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리샤
[마즈다의 위대한 예언자, 자라투스트라가 당신에게 말을 겁니다.]
응? 자라투스트라님.
갑자기 웬일이시죠?
설마 번개 창을 다시 뺏어 가려는 건 아니시죠?
[마즈다의 위대한 예언자, 자라투스트라가 당신의 성장세에 대해 호평합니다. 성장세를 칭찬하는 뜻에서 당신에게 한 가지 정보를 제공합니다.]
뜬금없이 무슨 정보요?
뭐지··· 도대체 내게 뭘 말하시려고 하는 걸까?
[자라투스트라가 만약 당신이 자신이 부여한 퀘스트를 따를 경우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오! 아이템을 선사해주시려고 그러는구나!
그런 거라면 언제나 환영이죠, 자라투스트라님!
더 주셔도 됩니다요!
무조건 예쓰입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퀘스트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자, 어디 한 번?
[고진감래]
- 난이도 : A+
- 내용 : 내일 오후 2시 ‘일본 하치조지마 섬 제2던전’에 들어가서 ‘표범고래’를 사냥하라. 그 놈은 좋은 아이템을 드랍할 것이다.
- 보상 : [고래의 코어] 획득
오호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잠깐만?
표범고래라고?
표범고래를 사냥하라고?
미쳤다.
나는 이 엄청난 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다.
명사수라고 불렸던 패트리샤가 사냥했던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다음과 같다.
그는 일본 어느 던전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던전 폭발을 맞이했다.
이때 그 던전의 보스 몬스터로 등장한 것이 바로 표범고래.
그의 실력은 뛰어났기에 폭발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한다.
표범고래는 녀석의 화살 앞에 사냥감이 되었고, 그는 ‘고래의 코어’라는 아이템을 획득한다.
이것은 곧 다카하시가 제련한 ‘스킬증폭구슬’의 재료이기도 하다!
패트리샤는 유일무이한 이 아이템을 다카하시에게 맡겨 스킬증폭구슬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다.
저격수 중 루키라고 불렸던 그는 결국 예의 화신 지위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거 진짜 엄청난 정보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이 섬 이름이 익숙하더라.
하치조지마 섬이 바로 패트리샤가 고래의 코어를 얻은 장소였구먼.
어쨌든 나는 기회를 잡았다.
내가 아무리 표범고래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도 언제 던전 폭발이 일어나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퀘스트창에 따르면 내일 오후 2시에 들어가면 표범고래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인즉슨 그때 던전 폭발이 일어난다는 이야기 아닌가?
고맙습니다, 자라투스트라님!
덕분에 이번 생에선 제가 스킬증폭구슬을 선점하겠습니다요.
일단 이 지긋지긋한 던전에 빠져나가기나 해야겠다.
퀘스트창을 닫고 입구를 향해 걸었다.
지이이이잉-
던전의 바깥으로 나왔다.
좋은 소식이 있긴 했지만 이미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이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서 벤치에 주저앉았다.
멀리서 심지현이 내게로 달려왔다.
“어머, 현민 씨! 온 몸이 먼지투성이네요. 괜찮은 거예요?”
아, 그랬나?
심지현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내 몸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모래사막을 6시간 넘게 헤매고 다녔으니.
모래가 안 들어간 데가 없었다.
얼굴도 먼지투성이였고.
신발을 털면 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난 그가 건넨 손수건을 갖고 얼굴을 닦았다.
조금 개운해졌다.
“괜찮은 거예요? 기운도 많이 없어 보이는데···.”
“안 좋은 일이 있긴 했지만, 뭐 괜찮아요. 이 정도야 으레 있는 일이니까요.”
죽음의 문턱을 왔다 갔다 하는 일 따위.
저번 생에는 수도 없이 겪었다.
이제는 그렇게 공포스럽진 않다.
심지현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계속 내게 물었다.
“퀘스트는? 퀘스트는 어떻게 됐어요? 클리어했어요?”
