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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휴님의 서재입니다.

나 혼자 마법사로 회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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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휴
작품등록일 :
2018.10.30 21:09
최근연재일 :
2019.02.10 22:58
연재수 :
10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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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9.02.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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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위대한 자

DUMMY

“자라투스트라님! 어쩌자고 그런 이야기를 하신 겁니까?”


케르만의 집무실.

크세르크세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라투스트라를 쳐다본다.


“······자꾸 캐묻는 데 할 수 없지 않은가.”

“허나 위대한 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줬다가 혹시 잘못되기라도 하면······.”


크세르크세스는 뒤탈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현민이 위대한 자가 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는 모든 공허의 지역과 연결되어 있는 우주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위대한 자가 되어 혹시라도 어마어마한 권능을 얻는다면?


그걸로 입을 싹 씻고 오히려 다른 공허의 지역을 위협한다면?


어쩌면 크로노스보다 더한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운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런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것을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네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


자라투스트라는 회의장에서 보았던 이현민의 눈빛을 떠올렸다.


그 진심이 담긴 눈빛.

본인을 향한 경멸과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게다가 그는 시스템을 통해 이현민과 이어져 있었다.


시스템의 눈으로 보았어도 이현민의 발언이 진심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른 세계를 살지만 결국은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고요.”

“아니야. 난 그를 믿네.”

“하······ 자라투스트라님!”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그가 위대한 자가 되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힘이 약할 테니까. 아무리 좋은 권능을 획득한다고 하더라도 그 파급력은 미미할걸세.”


자라투스트라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크세르크세스는 더 이상 그를 나무라지 못했다.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돌리고 서 있었다.


“자네도 그를 믿어보게. 그 스스로가 위대한 자가 되어 협약의 ‘목’을 치기만 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겠나. 크로노스의 공허 통일 야욕도 꺾고, 다른 세계들은 위대한 자의 지위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어.”


이현민이 계획대로 따라주기만 한다면 그들에게도 손해가 될 게 없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것 또한 염두에 두었기에 이현민에게 위대한 자가 되는 길을 가르쳐주었다.


“······여전히 그를 믿을 수 없지만. 자라투스트라님을 믿기에 그를 믿어보겠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불안감을 사그라뜨리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헉··· 헉···.”


케르만의 훈련장.

자라투스트라의 엄명덕분에 이 넓은 곳 전체를 나 혼자서 사용하고 있다.


꿀꺽- 꿀꺽-


숨을 고르며 물을 들이마셨다. 케르만의 샘물은 약간 짭조름해서 갈증 해소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후······.”


난 훈련장 군데군데에 생긴 홈들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셈을 했다. 오늘로서 두 달 동안 빠짐없이 훈련을 시행한 것 같다.


‘이 정도 힘이면 지난 생의 암살자 시절을 상회한다.’


지금 가진 힘들은 시스템의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측정할 수가 없었다. 다만 간접적으로 비교만 할 수 있을 뿐.


진작 암살자 시절 때의 최대 파워를 넘겼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굳이 수치로 이야기하면 레벨 340정도 되지 않을까.


‘오히려 투자한 시간동안 던전을 다니며 레벨을 올렸으면 더 높았을 수도 있겠어.’


확실히 처음 다루는 힘을 수련하다보니 감을 잡기 힘들었다.


만약 두 달 동안 지구에서 사냥을 했던 만큼 다녔다면.

마법사의 스킬들에 비추어 볼 때 이미 김재권의 레벨을 따라잡았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다.

여기서의 사냥 효율은 좋게 쳐줘도 1/3밖에 안 된다.


어쨌든 처음 한 달은 헤매다가 모두 날아갔다.


허나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법사가 마력을 키우는 방식이 내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했으니까.


물론 마즈다에서 마력을 수련하는 방식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그것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내가 가진 힘의 메커니즘 속에서 변용을 해야만 했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 후 한 달은 오로지 힘을 증대시키는 데 투자했다.


방법을 깨달았으니 걸리는 것이 없었다.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수련에만 모든 것을 투자했다.


그러다보니 성장세가 도드라졌다.

내 성장을 함께 도와주던 크세르크세스가 매일같이 괄목상대할 정도였다.


