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무리
‘으으음!! 잘 잤다!!’
눈부신 햇살과 함께 잠에서 깼다.
옆을 바라보았다.
심지현은 여전히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난 그녀의 모습을 보며 한 번 싱긋 웃고는 텐트 바깥으로 나갔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현재 시각은 오후 1시 24분이었다.
‘이야··· 어제 있었던 일이 다 꿈만 같이 여겨지네.’
어제까지만 해도 던전 입구가 있던 이곳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용돌이치던 던전 입구는 이제 없다.
라르고 드래곤의 시체만이 열 구 가량 들판에 나뒹굴 뿐이었다.
‘내가 중국에 일대파란을 일으킨 사건 하나를 틀어막아버렸군.’
회귀 전과 역사의 흐름이 전혀 달라졌다.
이번 생에선 던전 폭발로 인해 라르고 드래곤이 티베트를 초토화시키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완벽하게 진정시켜버렸다.
동시에 나는 막대한 성장을 일구어냈다.
말 그대로 일석이조인 것이다.
‘아니··· 사실 일석삼조이려나?’
난 디럭스 용량 아공간 인벤토리를 슬며시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 안에 어마어마한 양의 드래곤 코인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까지 고려하면 재난 예방, 성장뿐만 아니라 부도 챙기는 것이다.
막대한 양임에도 불구하고 디럭스 용량이라서 모두 보관할 수 있었다.
장치를 사용하여 개수를 확인해보았다.
‘미친··· 총 2500개잖아···?’
드래곤 코인이 가끔 2개 드랍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걸 감안하면 대략 그래도 2000마리 정도는 잡았다는 뜻이다.
미친···
이걸 내 정신이 어떻게 버텨냈지?
이 말도 안 되는 반복 작업에도 불구하고 정신병에 걸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아니··· 계산하면 이거··· 200억······?’
단순히 800만원만 곱하면 이런 어마어마한 결과가 나온다!
게다가 놈들을 잡으면서 얻은 아이템도 다 처분하면 이것보다 더 많은 금액을 벌어들일 것이다.
물론 심지현과 분배하는 일이 아직 남았지만.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주식도 하고 아이템과 코인도 꾸준히 팔고 해서 지금도 80억의 자산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가진 자산의 두 배가량 되는 금액을 한 번에 얻을 수 있다니······.
이거 정말 꿈 아니지?
‘보자, 보스 아이템은 뭘 얻었지?’
어제 정신이 없어서 확인하지도 못했다.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이 튀어나왔다.
[렌토 가죽 갑옷]
- 레벨제한 : 100
- 착용제한 : 힘(230), 민첩(10), 마력(10), 집중력(100)
- 분류 : 상의
- 등급 : S
- 특수효과 : 방어 스킬의 효율이 40% 증가합니다.
그래 맞아.
이제 생각이 나네.
렌토 가죽 갑옷이 드랍되었지.
역시나 보스 아이템답게 굉장한 물건이었다.
이 아이템은 착용제한으로 보나 특수효과로 보나 탱커 아이템이었다.
회귀 전엔 당시 중국에서 가장 잘 나가던 탱커 클래스 루키에게 팔렸다.
그런데 이번엔 이 아이템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왕건호였다.
그에게 선물해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그간 신세 진 것도 좀 있는데.
어차피 200억을 버는 마당에 돈을 더 벌어보겠다고 발악할 이유는 없다.
회귀하고 내 인생의 목표는 크로노스 세력을 물리치는 것이니까.
부자가 되는 것은 목표가 아니었다.
다만 성장을 극도로 높이고 생활의 안정감을 위해 어느 정도까진 돈이 필요했을 뿐.
사실 오늘의 사냥도 돈이 없으면 어디 되었겠나.
당장 갖고 있는 마즈다 스태프만 해도 억 단위를 부었는걸.
다른 아이템도 확인해보았다.
[레시피 : 렌토의 발톱 스태프]
- 레벨제한 : 100
- 등급 : A
- 효과 : 대장장이의 레시피 창에 ‘렌토의 발톱 스태프’ 레시피를 등록합니다.