“흐흐, 당연하죠. 클리어 안 했으면 나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행이네요! 고생하셨어요. 얼른 들어가서 쉬어요.”
난 심지현과 함께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숙소로 가는 길목에 다른 던전의 관리소가 눈에 띄었다.
‘이곳이 하치조지마 섬 제2던전인가 보군?’
이곳도 제1던전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외딴 곳에 있는 던전이다 보니 어떤 헌터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
아마 내일 이곳엔 비상사태가 선포될 것이다.
던전 폭발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곳에 대기한 헌터도 제대로 없을 테니 아마 섬은 아수라장이 되겠지.
도쿄에서 급히 헌터들이 파견되어야만 할 거다.
“흠흠흠흠-”
그때 나는 제2던전 주차장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한 여자를 보았다.
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번에 그 여자가 누군지 알아낼 수 있었다.
패트리샤였다!
하긴 여기서 마주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겠다.
오히려 그래야 아귀가 맞겠군.
원래대로라면 저 여자가 내일 들어가서 코어를 획득할 테니까.
오늘쯤은 도착해서 이곳저곳 관광할 수도 있겠지.
‘역시 금수저인건 여전하군.’
패트리샤는 영국의 돈 많은 귀족 집안의 자제였다.
그래서 지금 그의 옆에 주차된 차도 어마어마하게 비싼 승용차였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죄다 명품이었다.
무기와 방어구도 모두 가장 비싸고 좋은 것만 사용했다.
그러니 성장세가 좋을밖에.
하지만 귀족하면 으레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먼 여자였다.
단아하고 우아하며 차분할 거란 편견과 달리, 그는 활발하며 장난을 좋아하고 끼가 넘쳤다.
통도 커서 주변사람들에게 시원하게 베풀기도 했다.
‘이렇게 마주치니까 느낌이 좀 이상하네.’
마음 한 구석이 싱숭생숭했다.
회귀까지 한 번했는데도 여전히 감정이 남달랐다.
사실 회귀 전, 나는 패트리샤와 연인 관계로 만난 적이 있다.
물론 오랜 기간은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언제 사귀었다가 언제 헤어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짧은 기간이었다.
헤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그냥 잘 안 맞았다.
처음에는 정말 좋았는데.
얼굴, 몸매, 능력 다 되는 여자를 어느 남자가 마다하겠나?
허나 겪으면 겪을수록 패트리샤의 성격이 맘에 들지 않았다.
활발하고 장난기 많은 성격은 내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패트리샤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이별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패트리샤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가끔 보더라도 그저 동료로만 여길 뿐이었다.
그런데 회귀해서 그런지, 내 감정도 약간은 회귀한 건가?
아주 조금, 아주 약간은 감정이 일어난다.
그는 나를 아예 기억도 못할 텐데.
기억이라고 하기도 이상하지.
회귀 이후엔 마주친 적도 없으니 어불성설이다.
“현민 씨, 뭐해요? 왜 그렇게 가만히 서있어요?”
엇, 너무 오래 보고 있었나.
심지현이 나를 재촉하며 말했다.
얼른 정신을 챙기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엇? 잠시 만요.”
심지현이 내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아까 사용하던 손수건이었다.
그리고는 내 뺨에 묻은 모래를 털어주었다.
나는 모래를 털어주는 그의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패트리샤와는 정반대의 사람이야.’
심지현은 패트리샤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착하고 세심하고 꼼꼼한 성격이었다.
남을 신경 쓸 줄도 알았다.
장난기가 많다기보다는 정이 많고 침착한 성격이었다.
오히려 귀족의 타이틀은 심지현의 이미지에 더 잘 부합하는 것 같았다.
만약 그가 귀족이었다면 노블리스 오블리주도 잘 실천했을 것이다.
지금도 금전적 여유가 생기니 어디 기부할 데가 없나 찾아보는 심지현이다.
그런데 그가 귀족 지위까지 있었으면 아마 더 했을 것이다.
“다 됐어요.”