그는 언제나 나를 보며, 마즈다의 그 누구도 마력을 이렇게 단시간 내에 키운 사람이 없다고 했다.


또한 겉으로 보기에 나는 마즈다의 중상급 마법사들과 다른 점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내 힘이 마법을 위주로 했고, 거기에 암살자의 것을 가미하고 있었다.


‘후,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시작해야겠군.’


이후로 똑같이 수련을 반복했다.


일주일 후.


나는 내가 평생 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




우주는 크로노스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김재권을 필두로 한 전사들이 권력의 최정상에 섰다.


그들에게 저항하던 사람들은 헌터와 일반인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죽음을 불사할 배짱이 없었던 자들은 그들에 굴복하여 노예가 되었다.


허나 끝까지 저항을 지속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던전 너머로 망명을 갔다.


물론 망명이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 세계의 던전이 전사에게 장악을 당했고, 크로노스의 낫을 제외하곤 입장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나마 들어간 사람들 중에서도 망명에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길을 잃고 리셋과 함께 사라지거나, 몬스터의 밥이 되어 죽음을 맞았다.


“다들 훈련은 열심히 되어 가고 있는가.”


김재권이 함지영에게 물었다.


그는 이제 사실상 권력의 최정상에 있는 사람이었기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존대는 그에게 사치일 뿐이다.


이 점을 함지영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크로노스가 지목한 인물이었기에 반항할 수 없었다.


“네, 오늘 만해도 레벨 350을 넘은 사람이 300명은 됩니다.”


세계를 평정한 이후.

크로노스의 낫은 한 달이라는 시간을 사냥에 할애했다.


크로노스의 권능을 사용하여 그들의 레벨을 한 번에 뻥튀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횟수 제한이 치명적이었다.


크로노스 역시 다른 세계 신장들의 파워를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최대한 아꼈다가 뻥튀기를 해야만 전략상 맞았다.


“훌륭하군.”


하지만 그렇다고 전사들에게 시간을 많이 줄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성장을 시켜야만 했다.


그래서 크로노스가 선택한 대안은 그들에게 많은 힘을 나누어주는 것.


스탯과 스킬을 할 수 있는 한 퍼주었다.

그러니 전사들의 성장속도도 평소보다 배는 빨랐다.


시스템을 통해 힘을 나누어주는 것은 말 그대로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이토록 한꺼번에 나눠주면 힘을 회복할 시간도 없이 많은 양의 힘을 잃는 위험이 있다.


위대한 자는 결국 힘이 결정하는 것.

이것은 곧 티탄의 다른 인물이 그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걸 암시한다.


허나 그는 그것을 감수했다.

그 만큼 공허의 통일에 대한 야욕이 지대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김재권은 생각했다.

곧 크로노스님의 꿈이 실현될 순간이 머지않았다고.


350을 넘은 전사들이 조금만 더 모이면 이제 그는 권능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 군대가 완성되고.


그때부턴 공허 전체를 아우르는 대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




빛이 번쩍였다.


“······.”


나는 묵묵히 서서 내 손끝에 느껴지는 기이한 힘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확실히 다르다.’


방금 막 훈련을 마친 뒤. 나는 내 몸에 일어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성공한 건가.’


나는 ‘우주’ 최초의 위대한 자가 되었다.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인물보다도 강한 힘을 막 소유하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별 건 없군.’


아마 내가 다른 위대한 자에 비하면 힘이 보잘것없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라투스트라의 아우라가 풍기는 위용에 비하면 5분의 1 정도 될까. 크세르크세스가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하면 3분의 1 정도 되지 싶다.


‘그래도 달라지긴 달라졌어.’


보잘것없는 힘이라도 위대한 자는 위대한 자다.


위대한 자가 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알게 된 지식들이 생겨났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나의 권능에 관한 것이었다.


‘권능, 간파.’


간파는 우리 세계에 소속된 사람들을 마주했을 때, 생각과 감정을 모조리 뚫어볼 수 있는 능력이었다.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다른 권능에 비하면 초라해보였다.


손가락 스냅 한 번으로 암살을 하는 ‘처형’이나,

계약자의 힘을 뻥튀기 시켜주는 ‘거대화’,

심지어 온 세계를 일정 시점으로 되돌려버리는 ‘회귀’에 비해선 이건 능력도 아니었다.


