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이 사냥
지이이잉-
차원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풍경이 뒤바뀐다.
역시나 올림포스 지역이다.
들어온 헌터들은 제각각 흩어졌다.
나는 일단 그들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질 생각이다.
아무래도 사냥 도중에 그들을 마주치면 껄끄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 벌일 일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이쯤 오면 되겠지.’
크오오오-
5레벨 고블린 전사의 그로울링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잔뜩 긴장하며 주위를 살폈다.
레벨 5짜리 고블린 전사는 지금 내게 위협적인 존재다.
일단 나보다 레벨이 높다.
게다가 검도 들고 있어 살상력도 배가 된다.
스피드 역시 레벨 1짜리 고블린보다 훨씬 빠르다.
‘저기 있네.’
저 놈한테 내 마법 구체의 위력은 얼마 정도 먹힐까.
스태프를 들어 마법 구체를 시전했다.
크오오오-!
구체가 형성되자마자 놈이 강렬하게 울부짖었다.
이런, 순식간에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손에 검을 들고 맹렬히 달려온다.
이거 살짝 겁나는데.
한 번에 못 맞추면 큰일 나겠다.
방어구도 없으니 어쩌면 중상을 입을 수도···.
슈우우우욱-
정신을 집중하여 구체를 날렸다.
쾌속으로 구체가 날아간다.
퍼어어엉-!
꾸애애애애액-
다행이다.
다행히 놈의 배때기에 정확히 명중했다.
구체가 폭발하자마자 놈의 배때기가 터져버렸다.
사이로 초록색 핏물이 쏟아져 나온다.
으윽, 징그러워.
레벨 1짜리 고블린보다는 그래도 강한 놈이어서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완전히 터지지는 않았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드랍된 고블린 코인을 주웠다.
총 세 개의 코인이다.
요즘 시세가 개당 1만원이랬지?
삼만원 벌었네.
코인을 수거한 뒤 나는 튼실해 보이는 나무 하나를 택하고 올라갔다.
방금 전에 구입한 고블린 페로몬 향수를 꺼냈다.
이 향수는 고블린의 체액을 가지고 만든 것으로, 주변의 고블린들을 끌어 모으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직원의 말대로 아무도 이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는다.
일단 냄새가 지독하다.
고블린에게야 향긋한 냄새지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일부러 고블린들을 잔뜩 끌어 모을 이유가 없다.
근접전을 펼치는 클래스면 더더욱 그렇다.
하나씩 상대하기도 쉽지 않은데 다수를 상대할 이유가 없다.
만약 레벨이 높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그러나 일정 레벨 이상의 헌터는 애초에 이런 저레벨 던전에 들어올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성장해야 할 저레벨 헌터가 많은데, 그들이 이곳에 들어오면 저레벨 헌터의 성장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터 협회가 룰을 정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저레벨 던전은 저레벨 헌터에게 예약 우선권이 주어진다.
그러니 고블린을 끌어 모으는 향수를 누가 쓰겠는가.
나 같은 마법사 말고는.
흐흐···.
깽창-!
나무 아래에다가 향수병을 투척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났다.
스멀스멀 냄새가 올라온다.
흐음··· 죽고 싶은 냄새다.
음식물 쓰레기에 버금가는 악취···.
크오오오- 크오오오- 크오오오-
서서히 페르몬 냄새를 맡은 고블린 전사들이 몰려온다.
좋아, 좋아.
얼른 모여들렴.
크오오오- 크오오오- 크오오오-
향기로운 냄새에 이끌린 고블린들이 나무 밑동 주변을 어슬렁대기 시작한다.
냄새를 맡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나무 위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를 적으로 인식했다.
칼을 들고 전투태세에 들어간다.
크오오오-!
그러나 하나도 무섭지 않다.
지들이 그래봤자 고블린이지.
니들 나무 탈 줄은 알아?
크오오오-! 크오오오-!
역시나 레벨 1짜리 고블린과 다를 바 없다.
칼로 괜스레 나무 밑동만 긁어댄다.
후후··· 이럴 줄 알고 튼튼한 나무로 골랐지.
백날 베어봐라.
나무가 쓰러지나.
크오오오-!
어느덧 열한 마리 정도의 고블린 전사가 아래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많이 모인 것 같군.
그럼 사냥을 한 번 시작해볼까?
지금 마나가 100 남았으니.
마법 구체 열 번은 쓸 수 있겠네.
슈우우우욱-!
퍼어어엉-!
꽤애애애애애애액-!
슈우우우욱-!
퍼어어엉-!
꽤애애애애애애액-!
마법 구체를 던질 때마다 한 마리씩 고블린의 배때기가 터져나간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스탯 포인트 3이 주어집니다.]
크으, 역시.
원래 자기보다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잡으면 보너스 경험치가 있다.
그러니 네 마리밖에 잡지 않았는데도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슈우우우욱-!
퍼어어엉-!
꽤애애애애애애액-!
슈우우우욱-!
퍼어어엉-!
꽤애애애애애애액-!
계속해서 구체를 날렸다.
때로는 그 외모가 꼴 보기 싫어서 머리를 터뜨려주었다.
속이 시원하네.
어디를 터뜨리든 상관없다.
정확히 원 샷 원 킬이다.
페로몬 향수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조준도 어렵지 않다.
아따 기분 좋다.
이렇게 신선놀음하면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니.
땀 한 방울 안 흘려도 되네.
크오오오-!
아직 한 마리가 남아서 나무 밑동을 긁고 있다.
기다려 봐 친구야.
마나 금방 회복하고 죽여줄게.
마나 호흡을 사용했다.
1분당 3의 마나가 차오른다.
4분 정도 쉬었다.
