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이제 이전의 그 여유로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게 나를 얕보면 어떡해?
전사란 클래스는 공격과 방어의 밸런스가 가장 좋은 클래스이다.
근거리에서 티격태격 싸우는데 최적화된 스킬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방어구는 물리 방어에만 최적화되어 있다.
보통 저 레벨 던전은 물리 공격을 사용하는 몬스터가 대다수라서 스킬도 그쪽으로 많이 찍는다.
그런데 내 공격은 당연히 마법 공격.
저런 허접한 방어구로 막아낼 수는 없다.
“어때? 이래도 한 번 해볼 텐가?”
“흐흐, 주술사가 공격 스킬이 있다는 사실은 들어본 적 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군. 이러면 더 재밌겠는 걸?”
놈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동시에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단번에 그의 다음 행동이 무엇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이것은 ‘쇄도’의 준비동작이기 때문이다.
뒤의 노랑머리 녀석도 내게 덤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좋지 않은데.
나는 일단 마법 구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야아아아앗!”
민수 녀석이 거칠게 포효했다.
‘쇄도’ 스킬은 일정 시간 기를 모았다가 전방으로 빠르게 찌르고 돌파하는 스킬.
별다른 이동스킬이 없는 초반의 전사에게 이동과 공격을 동시에 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다.
쇄도의 순간 속도는 암살자의 공격 속도에 맞먹을 정도로 빠르다.
파워는 또 어떤가.
그 칼끝에 낚였다가는 배때기에 바로 구멍이 생길 것이다.
마력 방어 따위 먹힐 것 같지도 않다.
무조건 피해야한다.
쐐애애애애액-
전방을 향해 녀석이 빠르게 돌파했다.
휘이익-
나는 완전히 형성된 구체를 스태프 위에 올려둔 채로 공격을 회피했다.
다행히 회피에 성공했다.
암살자 시절이 아니다보니 실패할까봐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놈들을 상대할 수 있겠다.
사실 당황하지만 않는다면 쇄도를 피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쇄도는 ‘전방으로’ 빠르게 돌파하는 기술.
중간에 방향을 꺾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번 목표 지점을 정했으면 그곳을 향해 무작정 달려갈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러니 회피 공식은 단순하다.
그냥 옆으로 슬쩍 굴러주면 된다.
당황하다가 뒷걸음질을 치는 순간 목숨은 달아난다.
이러한 단점 때문에 숙련된 전사들은 상대방의 회피를 예측하여 쇄도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놈들은 그 정도씩이나 되는 놈이 아니라 공식대로 피하기만 해도 된다.
기본 공식쯤이야 암살자 시절에 질리도록 해봐서 어려울 것도 없다.
쐐애애애애액-
연이어 노랑머리 녀석의 쇄도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역시나 가볍게 회피해주었다.
퍼어어어엉-!
그리고 곧바로 민수라는 녀석을 향해 형성한 구체를 날렸다.
이번 공격으로 그의 방어구는 완전히 박살났다.
“이 자식··· 내 공격을 피하다니. 제법이잖아?”
“들어와 보라고.”
“가만 안 둔다.”
그는 박살난 방어구를 벗어던지고는 검 끝을 다시 겨누었다.
노랑머리 녀석도 몸을 추스르고 다시 공격할 준비를 했다.
쐐애애애애액-
그들은 연달아서 내게 쇄도를 사용했다.
으으···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그들의 공격을 바라보았다.
젖 먹던 힘을 다해 구르고 또 굴렀다.
두 명이다 보니 타이밍도 변칙적이어서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회피했다.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민첩과 힘이 부족하다보니 체력이 많이 달린다.
그러나 아직까지 녀석들은 지치지 않았다.
다시 또 쇄도의 준비 자세를 취했다.
녀석들이 자꾸만 내게 달라붙으려고 정신없이 쇄도를 퍼부어서 계속 피하기만 했다.
공격할 틈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가다간 체력이 방전되어 결국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번엔 반드시 한 방 먹여주마.’
그래서 전략을 약간 수정하기로 했다.
정면 승부다.
내가 다치는 한이 있더라도 민수 저 자식은 조져놓겠다.
방어구도 없으니 마법 구체 한 방만 정통으로 먹인다면 골로 보낼 수 있다.
“이랴아아아앗!”
쐐애애애애액-
민수 녀석이 또 선봉에서 내게 달려온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마법 구체를 시전했다.
내게 오기 전에 먼저 네 녀석을 조져주마.
스태프의 끝에서 마력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자그마한 구체는 점점 크기를 불려갔다.
와중에 녀석의 쇄도는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제발. 제발!
반 박자만이라도 빨리 나간다면!
쐐애애애애애액-
퍼어어어엉-!
깽창-!
으윽. 고통스러웠다.
민수 녀석의 검이 나의 배를 파고들었다.
상처 사이로 검은 핏물이 주르륵 흘렀다.
순간적으로 마력 방어를 시전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방어막은 개박살이 났고 검은 내게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의 바로 앞에서, 그것도 바로 발밑에서, 방금까지 맹렬히 돌격하던 전사 녀석이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얼굴이 눈 속에 처박힌 채로 숨통이 끊어졌다.
그의 시체로부터 새어나오는 핏물이 설원을 적셨다.
“이··· 이럴 수가! 민수야! 눈 좀 떠봐!”
노랑머리가 그의 시체를 보며 울부짖었다.
나는 얼른 인벤토리에서 급속 치유 포션을 하나 꺼냈다.
한 모금을 들이켰다.
휴··· 한결 낫다.
다행히 반 박자 빨리 녀석을 때려 눕혔기 때문에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노랑머리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 가만 안 둔다! 내 친구의 복수를 해주지!”
녀석이 포효했다.
그러나 그는 내 적수가 되지 못했다.
- 작가의말
전사 둘의 컨셉 변경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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