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소개
[김재권]
- 클래스 : 전사
- 레벨 : 181
티베트의 던전 폭발을 진정시킨 후.
이것이 김재권의 가장 최근 프로필이었다.
레벨 181.
19레벨만 더 찍으면 곧 사도 반열에 오를 것이다.
이제 나와는 대략 70 정도의 차이가 났다.
저번 사건 이후 레벨 격차를 많이 좁히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내가 레벨 46이었을 때.
그때 나는 그와 108의 레벨 차이가 났다.
그런데 지금은 40 정도나 좁혀진 것이다.
그래도 그의 성장세는 두드러졌다.
크로노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온갖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역시도 나처럼 나보다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하고 다녔다.
난 이제야 막 자라투스트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성장하고 있으니.
따라잡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무기부터 마련해야겠지.’
마즈다 스태프는 이제 더 이상 활용이 불가하다.
난 새로 얻은 렌토의 발톱 스태프를 제작하기 위해 도쿄에 왔다.
티베트에서 한국으로 귀국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바로 일본으로 온 것이다.
아직도 몸이 좀 쑤시긴 했지만 빨리 무기를 얻어야한다는 생각이 나를 이끌었다.
“어서 오세요.”
다카하시 공방에 들어가자 그녀의 매니저인 남동생이 나를 맞았다.
예약을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용무를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들어오시죠.”
안내를 받고 다카하시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고개로 살짝 인사하며 나를 맞았다.
그녀의 모습은 여전했다.
벙어리라 말도 못했고, 전통 기모노 차림을 하고 있었다.
표정이 없는 것도 여전한 모습이었다.
“만들고 싶은 스태프가 무엇이라고요?”
“바로 이겁니다.”
매니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냈다.
[레시피 : 렌토의 발톱 스태프]
- 레벨제한 : 100
- 등급 : A
- 효과 : 대장장이의 레시피 창에 ‘렌토의 발톱 스태프’ 레시피를 등록합니다.
다카하시의 눈빛이 호기심에 물드는 것이 보였다.
여전히 그 표정은 쌀쌀했지만 말이다.
그녀는 아이템을 쥐어들더니 시스템을 확인했다.
전혀 처음 보는 물건임을 확인하고 두 눈을 끔벅거렸다.
매니저가 그녀의 저의를 눈치 채고 내게 말했다.
“이 물건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 하십니다.”
“좋습니다. 여기에다 지난번에 얻은 스킬증폭구슬을 조합해주시면 좋겠네요. 레시피를 그냥 드리는 조건으로 치면 가격이 얼마 정도 될까요?”
다카하시는 내 말을 듣더니 종이에다 무언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거기엔 엔화의 단위로 숫자가 적혀 있었다.
머릿속으로 환산을 해보았다.
‘8억······!’
그 가격은 원화로 따지면 8억 원에 육박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레시피를 공짜로 넘겨준다고 하셨기에 이 정도 가격이 나온 겁니다.”
매니저는 부연설명으로 덧붙였다.
뭐, 사실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 정도 가격은 각오하고 여기까지 왔다.
게다가 이미 드래곤 코인을 처분하여 많은 돈을 벌어들인 뒤였다.
140억을 번 마당에 8억 정도를 투자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사냥을 하다보면 투자한 금액의 배로 돌아올 것이다.
다카하시는 수화로 매니저를 보고 무언가를 말했다.
그것을 보고 매니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내 다시 말을 꺼냈다.
“손님은 참 운이 좋다고 하는군요. 이 아이템이 그 비싼 드래곤 코인이 많이 필요한데 운 좋게도 요즘 물량이 많이 풀렸으니까 말이에요.”
난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조금 뜨끔하였다.
그거 내가 다 푼 건데···.
드래곤 코인을 내가 대량으로 팔아치운 이후.
당연하게도 가격의 급격한 하락이 이루어졌다.
물론 원래도 쓰이는 데가 워낙 많은 아이템이라 심각한 타격을 주지는 않았다.
어쨌든 난 이득을 보았다.
드래곤 코인을 비싸게 팔아 이득을 취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에 드래곤 코인이 들어가는 아이템을 더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거래하겠습니다.”
내 입에서 동의의 대답이 흘러나오자 그 무표정하던 다카하시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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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다카하시 매니저로부터의 연락을 받고 공방을 다시 찾았다.
그동안 나는 오랜만의 여유를 즐겼다.
도쿄와 근방을 돌아다니면서 휴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당장 사냥을 하고 싶었지만.
스킬증폭구슬을 추출하려면 내 무기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값싼 스태프를 임시로 사서라도 사냥할 순 있었다.
그래도 멀리 바라봐야 하지 않겠나.
보다 큰 도약을 위해선 잠시 멈출 줄도 알아야하는 것이다.
“여기 있습니다.”
다카하시의 매니저가 스태프를 내밀었다.
난 그것을 보고 자연스레 감탄사를 뱉었다.
생각보다 스태프의 외형이 간지가 철철 흘렀기 때문이다.
이름 그대로 드래곤의 발톱과 같은 날카로움과 세련됨.
그 끝에는 주황빛의 스킬증폭구슬이 장식되어 있었다.
으레 대장장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예술적 헌터무기 제작 대회’에 출품하더라도 1, 2등을 할 만한 아름다움이었다.
게다가 그 성능은 어떻고.
