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대화
- 저 사실 회귀했습니다.
이 말을 뱉자 자라투스트라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어떠한 메시지도 내게 전달하지 않았다.
아마 내 말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난 사막 한 가운데 가만히 앉아서 그의 답변을 기다렸다.
잠시 후, 반응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반응은 시스템이 전달한 메시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처음 이곳에 왔던 때처럼, 원형 경기장의 한 가운데서 모래 폭풍이 일었다.
그 가운데서 익숙한 형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아까 전에 보았던 다리우스의 환영이었다.
“왜··· 환영이 다시···?”
내가 당황해하고 있자 환영이 입을 열었다.
- 환영의 입을 빌어 말하노니. 방금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 말해보아라.
이쯤하자 상황을 분간할 수 있었다.
다리우스 환영의 입을 통해 자라투스트라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좀 낯설었다.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거의 직접적으로 대화할 기회가 생기다니.
형가의 화신으로 있을 때에도 이런 경험은 해보지 못했다.
“회귀했다고 했습니다.”
- 잘못들은 것이 아니군. 네가 말한 회귀가 도대체 어떤 의미인 것이냐. 설마 ‘시간 회귀’를 뜻하는 건가?
“맞습니다. 시간 회귀를 말하는 겁니다.”
환영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 시간 회귀는 단 1회 사용가능한 내 고유의 마법이다. 그렇다면 내가 너를 회귀시켰다는 건데. 믿기지가 않는군.
환영이 등을 돌렸다.
그리곤 스태프를 들어올렸다.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우는 듯했다.
정신을 잠깐 집중하더니 말이 멈추었다.
당황하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지막이 말을 뱉었다.
- 이럴 수가··· 네 말이 맞군. 시간 회귀 마법을 준비할 수조차 없군.
방금 그게 시간 회귀 마법을 사용해보려고 한 것이었구나.
1회밖에 사용가능하지 않는데 이미 사용했으니.
지금은 발동하지 않는 것이겠지.
- 머리가 아프군. 도대체 내가 왜 널 회귀시켰단 말인가? 무슨 연유가 있었기에 하필 너를 회귀시켰단 말인가? 그것도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내 마법을 사용해서?
“그 이유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 낱낱이 말해보아라.
“크로노스가 인간을 배신했습니다.”
- ······.
환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을 겉으로 보아선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회귀하기 전, 그때 인간들의 세계는 크로노스의 수하인 전사들에게 정복당했습니다. 저는 형가의 화신까지 할 정도로 강했지만 그들을 막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최후를 맞이하려던 순간, 자라투스트라님이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 내가 널 살리려고 시간 회귀를 썼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리곤 제게 스킬을 주시며 이번엔 절 도와 힘을 나눠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문 마법 구슬’을 찾고 자라투스트라님과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거고요.”
- 흐음······.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얼굴 표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궁금증과 당황스러움이 뒤섞여 있던 표정은 점점 분노의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속에서 오르는 노기로 인해 입 꼬리가 실룩거렸다.
아마 그는 크로노스의 예상치 못한 행태에 분노하는 게 아닐까.
이내 표정이 변했다.
뭔가를 체념하고 아까워하는 것 같았다.
한숨을 다시금 훅 뱉었다.
- 후우··· 이제 조금씩 명백해지는군. 그랬어··· 애초에 꿍꿍이가 있었던 거지. 처음부터 인간 세계에 개입해야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더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처음부터 위대한 자에게 연락하여 인간에게 힘을 나눠주자고 주장한 것이 바로 크로노스일세. 그래서 그런 속셈이 있었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군. 나뿐만 아니라 어떤 위대한 자들조차도······
그렇구나.
애초부터 그는 도덕적 우위를 선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 세계에 대한 연민과 애정.
그것을 명목으로 위대한 자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그들이 인간 세계에 개입하도록 만들었다.
그때 문득 궁금한 것이 있었다.
처음에 자라투스트라는 인간에게 개입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하지 않았나?
애초에 크로노스의 야욕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질문해보자.
“그런데 공허 사제의 말에 따르면, 자라투스트라님께선 처음에 협약에 참여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요?”
- 개입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인간들을 믿었기 때문이지. 공허에 산재한 다른 세계와 마찬가지로 말이야.
그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머릿속엔 의문이 샘솟았지만 꾹 참고 계속해서 그의 말을 들었다.
- 허나 내 생각은 틀린 것으로 드러난 것 같더군. 인간들 스스로의 힘으론 생존을 도모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네. 결국 이것이 내가 공허 사제의 제안을 받아들여 협약에 참여한 이유이기도 했고.
“그랬던 거군요. 이제야 전말을 좀 알 것 같습니다.”
- 하! 한심하다. 내가 힘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도, 내가 협약에 참여하기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렸을 텐데. 이젠 돌이킬 수가 없게 되었군.
환영이 통탄을 금치 못하며 한숨을 뱉었다.
난 순간적으로 망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조금 혼란스러웠다.
협약에 참여한 것을 후회하는 듯한 그의 말.
돌이킬 수 없다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자라투스트라님, 저로선 당신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인지요?”
