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략에 말리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달려가는 나를 보고 패트리샤가 외쳤다. 심지현도 역시 헥헥거리며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이유라도 이야기해야 할 거 아니야!”
그녀는 드디어 멈춰 서서 역정을 내었다. 그러나 이유를 설명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얼른 사무실로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서 현정환을 만나야만 한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른 사무실로 뛰어갔다.
“엇! 현민 씨 오셨네요!”
임우진이 언제나와 같은 말투와 표정으로 나에게 인사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줄 시간이 없었다. 현정환이··· 그가 제발 아직 떠나지 않았기를 바라야만 했다.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없어······.’
하지만 방 안에 현정환의 모습은 없었다.
“왜 그러세요? 길드장님 지금 안 계신데······.”
임우진이 나를 따라 들어오며 말했다. 어딘가 안 좋아 보이는 나의 표정을 보곤 걱정을 했다.
“괜찮은 거예요?”
“지금 길드장님 설마 울릉도 던전 폭발 진압 작전에 투입되신 건 아니죠?”
“네, 거기 가신다고 들었어요. 듣자하니 레벨 200을 넘으면 꼭 참여해야 한다면서요?”
아뿔싸.
늦고 말았다.
방금 전 식사를 급히 끝낸 후.
현정환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길드 사무실에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팀이 사냥을 나갔는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차를 타고 전주에서 부리나케 달려왔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
역시나 늦고 말았다.
“하··· 젠장!”
“헉··· 헉···.”
패트리샤와 심지현이 뒤따라 들어왔다. 임우진은 그들과 나를 번갈아 보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
“무슨 일 있는 거죠? 설마 현정환 길드장님께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죠······?”
뭔지는 몰라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그도 예측한 것 같았다.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그때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현정환이라는 이름 석 자가 화면에 떠올랐다.
얼른 전화를 받았다. 그의 호방한 목소리가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런데 주변이 매우 시끄러웠다. 간신히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어! 자네인가! 내가 바쁜 일이 좀 있어서 전화를 못 받았네.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저 태연한 목소리. 하기야 그로선 알 턱이 없지.
“길드장님, 지금 어디십니까?”
- 지금 울릉도 가는 헬기 안일세. 자네도 던전 폭발 소식 들었지? 레벨 200이 넘어서 던전 폭발 진압에 참여해야한다고 하더군.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리지?!
“······김재권도 같이 있습니까?”
- 뭐라고? 귀가 먹어서 잘 안 들리네!
현정환이 알아듣지 못하자 다시 한 번 크게 말했다.
“김재권도 같이 있습니까?!”
- 아니야! 지금 나 혼자뿐이야. 다른 사람들은 먼저 이동을 했다고 하더군.
다행이다.
그러면 하고 싶은 말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도 시련은 치루셨습니까?”
- 그래, 오늘 막 사도로 존재 등급이 올랐지. 그런데 이 크로노스란 작자가 스킬 같은 것도 하나 안 주더라고? 괘씸한 녀석······.
“크로노스가 특별한 말은 안 했습니까?”
- 글쎄. 그런 거 없던데? 김재권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200만 넘으면 뭐가 있을 것처럼 하더니, 정작 아무것도 모르겠더군. 둘 다 그냥 나 놀린 겐가?
그가 이토록 태연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크로노스는 이미 그를 포기했다.
그를 자신의 수하로 삼을 생각이 없다.
그러니 사도 시련을 통과하더라도 새로운 스킬을 하나도 주지 않은 거고.
심지어 자신의 음모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우려이기만 했던 내 생각들이 이제 확신이 되었다.
크로노스는 현정환을 죽일 작정이다.
그것도 김재권을 필두로 한 크로노스의 낫을 통하여.
이것은 계획된 함정임에 틀림없었다.
“길드장님.”
- 그래.
“지금 길드장님은 위험한 상황에 처해 계십니다.”
- 위험하긴 하겠지. 레벨 207짜리 벨로시랩터들을 잡으러 가는 게니까. 나보다 레벨이 높긴 높지.
“아니, 그 문제가 아닙니다. 김재권을 비롯한 크로노스의 낫 일원들이 길드장님을 죽이려고 들 겁니다.”
- 걔네들이 왜? 무슨 이유로 날 죽인단 말인가?
“크로노스의 낫은 크로노스에게 충성을 맹세한 전사 집단입니다. 크로노스는 인간 세계를 정복할 음모를 꾸미고 있고요.”
-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현정환의 목소리에서 호방함이 누그러졌다. 다소 진지한 목소리가 되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다 설명하긴 어려울 것 같군요. 아무튼 지금 길드장님은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처해 계시는 것만 확실히 염두에 두십쇼. 김재권을 비롯한 전사들이 틈을 봐서 노리고 들 겁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현정환은 아무 말도 없이 생각을 추스를 뿐이었다.
“길드장님···?”
- 알겠네.
그의 결연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 일단 상황을 온전히 파악하긴 힘들지만······ 그것만은 확실히 경계하겠네.
“조심하십쇼. 부디.”
