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안녕하세요, 전성현입니다.”
그 남성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며 내 옆에 앉았다.
딱 봐도 공부를 잘할 것 같이 생겼다.
지적인 인상을 강조하듯 안경을 쓰고 있었고 머리 스타일도 단정했다.
아마 소위 ‘헌터 교육 협회’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겠지.
그러니 독서 모임도 주도할 테다.
“앞으로 독서 모임을 가지게 될 텐데······.”
그는 여러 이야기들을 죽 늘어놓았다.
어떻게 진행되며 언제 모임을 가질지 하는 이야기.
헌터계시록이란 게 사실 매우 신성한 물건이라는 개소리.
잭슨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내게는 재능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 등등.
집중하기 힘들었다.
난 그의 이야기들을 듣는 체하면서 주변을 향해서 기감을 세우고 있었다.
“······저 친구들이 같이 독서 모임을 하게 될 친구들입니다.”
전성현은 구석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세 사람을 가리켰다.
한 명은 살집이 있어 덩치가 매우 컸고, 한 명은 호리호리하지만 몸이 다부졌다.
나머지 한 명은 비쩍 말라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들은 술잔을 주고받으며 시끄럽게 떠들었다.
“나중에 얼굴이라도 익혀보는 것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할 말은 대충 전한 것 같군요. 독서 모임을 시작하는 날 다시 뵙도록 하죠.”
전성현이 마지막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곧바로 추호민도 역시 전성현과 함께 이동했다.
난 홀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흐음··· 이런 데가 있었다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바라보았다.
어둡고 음침했지만 여느 술집과 다를 바는 없었다.
하지만 수상한 문들이 몇 개 있었다.
하나는 점원이 계속 들락거리며 물건을 꺼내오는 것으로 보아 창고로 보였다.
그러나 그 외에도 여러 문이 있었다.
분명히 안쪽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레지스탕스의 진짜 아지트로 이동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은 이쯤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너무 호기심을 가졌다간 눈에 띌 수도 있으니.
짐을 챙겨가지고 카르마 바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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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서로 소개부터 할까요?”
전성현이 제일 먼저 입을 떼었다.
테이블을 마주보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보고 꾸벅 인사했다.
나 또한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소개를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은 바로 덩치가 가장 큰 사람이었다.
“저는 김민훈이라고 합니다. 전사 클래스지요. 레벨은 127이고요.”
모두들 지난번에 술집에서 슬쩍 봤던 사람들이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입술이 볼 살에 끼어 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김민훈.
난 이미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전진 길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머릿속에서 왕건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레벨은 높긴 했다만 나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오늘 독서 모임을 갖기 전 사냥을 꾸준히 해두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레벨은 124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박상필이라고 합니다. 암살자 클래스고 레벨은 118입니다.”
다부진 체격의 사나이는 박상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뺨 위에는 흉터가 사선으로 나 있어 인상이 좋지 않았다.
제일 말라비틀어진 남자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구종환이고요, 저격수 클래스입니다. 레벨은 117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는 덩치에 걸맞게 자신감이 없는 표정과 말투였다.
목소리에 힘이 없고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했다.
외모로만 보아선 어떻게 117까지 찍었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모든 건 시스템이 말해주는 거니까.
힘이나 민첩의 증가에 따라 실제 신체에도 영향을 줄 순 있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힘을 많이 찍은 경우 운동을 조금만 해도 몸이 벌크업 될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허나 근력운동을 그다지 하지 않은 경우엔 일반인의 체형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외형이 아니라 수치다.
구종환 역시 몸매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 뿐 실력은 117의 실력을 갖췄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현민이라고 하고 주술사 클래스입니다. 레벨은 124고요.”
내가 인사를 하자 세 사람은 일제히 나를 훑어보느라 바빴다.
저번에도 같이 술을 먹은 것으로 보아 세 사람은 이미 친한 사이였다.
나만이 이곳에서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신입이 들어왔으니 호기심에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겠지.
“그럼 소개도 끝났으니 시작해볼까요? 현민 씨가 처음 오셨으니 오늘은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공부해봅시다. 헌터계시록 1장 1절부터 펴주세요.”
전성현은 여기서 자기가 제일 나이가 많고 직급도 높음에도 말을 놓지 않았다.
듣자하니 이것이 헌터 레지스탕스의 철칙이라나.
헌터는 누구나 동등하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그들은 서로서로를 똑같이 대했다.
말을 놓을 거면 서로 말을 놓고, 아니면 아니었다.
참 웃기지도 않는 규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동등한 걸 중요시하는 놈들이 헌터와 일반인 사이의 선은 명확하게 그어놓았으니까.
“······그래서 ‘헌터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이 나오게 된 거지요. 이해가 되셨나요?”
전성현이 눈썹을 치켜들며 내게 물었다.
사실 내용이 그다지 어려울 건 없었다.
이미 사상에 대해선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개소리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헌터는 모두 영웅이라는 측면에서 동등하고 존엄하다는 거죠? 그로부터 ‘헌터 소외현상’이 얼마나 많은 사회악을 낳을지도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게다가 난 이미 이 책을 정독했다.
지피지기여야 백전백승이랬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개념들이 진행될지 알고 있었다.
아직 가르쳐주지도 않은 개념을 들먹이자 전성현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오, 현민 씨 미리 좀 읽어보셨나 보네요?”
“네. 흥미로워서 앞부분은 한 번 다 읽어봤죠.”
“이야··· 역시 잭슨 씨가 추천한 인재답군요. 그러면 우물쭈물 할 것도 없겠네요. 세 분과 진도를 맞춰 나가셔도 별 문제 없겠어요.”
