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는 고귀하다
나는 멍하게 터져버린 시체를 바라보았다.
이러면 고블린 가죽을 벗겨서 팔아먹긴 글렀네.
드랍하는 ‘고블린 코인’이나 챙겨야지.
그런데 왜 이렇게 세냐.
심지어 정통으로 맞추지도 못했다고.
발밑에다 맞췄을 뿐인데···.
모든 클래스 중에서 유일하게 원거리 공격을 주로 하는 클래스는 저격수이다.
천상의 위대한 사수, 예와 계약을 맺은 자들.
그들은 원거리에서 고귀하게 딜을 뿜어낸다.
소수의 적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암살자와 함께 스킬의 기본 파워가 가장 높은 클래스 중의 하나다.
그런데··· 방금 이 파괴력은···.
암살자나 저격수와 맞먹는 정도다.
게다가 폭발 범위도 꽤 된다.
이러면 다수의 적도 상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야··· 상당한데?
암살자나 저격수의 스킬은 모두 소수의 적을 상대하는 데에만 적합하게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마법사라는 클래스는 원거리에서 고귀하게 싸우면서, 광역의 적에게 폭발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건가?
미쳤다. 너무 좋은데?
암살자가 고귀하다고 생각했는데.
개뿔 다 필요 없었다.
그놈들은 일단 붙어야 된다.
초반에 급소 찾기도 어렵다.
저격수도 마찬가지다.
원래 양궁 선수였으면 모를까 연습이 없으면 명중률이 극악이다.
마법사가 제일 고귀하다.
안 붙어도 된다.
맞추기도 이만하면 쉽다.
자라투스트라님 감사합니다!
저 괴상망측한 고블린 근처에 안 가도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다.
마나 소모가 많은 건 치명적 단점이긴 하네.
10번밖에 못 쓰는 건 좀 너무하다.
‘이러면 당분간 마력은 찍을 필요 없겠어. 집중력에다 몰빵해서 마나통부터 올려야지.’
크오오오오-!
다시 고블린의 그로울링 소리가 들린다.
두 마리 정도 되는 것 같다.
내 마나는 아직 92.
아홉번 더 쓸 수 있다.
지이이잉-
미리 마법 구체를 시전했다.
곧 구체가 완성되었다.
크오오오오-!
진물인지 뭔지 모를 액체를 흩날리며 두 마리가 동시에 내게 달려든다.
속도는 엄청 빠르다.
육상 선수의 달리기에 맞먹는다.
이런. 이러면 조준하기 힘든데.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경로를 예측하여 구체를 발사했다.
슈우우우웅-
퍼어어엉!
‘맞았나?’
크오오오-
이런. 실패다.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너무 앞에다가 발사한 것 같다.
구체의 속도가 예상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놈들은 폭발에 깜짝 놀라서 잠시 멈칫했지만 다시 덤벼들었다.
아놔. 이거 갑자기 자신감이 좀 떨어지는데.
일단 튀자.
방어구도 없기 때문에 혹시라도 접근을 허용하면 위험하다.
저 찐득찐득한 액체에 치일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핑 돈다.
그래서 나는 뒤를 돌아 튼실해 보이는 나무 하나를 택하고 올라갔다.
‘이 정도면 괜찮아 보이네.’
재빨리 나무를 탔다.
이런 건 암살자 시절에 많이 해봐서 식은 죽 먹기다.
고블린 놈들은 나무 같은 건 탈 줄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 있으면 나는 무적이나 다름없다.
크오오오- 크오오오-
두 녀석이 나무를 벅벅 긁으면서 발광한다.
후후··· 불쌍한 자식들.
슈우우웅-
마법 구체를 한 번 더 발사했다.
나무 밑동에 득달같이 달라붙어 있는 놈쯤이야.
조준에 실패할 수가 없다.
콰아아앙-!
꽤애애애애액-!!
두 고블린 모두 그 자리에서 터져버렸다.
와, 파워가 정말 좋긴 하다.
두 마리라도 똑같이 한 번에 터뜨리네.
‘이제 마나가 82 남았네. 마나 소모가 크니까 조준에 실패하면 안 되겠어.’
