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성장의 서막
우리는 정말로 사표를 썼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잘해주기 시작하던 김민식 대리도.
이제 나를 보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최민철 부장도.
나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생각할 순 있었다.
그러나 심지현의 퇴사는 그들에게 있어 정말로 의외였다.
가장 성실하고 일 잘하기로 정평난 심지현이 퇴사를 한단다.
그는 갑자기 헌터가 되어 돌아왔다.
그것도 된지 얼마 안 되었는데 레벨 5를 찍어서.
최 부장님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의 레벨을 처음 들었던 그날과 같이 사시나무 떨 듯 부들거렸다.
- 왕건호 : 야, 현민아. 이번에 네가 얻어온 아이템도 대박이다. 무려 1000만원에 팔렸어!
왕건호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가 경매를 맡긴 레시피가 1000만원에 거래되었다는 소식이다.
이 아이템도 기존에 드랍된 적이 없는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A등급이라서 고가에 거래된 것 같다.
나로썬 잘 된 일이다.
심지현에게도.
“지현 씨, 이거 봐요.”
나는 심지현에게 왕건호의 문자를 보여주었다.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단숨에 회사에서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정말··· 할 말이 없네요.”
우리는 서로를 보며 시시덕대며 웃었다.
나는 그에게 딱 절반인 500만원을 입금해주었다.
내가 아이템 하나를 홀랑 먹었으니 이 정도는 나눠줘야겠지.
다행히 퇴사과정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속이 시원했다.
퇴사 후, 심지현과 나는 매일 같이 던전에 들어갔다.
마법 구체의 위력이 한 단계 상승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던전에서 사냥했다.
그곳에선 더 높은 레벨의 몬스터가 출현했다.
레벨 18짜리 몬스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사냥에 별다른 무리가 없었다.
심지현의 고양 버프를 받은 레벨 3짜리 마법 구체는 놈들을 터뜨리기에 충분히 강력했다.
거기에 ‘상급 도마뱀 마법사의 지팡이’에 붙은 마법 공격 파워 10% 증가 특수효과까지 있었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
나는 고 레벨 몬스터 사냥 보너스에 프레이야의 축복 버프를 받고 거듭 성장했다.
[이현민]
- 레벨 : 20
- 클래스 : 마법사
- 서클 : 1
- 존재 등급 : 생도
- 마나 : 1000/1000
- 능력치 : 힘(10), 민첩(10), 마력(38+20), 집중력(45+25)
레벨 20이 되었다.
스탯은 마력에 몰빵했다.
마법 구체는 더욱 강력해졌다.
마나는 1000을 찍었다.
역시나 블루 포션의 덕이다.
심지현도 나를 능가하는 폭풍 성장을 보여주었다.
그의 레벨은 11이 되었다.
프레이야의 축복과 프레이야의 자비 스킬도 각각 2렙을 찍었다.
이제 수치가 1.5배에서 1.75배로 증가했다.
돈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다.
던전에서 얻은 코인과 아이템 수익은 차곡차곡 통장에 쌓여갔다.
퇴사 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현재 크로노스의 수제자이신 김재권 씨가 오늘 12레벨 던전의 폭발을 혼자 막아내셨다고 합니다. 그와 함께 인터뷰를 나눠보겠습니다.”
어느 날, 평온한 아침.
나는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하다 뉴스 멘트를 듣고 체할 뻔했다.
김재권에 관한 소식이 나왔기 때문이다.
얼른 리모콘을 가지고 볼륨을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전사 김재권이라고 합니다.”
“지난달에도 서울 한 복판에 나타난 11레벨 던전을 혼자 클리어하시더니, 이번엔 무려 12레벨 던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세계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업적인데요.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딱히 감흥은 없습니다. 헌터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시민 여러분들이 안심하고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가식적인 멘트.
본인의 힘과 성장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사람이 바로 김재권이다.
그것이 바로 그를 순식간에 크로노스의 화신으로 올려놓은 원동력이기도 했고.
시민의 안전 따위 별로 신경도 안 썼다.
크로노스는 그 점을 마음에 들어 했다.
김재권은 누구보다 힘을 원했기에, 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기꺼이 배신할 수 있을 정도의 아득한 욕망.
날이 갈수록 김재권은 그 욕망에 사로잡혀갔다.
“···그럼 김재권 씨의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GBS, 김철수였습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더불어 한국당 대표 홍길동 의원이 막말 논란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오늘 국정 감사에서···.”
인터뷰가 끝나더니 곧 정치판의 뉴스가 나오기 시작한다.
휴, 김재권의 얼굴이 안 보이니까 이제 좀 살 것 같네.
나는 차분하게 다시 숟갈을 들었다.
그나저나 정말 엄청난 성장이다.
지금쯤 레벨 130은 되었겠지.
나도 심지현을 등에 업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뉴스를 보니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진다.
이 악 물고 더 열심히 뛰어다녀야지.
“아니, 당신 미쳤어? 그냥 닥치고 있으라고!”
어휴 시끄러워.
모 의원의 고성방가가 TV에서 들려왔다.
나는 정신 사나워서 채널을 돌려버렸다.
동물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한결 낫네.
그나저나 저 정치권 양반들은 언제 정신 차리려나.