허나 이것만 해도 규격 외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생각만 꿰뚫을 수 있어도 나는 지구상 모든 인간들을 내 발아래 둘 수 있을 것이다.


‘이 생명력은 또 뭐지.’


게다가 나는 위대한 자가 됨으로써 영생을 얻었다.

누군가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 이상, 병사와 자연사는 내게 없다.


‘확실히 달콤하다.’


위대한 자가 되고 보니.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것들은 쉽사리 포기하기 힘든 보상들이었다.


게다가 위대한 자가 모든 권력과 부, 명예마저 차지하는 그들의 세계에선 더더욱.


만약 내가 이것들을 가지고 우리 우주에 군림한다면?


누구도 나를 넘보지 못할 것이다.

일 대 일로 나의 힘을 능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사람들의 생각도 내게 모두 읽힐 테니까.


영생을 누리며 하고 싶은 것도 다 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필요 없다.’


그러나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우리 세계는 크로노스의 침략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나는 그것을 구제하기 위해 위대한 자가 되었을 뿐이다.


여기엔 어떤 미련도 남지 않았다.


“······드디어 깨친 겁니까.”


어느새 자라투스트라가 내 옆에 와 있었다.

크세르크세스도 옆에 동행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훈련장 전체를 가득 메운 빛 때문에 나의 상황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위대한 자, 이현민이여.”


이제 그는 나를 하대하지 않았다.

힘은 비록 모자랐으나 나는 한 세계의 위대한 자였다.

존댓말을 사용하였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였다.


“이제 당신의 선택에 모든 것이 달렸습니다.”

“······.”

“위대한 자가 되었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알 테죠.”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위대한 자가 되자마자 공허의 협약을 깨뜨리기 위해서 내가 단행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특별히 내게 귀띔한 것도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깨친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그의 인사와 함께 나는 공허의 힘을 건드렸다.

공허는 위대한 자가 된 내게 응하였다.


기분 좋은 느낌과 함께 내 몸은 공허 속으로 사라졌다.


눈을 떠보니 나는 빛 한 줄기 없이 새까만 공허의 한 가운데 있었다.




----




동- 동-


아무것도 없는 시꺼먼 공간. 나는 그래도 무언가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무슨 재질인지, 바닥과 내 발이 맞닿으면서 청명한 소리를 내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청명한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한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은 있었다. 이대로 계속 가다보면 나의 목적지가 나오리라는 것을.


이따금 멀리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내는 목소리인 것 같았다.

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어떻게 목소리가 들릴까.


그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누군가의 절규인 것 같다. 비명 소리가 섞여 있고, 살려 달라는 음성도 주기적으로 울린다.

나는 이 소리들이 던전이 리셋됨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존재의 울부짖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며칠을 걸었는지 모르겠다. 이곳에는 태양이 없기에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기에 배꼽시계 역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손목시계도 동작하지 않았다. 이 공허의 시간은 불가해한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난 이 적막한 어둠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빛을 보면 왠지 퇴마를 당하는 악마처럼 괴로워질 것만 같았다.

청명한 발걸음 소리로 시간을 측정하는 법도 고안해냈다. 나는 오늘의 시작으로 잡은 지점부터 2만 걸음을 걸었다.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오늘 드디어 처음으로 멀리서 번져오는 빛을 발견했다. 눈이 부셔서 성가시긴 했지만 또 익숙해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빛을 향해 자꾸만 걸어갔다.


어느덧 나는 빛의 출발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익숙한 동양풍의 건물 안쪽에서 빛이 새어나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다가갔다.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기척도 없이 창호지로 덧씌워진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었다.


드르륵 소리가 나자 사당 안에 있던 여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지금 선반 위에 무언가를 올리고 있었다. 흰색으로 칠해진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녀가 나를 보자 활짝 웃으며 반겼다.


“오랜만이네요, 이현민 씨. 아니, 위대한 자 이현민 님.”


공허의 사제가 예를 갖추어 내게 인사했다.


“처음 뵐 때도 마법사라는 히든 클래스를 택하시기에 깜짝 놀랐는데, 이렇게 위대한 자까지 되실 줄은 몰랐네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사당 전체를 훑어보았다. 각각의 위대한 자의 우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총 일곱 개의 우상이 있는 것은 여전했다. 자라투스트라의 우상은 아직도 사당에 전시되지 않았다.