마나가 12가 되었다.
슈우우욱-!
꽤애애애액-!
마지막 남은 놈까지 터뜨렸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스탯 포인트 3이 주어집니다.]
[마즈다의 위대한 예언자, 자라투스트라가 당신의 기발한 사냥법에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역시 게으름은 발명의 어머니라며 칭찬합니다. 당신에게 스탯 포인트 2를 선물합니다.]
오호. 이런 것도 좋게 봐주다니.
아무래도 자라투스트라는 자기를 숨기는 걸 좋아하는데다가 엄청난 귀차니스트인가보군.
점점 왜 인간에게 개입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선물 잘 쓰겠습니다요.
‘상태창.’
[아직 배분되지 않은 스탯 포인트가 8 있습니다. 배분하시겠습니까?]
일단은 집중력에 더 찍어놔야지.
마법 구체 파괴력은 아직까지 별 문제 없으니까.
최대한 빨리 집중력을 확보해서 최대한 많이 마나통을 늘려야겠다.
[이현민]
- 레벨 : 5
- 클래스 : 마법사
- 서클 : 1
- 존재 등급 : 생도
- 마나 : 2/110
- 능력치 : 힘(10), 민첩(10), 마력(11), 집중력(25+5)
집중력이 30이다.
이 정도면 마나 명상 세 시간에 마나 6정도 오르려나?
나쁘진 않지만 아직 적은 것 같다···.
그냥 마력에 찍을 걸 그랬나?
열 번 쓰더라도 더 강하게 쓰게···.
아니야.
스킬 레벨이 오르면 또 사용 마나도 증가할 텐데.
그리고 나중에 얻을 스킬이 마나를 얼마나 잡아먹을지도 모르는데···.
집중력이랑 연계되는 스킬이 또 있을 수도 있잖아?
꾸준히 찍는 게 안전하긴 하겠어.
능력치 배분을 마치고 다시 마나 호흡에 들었다.
35분가량 쉬었다.
마나가 풀이 되었다.
이것 참. 사냥하는 데는 20분도 안 걸리는데.
한 번 다 쏟아내고 나면 30분 넘게 쉬어야 된다.
마나를 너무 잡아먹긴 한다.
다른 전투 클래스는 스킬 써봤자 2에서 3밖에 마나 소모 안 하는데.
마나 소모가 없는 스킬도 있고.
뭐, 그만큼 약하긴 하니까.
마나 당 파워의 비를 고려하면 마법사가 더 효율적이다.
‘고블린 코인 수거한 뒤에 또 다시 사냥을 시작해야겠다.’
나는 아래로 내려가서 시체들 사이에 떨어진 코인을 주웠다.
총 25개의 코인.
반드시 고블린 코인이 세 개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후 자리를 옮겼다.
이 주위에 있는 고블린은 이제 씨가 말랐을 테니까.
좀 더 멀리 위치한 튼튼한 나무를 하나 택했다.
깽창-!
나무 위에 올라간 뒤 다시 향수병을 깨뜨렸다.
크오오오- 크오오오-
아까 전과 똑같이 고블린 전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번엔 좀 전보다 더 많네.
더 좋지 뭐.
2천 원짜리 향수병의 효율을 더욱 극대화하는 거니까.
자 그럼···
꽤애애애애액-!
꽤애애애애액-!
꽤애애애애액-!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스탯 포인트 3이 주어집니다.]
그렇게 나는 몰이사냥을 계속했다.
결국 레벨 6이 되었다.
집중력은 보정을 포함하여 33이 되었다.
레벨 5가 되는 바람에 추가 경험치 효과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고블린 전사를 열다섯 마리 더 잡고 나서야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사냥으로 획득한 코인은 총 60개.
개당 만원이니까 60만원.
크으. 참으로 쏠쏠하다.
나눠먹어야 할 돈을 혼자 독식하니 초반인데도 돈이 꽤 되네.
이 정도면 그냥 회사 때려치울까?
아니야.
그래도 심지현이랑 아직 좀 더 친해져야 돼.
큰 그림을 잊지 말자.
지이이잉-
던전에서 나온 뒤 나는 두둑해진 주머니를 들고 관리소로 향했다.
직원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쭈, 겨우 살아오셨구먼 하는 표정이다.
“어서 오세요.”
“정산하러 왔습니다.”
“예, 코인 올려놓으세요.”
책상 위에 주머니를 놓았다.
묵직하게 짤그랑 소리가 난다.
직원은 하나씩 꺼내어 세기 시작한다.
이상한데, 뭐가 이렇게 많아?
이런 늬앙스의 표정으로 코인을 세었다.
“뭐예요?”
“뭐라니요?”
“어디서 이렇게 많이 주워 오셨어요?”
“줍다니요. 오늘 사냥한 건데.”
“거짓말하지 마셔요. 레벨 3 주술사가 어떻게 이렇게 많이 잡아요? 던전 들어갔다 온 건 맞아요?”
“그렇게 많이 잡아서 레벨 6이 됐는데. 자격증 보여드리면 믿으시겠어요?”
“···진짜에요?”
아 진짜 말 많네.
것도 진짜 기분 나쁘게 말하네.
그냥 바꿔나 줄 것이지.
꼬치꼬치 캐묻고 난리야.
이것이 마법사라는 히든 클래스를 가진 자의 비애인가.
“진짜에요. 그리고 진짜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코인은 코인이잖아요. 돈으로 바꿔주세요.”
“···알겠어요. 오늘 시세는 9900원이에요. 59만 4천원 정산해드릴게요.”
아씨. 그새 떨어졌냐.
100원 차이긴 하다만.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돈은 돈이니까.
현금 봉투를 집어 들고 바깥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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