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
일주일이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덧 주말이 다가왔다.
나는 심지현과 함께 늘 다니던 은평구의 아조트 던전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한동안 돌던 던전이라 이제 내부 지형이 익숙했다.
게다가 마법 몬스터들뿐이니 마력 방어를 통해 심지현을 보호하기도 좋았다.
일주일간 나름대로 준비도 했다.
마나 명상을 꾸준히 하는 걸 잊지 않았다.
보정을 포함하여 현재 나의 집중력은 70.
세 시간에 14의 마나를 올릴 수 있다.
여기에 S급 블루 포션이 더해지면 세 시간당 28의 마나가 증가한다.
꾸준히 단련해서 현재 내 마나는 540이 되었다.
‘조금 늦었네.’
방금 막 던전 앞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보다 5분이 늦었다.
심지현은 진작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민 씨! 여기에요.”
그도 역시 던전에 들어갈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상태였다.
내가 쓰는 것과 똑같은 전진에서 나온 스태프와, 주술사의 능력치로 착용 가능한 방어구를 몇 개 입고 있다.
전부 다 내가 추천해준 것들이다.
옆자리에서 내가 그의 쇼핑을 도와주었다.
‘헌터 용품을 입고 있으니 회사에서 볼 때랑 또 달라 보이네.’
얼른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그의 표정은 두려움 반 설렘 반인 오묘한 표정이었다.
“죄송해요, 조금 늦었네요.”
“아니에요. 아직 입장 시간까진 조금 남았는데요.”
“참, 이거 받아요.”
심지현에게 블루 포션을 건넸다.
“이게 뭐에요?”
“한 번 읽어봐요. 블루 포션이라고, 마나 회복의 효율을 높여주는 거예요. 명상이나 호흡 스킬 쓸 때 마시면 좋아요.”
“아! 고마워요.”
내가 그에게 굳이 블루 포션을 챙겨주는 이유가 있다.
심지현에게 물어서 알아낸 바에 따르면 프레이야의 축복과 프레이야의 자비 스킬의 마나 소모가 심했기 때문이다.
두 스킬을 사용하면 한 시간 동안 각각 경험치와 스킬숙련도 획득이 1.5배 증가하고 아이템 드랍확률이 1.5배 증가했다.
대신 한 번 사용할 때 50의 마나를 소모했다.
모든 클래스의 레벨 1 마나는 100.
프레이야의 축복과 자비를 한 번 쓰고 나면 마나가 0이 된다는 뜻이다.
애초에 레벨 100에 얻는 스킬이니 마나 소모가 심할 밖에.
이것도 레벨 1인 그의 수준에 맞추어 소모량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니 심지현이 마나를 빠르게 회복해야 효율적인 사냥이 가능하다.
다행히 주술사의 ‘호흡’ 스킬은 마법사의 마나 호흡보다 효율이 좋다.
더 빠른 속도로 마나를 풀로 채울 수 있었다.
심지어 움직이면서도 호흡이 가능했다.
‘마나 호흡’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어야만 사용이 되는데···
좀 억울하네.
“하··· 그런데 제가 레벨 2 던전에 바로 들어오는 게 맞는 걸까요. 여기 나오는 도마뱀 마법사들은 레벨이 10이라던데···.”
“걱정 마세요. 제가 다치지 않게 지켜드릴게요. 레벨이 높은 몬스터인 대신 지현 씨가 얻어가는 경험치가 많을 거예요.”
잠시 후 던전 입구가 개방되었다.
우리 둘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
이곳에서 전설이 시작될 것이다.
이곳은 프레이야의 화신 심지현의 첫 사냥터로 기록될 것이다.
빛나는 돌조각을 뿌리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사실 이제는 이곳이 너무 익숙해서 빛나는 돌조각 없이도 길을 찾을 수 있지만.
심지현을 괜히 불안하게 할 필요는 없기에 형식상 돌조각을 뿌렸다.
“여기서부터 사원 지형이 시작이에요.”
“와··· 동굴 안에 이런 곳이 있다니. 마치 게임을 하는 기분이에요.”
사아아아-
사원에 들어왔다는 것을 반기는 듯 도마뱀 마법사가 울어댔다.
쾌속으로 광선이 날아온다.
“조심해요! 공격이에요!”
“괜찮아요.”
퍼어어엉-!
마력 방어를 시전했다.
광선은 가볍게 방어막에 흡수되었다.
집중력이 70이나 되니 이런 공격은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심지현은 질끈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다.
자신의 몸이 온전한 것을 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방금 뭘 한 거예요?”
“방어막이에요.”
“방어막이요? 주술사도 방어 스킬이 있나요?”
“그럼요. 저도 지현 씨처럼 상위 스킬을 받았거든요.”