“보자, 그러면 위대한 자가 되셨으니 이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제가 멋있는 걸로 하나 지어드리죠. 우주의 위대한 마법사, 이현민. 어떤가요? 아니면 우주의 위대한 회귀자, 이현민! 이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누구에게 힘을 나눠줄 것도 아닌데 이명이 필요하겠어요?”

“······.”


생글생글 웃고 있던 사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가 나의 의도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무얼 하고 계셨던 겁니까?”

“아, 이것들요?”


사제는 옆에 잔뜩 쌓아둔 흰색 인형을 들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눈코입도 없이 추상화된 인간의 모습이었다.


“공허의 균열 너머로 소멸된 영혼들이에요.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기리기 위해 인형을 만들어 보관하죠. 오늘로 총 10만 3568명 째네요.”


던전 리셋과 함께 죽음을 맞은 자들의 넋을 기리는 의식인 것 같았다. 내가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들었던 목소리는 아직 위로받지 못한 자들의 영혼인 듯했다.


“혼자 내도록 여기만 있다 보니, 저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가 괴롭더군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예요.”


그녀는 공허의 협약이 있은 이후부터 쭉 홀로 이곳을 지켜냈다. 그런 외로움을 달래러 나름의 위령제를 지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불현듯 그녀 같은 존재도 실제로 감정이 있는 건지 속으로 반문하고 말았다.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지,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어요.”


사제가 들어 올린 인형을 선반에 올리며 말했다.


“허나 조금만 시간을 주시죠. 막 위대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사람 한 명이 있거든요. 그자를 제대로 돌려보내지 못하면, 그자 역시 공허를 떠도는 원혼이 되고 말 거예요.”

“······.”


그녀가 사당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나 역시 그녀의 뒤를 따랐다.


“현민 님도, 같이 보실래요?”


내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을 잡자 우리는 어디론가 이동되었다.


풍경은 여전히 시꺼먼 공간이었다. 허나 나는 이 공간 어디에도 위치하고 있지 않았다. 마치 내가 배경이고 배경이 나인 양 완벽한 3인칭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보았다.


공허의 사제는 그녀 앞에 선 한 명의 남성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송경태 씨. 운이 좋게도 당신에게 각성의 계시가 내려왔군요.”


그녀는 형식적인 인사말을 하며 송경태라는 사람을 맞았다. 호리호리한 체구로 보나 앳된 얼굴로 보나 그는 중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남학생으로 보였다.


그녀는 그에게 일방적으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위대한 시험에 대한 이야기와 계약에 대한 이야기들. 익숙했지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낯선 언어들이었다.


긴장한 낯빛의 송경태는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위대한 시험이 시작되었다.


풍경은 뒤바뀌었고 털북숭이 거미들이 여기저기서 기어 나왔다. 전사들이 사용할 법한 검을 든 송경태는 공포감을 떨어뜨리고자 기합을 내질렀다.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는 일평생 몸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는 모양이다. 그가 싸우는 폼을 보고 있자니 볼썽사나웠다. 어떻게든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거미를 떼어내고자 아무렇게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전투만 보면 그의 평점은 ‘무관심’ 정도에 그칠 것이다.


곧 위대한 시험이 끝이 났다. 송경태는 사당 앞으로 소환되었고, 공허의 사제가 그를 안내했다.


“이럴 수가······.”


송경태의 좌절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제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군요.”


역시나 예상대로 어떠한 위대한 자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전투뿐만 아니라 인생 행적으로도 그들에게 어필하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안타까워 마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이 정도의 관심도를 받는 걸요.”


공허의 사제가 그를 거짓으로 위로하며 말했다. 사실 이 정도까지 처참한 성적은 오히려 보기 드물었다.


“크로노스님이······ 저를 받아주실까요?”


송경태는 본인의 계약자로 크로노스를 염두에 두는 것 같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크로노스가 지배할 세상에 전사 이외에 다른 클래스가 되는 건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른 헌터가 되어도 노예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글쎄요.”


공허의 사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송경태는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지 말고 그냥, 계약을 포기하고 돌아가시는 건 어때요?”


송경태가 깜짝 놀라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사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 모든 일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거거든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경태 학생, 지금 꿈꾸고 있죠?”