그는 상당히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역시 이 쪽 계통에선 잭슨 라인이 제일 먹어주는 것인가.
김민훈과 박상필, 구종환도 역시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좀 놓였다.
전성현이야 내가 이해가 빠르면 싫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간부급이 아닌 멤버들은 잭슨 라인인 나를 시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나 그럴 일 없겠네.
잘 된 일이다.
난 애초에 그들과 친분을 쌓으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특히 김민훈은 전진 길드의 멤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럼 계속 해보죠.”
우리는 그렇게 2시간을 내리 독서 모임을 가졌다.
개소리를 듣다보니 중간 중간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은 순간이 있었지만 잘 참아내었다.
김민훈은 어찌나 지루했던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역시 헌터 레지스탕스라고 해서 모두들 비장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건 아니다.
파레토의 법칙인가 하는 것도 있잖은가?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20명 정도만이 실제로 레지스탕스에 80%의 기여를 하는 것이다.
김민훈 같은 자들은 레지스탕스의 사상을 세세히 이해하긴 하려나?
큰 그림에서만 동의할 뿐이지 나머지는 잘 모를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으으응···?”
전성현이 말을 마치자 김민훈이 침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김민훈은 미안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저는 이제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군요. 잊지 마십시오. 다들 복습을 해 오셔야 됩니다. 그리고 성장의 끈도 놓으시면 안 되겠고요.”
“흐흐흐, 걱정 마십시오 교육장님! 제가 머리는 좀 둔해도 사냥 하나는 끝내주잖습니까.”
김민훈이 본인의 미안함을 달래기 위해 괜스레 나서며 말했다.
전성현은 으레 있는 일인 듯 그냥 싱긋 웃고는 말았다.
그가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카페의 지하 공간 안에는 우리 셋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잠깐 동안 정적이 흘렀다.
가장 먼저 적막을 깬 것은 김민훈의 웃음소리였다.
“하하하! 현민 씨라고 하셨죠?”
“네.”
“오늘 정말 대단하던데요? 저도 조금만 젊었으면 현민 씨처럼 머리가 팍팍 돌아갔을 텐데.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어요.”
“크으, 좋을 때네요!”
김민훈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정말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약간은 머뭇거리고 있는 박상필과, 나를 심하게 어색해하는 구종환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 친구들은 제 동료들이에요.”
김민훈이 두 명을 가리켰다.
그러자 둘도 나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같은 길드에서 활동하는데 사냥도 항상 함께 하죠.”
그렇군.
그렇다면 세 명 모두 전진 길드란 소리네.
확실히 이들하고는 친분을 쌓을 필요가 있겠다.
왕건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군요. 그러면 거의 절친한 친구나 다름없겠네요.”
“허허, 그렇죠.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죠. 참, 지금 끝나고 시간되시나요? 저희 술 한 잔 하러 카르마 바에 갈 생각인데.”
“지금이요?”
원래라면 던전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이들과 친분을 쌓는 일도 중요했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못 박아두어야 했으니까.
다행히 먼저 이렇게 제안을 해주었으니.
아무래도 오늘 던전에 들어가는 일은 그만두어야겠다.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러면 같이 술 한 잔 하러 가시죠, 흐흐흐.”
“좋아요.”
그렇게 김민훈 패거리와 나는 카르마 바로 향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민훈이 주도를 했으며 박상필이 가끔 끼어들었다.
구종환은 말을 시키지 않는 이상 이야기를 별달리 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나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다 보니 그들은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것저것을 내게 물었다.
“주술사시면 같이 사냥하시는 팀이 있겠네요?”
“있긴 하죠. 그런데 때때로 혼자 사냥할 수는 있어요. 공격 스킬들을 받았거든요.”
“오, 공격 스킬이라···. 그렇군요. 제가 듣기론 효율이 떨어진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마력 수치가 좀 받쳐준다면 파워가 꽤 괜찮게 나옵니다. 익숙해지면 좋더라고요.”
“이야··· 궁금하네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다음에 한 번 사냥이나 같이 하실까요?”
박상필이 눈을 치켜들며 말했다.
난 덤덤하게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마 그건 좀 힘들 것 같네요. 같이 사냥하는 팀과의 일정이 워낙 빡빡해서요.”
“아깝네요. 보고 싶었는데.”
“그나저나 같이 사냥하는 사람들은 사상이 어때요?”
김민훈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수업은 지지리도 안 들었으면서 사람들 모으는 데는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열정은 넘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타입인 것이다.
“글쎄요. 솔직히 성격이 좀 다르긴 하죠. 한두 명쯤은 저랑 비슷한 것 같긴 한데.”
그럴 듯하게 둘러대는 데에는 이제 도가 텄다.
일단 마법사가 된 순간부터 이런 상황은 수없이 겪었기 때문이다.
내 목표가 크로노스를 틀어막는 데 있지 않았다면 레지스탕스 사상가로 활동해도 됐을 것이다.
김민훈은 내 말을 듣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요? 그러면 한 번 잘 말해 봐요. 남들을 우리 레지스탕스에 편입시킬 수 있으면 지원장님이 지원을 더 해주신다고 그랬거든요.”
지원장이라면 추호민을 말하는 거겠지.
흠 이런 식의 시스템도 안에 존재하고 있었구나.
역시 대화를 하면 할수록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알겠습니다. 한 번 간을 봐야겠군요. 건배나 합시다.”
“건배!”
그렇게 우리는 대화를 하며 계속해서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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