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냥 준비
띠리리리-
턱-
알람이 울리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휴 머리야.
가볍게 마신다는 걸 그만 과음하고 말았다.
어젯밤에 엄마에게 헌터 자격증을 보여드렸다.
소녀처럼 기뻐하셨다.
경사 날이라 그랬는지 술상을 차려놓으셨다.
모처럼 엄마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분명히 오늘 출근도 해야 해서 조금만 마시려고 했는데.
마시다보니 자꾸 들어가서 그만 취하고 말았다.
엄마는 술을 잘 마신다.
나보다도 더.
그래서 말린 감도 있었다.
내가 얼굴이 시뻘게질 동안 엄마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엄마의 부축을 받고 방에 들어가 누운 것이 내 기억의 마지막이다.
“현민아! 일어나야지!”
카랑카랑한 목소리.
쌩쌩하시다.
어제 그렇게 마셨는데도 말이다.
나는 눈을 비비며 부엌으로 나갔다.
엄마가 황태국을 끓여놓으셨다.
냄새 좋다.
시원하게 해장할 수 있겠네.
“자, 먹어.”
“잘 먹겠습니다.”
국물을 한 숟갈 들이켰다.
캬. 시원하다.
나는 허겁지겁 아침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참, 엄마.”
“응? 왜 그러니?”
“오늘 늦을 것 같아요. 헌터 활동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
“아, 그러렴. 나는 상관없으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엄마를 보며 싱긋 웃었다.
어느덧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이제 씻고 출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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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부장님, 여기 있습니다.”
나는 오늘 결재 받아야 할 서류를 최 부장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는 인상을 팍 쓰며 대충 훑어보았다.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제발.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마라.
“흠, 좋아. 돌아가 봐.”
휴. 다행이다.
한 시름 놓았다.
나는 꾸벅 인사하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곧 점심시간이네.
이 정도면 좀 여유 부려도 되겠지.
맞다. 어제 스탯 포인트 선물 받았는데.
아직 배분도 안 했네.
‘상태창’
[아직 배분되지 않은 스탯 포인트가 1있습니다. 배분하시겠습니까?]
흐음. 어디다가 배분하지.
일단 둘 중 하난데.
마력이냐, 집중력이냐.
마력을 찍으면 마법 구체 파워가 올라갈 거고, 집중력을 찍으면 마나통을 올리기 좋을 거다.
큰 그림을 보자면 집중력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당장 효과는 마력이 더 좋겠지.
그래, 마력으로 가보자.
나는 어제 선물 받은 스탯 포인트를 마력에다 배분했다.
[이현민]
- 레벨 : 1
- 클래스 : 마법사
- 서클 : 1
- 존재 등급 : 생도
- 마나 : 100/100
- 능력치 : 힘(10), 민첩(10), 마력(11), 집중력(10)
마력이 10에서 11로 변동되었다.
좋아 좋아.
다음으로 나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했다.
헌터 용품들을 살펴보았다.
보자··· 초반에 사용할 수 있는 스태프는 얼마 정도 하려나.
회귀 전에는 검만 사용했으니 스태프 시세 따위 알 턱이 없었다.
스크롤을 내리며 이리저리 살폈다.
그 중에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전진 길드 수습용 지팡이]
- 레벨제한 : 1
- 착용제한 : 힘(10), 민첩(10), 마력(10), 집중력(10)
- 분류 : 스태프
- 등급 : B+
- 특수효과 : 없음
- 가격 : 2,000,000원
어휴. 2백만 원이라니.
이번 달 월급을 고스란히 바쳐야 겨우 살 수 있다.
전진 길드 무기 공방에서 제작된 것이라 더 비싼 것 같다.
사실 그 만큼 성능은 좋다.
등급이 높으면 같은 레벨 무기라도 성능이 좋다.
보통 1레벨 무기는 C나 C-여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건 무려 B+등급.
전진 길드에 들 수 있으면 이런 좋은 무기를 공짜로 지급받는다.
수습 기간에 최고의 케어도 해주고.
괜히 국내 최고의 길드인 게 아니다.
그러나 나는 전진 길드가 아니기 때문에 이 무기를 고스란히 제 돈 주고 사야한다.
흠··· 어쩌지.
다른 스태프도 살펴봤지만 이 만큼 좋은 건 없다.
가격도 죄다 100만 원 이상이다.
기왕 살 거 좋은 걸로 살까?
전진 길드 무기는 믿고 쓸 수 있긴 하다.
쉽게 부러지지도 않고 튼튼하다.
하지만 이 스태프를 사면 방어구는 구입할 수가 없다.
방어구까지 사면 예산 오버가 된다.
진짜로 굶어 죽을 걱정을 해야 한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에잇. 모르겠다.
그냥 지르는 걸로.
방어구 없으면 좀 위험하긴 할 텐데.
회귀 전의 나를 믿어보지 뭐.
회피 스킬이 없어도 레벨 1 던전의 몬스터들 쯤이야.
쉽게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눈 딱 감고 예약 버튼을 눌렀다.
내 2백만 원···.
배송을 하면 며칠 뒤에 도착하기 때문에 오늘 직접 공방에 가서 수령하기로 했다.
“현민 씨, 뭐해요? 밥 먹으러 안 가요?”
심지현이 내게 말했다.
엇,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나도 모르게 한참동안 고민했나보다.
“오- 무기 주문했나 봐요?”
“아 네. 잠시 쇼핑하고 있었어요. 이제 일어나야죠. 밥 같이 먹을까요?”
“저야 좋죠. 얼른 가요.”
우리 둘은 지난번에 갔던 그 김치찌개 집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5분 정도 기다리니 자리가 났다.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현민 씨, 헌터가 된 소감이 어때요?”