한국, 나아가 세계를 뒤엎으려는 지하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헌터 레지스탕스’라는 어마어마한 흑막이 세계를 정복하고, 일반인들 위에 헌터들이 군림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에휴, 답답하다.
저런 데서 삿대질이나 할 시간이 없는데.
‘엇,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뉴스에 열중하다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아이고, 또 늦으면 안 되는데.
얼른 준비해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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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쟤네들 좀 봐.”
한민수가 자신의 동료인 김민호에게 말했다.
방어구도 그렇고, 무기도 그렇고 둘은 틀림없이 전사였다.
“누구 말하는 건데?”
“쟤네 있잖아! 저기 남자랑 여자.”
“아, 저기 저 둘?”
김민호가 손가락으로 두 명의 주술사를 가리켰다.
한 명은 남자고 한 명은 여자다.
그런데 이상하게 남자는 모자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방어구도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쟤네들 둘이서 던전 돌려고 온 것 같은데.”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주술사끼리 던전을 어떻게 돌아? 다른 팀이 있겠지.”
“아니야! 보라고. 다른 팀들은 주술사가 한 명 씩 있어. 대규모 팀이 아니고서야 주술사를 두 명 이상 팀에 포함하는 건 비효율적이잖아.”
“어··· 그러고 보니.”
“분명해. 쟤네 둘이 한 팀인 거야.”
한민수가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별 거 아니야. 그냥 우리가 종종 하던 일을 하자는 거지.”
“쟤네 털어먹자는 거야?”
“그렇지.”
한민수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김민호는 옆에서 실실 웃었다.
“진짜 저런 좋은 먹잇감이 어디 있어? 연금술사, 대장장이를 제외하면 가장 약한 클래스인데. 무슨 생각으로 둘이서 온 거지? 정말 순진한 놈들이군.”
“그러게. 좀 수상하긴 해. 뭐 있는 거 아니야? 너 말대로 아무 대책도 없이 주술사끼리 왔을 것 같지는 않은데.”
“뭐, 주술사 중에서도 공격 스킬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지. 그런데 그래봤자야. 주술사가 세 봐야 얼마나 세겠어? 걱정 없어.”
“알겠어, 민수야. 너만 믿을게.”
“일단 여자부터 노리자. 여자가 레벨이 더 낮아 보이니까. 아마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을 거야. 여자를 죽이고 나서 남자를 노리는 거야. 알겠지?”
“흐흐흐··· 당연하지. 털어먹는 거 어디 한두 번 하니?”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마나통은 좀 올렸어요?”
나는 심지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요. 블루 포션 덕분에 쫙쫙 오르던데요. 이제 프레이야의 축복과 자비 쓰고 나서 고양도 추가로 쓸 수 있어요.”
“좋네요. 오늘도 한 번 열심히 돌아봐요.”
“이제 입장하시겠습니다!”
우리는 직원의 외침과 함께 던전 입구에 섰다.
이곳은 대형 던전이다 보니 사람들이 꽤 많았다.
던전 입구는 떠드는 소리 때문에 시장통처럼 시끄러웠다.
곧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눈보라가 세차게 덮쳤다.
이곳은 프레이야의 땅, 발퀴레 지역.
설원을 특징으로 하는 곳이다.
길쭉길쭉한 침엽수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우리는 늘 했던 대로 경로를 택했다.
최대한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경로였다.
우우어어어-
어느 정도 멀어지니 몬스터가 출현했다.
커다란 양 갈래의 뿔을 가진 순록이었다.
그의 눈은 분노로 충혈 되어 있었다.
마치 투우장의 소처럼, 콧김을 뿜으며 울부짖었다.
앞발을 거칠게 내딛으며 우리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
“준비됐죠?”
“당연하죠.”
심지현이 프레이야의 축복과 자비, 그리고 고양 스킬을 시전했다.
내 몸에 빛이 깃들었다.
으음- 좋아.
힘이 샘솟는다.
우우어어어어어-!!!
성난 녀석이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눈이 한 가득 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마법 구체.’
지이이이잉-
이거나 먹어라.
슈우우우우욱-
3레벨 마법 구체의 위력을 맛 보거라.
각종 버프가 덕지덕지 붙은 구체를 말이야!
퍼어어어어엉-!
우우어어어엉-!
정면으로 구체를 맞은 녀석은 중간에서 맥없이 쓰러졌다.
하얀 설원 위에 빨간 핏물이 스며들었다.
순록 코인이 두 개 드랍되었다.
칼을 가지고 녀석의 뿔도 베었다.
오서희가 또 쓸데가 있다고 해서 모으는 중이다.
“됐다. 이제 다른 데로 가죠.”
나는 고개를 돌리면서 심지현에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무언가 수상한 것을 보았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심지현의 뒤로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성난 멧돼지처럼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점점, 점점 가까워졌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형체가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하얀 눈보라를 헤치고 거칠게 달려오는 갈색의 덩어리들.
그것은 절대로 순록이 아니었다.
분명히 사람이었다.
그것도 완전 무장을 한 전사 둘.
그 중 한 놈이 달려오면서 기를 모으고 있었다.
안 돼. 저건···
“지현 씨! 조심해요!”
그를 향해 울부짖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심지현이 뒤를 돌아봤을 때쯤, 놈은 엄청난 속도로 그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쐐애애애애액-
‘쇄도’ 스킬이 심지현을 향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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