위대한 시험은 언제나 잠을 잘 때 치를 수 있다. 나 또한 그러했고. 그런 방식이 의례처럼 계속 채택되어 왔다.


“네, 꿈꾸고 있죠. 위대한 시험은 꿈에서나 치를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이건 다 꿈이에요.”


공허의 사제가 한쪽 입 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내일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것이 다 꿈인 걸 알게 될 거예요. 크로노스가 세계를 정복한 것도, 헌터들이 몬스터를 사냥하러 다니는 것도. 모두 없던 일이 되겠죠. 그러니 경태 학생은 이대로 잠을 자기만 하면 돼요.”

“아······.”


그는 사제의 알쏭달쏭한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 같진 않았다. 사실 알아듣는 게 이상한 말들이다.


그는 이내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불가해한 말들을 들었기 때문일까. 어딘가 이상해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제가 그에게 잠을 되돌려주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홀린 듯한 상태가 된 것이다.


갑자기 쏟아진 졸음에 송경태는 저항할 수 없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곧 눈을 감았다. 동시에 공허의 저편으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제 끝났어요.”


사제의 한 마디와 함께 나를 둘러 싼 마법 같은 현상이 해제되었다. 나는 내 몸을 되찾았고 사당의 한편에 서 있었다.


“이제 실행해도 좋아요, 당신의 계획을.”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게 싱긋 웃음을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임과 함께 내 속에서 힘을 끌어올렸다.


손아귀에서 푸른빛이 피어올랐다.

이내 푸른빛은 하나의 대검으로 화했다.


이것은 하나의 마법이었다.

허나 마즈다의 것은 아니었다.

내 속에 잠재된 이미지들이 하나의 힘으로 발현된 것이었다.


양손으로 결연히 대검을 쥐어들었다.

빛을 뿜는 검신에서는 강렬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동-


청명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사제에게로 쇄도했다.


푸른빛의 대검이 그녀의 몸뚱어리를 반쪽으로 갈라놓았다.


허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비명 소리도,

물체가 쪼개지는 소리도.


그저 도약 소리가 남긴 청명한 울림만이 공간에 퍼질 뿐이었다.


이내 사제의 형체는 연기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드디어 오늘,

공허의 협약은 파기되었다.


작가의말

다음 화 <에필로그>를 끝으로 완결이 납니다!

