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시랩터
투타타타타-
프로펠러와 엔진 소리가 시끄럽게 귓가를 자극했다.
패트리샤 덕분에 얻어 탄 헬기 안. 나를 비롯한 세 명의 헌터가 타고 있었다.
난 다시 한 번 패트리샤의 영향력에 대해 감탄했다. 단지 아빠 찬스 한 번으로 한국 대기업이 소유한 민간 헬기를 얻어 타다니. 돈만 많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영국 대재벌에 귀족을 겸해야만 가능한 무지막지한 일이었다.
그 덕에 시간은 상당히 많이 벌었다. 육로 세 시간 해로 세 시간으로 뚫을 길을 단시간에 주파하고 있었다.
‘레벨 200이 넘는 헌터가 한국에 현정환까지 열일곱.’
나는 헌터 협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한 헌터 목록을 살피며 계획을 짜고 있었다.
열일곱의 헌터 중에 비전투 직종은 대장장이 둘. 이들은 이번 작전에 투입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제외하면 크로노스의 낫 편에 선 전사가 열.
나머지 클래스가 암살자, 저격수, 탱커, 주술사로 넷.
이중에서 현정환은 크로노스의 낫 쪽에 동행될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김재권이 그것을 계획하고 있을 테니까.
오늘의 비극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서든 다른 클래스를 찾아야할 것 같다. 그들이 현정환 곁에 있는 한 김재권 쪽도 그를 쉽사리 건드릴 수는 없을 테니까.
“패트리샤.”
“Yes.”
그녀는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것 같았다. 평소와 같은 태도로 내 말에 대답했다.
난 지금 울릉도의 상황을 대충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녀에게 부탁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네가 다른 클래스 사람들을 찾아줘. 그러고 길드장이 있는 곳으로 합류하는 거야.”
“오케이. 207짜리 몬스터 속에서 잘 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노력해볼게.”
그나마 나를 제외하고 기동성이 가장 좋은 패트리샤가 적임자였다.
임우진을 보낼 순 없었다. 그가 섬을 혼자 돌아다녔다간 벨로시랩터들과의 전투를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곧 그의 죽음을 의미했다.
“팀장님하고 지현 씨는 저랑 같이 가시죠.”
“네, 알겠어요.”
그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모든 계획은 대충 수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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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시죠. 현정환 선생님.”
현정환이 헬리콥터에서 내리자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김재권이었다.
현정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왜 오자마자 자네 얼굴을 봐야 하는가. 기분이 더럽군.”
“어쩔 수 없으십니다. 저희랑 같은 팀으로 배정되었거든요.”
김재권 옆에 서 있는 젊은 여인은 바로 함지영이었다.
현정환은 그녀의 얼굴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노년의 감으로 불길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눈치 챌 수 있었다.
헬리콥터가 내린 곳 옆에는 임시로 만들어진 천막이 있었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앉아 있었다. 모두 울릉도의 주민으로 헬기 피난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현정환이 탄 헬기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헌터 관리소 직원이 조르르 그에게 달려왔다.
“반갑습니다, 현정환 님. 이번 작전에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충 상황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직원은 좀 전에 일어난 일련의 비극들로 인해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서류를 쥐고 있는 손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묻어 있었다.
“······해서 김재권, 함지영 님과 함께 던전 입구 쪽을 맡아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상황이 대충 정리가 되면 다른 팀과 함께 던전에 입장하시면 되겠습니다. 입구는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뒤에 오픈됩니다.”
모든 브리핑이 끝났다. 직원을 비롯한 모든 이의 시선이 현정환에게로 쏠렸다.
현정환은 이현민이 자기에게 했던 말을 되뇌었다.
김재권을 조심하라는 그 말.
그가 인간을 배신하고 크로노스를 따르려한다는 그 말.
“싫어.”
그래서 그의 대답은 긍정적일 수 없었다.
“네······?”
직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도대체 이 늙은이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클래스는 없나? 저런 싸가지 없는 전사들이랑 사냥해선 효율이 안 나거든.”
현정환이 괜히 김재권과 함지영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의 말이 진심으로 보이자 직원은 적잖이 당황했다.
“아··· 하지만 이 분들은 충분히 레벨이 높으셔서 괜찮으실 겁니다. 게다가 다른 클래스는 이미 팀을 꾸려서 사냥을 떠났고요.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
끼야아아앍!
그때 벨로시랩터 무리들이 헬기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괴상망측한 울음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으아아악!”
주민들이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질렀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표정은 끔찍하게 절망적이었다.
김재권과 함지영이 재빨리 달려갔다.
콰과과과광-
스킬 ‘에테르 반달’이 동시에 시전되었다. 검에서 뻗어나간 신비한 에테르의 기운이 반달 모양으로 화하여 벨로시랩터에게로 쇄도했다. 폭발음을 내며 녀석들이 터져나갔다.
끼야아아앍!
하지만 그 스킬들이 모든 벨로시랩터 무리들을 막아내진 못했다.
인간 정도 크기가 되는 거대한 몸집을 가지면서 재빠른 벨로시랩터들. 그 중에는 스킬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여 돌파하는 놈들도 있었다.
살아남은 몇몇은 도망가는 일반인들을 우악스런 이빨로 깨물었다. 선혈이 팍 터짐과 동시에 귀를 찌르는 듯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악!”
“엄마, 엄마!!”
현정환과 그의 곁에 있던 관리소 직원. 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 절망적 광경에 누가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겠는가.
직원이 현정환의 한쪽 팔을 붙잡으며 애원했다.