시스템 창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스킬증폭의 렌토의 발톱 스태프]
- 레벨제한 : 100
- 착용제한 : 힘(10), 민첩(20), 마력(260), 집중력(100)
- 분류 : 스태프
- 등급 : S
- 특수효과 : 사용 후 10분간 공격 스킬을 사용할 때 마나를 소모하지 않습니다. (쿨타임 1시간) 모든 공격 스킬의 파워가 20% 증가합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특수효과가 주술사가 사용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버프 스킬을 사용할 때 마나를 소모하지 않으면 몰라도.
공격 스킬 따위 있어도 잘 안 쓴다.
착용제한도 마력이 집중력보다 높았다.
보통 주술사는 집중력을 더 많이 투자하기 때문에 착용하기도 애매했다.
당연하게도 이 아이템은 마법사를 위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다카하시와 매니저를 향해 인사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으로도 애용해주십시오. 바깥까지 배웅해드릴게요.”
매니저가 서둘러 일어나더니 방문을 열어주었다.
내가 먼저 바깥으로 나갔고, 그가 내 옆에 붙어서 따라왔다.
우리는 길게 난 복도를 따라서 걸었다.
많은 손님들이 공방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었다.
내가 사람 구경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있을 때.
그때 매니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손님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지난번보다 레벨이 월등하게 오르셨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업에 도가 튼 사람인지 지난번에 만났을 때 나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지난번에 내 레벨이 57이었는데.
지금은 내 레벨이 110이었으니까.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성장에 신경을 많이 쏟으시나 봐요.”
“그렇죠. 성장이 헌터의 모든 것을 말해주니까요. 레벨만큼 좋은 스펙은 없죠.”
난 어깨를 으쓱하면서 당연하다는 듯 말을 받았다.
“혹시 잭슨이라는 헌터 분을 알고 계시나요?”
“잭슨이요······?”
한 명의 떠오르는 인물은 있었다.
그러나 잭슨이라는 이름이 워낙에 흔하다보니 그가 말하는 사람이 내가 아는 잭슨일지는 미지수였다.
“글쎄요. 제가 아는 사람일지. 무슨 일이시죠?”
“아! 다름 아니라 그 분이 성장세가 좋은 손님들이 있으면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셔서요. 헌터에게 다양한 지원을 해주시는 사업가라고 들었습니다.”
뭐야? 성장세가 좋은 헌터에게 지원을 하는 사업가라고?
금융업을 하는 사람인가.
대출을 해주고 이자로 돈을 벌어먹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성장세가 좋은 헌터라면 큰 금액을 대출해주더라도 곧잘 갚아나갈 테니.
“손님께서 원하신다면 연결을 해드리겠습니다. 제 짧은 식견이지만 손님께도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싶네요.”
매니저가 생긋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흐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고민이 좀 되었다.
도대체 어떤 잭슨이지?
내가 아는 그 잭슨이라면···.
솔직히 만나보고 싶었다.
아니 만나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잭슨이라면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
어차피 대출이나 지원 같은 거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 번 만나볼까.
손해 보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오히려 내가 아는 그 잭슨이라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좋습니다. 한 번 만나보고 싶네요.”
그러자 매니저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연락을 드리죠. 여기 그 분의 연락처입니다.”
그가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풀 네임은 ‘프랭크 카메론 잭슨’이었다.
밑에는 영어로 ‘헌터 성장 연구소 소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일단 이것만 가지고는 그가 내가 아는 잭슨인지 알 수 없다.
난 그 사람의 풀 네임 같은 것은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나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매니저의 마지막 인사를 받으며 공방을 빠져나왔다.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근처 식당을 찾았다.
혼자서 라멘 한 사발을 들이켜고 있을 때쯤 문자가 도착했다.
당연하게도 영어로 쓰여 있었다.
- 잭슨 : 안녕하세요, 현민 씨. 헌터 성장 연구소 소장 프랭크 잭슨입니다. 이미 다카하시 공방 측에서 대충 이야기를 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당신의 성장세가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성장 연구소 소장으로서 당신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언제쯤 시간이 가능하실까요? 참고로 전 아직 도쿄에 있습니다.
흠. 도쿄에 지금 있다고 하니.
사실상 언제 만나든 상관없다.
나도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그냥 아예 저녁때쯤 보자고 할까?
국물을 전부 들이켜고 나서 문자에 답장을 보냈다.
- 이현민 : 오늘 저녁에는 시간 괜찮으신가요?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답장이 왔다.
- 잭슨 : 네, 가능합니다. 오후 7시쯤 어떠세요?
- 이현민 : 괜찮아요.
- 잭슨 : 그러면 저녁을 대접해 드리지요. 장소는 제가 따로 안내를 드리겠습니다 :)
그러고는 만날 위치를 내게 전송해주었다.
도쿄에 위치한 한 고급 스시집이었다.
흠, 스시라.
미국 사람인데 스시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좋아하긴 하지만.
뭐 어쨌든 저녁을 사준다고 하니까 맛있게 먹어야지.
그렇게 난 시내를 돌아다니며 저녁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정확히 오후 7시에 약속 장소에 나갔다.
‘······설마 저 자인가?’
스시집 앞에는 금발의 곱슬머리를 한 미국인 남성 한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 외모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잭슨이 맞았던 것이다.
그는 헌터 레지스탕스 미국 지부의 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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