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
[일본 하치조지마 섬 제2던전]
- 레벨 : 6
- 제한시간 : 6시간
- 인원제한 : 15명
던전에 들어가자 모든 풍경이 뒤바뀌었다.
시원스런 바다가 펼쳐졌다.
우리는 바닷가의 절벽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절벽 아래로 파도가 넘실대는 것이 보인다.
이곳은 바로 크로노스의 땅인 티탄 지역.
크로노스의 영역이라고 하니 괜히 긴장이 된다.
그가 지금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지만 말이다.
패트리샤가 앞장서서 절벽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갔다.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헤이- 현민? 너 지금 레벨은 몇이지?”
“나? 지금 55야.”
“그래? 나랑 똑같네. 나도 55인데.”
그는 싱겁게 말을 뱉고는 다시 말 없이 걸었다.
어느덧 우리는 절벽 아래로 도착했다.
이제 발 바로 아래가 바다였다.
짙푸른 바다 속에는 물고기가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우와! 물고기가 참 많네요. 귀엽다.”
심지현은 쪼그리고 앉아 물고기들을 바라보았다.
이 물고기들은 인간 세계의 물고기들과 외형 상 별 차이가 없었다.
그저 귀여운 물고기들이었다.
그는 뻐끔거리는 물고기의 입을 만져보고 싶었는지 슬며시 손을 뻗었다.
“헤이! 조심해!”
그때 패트리샤가 심지현을 향해 소리를 꽥 질렀다.
그러더니 자신의 등 뒤에서 화살 하나를 꺼내어 활시위를 당겼다.
촤아아아아악!
꾸어어어어어억!
그때 수면 아래에서 엄청난 괴물이 튀어나왔다.
레벨 51의 인면어였다.
좀비의 얼굴을 갖고 있는 괴상망측한 물고기였다.
“꺄아아악!”
녀석이 힘차게 뛰어오르자 심지현은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패트리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쐐애애애애액-
패트리샤가 쥐고 있던 화살이 인면어를 향해 날아갔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화살은 순식간에 인면어의 허리에 박혔다.
인면어가 비명을 질렀다.
꾸어어어어얽!
화살이 꽂힌 녀석이 몸부림치며 수면 아래로 떨어졌다.
심지현이 숨을 헐떡였다.
패트리샤와 나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불안한 감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3, 2, 1.”
패트리샤는 입으로 숫자를 세었다.
그가 ‘1’을 전부 발음하던 그 순간.
수면 아래에서 인면어가 다시 튀어 올랐다.
촤아아아앗-
“꺄아아아악!”
심지현은 다시 떠오른 녀석의 징그러운 모습에 비명을 질렀다.
“Boom!”
콰아아아아앙-
패트리샤의 외침과 함께 인면어가 공중에서 터져버렸다.
육체가 분리되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심지현의 얼굴에 핏덩이가 잔뜩 튀었다.
입에도 들어갔는지 그는 침을 퉤퉤 뱉었다.
“괜찮아요?”
이번엔 어제 심지현이 그랬듯 내가 손수건을 건넸다.
그는 건네받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슥슥 닦았다.
인면어에게서 떨어진 코인은 패트리샤의 손에 쥐어졌다.
그는 자신의 얼굴에 튄 피를 닦으면서 싱긋 웃었다.
‘시한폭탄화살이군.’
방금 패트리샤가 시전한 것은 저격수의 스킬이었다.
첫 일격은 일반 화살 공격과 차이가 없다.
추가적인 데미지도 없다.
그러나 만약 화살이 박힌 채로 시간이 흐른다면?
기다린 시간에 대한 어마어마한 보상이 뒤따른다.
화살은 큰 폭발을 일으키고, 화살이 박힌 상대에게 막대한 데미지를 입힌다.
그러니 만약 저격수가 발사한 화살을 맞았는데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았다?
그러면 그 화살이 시한폭탄이 아닌지 반드시 의심해봐야 했다.
뽑아서 던지지 않으면 신체 일부가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다.
“헤이, 지현?”
패트리샤가 심지현의 앞으로 다가갔다.