- 인간에게 개입하기 위해 공허의 힘을 빌었다네. 이런 ‘공허의 협약’에 참여한 위대한 자는 그것을 거스를 수가 없어. 협약을 배반했다간 그들의 땅에 ‘저주’가 내려지기 때문이지. 그러나 이젠 모든 위대한 자가 협약에 묶여있으니······
그렇다면···
자라투스트라가 만약 협약에 참여하기 이전으로 시간을 돌렸다면.
그땐 공허의 협약을 원천적으로 깨버릴 방법이 있었다는 것인가?
그 경우엔 크로노스가 인간에게 마수를 뻗치는 일을 확실히 막을 수 있을 테지.
하지만 그렇다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인가?
회귀까지 했는데.
인간에겐 희망이 없는 것인가?
“자라투스트라님!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부디 이 땅이 크로노스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글쎄, 그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네.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위대한 자들이 힘을 합쳐 크로노스를 저지할 수는 없는 건가요?”
-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네.
“왜 그런 거죠? 크로노스가 다른 일곱의 위대한 자의 힘을 합쳐도 이기기 어려울 만큼 강력하기 때문인가요?”
- 그것과 다르네. 원천적 불가능이지. 위대한 자의 세계는 독립적일세. 위대한 자들이 서로 그들의 세계에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네. 그러니 우리가 크로노스를 직접 저지할 방안도 없지. 이것은 반대로 크로노스가 우리를 합친 것보다 곱절로 강하다고 해도 그들이 우리 세계를 정복하지 못한다는 뜻도 되네. 인간 세계의 지배도 결국 전사들을 통한 간접 지배일 테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 인간들 스스로가 크로노스의 지배를 몰아내는 수밖에 없지.
좌절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방법 중 크로노스를 저지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법이 폐기되었다.
위대한 자들을 힘을 통해 크로노스를 막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인간 세계를 크로노스로부터 지켜내려면 헌터들 스스로가 해내는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나의 행동에 모든 것이 걸렸다는 말과 동치였다.
“자라투스트라님. 자라투스트라님은 얼마나 강하신 거죠?”
- 글쎄. 나조차도 가늠할 수 없지.
“크로노스보다 강하신가요?”
- 그것도 미지수일세. 확실한 건, 다른 위대한 자들보다는 내가 강하다곤 할 수 있지.
“그럼 저도 시스템을 통해 크로노스의 전사들보다 강해질 여지가 있을까요?”
시스템은 위대한 자의 힘에 의존한다.
위대한 자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냐에 따라 헌터의 성장 한계가 정해진다.
그것이 바로 전사 세력이 인간 세계를 장악한 원동력이었다.
그것을 막으려면 적어도 전사보다, 아니 전사만큼은 강해질 수 있어야 했다.
시스템은 절대적이니까.
스탯은 그 어떤 것도 극복하지 못하니까.
그래도 그의 말에 따르면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있었다.
전사를 제외한 그 어떤 클래스보다 마법사가 강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 여지가 없다곤 말 못하겠지. 그러나 나도 시스템의 한계에 대해선 뚜렷이 예측할 수 없어.
“다른 위대한 자의 도움을 바랄 순 있을까요?”
- 그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뜻이죠?”
- 인간 세계는 공허에 산재된 많은 세계 중 단 하나일 뿐이야. 위대한 자들은 사실 이 세계가 어떤 사단이 나든 관심이 없거든.
하긴. 위대한 자의 시선에서 보자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이 세계가 크로노스의 손에 먹히더라도 그러려니 할지도 모른다.
마치 인간들의 입장에서 개미집이 몇 개 부서져도 눈 깜짝도 안 하듯이.
- 그 어떤 위대한 자도 믿어선 안 되네. 심지어 나조차도 믿지 말게나. 너를 회귀시킨 걸 보면 나조차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부족한 것 같군. ‘저주’를 감수하며 인간들을 도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단 말이니까.
“그 저주가 무엇입니까?”
- 위대한 자의 자격 박탈이지. 그리고 저주받은 땅에서 다시는 위대한 자가 나올 수 없지.
그렇구나.
회귀 전에 위대한 자들이 왜 인간을 적극 돕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지위를 벗어던지면서까지 개미 같은 우리들을 도울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자의 지위를 박탈당하느니 크로노스에게 인간 세계를 줘버리는 것이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 그러나 너무 좌절하진 말게. 프레이야 정도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네. 난 인간을 존중하는 편이지만 프레이야만큼은 아니네. 난 다만 인간을 ‘믿었을 뿐’이지. 반면 그는 진심으로 인간을 연민하고 사랑한다네. 물론 저주를 감수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나마 듣는 중 다행이군.
프레이야의 도움은 바랄 수가 있다고 하니.
심지현이 도제의 지위를 달게 되면 그에게도 한 번 말을 꺼내보아야겠다.
- 어쨌든 나 또한 가능한 만큼은 자네의 성장에 도움을 주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 일단 오늘 도제 시련의 보상으로 주어진 스킬이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될 걸세. 잘 활용해보게.
“알겠습니다.”
- 이만 가보겠네.
모래 폭풍이 다시 일었다.
다리우스 환영의 형상이 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난 사막 한 가운데 앉아 먹먹히 먼 곳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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