사아아아아-
울음소리와 함께 도마뱀은 한 번 더 광선을 날렸다.
그러나 맥없이 방어막에 흡수되고 말았다.
“우와! 대단한데요? 공격이 전혀 통하질 않네요.”
“저 세다니까요, 흐흐흐.”
지이이이잉-
곧바로 마법 구체를 시전했다.
스태프 위에 아름답게 피어난 빛의 구체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주변을 환히 밝히며 도마뱀에게로 돌진했다.
퍼어어어어엉-!
샤아아아아-
도마뱀이 그 자리에서 폭발해버렸다.
드디어 마력을 좀 찍기 시작해서 그런지 마법 구체의 위력이 급증했다.
원래는 폭발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손쉽게 터져버렸다.
아, 꼬리는 온전했으면 좋겠는데···
내 S급 블루 포션···.
“우와···.”
심지현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는 것 같다.
터져버린 도마뱀의 시체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현민 씨, 같은 주술사 맞아요? 저랑 너무 비교되는데요? 저는 공격 스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현민 씨는···. 심지어 이렇게 강력해요?”
“흐흐흐, 제가 허세부리는 게 아니라니까요. 저 진짜 강합니다.”
“그래도···.”
“참, 지현 씨. 이제 버프 좀 걸어주세요. 지현 씨도 이제부터는 경험치 빼먹으셔야지.”
“어느 걸로 걸어드릴까요?”
“두 개면 돼요. 프레이야의 축복하고 프레이야의 자비하고.”
“좋아요. 한 번 해보죠.”
심지현이 눈을 감았다.
잠깐 집중하더니 그의 몸에서 노란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잠시 주변이 밝아졌다.
이내 나의 몸에서도 노란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프레이야의 축복과 자비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프레이야의 축복’ 버프를 받았습니다. 한 시간 동안 경험치와 스킬숙련도 획득률이 1.5배 증가합니다.]
[‘프레이야의 자비’ 버프를 받았습니다. 한 시간 동안 아이템 드랍 확률이 1.5배 증가합니다.]
“크으 좋네요. 이제 지현 씨는 저 따라다니면서 가만히 호흡이나 하셔도 돼요. 스킬 숙련도도 올려야 되니까, 마나 차면 ‘고양’이나 ‘회복’도 가끔 써주세요.”
“알겠어요. 블루 포션 이거 그냥 마시면 되는 거죠?”
“네, 쭉 들이키세요. 맛은 별로 없을 거예요.”
심지현이 내가 준 포션을 꿀꺽 삼켰다.
블루 포션의 맛은 참 이상하다.
시면서 쓰다고 하면 딱 맞다.
그는 원샷을 하고 나서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블루 포션의 효과가 온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는 호흡을 시작했다.
우리는 사원의 더욱 깊은 곳으로 향했다.
샤아아아아- 샤아아아아-
많은 수의 도마뱀 마법사가 나타났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서 광선을 날려대었다.
“어떡해요. 이번엔 수가 엄청 많은데···.”
“걱정 마세요. 그래봤자 똑같아요.”
쐐애애애애애액-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광선들.
그러나,
퍼어어어엉-! 퍼어어어엉-!
나의 방어막 앞에서 모조리 흡수되었다.
수없이 많은 광선을 받아내었으나 방어막은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다 덤벼라 자식들아.
슈우우우욱-
나는 놈들의 한 가운데에다 마법 구체를 꽂아 넣었다.
퍼어어엉-!
샤아아아아-
폭발음과 함께 도마뱀 마법사들이 쓰러졌다.
이야, 처음 여기 왔을 때는 원 샷 원 킬밖에 안 되었는데.
이젠 멀티킬도 손쉽게 된다.
이게 마력 43의 위력인가.
퍼어어엉-!
샤아아아아-
다른 무리들을 향해서도 똑같이 마법 구체를 날렸다.
추풍낙엽처럼 놈들은 픽픽 쓰러졌다.
어느덧 우리가 있는 공간에는 싸늘한 도마뱀 시체만 잔뜩 쌓여있었다.
“어디 보자. 총 열 마리 정도 되려나.”
도마뱀 코인과 도마뱀 꼬리를 수거하면서 말했다.
확실히 프레이야의 자비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원래는 도마뱀 한 마리당 코인을 한 개밖에 획득하지 못했는데.
가끔 두 개를 드랍하는 놈들도 있다.
이러면 돈 벌기도 수월해지지. 흐흐···.
“현민 씨···.”
그는 아직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어 보였다.
어마어마한 광경에 헛웃음이 났는지 실실 입 꼬리를 올렸다.
“저··· 방금 사냥으로 3레벨 됐어요.”
응? 벌써?
아무리 레벨 10짜리라고 하지만 순식간에 2레벨 업을?