심지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기는 던전이야. 귀여운 게 있다고 그렇게 한 눈 팔아선 안 된다고. 모든 걸 경계해야 해. 무슨 말하는지 알겠지?”
영어로 말을 쏟아냈다.
심지현은 다 알아듣는 것 같진 않아도 대충 늬앙스는 알아챈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풀이 죽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패트리샤는 등을 돌리고 다시 걸어갔다.
나는 이 상황이 화가 나서 그를 붙잡고 이야기했다.
“헤이, 패트리샤.”
“왜?”
“꼭 저런 식으로 해야 했어?”
“뭐가?”
“그냥 ‘관통화살’ 정도만 썼어도 깔끔하게 죽일 수 있었잖아. 굳이 ‘시한폭탄화살’을 써서 장난질을 쳐야 했어?”
나는 그가 시한폭탄화살을 사용한 의도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딱 봐도 심지현을 골려주려는 의도이다.
관통화살은 만약 쏜 화살이 육체를 뚫고 나간다면, 상대에게 어마어마한 데미지를 입히는 스킬.
패트리샤의 능력으로 보았을 때 관통화살 정도만 쐈어도 인면어는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시한폭탄화살을 쓴 건 심지현에게 핏덩이를 투척하겠다는 의도였다.
“오? 저격수 클래스에 대해 좀 아나보지?”
“이 정도는 기본인 것 같은데.”
“뭐, 장난질을 쳤다는 건 인정하지. 그래도 그 정도는 해줘야 앞으로 네 친구가 한 눈 팔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 입은 뒀다 뭐에 쓰게? 말로 잘 해도 되는 거잖아.”
“흐흐흐, 그래도 이게 더 재밌잖아?”
그는 이빨을 드러내고 활짝 웃었다.
사과 같은 건 전혀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를 뿌리치고 저 앞으로 달려갔다.
어휴, 성격이 이러니 내가 정이 떨어졌지.
고약한 심보는 참 어찌할 수가 없다.
“지현 씨, 미안해요. 제가 미리 피하라고 얘기를 했어야 하는데. 아까도 말했죠? 저 친구 성격이 좀 이상하다고. 기분 나빴어요?”
“아··· 아니에요. 제가 잘못한 걸요 뭐···.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다행히 심지현은 크게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냥 물고기에 조금 놀란 게 다인 듯하다.
그제야 난 조금 마음을 놓고 다시 걸어갈 수 있었다.
촤아아아앗!
쐐애애애애애액-
패트리샤는 이미 저 멀리 앞장서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인면어들을 관통화살로 잡아냈다.
정확하게 원 샷 원 킬로 몬스터들이 죽어나갔다.
역시 엄청난 명중률.
과연 저격수 클래스 루키답다.
저렇게 깔끔하게 죽이면 될 걸, 아까는 굳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이다.
“헤이, 현민?”
패트리샤가 그 자리에서 멈춰서 나를 돌아다보았다.
“왜 그러지?”
“너 아까 공격형 주술사라고 하지 않았어?”
“뭐, 그랬지.”
“한 번 네 실력을 보여주는 게 어때?”
그가 수면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의도가 분명하게 보였다.
도발을 하려는 게 틀림없다.
그는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본인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만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쳇, 그 잘난 코를 꺾어주지.
나는 기꺼이 그의 도발에 응하기로 했다.
마법사로서 내 능력을 보여주지.
어차피 패트리샤도 혼자 사냥하는 주의라서 주술사의 구체적인 스킬셋은 전혀 모를 테다.
나는 지난 생에 그를 처음 만났을 때, 타 클래스에 대한 무지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원한다면 한 번 보여주지.”
“패기 좋네. 저쯤에서 이제 슬슬 튀어오를 때가 된 것 같은데?”
촤아아아와앗-
패트리샤의 말이 끝나자마자 인면어가 튀어 올랐다.
‘새로운 스킬을 한 번 써볼까?’
내 생각에 물에 사는 놈들이니 번개 속성 약점일 것 같다.
그렇다면 ‘번개 창’ 한 방 먹여주면 사족도 못 쓰고 죽어버리겠지?
