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오크
도제 시련이 시작되었다.
브륀힐드의 늑대가 설산 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입을 큼직하게 벌리고는 오크의 살점을 베어 물려고 했다.
설산 오크의 움직임은 굼떴다.
몽둥이로 늑대의 허리를 후리려고 했으나 늦고 말았다.
이미 녀석의 풍만한 뱃가죽 사이로 늑대의 이빨이 파고들었다.
우우우우어어어!
브륀힐드의 늑대는 한 번 공격에 성공하더니 뒤로 물러났다.
그때 늑대의 몸 전체에 얇은 빛의 막이 생겨났다.
심지현이 이전에 배운 바 있던 ‘견고화’ 스킬이었다.
한동안 늑대의 방어력이 증가할 것이다.
한 번 더 빛이 피어올랐다.
이번에 그녀가 사용한 스킬은 ‘고양’이었다.
늑대의 스탯이 증가할 것이다.
크르르르르!
브륀힐드의 늑대가 한 번 더 설산 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고양 버프를 받은 뒤라 그런지 움직임이 훨씬 빨라졌다.
전광석화의 속도로 오크에게 접근했다.
오크는 녀석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했다.
옆구리에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고, 이빨자국 사이로 핏물이 새어나왔다.
‘잘 되어 가는군.’
내가 예상했던 시나리오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런 시련 따위가 어렵게 느껴질 이유가 없다.
크르르르!
브륀힐드의 늑대는 이번에 새로운 스킬을 사용했다.
한 번 뒤로 물러나더니 추진력을 받았고 재빠르게 뛰쳐나갔다.
녀석의 몸 전체에 오오라가 형성되었고 그 힘을 받은 채 큼지막한 발이 오크를 향해 뻗어나갔다.
날카로운 발톱은 설산 오크의 뱃가죽을 파고들었다.
네 가닥의 붉은 상처가 평행선을 이루며 생겨났다.
우우우우어어어!
그러나 생각보다 설산 오크의 맷집은 튼튼했다.
이 정도 공격에도 녀석은 끄떡하지 않았다.
상처가 생기긴 했어도 치명상은 하나도 없었다.
둔탁한 어깨를 휘두르며 몽둥이로 땅을 내리쳤다.
순간적으로 눈보라가 몰아쳤다.
‘으읏···.’
시야가 가려졌다.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깨갱깽!
늑대의 신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시야가 가린 틈을 타 오크의 공격이 유효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잠시 후 눈보라가 걷히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브륀힐드의 늑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녀석의 옆구리에 움푹 파인 상처가 보였다.
설산 오크의 육중한 몽둥이에 한 대 얻어맞은 것이 틀림없었다.
지이이잉-
심지현의 ‘회복’ 버프가 발동되었다.
늑대의 몸 위로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빠른 속도로 상처가 아물어가고 있었다.
우우우우어어어어!
그러나 설산 오크는 늑대가 회복할 틈새를 주지 않았다.
몽둥이를 양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늑대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우우우어어어?
그때 발동된 것이 바로 심지현의 ‘유혹’이었다.
설산 오크의 좌측에 형성된 구체는 오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몽둥이를 내리치다 말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구체를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실실 웃으며 신을 냈다.
크르르르-
그동안 브륀힐드의 늑대는 완전히 몸을 회복했다.
이전의 늠름한 표정으로 오크의 등허리를 바라보았다.
크르르르르!
브륀힐드의 늑대가 훌쩍 뛰어올랐다.
이번에도 역시 몸 전체에 푸르스름한 오오라가 나타났다.
이번엔 오오라의 힘이 녀석의 주둥이에 모여들었다.
세차게 뛰어오른 녀석은 설산 오크의 목을 깨물었다.
우우우우어어어!!
매우 강렬한 고통을 느꼈는지 유혹이 해제되어 버렸다.
설산 오크는 비명을 지르며 목에 붙어 있는 늑대를 쥐어들었다.
퍼어어어억-
설원 위로 패대기를 쳤다.
