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계약
“다음 소식입니다. 서울의 한 불법사채업체가 정체 모를 단체의 습격을 받아 궤멸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아무런 단서도 남지 않아 경찰이 수사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사채업체 사무실에 나와 있는 김철수 기자 연결해보겠습니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뉴스를 보았다.
역시 파르마콘 놈들, 일처리 하나는 확실하군.
내 예상대로 움직여 주었다.
사채업체가 사라졌으니 이제 이들에게서 빌린 돈은 갚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 남매의 부담은 한결 줄어들었다.
“이 물건은 여기다 놓으면 좋겠다. 좀만 옮겨줘.”
“으응 그래, 기다려봐.”
오 남매는 내가 얻어준 가게 오픈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옆에서 거들어주었다.
“에구, 힘 들어라. 현민 오빠, 이 정도면 되겠죠?”
“적당히 깔끔하고 좋은 것 같아.”
“됐다! 그러면 여기서 끝! 이제 좀 쉬어야지.”
오서희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가게 전체를 슥 훑어보았다.
가게의 안쪽에는 아이템 제작실이 위치하고 있다.
이제까지 오서희는 다 쓰러져가는 본인의 집 주방에서 아이템을 만들었다.
그러나 앞으론 그럴 필요가 없다.
이 넓고 멋들어진 제작실에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모두 실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선 또 대박 아이템이 나오겠지.
제작실 바깥으로 나왔다.
이번엔 진열된 물건을 살펴보았다.
오서희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A급 초급 치유 포션과 S급 블루 포션들이 진열되어 있다.
게다가 레벨이 오르면서 만든 초급 능력치 부스터나 사냥 보조 아이템들도 수두룩하게 진열되어 있다.
당연하게도 등급은 모두 A급이었다.
이 레벨 대의 연금술사가 만들 수 있는 아이템 중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다.
나는 블루 포션 한 병을 집어 들었다.
병의 한쪽 구석에는 오서희의 상징과도 같은 브랜드 로고가 그려져 있다.
감회가 남달랐다.
만약 어제 내가 연락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꼼짝없이 파르마콘에게 팔려갔을 것이다.
그러면 미래는 바뀌지 않았겠지.
세계 최고의 마약공장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김재권을 비롯한 크로노스 세력에 검은 돈줄을 제공했겠지.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미래의 흐름을 바꾸었다.
그들을 파르마콘의 마수로부터 구해냈다.
브랜드 로고는 앞으로 마약의 상징이 아닌 오서희가 생산해낸 고급 아이템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제 점심시간도 된 것 같은데, 우리 짜장면이나 시켜먹을까요? 다들 고생하셨으니 제가 쏠 게요!”
오서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오재호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엥? 왜요! 현민 오빠는 배 안 고파요?”
“곧 맛있는 걸 싸들고 여기로 찾아올 손님이 있을 거거든.”
“엇? 누구에요?”
“안녕들 하십니까, 여러분-!”
이 호쾌한 목소리.
단번에 그가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왕건호였다.
그의 손에는 포장된 음식이 들려 있었다.
“자, 전진 길드에서 최고로 비싼 도시락 주문하신 분?”
왕건호가 탁자 위에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기가 막힌 도시락이었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한 다양한 반찬들이 담겨 있었다.
“헐! 건호 오빠! 웬일이에요?”
“오랜만이다, 서희야. 현민이가 너 가게 오픈한다고 와달라고 해서 들러봤다. 이거는 여기 이현민이가 산거니까 맛있게 먹으라고.”
“고마워요, 들러줘서! 현민 오빠도 고마워요. 이런 비싼 음식도 사주시고··· 흐흐.”
“아냐, 괜찮아. 얼른 먹자. 식기 전에.”
우리는 한참 일을 해서 배가 고팠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도시락을 먹어치웠다.
음식들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그나저나 아까 밖에 있는 차 현민이 네 거냐?”
“응, 하나 뽑았지.”
“무슨 일이래? 어디서 그렇게 돈 모은 거야? 설마 너··· 전갈 코인한 거 아니겠지?”
“흐흐흐, 잘 아네.”
“왓! 맞구나! 그렇지? 어쩐지 전갈 코인이 아니고서야 갑자기 돈이 뻥튀기될 일은 없겠지. 축하한다 야.”
“고맙다 건호야.”
“그런데 너 지금 레벨 몇인데 전갈 코인을 얻은 거야? 직접 잡은 건 아니겠지?”
“레벨 46이야. 물론 직접 잡았지.”
“미친··· 벌써 레벨이 그렇게 된다고? 너무하네. 나는 그 동안 레벨 10 정도밖에 못 올렸는데.”
“그래서 몇인데?”
“지금 딱 100이다. 흐흐흐···.”
“오! 드디어 100 찍은 거야? 축하한다. 이러면 길드 내에서 지위도 좀 올라가겠네?”
“흐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아이고, 다 먹었다. 배부르니 소화 좀 시켜야겠다.”
왕건호가 배를 통통 두들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번쩍번쩍 새 것 같은 진열장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야, 급속 초급 치유 포션인데 A등급이네? 이건 또 뭐야. 섬광탄인데 요것도 A등급이고.”
그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엇? 이건 블루 포션 아냐? 근데 무려 S급이잖아? 완전 처음 보는데. 그나저나 S급 블루 포션은 보통 블루 포션 성능보다 훨씬 좋아지네···?”
역시 그 또한 S급 블루 포션은 처음 보는 것 같다.
하긴 인생 2회차인 나도 들어본 적 없는 아이템을 너라고 알겠냐만.
다른 제품은 몰라도 이건 정말 유일무이한 오서희만의 제품이다.