통화가 끊어졌다. 삑삑대는 전자음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휴대폰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했다. 임우진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현민 씨! 그게 무슨 소리에요! 김재권이 우리 길드장님을··· 우리 길드장님을··· 죽이려 한다니요?!”
그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할 말이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내 책임도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크로노스를 따르지 않기로 했다고 하더라도 크로노스가 직접 그를 벌할 수단은 없다. 힘을 더 이상 나눠주지 않는 것 외에는.
만약 그를 해코지하려면 크로노스의 낫의 멤버를 동원해야 했다. 허나 그들은 인간이다. 법에 구속을 받는 인간. 무턱대고 현정환을 납치 감금하여 죽인다면 꼬리를 밟히고 만다.
유일한 수단은 같이 던전에 들어가는 것. 이 방법은 현정환이 그들과 어울릴 이유가 없어서 당연히 선택할 수 없으리라 보았다.
난 이미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고 생각했다. 현정환을 설득하여 크로노스의 낫에 가입시키지 않은 것으로 그를 죽음에서 구해냈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혼란스러웠다.
허를 찔린 기분이다.
울릉도에서 일어난 던전 폭발이 이렇게 연관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것이 원래 현정환의 운명이었던가?
아니면 내가 그를 구해냈음에도 불구하고 크로노스의 낫은 돌파구를 찾아낸 건가?
전생에 현정환에 대해 몰랐던 나는 그것을 판별할 수 없었다.
“현민 씨··· 말 좀 해봐요! 저희 길드장님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러나 아무래도 좋다. 무엇이 사실이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단 하나.
“걱정 마세요. 제가 반드시 구해내겠습니다.”
현정환을 반드시 구해야 한다.
이것은 위기이지만 곧 기회이기도 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현정환을 구해낼 수만 있다면?
김재권 및 크로노스의 낫의 추악한 모략을 낱낱이 증거할 수 있다.
임우진은 드디어 내 가랑이를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구해내겠다는 선언. 그 말을 하는 내 목소리에 묘하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했다.
나는 그들보다 레벨이 낮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냉혹하게 말하면 현정환을 이대로 버리는 게 나은 선택인지 모른다.
허나 그러긴 힘들었다.
그는 반 크로노스 세력의 구심점을 담당할 수 있는 위인이었기 때문에.
또한 당장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헤이, 현민. 방금 한 말들 전부 진짜야?”
패트리샤가 다가와서 내게 물었다. 심지현은 이미 전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어, 진짜야.”
“그러면 크로노스가 인간 세계를 정복하려고 하고, 그것 때문에 여기 길드장을 죽이려고 한다고?”
“정확해.”
“와우. 어마어마하군.”
패트리샤는 본인이 말을 뱉어놓고도 믿기지가 않았는지 손사래를 쳤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울릉도에 도착해야 하는데. 현정환이 죽기 전에 갈 수 있을까?
“그래서, 구하러 갈 거야?”
패트리샤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싶은데. 방법이 마땅찮아.”
“울릉도, 여기서 먼가?”
“꽤 멀지. 차로 3시간, 배로 3시간.”
“말고, 헬기 타면 얼마나 걸리는데?”
“헬기?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어차피 탈 헬기도 없는 걸.”
그러자 패트리샤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서 가리켰다.
“이거 한 방이면 돼.”
그녀의 말에 난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뱉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패트리샤 이 자식 엄청난 금수저였지···.
“기다려봐.”
그녀는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화 내용을 대충 들어보니 자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 것 같았다.
전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패트리샤는 내게 씨익 웃어 보이면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빌렸어. 가자.”
짧은 한 마디였지만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뱉고 말았다.
“그런데··· 너도 갈 거야?”
“울릉도?”
“거기 상당히 위험한 곳이야. 레벨 207짜리 몬스터들이 등장한다고. 게다가 우리가 마주쳐야 할 놈들은 레벨 200이 훌쩍 넘는 헌터들이라고.”
“그러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거 아니야?”
패트리샤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난 그 당당함에 다시 한 번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녀다운 대범함이었다. 겁도 없이 이렇게 선뜻 나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위험할 텐데······.”
“어차피 나 없으면 헬기 빌려 타지도 못해. 잔말 말고 가기나 하자.”
패트리샤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은근히 지금 일어날 일에 재미조차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저도 가야겠죠?”
심지현도 이미 마음을 굳힌 듯싶었다. 결연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녀를 이런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녀가 있어야만 승산이 조금이라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뒤에서 흐느끼던 임우진이 나를 붙잡았다.
그의 레벨은 현재 130.
141인 패트리샤보다도 낮았다.
그녀보다도 훨씬 위험할지 모른다.
패트리샤는 그나마 저격수라서 거리를 벌리기만 하면 죽을 위험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임우진의 클래스는 전사. 상대에게 필연적으로 거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현정환 길드장님은 제 은인이세요.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요. 저라도 꼭 도움을 보태고 싶어요. 그러니 제발······.”
갈등이 되었다.
이 남자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고민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지금 신중한 판단 같은 건 사치일지도 모른다.
난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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