오호! 이것은 스태프를 만들 수 있는 레시피였다.
이 아이템에 대해선 회귀 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 주술사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효과는 아니지 않았을까.
그러니 유명해지지도 않은 거겠지.
그렇단 말은 무슨 뜻이겠나.
마법사한테 좋은 아이템일지도 모른다는 의미.
스태프를 사용하는 클래스는 마법사와 주술사뿐이다.
‘마침 잘 됐네. 마즈다 스태프도 너덜너덜해졌는데······.’
난 겨우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스태프를 보며 말했다.
그간 정말 기가 막히게 썼는데.
너와도 인사해야할 때가 왔구나.
난 이 레시피를 다카하시한테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아이템 의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스킬증폭구슬을 추출하고 다시 아이템에다 추가하려면 그녀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그녀가 없으면 스킬증폭구슬은 아무런 가치도 없게 된다.
‘맞다. 새로 얻은 스킬도 확인해봐야지.’
3서클 스킬북에는 여러 스킬들이 있었다.
일단 내가 도제 시련 때 진작 얻은 ‘신성한 마나 명상’과 ‘진정한 마나 호흡’이 있었다.
거기에 3서클 진급을 하며 얻은 ‘마나 폭풍’, ‘환술’, ‘화염지옥’, ‘번개광선’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속성은 총 네 개인데 두 개의 속성마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스킬창을 확인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독과 얼음 속성 마법도 있긴 있었다.
다만 내가 아이스 브레스와 독 구름을 마스터하지 못했기에 얻지 못한 것이다.
그걸 깨닫고 열심히 두 스킬을 사용해 숙련도를 쌓았다.
그래서 스킬 두 개를 새로 얻을 수 있었다.
[맹독연꽃]
- 레벨 : 1/10
- 서클 : 3
- 습득 조건 : 독 속성 부여 레벨 3, 독 구름 레벨 5
- 숙련도 : 0/100%
- 마나 : 100
- 효과 : 마력의 기운을 모아 특정 지역에 맹독연꽃을 피워냅니다. 맹독연꽃은 일정시간 지속되며 주기적으로 독침을 발사합니다. 독침에 맞은 상대는 마법 방어력이 낮아집니다. 독기가 일정 시간 쌓이면 중독 상태에 걸립니다. 독에 약한 몬스터에게 파워가 2배 증가합니다. 마력에 비례하여 독침의 파워가 증가합니다. 스킬 레벨에 비례하여 독침의 파워, 연꽃의 지속 시간, 상성 추가 데미지가 증가합니다.
이것도 환술처럼 연꽃을 소환하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독침을 주기적으로 발사함으로써 내 전투에 도움을 준다.
상대방의 마법 방어력을 낮추고 중독 효과도 가지고 있다.
역시나 상당히 쓸 만할 것 같다.
소환수가 생긴다는 건 언제나 상대방의 정신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뜻이니까.
[빙결대검]
- 레벨 : 1/10
- 서클 : 3
- 습득 조건 : 얼음 속성 부여 레벨 3, 아이스 브레스 레벨 5
- 숙련도 : 0/100%
- 마나 : 100
- 효과 : 마력의 기운을 모아 하늘에서 대검의 형으로 응축된 냉기를 떨어뜨립니다. 대검에 맞은 상대방은 곧바로 동결 상태에 걸릴 수 있습니다. 얼음에 약한 몬스터에게 파워가 2배 증가합니다. 마력에 비례하여 대검의 파워가 증가합니다. 스킬 레벨에 비례하여 대검을 떨어뜨릴 수 있는 반경, 파워, 동결 지속시간, 상성 추가 데미지가 증가합니다.
야 뭐야 이건?
스킬 효과만 읽었는데 왠지 간지가 철철 흐를 것 같다.
하늘에서 대검이 뙇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생각만 해도 장관이다.
부가적인 효과도 상당히 좋다.
대검에 타격을 당하는 즉시 동결 상태.