심지현이 주머니에 다시 손수건을 넣으면서 말했다.
“지현 씨.”
“네?”
“고마워요.”
짧고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
심지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생긋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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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심지현과 나는 점심을 먹고 하치조지마 섬 제2던전 앞에 도착했다.
오후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패트리샤가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쓴 채로 주변을 감상하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관리소에서 신분을 확인 받은 후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은 나와 심지현, 그리고 패트리샤뿐이었다.
“어? 저 사람 어제 봤던 그 사람이네요. 헌터였나보네요.”
심지현이 패트리샤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패트리샤가 우리 둘을 발견했다.
선글라스를 슬며시 내리더니 우리의 모습을 관찰했다.
난 패트리샤의 그 다음 행동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는 아마 우리에게로 다가와 말을 걸 것이다.
“헤이-”
역시.
그는 영국식 발음으로 영어를 구사하며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나도 또한 영어를 사용하여 그의 말을 받았다.
“무슨 일이지?”
“당신들도 여기 던전 들어가나 봐?”
“그렇지. 예약했거든.”
“잘됐다! 마침 나 혼자 들어가나 싶어서 우울하던 참인데. 같이 들어가서 사냥하면 참 재밌을 것 같네. 근데 너는 클래스가 뭐지? 차림새를 봐선 알 수가 없잖아?”
“나? 나는 주술사야.”
“주술사라고? 잠깐만 여기 뒤에 네 친구도 주술사 아니야? 주술사 둘이서 던전에 들어간다고? 오 마이 갓. 이것 참 흥미롭군.”
“신경 쓸 거 없잖아?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해. 그리고 네가 몰라서 그렇지, 참고로 나는 공격형 주술사야.”
“푸핫-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지 모르겠네. ‘동물인 나무’라든지 ‘머리카락 있는 대머리’를 얘기하는 거랑 똑같이 이해하면 되려나?”
패트리샤는 비꼬는 투로 장난스럽게 말을 받았다.
으레 그랬다.
그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거리낌이 없었다.
한 결 같이 자신의 본모습을 쉽게 드러냈다.
“두고 보면 알 거야.”
“자신감은 참 맘에 드네. 근데 그러고 보니 너 일본 사람 아니야? 영어 엄청 잘 하네.”
“절대 아냐. 난 한국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영어를 잘 해도 이상할 게 없지.”
“크흐흐, 재밌네. 참, 통성명을 안 했구나. 내 이름은 패트리샤야. 영국에서 왔고, 클래스는 저격수지. 어쩌면 이미 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난 이현민이고, 이 친구는 심지현이야. 둘 다 한국에서 왔지. 뭐, 너는 워낙 유명해서 이름 정도는 들어봤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꾸며댔다.
사실 이름을 들어본 정도겠냐?
같이 몸도 섞어 봤는걸···.
패트리샤는 이런 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
“현··· 민··· 어렵지만 마음에 드는 이름이네. 같이 잘 해보자고.”
그는 내게 손을 건넸다.
악수를 하자는 의미다.
그것에 응하여 나도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했다.
그는 장난삼아 아귀에 힘을 잔뜩 주어 내 손을 쥐었다.
으윽··· 아프다.
화끈한 성격은 여전하구만.
그 다음 그는 심지현에게로 갔다.
그와도 악수를 했다.
심지현에게는 딱히 장난 같은 것은 치지 않았다.
이제 그는 던전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저 사람이 뭐래요? 저는 영어 잘 못해서 거의 못 알아들었어요.”
“아··· 패트리샤라는 친군데, 영국에서 왔고 클래스는 저격수에요. 그냥··· 좀 이상한 사람이더라고요. 아마 던전에 같이 들어가면 지현 씨 신경 좀 긁을지도 몰라요, 흐흐흐.”
“에이, 개성이 넘치는 건 좋은 거잖아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제 시간 다 된 것 같은데, 저희도 가서 기다리죠.”
“네, 알겠어요.”
심지현과 나도 패트리샤를 따라 던전 앞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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