왕건호는 블루 포션을 들고 한참을 살펴보았다.
말도 안 된다는 듯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왕건호의 옆으로 슬쩍 다가갔다.
어깨동무를 하고 싶었지만 워낙 어깨가 태평양 같아서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의 어깨를 살짝 붙잡는 게 내 최선이었다.
“어때? 마음에 드냐?”
“어··· 이런 건 진짜 처음 본다. 나한테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너 같은 주술사한테 안성맞춤인 물건 아니냐?”
“그렇지. 그래서 난 서희한테서 맨날 구입해서 사용 중이야.”
“이야··· 서희 진짜 대단하네. 최고대 화공과 다닌다더니 연금술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걸? 뭘 넣어야 도대체 이런 제품이 나오는 거지?”
여전히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 그래야지.
이쯤하면 타이밍이다.
나는 슬슬 본의를 드러내기로 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런 거 전진 길드 헌터들이 쓰면 엄청나지 않겠어? 초반에 마나통을 왕창 늘일 수 있잖아. 특히 주술사들 생각해봐. 거의 무한 버프를 돌릴 수 있지 않겠어?”
“그래··· 어쩌면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
“뭐가 말인데?”
“독점 계약.”
순간 왕건호의 거대한 어깨가 움찔거렸다.
내 말을 듣고 보니 실로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아직은 가게 오픈 전.
만약 이런 블루 포션이 있다는 사실이 다른 길드의 귀에 들어간다면?
어쩌면 그들과 오서희가 먼저 독점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그러면 전진 길드는 S급 블루 포션에는 손대볼 기회도 없게 된다.
그러니 어쩌면 지금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좋은 기회를 왕건호는 누구보다도 먼저 접했다.
“흐음···.”
“잘 생각해봐, 다른 길드들이 먼저 채가기 전에.”
왕건호는 머리를 굴리며 한참을 생각했다.
입을 열었다.
“좋아, 좋은 생각이야. 일단 하나 샘플로 사가서 주술사 팀이랑 공방 사람들이랑 같이 얘기해봐야겠어.”
흐흐, 이렇게 나와야지.
이러려고 내가 널 부른 것도 있는데.
건호야, 네가 사람 하나 살린 거야.
나는 왕건호의 어깨를 두들기고 제 자리로 돌아갔다.
오서희를 보고 싱긋 웃어주었다.
오서희는 영문도 모르고 따라서 헤헤 웃었다.
----
“오빠! 대박이에요! 저번에 그 블루 포션 있잖아요, 전진 길드랑 독점 계약 맺게 되었어요! 그것도 개당 12만원의 가격으로요! S+급은 개당 16만원 쳐 주겠대요!”
며칠 후, 오서희의 가게를 찾았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기뻐하며 말했다.
모든 일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왕건호는 샘플을 들고 가 전진 길드 사람에게 말했다고 한다.
주술사 팀과 공방 사람들은 직접 오서희의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많은 물건들을 구경한 후 이것저것을 물어봤다고 한다.
결국 그들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
블루 포션에 관해 오서희와 독점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그것도 내가 평소에 오서희와 거래했던 가격의 몇 배로 말이다.
또한 다른 물건들도 그 품질을 인정받고 일부 거래하기로 계약했다고 한다.
심지어 전진 길드에서 많은 돈을 주고 같이 일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도 했다고 한다.
오서희는 그에 대해서는 거절의 의사를 보였다.
학교도 아직 다녀야하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도 그것이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니까.
얽매여 있기 보단 자유의 몸인 게 더 좋겠지.
“잘 됐네, 서희야. 이제 돈 걱정 없겠어?”
“그러니까요, 흐흐흐. 이제 등록금도 다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빚도 조금씩 갚아나갈 수 있을 것 같고요!”
“참, 서희야. 너 지금 레벨 몇이지?”
“저 지금 25에요.”
“흠, 그러면 아직 멀었긴 했구나.”
“뭔데요?”
“내가 던전에서 A등급 레시피를 하나 얻었는데, 너한테 줄까 해서.”
“오! 무슨 레시피에요? 궁금한데 봐도 되나요?”
오서희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순수한 호기심의 눈빛이었다.
나는 그에게 ‘역수의 덩굴나락’ 레시피를 건네주었다.
“엥? 레벨 45때부터 사용할 수 있네요···. 그래서 전 구체적인 걸 열람할 수가 없네요. 전 아직 한참 멀었어요.”
“그래도 네가 가지고 있어. 나중에 레벨 45가 되면 그때 한 번 만들어 달라고. 혹시 모르잖아? 엄청 좋은 아이템이 생산될지.”
“흐흐흐, 고마워요. 잘 쓸게요. 참, 이런 거 공짜로 받으면 안 되지. 이제 돈도 버니까 가격을 제시하세요. 맞춰서 드릴게요.”
“에이,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냥 가져.”
“그래도요!”
“그러면 이건 어때? 앞으로도 계속해서 블루 포션을 내게 공급해주겠다고. 이건 독점 계약 위반 사항이려나?”
“흐흐흐, 다른 길드에 대량으로 파는 건 위반 사항인데 개인한테 소량으로 파는 건 위반 아니에요. 얼마든지 드릴게요. 심지어 원래 가격으로!”
“흠, 그것까지 바란 건 아닌데, 흐흐흐. 고맙다 어쨌든.”
“제가 더 고맙죠! 가게도 차려주신 데다가, 건호 오빠한테 말해서 전진 길드랑 계약도 맺게 해줬으니까요. 얼른 돈 벌어서 은혜 다 갚을게요.”
나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작가의말
세상에? 선호작 수가 800명이 넘었네요...! 봐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