그 자리에서 얼어버리는 것이다.
아이스 브레스는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입혀야만 동결에 걸렸는데.
이거는 그딴 것도 없었다.
아주 마음에 든다.
이외에도 ‘마나 폭풍’과 ‘환술’의 상위스킬이 스킬북에 적혀 있었다.
각각 ‘마나 각성’과 ‘환영이동’이었다.
아직 두 스킬을 마스터하지 못해 획득할 수 없었다.
당연히 어떤 스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 이 스킬들은 퀘스트를 깨서 얻어야겠지.
“하암··· 현민 씨 벌써 일어났어요?”
그때 심지현이 두 눈을 비비며 바깥으로 나왔다.
워낙 피곤했던 탓에 그녀는 격렬하게 잠을 잤던 모양이다.
머리가 산발이 되어 헝클어졌다.
“저도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어요. 그런데 지현 씨 머리가··· 흐흐흐.”
“음?”
심지현은 화들짝 놀라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거울을 살피고는 안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머! 완전 망나니가 따로 없네.”
잠시간 머리를 정리하더니 바깥으로 나왔다.
이제는 제법 단정한 모양새였다.
난 이 상황이 너무 재밌어서 큭큭대며 웃기만 했다.
“뭐예요··· 실망했어요?”
“흐흐흐, 아니요 전혀요. 오히려 좋은 걸요.”
진심이었다.
그런 모습이 나는 전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더욱 좋아지는 것이다.
그녀의 그런 모습마저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이제 잠에서 좀 깬 것 같으니 점심 먹으면서 정산이나 좀 해볼까요?”
미리 해둔 식은 밥을 데우면서 코인을 분배했다.
심지현에게는 언제나 30%가 분배된다.
그녀에게 코인 750개를 나누어주었다.
내가 가진 코인은 1750개였다.
이것만 팔아도 140억이 된다.
“지현 씨가 아이템은 대부분 가져가세요.”
나는 렌토 드래곤에게서 드랍된 두 아이템을 챙길 것이다.
그렇기에 나머지 아이템은 대부분 그녀에게 넘겨주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그래야만 균형이 맞을 것이다.
“알겠어요. 두 아이템이 그렇게 좋나보죠?”
“하나는 왕건호에게 선물로 줄 거고요, 하나는 스태프를 새로 제작하는 데 쓸 거예요, 흐흐흐.”
“아, 왕건호라고 하면 그···?”
“맞아요. 탱커 클래스 루키. 지금은 레벨 몇이려나 잘 모르겠네.”
“그 사람에게도 선물을 주려는 것을 보면··· 무슨 사연이 있나보죠?”
심지현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녀도 이미 회귀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왕건호가 회귀 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미 그녀에게 숨길 것은 없었기에 모두 털어놓기로 했다.
“사실 회귀 전에 그 친구의 역할은 없었어요.”
“왜 그런 건가요?”
“일찍 죽었거든요. 헌터 레지스탕스에 의해서.”
“헌터 레지스탕스요? 그건 뭐예요?”
“아··· 이건 말하자면 긴데. 다음에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릴게요. 일단 왕건호 얘기를 계속 하자면··· 그 친구는 루키 목록에도 올라와 있듯이 아주 실력이 좋은 친구에요. 그래서 만약 살려두면 훗날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이지만 이미르의 화신까지도 하고 남을 정도로 강한 친구에요.”
말을 하고 보니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이제 곧 왕건호가 피살당하는 시간이 다가올 거라는 생각.
한동안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미리 대책을 세워두어야만 했다.
“아! 그렇군요. 좋네요. 사람을 살리는 일은 언제나 좋은 일이죠.”
심지현이 밥 한 숟갈을 오물거리면서 내게 말했다.
“그렇죠. 가능성을 높이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살려야하겠죠.”
그렇게 우리는 식사를 계속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야영지를 정리했다.
모든 짐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그곳을 빠져나왔다.
우리가 있던 들판에는 오로지 썩어가는 라르고 드래곤의 시체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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