계산해보니까 그럴 만도 하다.
자기보다 높은 레벨 몬스터 경험치 보너스에 프레이야의 축복 버프까지 있으니.
안 될 것도 없네.
“축하해요. 남들은 며칠씩 노력해야 그 정도 레벨이 되는데. 지현 씨는 벌써 3레벨이 되었네요.”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어요. 현민 씨 왜 이렇게 강한 거예요? 이러니까 벌써 15레벨이나 되는 거군요.”
“다 하기 나름이죠.”
“프레이야님도 방금 레벨 업을 축하하며 추가 스탯 포인트를 주셨어요. 이걸 어디다 찍으면 좋을까요?”
“보통 집중력 찍지 않나요? 프레이야의 축복이나 자비 스킬은 어떤 스탯에 비례해서 성능이 좋아지나요?”
“으음 두 스킬은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스킬 레벨에만 비례한다고 하네요. 고양은 집중력 비례, 회복은 마력 비례긴 하네요.”
“그러면 집중력이 좋겠네요. 회복은 아직 쓸 일 없을 것 같아서···.”
“알겠어요.”
우리는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도마뱀 마법사들은 만나는 족족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나의 마나통이 예전보다 훨씬 늘어났기 때문에 굳이 마나 호흡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마력 구체의 효력도 더욱 강해져서 더 효율적으로 사냥을 진행했다.
내가 이 던전에 들어왔던 어떤 순간보다도 많은 수의 도마뱀을 잡았다.
심지현은 마나가 될 때마다 버프를 돌렸다.
블루 포션의 도움과 함께 나는 끊임없이 버프를 받을 수 있었다.
결국 레어 몬스터인 상급 도마뱀 마법사조차 내 성장의 희생양이 되었다.
샤아아아···
육중한 몸뚱어리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하, 별 거 없네.
놈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구체 두 방에 떡실신하고 말았다.
[‘마법 구체’ 레벨이 3이 되었습니다. 구체의 파워와 이동거리, 폭발반경이 증가합니다.]
[‘마력 방어’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방어막의 성능과 최대 지속 시간이 증가합니다.]
프레이야의 축복!
말 그대로 이 얼마나 축복인가!
두 스킬 모두 레벨 업을 했다.
이제 더욱 강력한 적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좋다, 좋아.
사용 마나가 늘어난 건 좀 아쉽긴 하네.
마법 구체는 이제 한 번에 20의 마나를 소모했다.
마력 방어는 15.
그래도 내겐 블루 포션이 있으니 걱정 없다.
축복만이 아니다.
프레이야의 자비 덕분에 놈에게서 좋은 아이템도 드랍되었다.
더 많은 양의 코인을 획득했다.
저번에 모자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놈의 지팡이가 아이템으로 인식되었다.
[상급 도마뱀 마법사의 지팡이]
- 레벨제한 : 13
- 착용제한 : 힘(10), 민첩(10), 마력(30), 집중력(20)
- 분류 : 스태프
- 등급 : S
- 특수효과 : 마법 공격의 파워를 10% 상승시킵니다.
야, 이번에도 정말 좋은 아이템이다.
마법 공격의 파워를 아무런 조건 없이 이렇게 쉽게 올릴 수 있다니!
사실 등급이 S이지만 이런 물건은 경매에 부쳐봤자 인기가 없다.
딱 봐도 스태프 계열이라 주술사만 착용하는데, 주술사의 마법 공격은 거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게는 S급 그대로의 성능을 발휘할 것이다.
나는 주술사가 아니라 마법사니까, 흐흐흐.
안 그래도 스태프 하나 살까 생각했는데 잘 되었다.
‘이건 또 뭐지?’
또 다른 아이템도 드랍 되었다.
터져버린 도마뱀의 입 위로 직사각형 모양의 무언가가 떠올랐다.
빛이 그 직사각형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템이란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었다.
[레시피 : 아조트 도마뱀의 가죽구두]
- 레벨제한 : 13
- 등급 : A
- 효과 : 대장장이의 레시피 창에 ‘아조트 도마뱀의 가죽구두’ 레시피를 등록합니다.
오호! 레시피가 드랍 되었다.
등급도 A네.
상급 도마뱀 마법사 이 녀석, 은근히 혜자잖아?
얘네만 등장하는 던전이 있으면 좋을 정도야.
이건 팔아가지고 심지현이랑 나눠가져야겠다.
“와! 얘는 경험치 엄청 주네요. 저 벌써 레벨 5에요!”
흐흐,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심지현이 저렇게 팍팍 성장하니까 왠지 모르게 뿌듯하네.
“어떡하실래요?”
“뭐를요?”
“이 정도면 사표 써도 되겠죠?”
내 말을 듣더니 심지현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는 소녀처럼 좋아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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