다행히 브륀힐드의 늑대는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매서운 눈초리로 오크를 쳐다보았다.
우우우어어어어!
이번에 들어간 공격은 오크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푸른 살갗 사이로 붉은 피가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드디어 설산 오크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몽둥이를 내리쳐 땅바닥을 찍었다.
다시 한 번 눈보라가 몰아쳤다.
시야가 모두 차단되었다.
크르르르-
우우우어어어어!
이번에 시야가 차단될 동안 내가 들은 것은 늑대의 신음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오크의 신음소리였다.
눈보라가 걷히자 내가 본 것은 다리 한 쪽을 붙잡고 울부짖는 설산 오크의 모습이었다.
아마 내가 못 본 사이에 다리 한쪽을 불능 상태로 만들어놓은 듯싶었다.
크르르르!
늑대가 풀쩍 뛰어올랐다.
날카로운 이빨이 다시 한 번 오크의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이미 힘이 많이 빠져버린 녀석이라 저항할 수가 없었다.
우우우어어어어···
결국 거대한 몸뚱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설원은 오크로부터 흘러나온 핏줄기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경기장을 형성하고 있던 결계가 모두 해제되었다.
“만세! 현민 씨, 보셨어요? 저 해냈어요!”
브륀힐드의 늑대가 심지현에게로 다가갔다.
칭찬을 해달라는 듯 선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혀를 날름거리며 헥헥 숨을 쉬었다.
“어이구! 우리 늑대 씨 잘했어요!”
그녀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뻐했다.
늑대 역시 심지현의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의 얼굴을 핥아주었다.
“으아!”
그러나 덩치가 인간보다 큰 녀석의 혓바닥이다.
늑대의 혓바닥은 심지현의 얼굴 전체를 훑고 지나갔고 그녀의 얼굴은 침 범벅이 되었다.
그래도 기쁨의 여운이 가시질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흐흐흐, 축하해요 지현 씨. 일단 여기 수건···.”
난 인벤토리에서 수건을 꺼내 심지현에게 건넸다.
그녀는 수건을 갖고 얼른 본인의 얼굴을 닦았다.
화장이 좀 지워져서 민낯의 색깔이 드러났다.
“어떻게 됐어요? 프레이야가 뭐라고 하던가요?”
“제 솜씨가 아주 놀랍다고 칭찬해주시더라고요! 훌륭한 주술사의 기질이 보인다고 하셨어요, 흐흐흐.”
내가 봐도 그러했다.
심지현이 걸어준 고양 버프가 브륀힐드의 늑대의 공격속도를 월등히 상승시켰다.
그래서 움직임이 둔한 설산 오크로서는 녀석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물론 한 번은 눈보라를 이용해 늑대의 허리를 후리는 데 성공했다.
늑대는 본인에게 걸려 있는 견고화 효과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오크는 연타를 노려 늑대를 공격하려 했으나 심지현이 사용한 유혹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동안 늑대는 완전히 회복했고 설산 오크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이보다 더 깔끔하게 스킬 활용을 할 수는 없을 테다.
“보상은요? 보상은 어떻게 됐어요?”
“음! 잠시 만요! 그게···.”
심지현이 자신이 받은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어주었다.
나는 그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입이 쩍 벌어졌다.
그녀가 받은 메시지가 다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발퀴레의 위대한 사랑, 프레이야가 당신의 성과를 기리며 보상을 내립니다.]
[모든 능력치가 50 증가합니다.]
[스킬창 3개를 획득하였습니다.]
[‘브륀힐드의 늑대 소환’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사기진작’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브륀힐드의 증표’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녀는 나 못지않은 보상들을 받았던 것이다.
심지어 능력치 보너스는 나보다 20이나 더 받았다!
나는 30밖에 받지 못했는데 그녀는 50을 받았던 것이다.
역시 프레이야가 통이 크긴 크다.
스킬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3개를 얻었다.
‘사기진작’ 스킬은 이 레벨 대의 주술사라면 응당 얻어야할 스킬이었다.