스태프를 들어 올리니 노란 빛이 피어올랐다.
꾸어어어어억!
쐐애애애애액-
노란 빛이 광선처럼 뻗어나갔다.
곧 광선은 번개가 지직거리는 창으로 화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번개 창이 뻗어나갔다.
마법 구체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확실히 번개 창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속도인 것 같다.
이 정도면 저격수의 화살 속도에 맞먹을 것 같다.
지지지지지직!
꾸어어어어어얽-!!
번개 창이 인면어의 옆구리에 꽂히었다.
그러자 녀석의 몸 전체가 노란 빛 전기로 둘러싸였다.
감전되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공중에서 멈춘 채로 굳어버렸다.
역시 전기가 약점임에 틀림없다.
놈은 물고기 코인을 내 발바닥에 떨군 채로 수면 위로 떨어졌다.
전기 생선구이 냄새가 구수하게 피어올랐다.
“어때?”
패트리샤를 보며 으쓱하게 웃었다.
그는 그러나 별로 당황한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역시 주술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게 틀림없다.
“오? 제법 하는데? 방금 그건 뭐였지? 참! 알 것 같아. 너희 나라 만화에도 나오지 않았나? 피카츄! 백만 볼트!”
“오 제발. 난 한국 사람이라니까? 그건 일본 만화야.”
“그래? 뭐 아무렴 어때.”
“그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내가 너를 프랑스 사람이라고 하면 기분 좋겠어?”
“글쎄, 그냥 그럴 것 같은데.”
젠장 말을 말자.
진짜로 이런 문제 따위 신경도 안 쓰는 게 분명하다.
괜히 예민하게 굴다가 나만 스트레스 받는다.
“현민, 나랑 내기하지 않을래?”
“무슨 내기?”
“누가 더 많이 인면어를 잡는지 내기해보자고. 지는 사람이 밥 사는 걸로, 어때? 심판은 네 친구가 보면 되겠다.”
“못할 건 없지. 미리 고맙다고 인사해야겠어. 내가 오늘 그 유명한 패트리샤한테 밥을 얻어먹을 테니.”
쐐애애애애애액-
꾸어어어어얽!
내가 말을 할 동안 패트리샤는 이미 인면어 한 마리를 사냥했다.
그리고는 튀어 오른 물고기 코인을 입에다 물며 말했다.
“난 이미 한 마리 잡았는데. 말로만 허세부리지 말고 직접 잡는 게 어떨까?”
얄미운 표정으로 실실 웃었다.
두고 보자고.
지지 않을 테니까.
꼭 오늘 너한테 밥 얻어먹고 만다.
내기가 시작되었다.
공정함을 위해 심지현은 패트리샤와 나 둘 다에게 버프를 걸어주었다.
지지지지직-
꾸어어어어얽!
절벽 길을 따라 걸으며 몬스터를 학살했다.
번개 창의 위력은 아주 쓸 만했다.
두 마리 이상이 뛰어 올라도 문제없었다.
번개 창 한 번만 꽂아주면 지직거리며 죽어버렸다.
혹여 내가 한 눈을 팔다가 인면어의 근거리 접근을 허용하더라도 괜찮았다.
번개 창의 부가적 효과 때문이다.
번개 창을 한 번 먹여주면 움직임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폭발하는 스킬도 아니라서 근거리에서 사용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녀석은 공중에서 굳어버렸고, 바닥으로 철퍽 떨어졌다.
지형은 점점 변해갔다.
우리는 어느덧 절벽 아래가 아니라 바다의 한 가운데 있었다.
징검다리처럼 놓인 바위를 따라 걷고 있었다.
‘이런 것도 되겠네.’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바다 밑을 향해 익스플로젼을 시전했다.
콰아아아아앙-
꾸어어어어어억!
몇 마리의 인면어들이 펄떡펄떡 떠올랐다.
그리고 놈들을 향해 번개 창을 날려주었다.
꾸어어어어얽!
수분을 따라 전기가 통하여 다수의 물고기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패트리샤는 자꾸만 내 모습을 힐끔거리며 상황을 확인했다.
그의 표정이 점점 불안해지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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