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이전과 이후
“죽기 직전의 헌터 한 명을 지정한다··· 그 헌터가 죽으면 3일 동안 모든 정신과 마나를 집중하는 것으로 그 헌터를 되살릴 수 있다··· 고 하네요···. 대신 단 한 번만 사용 가능···.”
심지현은 본인의 입으로 말해놓고도 얼떨떨한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부활' 스킬은 말 그대로 부활이라기보단 소생이잖아?
죽기 직전의 헌터에게 한 번의 회생 기회를 줄 수 있다니.
조건이야 까다롭긴 하지만 일단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규격 외의 능력이다.
어쩌면···
이 스킬은 내게 보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실수해서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부활 스킬을 사용한다면 다시 한 번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현민 씨는 미래 일을 모두 겪었다면서요. 그러면 이 스킬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실 부활 스킬이 있다는 건 처음 들어봐요. 회귀 전에는 이 스킬에 대해서 전혀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이 말은 사실이다.
프레이야가 아무리 심지현을 총애했다곤 하나 부활 스킬을 내려주었다는 소리는 못 들어보았다.
단지 내가 못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회귀 전 그토록 유명했던 심지현이 이처럼 어마어마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소문이 안 났을 리가 없다.
“······전혀 새로운 스킬이라는 뜻인가요?”
“아마 프레이야님께서 단단히 마음먹으신 모양이에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스킬을 지현 씨에게 내린 걸 보면.”
“······머리가 아프네요.”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견디기 힘든 표정이었다.
하기야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갑자기 잘 지내던 사람이 와서 내가 미래에서 왔노라 하고 말하면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정신병이 있나보다 하겠지만.
그것이 진짜였을 때 느낄 당혹감은 말도 안 될 것이다.
모든 것은 프레이야와의 대화에서 증명되었다.
프레이야는 충분히 이러한 상황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전제한 채 말을 했기 때문이다.
심지현도 프레이야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일단 던전에서 나가면 좋겠어요.”
“알겠어요. 아직 시간이 다 끝나진 않았으니 입구에서 푹 쉬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지금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소용돌이 같은 던전 입구 앞에 섰다.
심지현은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옆모습을 슬쩍 흘겨보았다.
고뇌에 잠긴 모습이다.
구태여 말을 걸지 않았다.
난 설원 위로 떨어지는 눈덩이만 괜히 만지작거렸다.
“······현민 씨.”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드디어 심지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지막하면서도 힘이 실려 있는 목소리였다.
“네, 지현 씨.”
“회귀 전의 미래는··· 진짜 그렇게도 암울했나요?”
“그렇죠. 김재권이라고··· 알고 있죠?”
“당연하죠.”
“사실 그 자가··· 미래에 크로노스 세력을 주도해요. 한국부터 시작해서 세계를 차례대로 정복해 나가죠.”
“······.”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었어요. 크로노스와 전사 세력에 대한 절대 복종을 맹세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죽여 버렸죠.”
“······.”
“비참한 노예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유를 원했죠. 그래서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김재권 세력에게 저항했지만···.”
“······실패한 건가요?”
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답했다.
“맞아요. 상대가 안 되었죠. 전사들은 레벨 350을 넘어서까지도 레벨 업이 가능했지만 다른 클래스는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
“회귀 전에 저는 암살자 랭커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벨 305를 넘겨선 레벨 업이 안 되더군요. 상상해보세요. 50레벨이나 차이가 나는데 상대가 되겠어요? 게다가 전사 클래스가 헌터 중에서 가장 많은 클래스잖아요. 수적으로도 열세였죠.”
여전히 심지현은 말없이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뭐··· 그래서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자라투스트라의 회귀 마법 덕분에 저는 다시 한 번 모든 걸 시작할 수 있게 되었죠. 이제는 암살자가 아닌 마법사로서.”
“······회귀 전 미래에 저는 어떤 사람이었죠?”
“무슨 말씀이시죠?”
“현민 씨와 함께 끝까지 싸운 사람 중 한 명이었나요, 아니면··· 굴복한 노예 중의 한 명이었나요?”
“지현 씨는 주술사 클래스의 최상위 랭커였어요. 프레이야의 화신에까지도 올랐죠. 당연히 지현 씨는 인간들의 자유를 위해 싸웠어요. 그러다··· 죽음을 맞이했죠···.”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요.”
“지현 씨가 인간을 배신하실 분이 아니잖아요.”
내 말이 끝나자 다시금 정적이 감돌았다.
심지현은 가만히 서서 무언가에 대해 골몰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연 것은 10분이나 지난 후였다.
“······그랬던 거군요.”
“네?”
전혀 다른 분위기의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그녀 쪽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엔 내가 이제껏 본 적 없는 낯선 표정이 어리어 있었다.
“현민 씨는 회귀한 거예요.”
갑자기 너무나 당연한 말을 내뱉었다.