마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자동으로 차기는 한다.
그러나 그 양이 현저하게 낮다.
1분 당 1이 찬다.
10분 쉬면 겨우 마법 구체 한 번 더 쓸 수 있을 정도가 된다는 거다.
그러니까 정말 잘 써야 할 것 같다.
나는 나무에서 내려왔다.
다시 또 다른 고블린들을 터뜨리려 자리를 옮겼다.
잠시 후.
꽤애애애애액-!!
‘이제 열 마리 째인가.’
모든 마나를 다 소모했다.
이제 정확하게 2 남았다.
마법 구체를 여덟 번 사용했다.
그 중에서 명중하여 적을 쓰러뜨린 횟수는 다섯 번.
세 번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래도 한 번 폭발할 때 두 놈을 잡은 경우도 있어서 열 마리를 채웠다.
이제 좀 손에 익는다.
어떻게 조준해야 잘 맞을지 감이 팍 온다.
나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마나 호흡 한 번 써봐야겠다. 얼마 정도 회복시켜주려나.’
[마나 호흡을 사용하셨습니다. 1분 당 3의 마나를 회복합니다.]
뭐야. 딱 세 배군.
10분 쉬면 30 회복하네.
너무 적은데?
어디 보자.
아직 들어온 지 20분밖에 안 됐어.
20분 정도 확실히 사용하고 다시 움직여야겠다.
하··· 사냥 시간 아까워.
나는 정신을 집중하며 마나를 호흡했다.
서서히 마나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마나 호흡을 사용할 동안은 패시브로 1분당 1의 마나가 차오르진 않았다.
정확하게 1분당 3씩 차올랐다.
크오오오- 크오오오-
또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는데 고블린 두 마리가 나타났다.
나무 밑동을 벅벅 긁으며 내 신경을 거슬렀다.
가만 있어봐, 얘들아.
형이 좀만 있다가 놀아줄게.
- 마나 : 62/102
됐다. 20분 사용하니 60이 차올랐다.
크오오오- 크오오오- 크오오오-
엥. 언제 한 마리 더 왔냐.
뭐 나야 좋지.
한 번 마나 써서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으니까.
슈우우우웅-
콰과과광-
꽤애애액-
아싸. 정확하게 명중.
세 마리가 동시에 구체와 함께 폭발해버렸다.
이야. 세 마리까지도 한 방에 터뜨려?
좋다 좋아.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당신에게 스탯 포인트 3이 주어집니다.]
오호! 마침 레벨업까지 하다니.
역시. 솔플해서 그런지 경험치가 쫙쫙 오르네.
팀을 이루었으면 한 시간 반 동안 내내 잡아야 겨우 오를 텐데.
스탯이나 찍어볼까?
집중력으로 간다.
마력은 더 안 찍어도 일단 충분히 세니까.
[이현민]
- 레벨 : 2
- 클래스 : 마법사
- 서클 : 1
- 존재 등급 : 생도
- 마나 : 52/102
- 능력치 : 힘(10), 민첩(10), 마력(11), 집중력(13)
흠, 레벨업 한다고 마나가 증가하진 않네.
마나 명상 좀 많이 해야겠다.
[마즈다의 위대한 예언자, 자라투스트라가 당신의 레벨업을 축하합니다. 당신에게 스탯 포인트 하나를 선물합니다.]
오 뭐야. 보고 계셨군요.
신경 안 쓰시는 줄 알았더니.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집중력에다 하나 더 찍었다.
- 능력치 : 힘(10), 민첩(10), 마력(11), 집중력(14)
집중력이 14가 되었다.
좋아 좋아. 다시 사냥을 시작해볼까?
나는 나무에서 내려와 자리를 옮겼다.
콧노래를 부르며 고블린을 찾았다.
크오오오···
그때 뭔가 힘없어 보이는 고블린의 그로울링을 들었다.
왜 그러니 아가야. 어디 아프니?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근데 여타 고블린하고 달리 몸 색깔이 달랐다.
괴상망측한 초록색이 아니라 반딱반딱한 금색이었다.
미친. 심봤다.
황금 고블린이다!
크오오오···
놈은 잔뜩 경계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이런 에픽 몬스터를 볼 줄이야.