고양의 상위 스킬로 퍼센트 단위로 스탯을 올려주는 아주 좋은 스킬이다.
그러나 ‘브륀힐드의 늑대 소환’이나 ‘브륀힐드의 증표’ 스킬은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스킬이다.
회귀 이전에도 심지현을 제외한 몇몇의 주술사만이 이 스킬을 획득했다.
‘브륀힐드의 늑대 소환’은 사용하면 방금 설산 오크와 싸웠던 늑대의 환영이 소환된다.
환영은 훌륭한 전투력과 맷집으로 전장을 헤집고 다녔다.
내가 방금 목격해서 체감했듯이 브륀힐드의 늑대는 아주 든든한 아군이 되어준다.
전투력이 여느 헌터와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이 스킬만 있다면 심지현이 혼자 몬스터에 노출되어 죽을 일도 없을 것이다.
늑대가 몬스터에 의해 결국 쓰러지거나 세 시간이 지날 때까지 소환은 유지된다.
단, 하루에 한 번이 쿨타임이었다.
‘브륀힐드의 증표’는 프레이야의 신장 브륀힐드가 심지현을 인정했기 때문에 주어진 스킬이다.
패시브 스킬로 모든 버프 스킬의 효율과 지속시간을 20% 늘려준다.
그녀는 정말로 어마어마한 보상을 얻은 것이다.
“와아아··· 믿기지가 않아요. 저도 자라투스트라님한테 인정받고 좋은 스킬을 얻었지만 지현 씨가 더 한 것 같네요. 역시 프레이야는 지현 씨를 정말 좋아한다니까요.”
“저도 프레이야님이 저를 좋아해줘서 정말 기뻐요. 방금 속으로 대화를 조금 해보았는데 정말 마음이 따뜻하신 분인 것 같아요.”
‘대화’라는 말을 들으니 몸이 살짝 떨렸다.
이제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 표정이 싹 굳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심지현을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나의 변화를 눈치 챘는지 다소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현민 씨, 갑자기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
진짜 말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난 입술을 꽉 깨문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눈깨비가 내 얼굴을 포근하게 적셨다.
심지현은 그런 내게 다가와 팔을 꼭 붙잡았다.
“현민 씨, 괜찮아요? 어디 아픈 거예요?”
“저···.”
“네, 말해 봐요.”
“저··· 지현 씨.”
“네.”
“말씀드릴게 하나 있어요.”
“뭐예요? 아픈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니에요.”
“휴··· 다행이네요. 그러면 어서 말해 봐요. 무슨 이야기에요?”
하··· 진짜 말할 수 있을까?
심지현이 나를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미친놈이라고 하면 어쩌지?
“저 사실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언젠간 말해야 하는 걸.
심지현이 도제가 되어 프레이야와 대화가 되면 그때 말하기로 다짐했잖아.
망설이지 말자.
생각이 정리가 되니 표정이 조금은 결연해졌다.
덤덤하게 말을 뱉었다.
“미래에서 회귀했어요.”
“······무슨 말이에요?”
역시나 심지현은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지껄이냐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는 이미 미래의 일까지 모두 겪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다시 과거로 돌아온 거고요. 전 미래의 일을 모두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잠시 만요!”
심지현이 내 말을 끊고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이토록 당황하는 모습은 난생 처음 보았다.
침이 저절로 꼴깍 넘어갔다.
“현민 씨···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저 너무 무서워요.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아픈 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지현 씨.”
“······.”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모두 진실인 걸요.”
“하······ 계속 이해하지 못할 말을 하시네요.”
드디어는 울상이 된 표정으로 내게 등을 돌렸다.
나는 얼른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가 뒤를 바라보았다.
“일단 제 말 좀 들어봐요. 당황하신 거 알아요. 그래도 한 가지만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뭔가요?”
“프레이야에게 제가 ‘회귀’했다고 말 좀 해주세요.”
그러자 심지현의 눈썹이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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