오늘 내로 에필로그와 함께 후기를 올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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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인터뷰 +2 19.02.05 1,818 34 17쪽
94 부활 +3 19.02.05 1,817 32 12쪽
93 카파리 +2 19.02.04 1,913 3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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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벨로시랩터 +3 19.01.31 2,051 3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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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김재권 +2 19.01.25 2,141 43 12쪽
85 현정환 +2 19.01.24 2,195 43 13쪽
84 급습 +2 19.01.23 2,176 46 12쪽
83 이지민 +2 19.01.22 2,367 43 13쪽
82 임우진 +3 19.01.21 2,334 50 14쪽
81 함정 +1 19.01.21 2,432 51 11쪽
80 왕건호과 김민훈 +1 19.01.20 2,406 45 12쪽
79 마법사와 함께 +1 19.01.19 2,510 43 13쪽
78 배신감 +2 19.01.18 2,559 52 13쪽
77 모의 +1 19.01.17 2,518 43 12쪽
76 기이한 일들 +2 19.01.16 2,566 45 13쪽
75 크세르크세스 +1 19.01.16 2,605 44 13쪽
74 녹아들다 +1 19.01.15 2,737 47 13쪽
73 독서모임 +3 19.01.14 2,858 49 12쪽
72 카르마 바 +1 19.01.12 3,105 59 13쪽
71 헌터계시록 +1 19.01.11 3,284 62 12쪽
70 잭슨 +1 19.01.10 3,237 68 12쪽
69 우연한 소개 +2 19.01.09 3,386 74 11쪽
68 갈무리 +6 19.01.08 3,497 76 11쪽
67 드래곤 대학살 +2 19.01.06 3,597 87 12쪽
66 언제나 공짜는 환영 +2 19.01.05 3,571 76 12쪽
65 용사냥의 시작 +3 19.01.04 3,556 81 11쪽
64 라르고 드래곤 +1 19.01.03 3,627 75 11쪽
63 던전에 도착하다 +1 19.01.02 3,789 84 11쪽
62 회귀 이전과 이후 +5 19.01.01 3,838 93 12쪽
61 늑대의 눈물 +2 18.12.31 3,826 94 12쪽
60 설산오크 +3 18.12.30 4,092 88 12쪽
59 위치를 찾다 +2 18.12.29 4,144 84 11쪽
58 티베트로- +1 18.12.28 4,237 91 12쪽
57 제거된 악의 씨앗 +1 18.12.27 4,437 88 12쪽
56 빼앗기다 +1 18.12.26 4,530 90 11쪽
55 달콤한 쓴맛 +2 18.12.24 4,741 103 11쪽
54 회귀했음에도 +8 18.12.23 4,818 89 11쪽
53 아르마딜로 +3 18.12.22 4,905 100 11쪽
52 강기민 +2 18.12.21 5,240 100 11쪽
51 검거 +5 18.12.20 5,232 99 11쪽
50 이게 가족이냐 +3 18.12.19 5,265 98 11쪽
49 선물 +3 18.12.18 5,393 104 11쪽
48 첫 번째 대화 +2 18.12.17 5,348 108 11쪽
47 도제 시련 +6 18.12.16 5,479 104 12쪽
46 다리우스의 환영 +2 18.12.15 5,688 103 11쪽
45 마즈다 스태프 +3 18.12.14 5,868 122 11쪽
44 스킬증폭구슬 +4 18.12.13 5,840 120 12쪽
43 이제 내꺼야 +1 18.12.12 5,938 126 11쪽
42 표범고래 +3 18.12.11 6,074 117 11쪽
41 내기 +8 18.12.10 6,188 124 11쪽
40 패트리샤 +3 18.12.09 6,444 117 12쪽
39 또 속냐? +3 18.12.08 6,519 118 12쪽
38 오아시스 +5 18.12.07 6,678 119 11쪽
37 루키들 +4 18.12.06 6,983 126 11쪽
36 독점 계약 +5 18.12.05 7,178 136 11쪽
35 나 마법사야 +8 18.12.04 7,121 123 13쪽
34 인신매매 +2 18.12.03 7,146 127 11쪽
33 제로섬게임 +2 18.12.02 7,364 122 11쪽
32 돈이 터진다 +3 18.12.01 7,546 134 11쪽
31 가즈아- +2 18.11.30 7,477 132 12쪽
30 불타오르네! +5 18.11.29 7,629 134 10쪽
29 로데오 +4 18.11.28 7,789 134 11쪽
28 진급 시험 +3 18.11.25 8,366 131 11쪽
27 프레이야 +6 18.11.24 8,482 136 11쪽
26 강도들 +10 18.11.23 8,456 134 11쪽
25 폭풍 성장의 서막 +3 18.11.22 8,680 144 11쪽
24 증명 +1 18.11.21 8,501 150 13쪽
23 선점 +2 18.11.20 8,656 144 12쪽
22 오서희라는 괴물 +8 18.11.19 8,829 150 13쪽
21 상부상조 +6 18.11.18 9,077 145 12쪽
20 인과응보 +2 18.11.17 8,997 140 11쪽
19 형이 왜 거기서 나와? +4 18.11.16 9,095 144 11쪽
18 새로운 사냥터 +3 18.11.15 9,057 148 11쪽
17 친목 +4 18.11.14 9,174 163 11쪽
16 왕건호 18.11.13 9,280 153 12쪽
15 짭짤한 보상 +2 18.11.12 9,385 140 11쪽
14 고블린 족장 18.11.11 9,354 155 10쪽
13 던전 폭발 +2 18.11.10 9,570 146 12쪽
12 왜 하필 +6 18.11.09 9,652 149 11쪽
11 몰이 사냥 +4 18.11.08 9,784 156 10쪽
10 주술사 아니었어? +2 18.11.07 9,926 154 10쪽
9 마법사는 고귀하다 +1 18.11.06 10,116 164 11쪽
8 세다 +6 18.11.05 10,185 158 12쪽
7 첫 사냥 준비 +3 18.11.04 10,590 158 11쪽
6 나 혼자 마법사가 됨 +6 18.11.03 11,147 15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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