이제야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난 의아한 눈초리로 계속해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던 거죠. 제가 언제 헌터가 될지 현민 씨는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게 재능이 있어서 프레이야의 화신까지 오르게 된다는 사실을 현민 씨는 모두 알고 있었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모두 진실이었는데 내가 여기에 어떤 대꾸를 할 수 있겠는가.
잠자코 듣기만 했다.
“어쩌면 제가 프레이야의 축복, 프레이야의 자비 스킬을 가지고 출발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죠. 그래서 저를 꼬드긴 거예요. 같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헌터활동을 하자고. 그러면 본인의 성장을 담보 받을 수 있으니까.”
“······.”
“현민 씨. 사실 저는 현민 씨가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무서워졌다니요?”
“그냥 갑자기 현민 씨가 너무 낯설게 느껴져요. 아무리 중대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현민 씨의 입맛대로 제가 이용당한 기분이 드네요.”
그녀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 말을 듣자 난 마치 거짓말이 들통 난 어린아이의 기분이 되었다.
그녀를 볼 면목이 없어 시선을 피했다.
“회귀하기 전에··· 저희 둘은 어떤 사이였나요?”
“······직장 동료였죠. 제가 퇴사하고 난 뒤로는 사실 교류가 전혀 없었어요.”
“그 말을 들으니 더욱 기분이 좋지 않네요. 그동안 현민 씨를 믿고 따라왔는데··· 심지어는···”
그녀는 말을 하다말고 잠시 삼켰다.
짧게 한숨을 뱉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철저히 배신당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
할 말이 없었다.
심지현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회귀 전 심지현과 나는 직장에서 본 것을 끝으로 접점이 없었다.
애초에 친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프레이야의 화신에 오를 때까지 사냥을 같이 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크로노스 세력에게 저항할 때조차도 함께하지 못했다.
정말로 남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회귀하고 나서 나는 꿍꿍이속을 가지고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녀가 가진 스킬을 이용하여 성장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그러니 그녀는 지금에 와서 내게 모종의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다.
도대체 이제껏 본인을 진정으로 위해서 한 행동이 있을까?
마치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속물적인 친구처럼 본인을 이용해먹으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까?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사람은 속물적인 사람에게 거리감을 느끼곤 하니까.
“지현 씨.”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녀의 눈망울엔 다소간 경멸적인 기운이 섞여 있었다.
“지현 씨 말이 다 맞아요.”
“······.”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었다.
심지현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해야만 했다.
그리고 내 모든 진심을 전달해야만 했다.
“회귀 전에 저는 지현 씨와 그냥 직장 동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심지어 친하지도 않았죠. 입사 동기라는 것 외에는 접점도 없었죠.”
차분한 말투로 말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입술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맞아요. 전 이번에 지현 씨를 이용하고 싶었어요. 지현 씨가 엄청난 재능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프레이야에게 총애를 받고 화신까지 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처음부터 경험치 버프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 점에 대해선 사과드릴게요.”
심지현은 눈썹을 실룩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긴장이 되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최근 들어 너무나 하고 싶었던 말.
그 말이 당장이라도 뿜어져 나올 것 같아 주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심호흡을 하고 차분히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저는 지금 그냥 지현 씨와 함께한다는 것만 해도 좋아요. 그간 지현 씨와 함께 하면서 지현 씨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어요.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씨라는 게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
“지현 씨가 회귀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지금 제게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고 제게 어떤 이점을 선사해주는지는 중요한 요소들이 아니에요. 전 현재 지현 씨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해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사람······.”
“······.”
내 말을 듣자 심지현이 황급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녀의 시선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얼굴은 점점 붉어오고 있었다.
난 충동적으로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는 깜짝 놀랐는지 살며시 신음성을 흘렸다.
“지현 씨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진심이에요. 진심으로 좋아해요, 지현 씨. 이대로 계속 저와 함께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녀를 끌어안은 채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포옹에도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그냥 숨을 죽인 채 내 말을 듣기만 할 뿐이었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정말이지 시간이 꼭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설원 위에 늘 불어오는 바람소리조차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 모든 정적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심지현의 흐느낌 소리였다.
“······현민 씨.”
“네, 지현 씨.”
“고마워요··· 그렇게 저를 생각해줘서.”
“······.”
“잠깐 동안 무서웠는데··· 현민 씨가 저를 동등한 친구로조차 여기지 않은 줄 알고 많이 불안했었는데···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심지현이 내 팔에 의해 구속되어 있던 본인의 팔을 꺼내더니 내 등을 감싸 안았다.
그 손길에는 부드럽지만 결연한 힘이 담겨 있었다.
“저도 지금까지 현민 씨 많이 좋아했어요.”
그녀가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던전이 다시 문을 열 때까지.
그때까지 우리는 한참동안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안고 있었다.
- 작가의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들 좋은 일만 있길 빌겠습니다 ㅎㅎ
* 이번 화는 좀 오글거립니다. 멘탈 꽉 잡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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