“뭐 그냥 기분 좋죠. 운 좋게 팔자를 고칠 기회를 얻었으니까요.”
“생각보다 담담하네요. 아까 보니까 스태프 주문하신 것 같은데. 맞죠? 주술사 클래스인가요?”
“아 네. 맞아요. 주술사.”
헌터 자격증에도 ‘주술사’라고 적혀 있다.
거짓말이긴 해도 죄책감은 없다.
흠, 이번에는 자라투스트라가 반응을 안 보이네.
뭐 이런 자잘한 거 가지고 반응 하겠냐만.
“그러면 좀 낫겠네요. 보통 주술사는 몬스터를 직접 상대하지는 않잖아요.”
“그렇죠. 공격스킬이 아예 없진 않지만. 보통은 동료들에게 버프를 주고, 몬스터들에게 디버프를 주는 역할을 담당하죠. 팀을 꾸리면 주술사를 최우선으로 보호해주기도 하고요.”
“다행이에요. 혹시나 다른 클래스였다면 위험했을 텐데···. 헌터 하다가 불구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잖아요.”
“마냥 좋은 일인 것만은 아니죠. 그만큼 위험성이 따르죠.”
“그래서 현민 씨가 주술사된 건 참 다행인 것 같아요. 위험부담도 적고.”
“주술사가 괜히 제일 인기가 높은 게 아니죠. 편하게 버프만 돌리면서 돈 번다고 시샘하는 사람도 많고요. 프레이야가 까다롭게 사람을 선별해서 수도 많지 않고.”
“하하, 진짜 그런 식으로 시샘하는 사람이 있어요?”
역시 심성 나쁜 사람들의 뇌 내 알고리즘과는 거리가 먼 심지현이다.
일반인들의 꼬인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지난번의 나도 좀 부러워했다.
특히 당신을 말이야.
모든 최고의 길드들이 당신을 스카웃해가려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연봉을 불렀지.
어떤 비실이라도 타이슨을 떡실신시킬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프레이야의 화신, 심지현을···.
“많아요. 엄청 많죠.”
“흐흐, 사실 저도 현민 씨가 부럽긴 해요. 특히 주술사라니··· 정말 멋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게.”
“부러워하지 마세요. 지현 씨도 곧 각성하실 테니까.”
“농담하지 마세요. 자꾸 그러면 저 믿게 되잖아요.”
“뭐, 믿거나 말거나지만. 저 촉 좋은 건 아시잖아요? 저번에 약속한 거 잊지 않으셨죠?”
“그럼요. 진짜 각성하게 되면 현민 씨 밥 한 번 좋은 걸로 사드릴게요.”
심지현이 환하게 웃었다.
밥 사준다고 해서 그런가.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네.
나도 덩달아 싱긋 웃었다.
회사 일이 끝난 뒤.
나는 전진 길드의 무기 공방으로 향했다.
전진 길드는 우리 회사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걸어서도 충분히 방문할 수 있었다.
곧 길드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공방의 상점으로 들어갔다.
퍼억-
그때 입구에서 나는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이고. 아프다.
헌터인가보네.
어깨가 아주 그냥 튼실하다.
아직까지 내 신체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으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엇! 죄송합니다.”
그 사람이 먼저 내게 사과했다.
한쪽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있다.
아마 휴대폰을 보다 앞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엥? 근데 얼굴이 참 익숙하다.
낯이 익다.
가만 보자···
누구더라.
잠깐. 이제 보니 왕건호잖아?
훗날 전진 길드 최고의 탱커라 불리던 사나이다.
어쩐지 어깨빵이 장난 아니더라···.
“아닙니다. 괜찮아요.”
“헌터이신가요?”
“네, 헌터예요.”
“아··· 그러면 그나마 다행이네요. 일반인들 중에는 가끔 실수로 어깨를 부딪쳐서 탈골되는 사람들이 좀 있거든요.”
와우. 미친.
이거 뭐 그냥 걸어 다니는 무기구먼.
근데 진짜 그럴 것 같다.
어깨가 정말 태평양처럼 넓다.
두께도 장난 아니다.
회귀 전, 왕건호는 전진 길드 내 ‘헌터 레지스탕스’ 세력의 음모에 휘말려 꽤나 일찍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아마 살아 있었으면 이미르의 화신까지 노려볼 만한 친구였는데···
참 아쉬웠다.
“혹시나 이상이 있으시면 제게 연락 주세요. 연락처 드릴게요.”
흠. 아직 얼얼하긴 해도 다치진 않은 것 같은데.
뭐, 그래도 연락처는 받아둬야지.
잘하면 이번엔 내가 그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크로노스 세력과 맞서 싸우는 데 큰 힘이 되겠지.
“아 네. 여기 휴대폰 있어요.”
왕건호는 그 두꺼운 손가락으로 자신의 번호를 입력했다.
살살 좀 눌러!
휴대폰 부서지겠다.
“여기 있습니다. 제 이름은 왕건호라고 해요. 전진 길드 소속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구경 잘 하다 가세요. 죄송했습니다.”
그는 꾸벅 인사하고 다시 갈 길을 갔다.
참 예의가 바르다.
주술사로 전직했어도 될 법한 인성이다.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하다.
길가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다쳤으면 자연스럽게 번호까지 주고 가냐?
마음 편히 걷지도 못하겠네.
나는 고개를 돌리고 공방 상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오늘 주문한 물건 받으러 왔어요.”
“성함이요?”
“이현민이요.”
“잠시 만요··· 여기 있습니다.”
직원에게 내 이름을 대니 물건을 가져다주었다.
흐음··· 이 향긋한 나무 냄새.
그러나 마력이 깃들어 있어 강철보다 튼튼한 스태프다.
“감사합니다.”
물건을 들고 길드를 빠져나왔다.
좋았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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