던전에는 낮은 확률로 가끔 등장하는 에픽 몬스터들이 있다.
황금 고블린도 그중 하나다.
이런 몬스터들은 많은 코인과 더불어 좋은 아이템을 준다.
경험치도 쏠쏠하다.
놓칠 수야 없지.
한 발짝 떼어 놈에게 다가갔다.
놈은 자기 등에 쥐고 있는 보따리를 들며 경계했다.
나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단지 도망갈 생각만 하는 것 같다.
이리 온.
나 나쁜 사람 아니야.
그냥 코인하고 보따리만 내놓으면 아무 짓도 안 할게.
지이이이잉-
마법 구체를 시전했다.
마법기운은 서서히 스태프의 끝에 모였다.
크오오오···?
놈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구체를 바라보았다.
아마 마법사 클래스는 처음 봤을 거야.
그러니까 이게 위험한 건 줄도 모르겠지.
반짝반짝 빛나는 동그란 사탕처럼 생각하겠지.
그런데 아가야.
이거 먹는 거 아니야.
지지야.
슈우우우욱-!
쾌속으로 구체가 날아갔다.
이제 놈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린 것 같다.
놈의 눈빛이 180도 달라졌다.
크오오오···!!
이미 늦었어, 친구야.
잘 가.
유품은 내가 잘 쓸게.
콰아아아앙-!
꽤애애애애······
기어들어가는 비명소리와 함께 황금 고블린이 사망했다.
나는 고블린의 시체 앞으로 걸어갔다.
드랍된 고블린 코인이 무려 열 개!
어디 보자··· 보따리에는 뭐가 들었니?
어머나. 코인이 또 잔뜩 들었잖아?
하나 둘 셋···
고블린 코인이 스무 개!
이건 또 뭐야.
하나가 더 있는데 반지다.
[황금 고블린의 반지]
- 레벨제한 : 1
- 착용제한 : 없음
- 분류 : 반지
- 등급 : A
- 특수효과 : 집중력 수치를 5 올려줍니다.
미쳤다. 오늘 운 왜 이렇게 좋냐.
이러면 오늘 레벨업 두 번 한 셈이잖아?
자라투스트라가 선물로 준 스탯 포인트에 반지 특수효과도 받으면 집중력이 총 6 오른다.
고블린아 고맙다.
네 은혜 잊지 않을게.
넌 내게 정말 필요한 걸 줬어.
나는 얼른 반지를 착용했다.
- 능력치 : 힘(10), 민첩(10), 마력(11), 집중력(14+5)
기분 좋다.
다시 사냥이나 해야지.
잠시 후.
제한시간이 거의 끝났다.
중간 중간 마나호흡도 해가면서 열 마리의 고블린을 더 사냥했다.
명중률이 증가하니까 더욱 효율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
오늘 잡은 고블린은 총 스물세 마리.
거기다 황금 고블린까지.
황금 고블린 경험치 때문에 레벨도 하나 더 올랐다.
[이현민]
- 레벨 : 3
- 클래스 : 마법사
- 서클 : 1
- 존재 등급 : 생도
- 마나 : 2/102
- 능력치 : 힘(10), 민첩(10), 마력(11), 집중력(17+5)
역시나 스탯 포인트를 집중력에 몰빵했다.
총 22의 수치가 되었다.
이야 성장 빠른데?
“휴··· 오늘 힘들었어. 고블린들 왜 이렇게 끔찍하게 생겼는지···.”
“일단 나가면 샤워부터 하려고··· 으 이 액체 좀 봐. 끔찍해···.”
던전 입구에는 이미 수습 23팀 멤버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던전 입구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니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표정만 봐도 생각들이 읽혔다.
‘뭐야, 저 새끼 어떻게 살아있지?’
‘혼자 뛰어가기에 진작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존버했나 보군.’
마음대로 생각해라.
어떤 욕을 해도 오늘은 신경 쓰지 않으리.
“엇, 여러분 이제 일어납시다. 던전 입구가 다시 열리네요.”
왕초 헌터가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말을 따라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이이잉-
수습 23팀과 함께 나는 던전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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