“제발 부탁입니다! 그냥 이대로 저들과 함께 임무를 맡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지금 섬 곳곳에는 빠져나오지 못한 주민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상당수는 이미 목숨을 잃었겠지만··· 그래도 몇몇은 살아 있을 거란 말입니다.”
“······.”
그러자 현정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묵도하며 수많은 생각이 이어진다.
헬기를 타기 위해 피신해 있던 피난민들. 헌터도 아닌 그들은 벨로시랩터의 이빨 한 번이면 즉사하고 말았다.
김재권과 함지영은 본심을 숨기고 일반인들을 도와주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스킬을 써서 적들을 사냥하고 일반인들로부터 떼어놓으려 한다.
관리소 직원은 지금 본인 앞에 아예 무릎까지 꿇고는 애원하고 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인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이 모든 것을 관조하기만 해야 한다.
‘젠장.’
그러나 그는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본인의 마음 깊은 곳에 끓어오르는 동정심과 의협심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그는 조용히 검을 쥐어들었다. 직원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벨로시랩터에게로 뛰어간다.
임무를 수락하겠다는 의지의 표현.
그는 참혹히 죽어가는 일반인들을 바라만 볼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앞질렀다. 심지어 그의 삶에 대한 의지마저도.
외유내강 길드의 장다운 선택이었다.
콰과과과광-
김재권과 함지영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에테르 반달’이 벨로시랩터에게로 쇄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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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울릉도의 모습이 보였다. 본래 천혜의 비경으로 유명한 작은 화산섬 울릉도. 지금은 다만 끔찍한 재앙이 벌어지는 장소일 뿐이었다.
계절이 겨울이다 보니 상황을 파악하기가 용이했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새까만 벨로시랩터 떼들이 섬 곳곳을 유린하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저기가 던전 입구인가 보군.’
떼거지로 쏟아져 나오는 길을 거슬러 올라가니 던전 입구의 위치를 대충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벨로시랩터들이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놈들은 워낙 속도가 빠른 놈들이라 라르고 드래곤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시시각각 많은 양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투타타타타-
헬기가 착륙했다. 우리는 재빨리 헬기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다름 아닌 벨로시랩터였다.
“헉!”
임우진이 숨을 삼키며 잔뜩 긴장했다. 수가 상당히 많았다. 난 그들을 뒤로 물리고 가장 앞에 섰다. 그리고 스킬을 시전했다.
‘천벌.’
4서클이 되면서 새로 획득한 스킬이었다. 무속성 스킬인데 어떤 속성을 부여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된다.
지금 내가 부여한 속성은 불. 불 속성이 부여되면서 천벌은 게임에서 보던 메테오와 같이 변모했다.
하늘에서 불을 품은 운석들이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꽤애애애액-
운석은 떨어지면서 광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에 휩싸인 벨로시랩터들은 곧바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207짜리 몬스터도 천벌의 파괴력 앞에선 어찌할 수 없었다. 그 광경은 마치 공룡이 운석 충돌에 의해 멸종되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내 주변이 모두 조용해졌다.
‘모두 죽어버렸군.’
방금 죽은 벨로시랩터를 제외하고도 놈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천막이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사람들의 시체가 도처에 널려 있다.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놈들의 급습에 의해 모두 죽어버린 모양이다. 애도를 표하며 우리 모두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것은···.’
그 중 한 남자의 시체가 눈에 띄었다. 그는 어떤 서류들을 소중하게 안으며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서류들을 집어 들었다. 피가 묻어 있어 내용이 조금 가려지긴 했지만 못 알아볼 정돈 아니었다.
이것은 오늘 울릉도 던전 폭발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서였다. 그는 아마도 던전 관리소 직원이었던 모양이다.
‘김재권, 함지영, 현정환 팀. 던전 입구 쪽을 담당.’
역시. 이미 이렇게 판이 짜여 있었다.
현정환은 크로노스의 낫 일원과 함께 팀을 꾸리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혼란한 던전 입구 쪽으로 파견된다.
이렇게 되면 설령 현정환이 죽는다 해도 몬스터에게 사고로 죽었다고 위장하기도 좋았다.
“아, 뭐야. 왜 전화도 안 터지냐, 여기.”
패트리샤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울릉도가 외딴 곳이긴 하지만 인터넷과 휴대폰이 안 되는 지역은 아니다.
아마 벨로시랩터의 난동으로 기지국이 파괴가 된 것 같다. 이러면 의견 조율이 보다 힘들어 질 텐데.
“패트리샤.”
“Yes.”
“아무래도 그냥 너도 우리랑 같이 가야할 것 같다.”
계획서에는 다른 클래스와 조재석이라는 전사 한 명이 팀을 이뤄 남쪽으로 파견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전사 한 명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게 아무래도 걸렸다. 원래라면 다른 클래스를 데려와 김재권을 견제하려 했지만. 조재석이라는 자가 그것을 못하게 방해할 것이 뻔했다.
지금 전화도 안 터지는 상황에서 그녀를 그곳에 보내기엔 너무 위험했다.
‘역시 치밀하게 계획한 일이군.’
김재권의 악독함에 분노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왠진 모르겠지만. 네 말을 따르는 게 좋겠지.”
패트리샤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면 저희는 어떡하면 될까요?”
임우진이 긴장한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했다.
답은 뻔했다.
“우리 모두 던전 입구로 갑니다. 던전 입구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으니까, 얼른 가보죠.”
시간이 얼마 없다.
계획서를 보니 던전 입구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 후에 열린다고 했다.
그들이 혹시 던전에 먼저 들어가기라도 해버리면 답이 없어진다.
서둘러 뛰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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